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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현상과 하우스푸어인 고향후배 이야기

501™ 2014. 2. 4. 07:44

에드워드 챈슬러의 '금융 투기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다음 세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경우 버블이라고 합니다.


1. 초기 가격 상승기에 영웅담이 회자된다. 즉, 내 친구가 아는 누구는 어떻게 어떻게 하여 얼마를 벌었다는 등의 영웅담이 사람들 사이에 대화 거리로 각광 받는다. 주로 자기 돈 거의 안들이고 몇 년 안에 몇배를 벌었다는 식이다.


2.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나도 일단 그쪽으로 가고 보는 것이다. 즉, 모두가 그렇게 하여 돈을 벌기 때문에 나 혼자 안할 경우 소외되고 도퇴되는 느낌이 강하게 인다.


3. 가격 상승의 근거가 오직 어제보다 내일 더 오르기 때문이다. 즉, 투자 대상으로부터 얻는 수익의 꾸준한 상승이 아니라, 오직 내가 산 가격보다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에 투자의 정당성이 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저자는 16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수십가지 세계 곳곳의 버블 현상을 연구하면서, 위의 세가지 현상이 언제나 공통적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버블이 터지지 않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현명한 사람들이 버블임을 알고 나서도 너무나 한참 지나서야 터지기 때문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버블에 걸려들어 파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영국 당시 국립과학원장이던 아이작 뉴튼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뉴튼은 주식으로 원금의 20배 가까이 돈을 벌고는, 버블임음 확신하며 모두 팔아 치웠죠.

하지만 그 뒤에도 주식이 계속해서 오르자 이건 꺼지지 않을 버블이라 판단하며 전재산을 들어 다시 그 주식을 삽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결국 버블이 터져 모든 돈을 날리고 맙니다.

그러면서 뉴튼은 유명한 말을 남기죠, "난 모든 자연의 현상을 이해할 순 있지만, 한낱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버블 중 최악의 지독한 버블은 부동산 버블이다. 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많은 이들을 고통속에 황폐화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내가 2년전 2011년 말경에 부천 사는 고향 후배 하우스 푸어 글을 올린적이 있다.

고향 후배중 가장 늦게 결혼한 그는 지금 50대 후반으로 은퇴 직전에 있는 직장인 이다.

 

1996년 결혼후 근 10여년간 빌라 같은데에서만 세들어 살다가 경매 기술을 배워 자기가 살집을 경매로 장만한 것이 그를 하우스 푸어로 만든 단초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쥐꼬리 봉급으론 수년을 모아도 집장만이 불가했는데 경매란 약간의 대출금만 준비하면 쉽사리 집한채가 장만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였고 경매만 잘해도 일확천금하여 금방 부자가 될수 있다는 확신를 갖이게 하였다.

전셋집을 탈출하여 경매로 취득한 20여평되는 아파트로 이사 하게된 그는 자가에서 출퇴근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출근때 마다 어께에 힘을 넣곤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일이 그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큰실수 였다는걸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고 하였다.

이후 그는 경매장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잦아졌고 또 한건 하였다고 했다.

20여평 되는 자그마한 아파트 하나가 그에게 굴러 들어 왔다. 이때가 2007년도였단다.

역시 은행 대출금으로 잔금지불을 했기 때문에 그는 경매 보증금 10 % 만으로 아파트 한 채를 더 장만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받은 경락가는 자기가 살고있는 아파트완 달리 경락율이 엄청 올라 있었다고 한다.

불과 1년 사이 집값이 엄청 거품이 더 들어간 상태였다.

 

그래도 그는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란 믿음으로 이 아파트를 전세놓아 대출금 의 70%정도를 변재하고 나머지는 아파트값이 오르면 팔아서 대출금도 상환하고 발생하는 이윤으로 더큰집을 장만하여 큰집에서 살겠다는 일념하나로 경매장에 더욱더 열심히 들락 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파트값은 이때가 정점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열심히 경매에 응했지만 생각되로 되지 않았단다.

그는 경매에서 연이어 낙찰에 실패하자 살고 있는 아파트와 전세준 아파트를 처분하여 분양하는 아파트에 이사를 하여 집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때부터 그는 열심히 분양광고를 보게 되었고 2008년도 초반에 43평 아파트를 7대1의 경쟁을 뚫고 4억5천에 분양 받게 된다.

이때는 돈벌었다고 나에게도 소주 한잔을 받아준 기억이 있다.

다음날 떡빵 아저씨가 프리미엄 1천만원을 준다면서 자기에게 넘겨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그날 가벼운 마음으로 술한잔 얻어 먹었는데........

 

이때도 그의 손엔 딸랑 분양 계약금 외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중도금은 전부 분양회사가 책임지고 대출 해주는 조건이라 그는 중도금때는 도장 하나만 달랑 들고 가면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2번째 중도금을 낼 때 그에겐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기 시작 했다.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다 날라 가버리고 분양가에서 거래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고 있든집과 전세준 아파트도 10%이상 값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계산을 해도 대출한 중도금과 준공후 잔금을 낼 돈이 턱없이 부족 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 처분하여야 했는데 설마 설마 하고 원매자를 더 기다리다 집값은 점점더 떨어져 근 20%나 까먹게 되었다고 했다.

 

분양받은 아파트의 준공날짜가 되었는데도 집 사겠다고 찾아 오는 사람마져 없어져 버렸다고한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 분양받은 43평 아파트를 전세놓아 전세금으로 준공후 잔금을 치렀다고 한다.

대출금이 만아 전세금도 남들이 받는금액의 60% 밖에 받지 못했단다.

 

그에겐 아파트 3채가 있지만 온통 대출잔금과 전세보증금 만 남아있고 43평에대한 원리금 상환개시일이 2개월 뒤로 닦아와 있다고 한다.

이번 설에 만나 술한잔 나누는 자리에서 그는 죽고 싶은 마음 뿐이라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래도 죽으면 않된다는 말 외에는 더 할말이 없었다.


다음 아고라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