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김영란법 위반사례

출처] http://m.blog.naver.com/indizio/220771121447



나의 김영란법 위반사례

말 나온 김에, 과거 내가 경험했던 혹은 내가 전해들었던 뇌물과 선물과 밥 등의 사례들을 몇 개 적어본다. 예전 포스팅에도 적었던 것 같지만 또 적어본다. 원래 기사는 재탕 우라까이하는거다... 다행히 과거에 있었던 일은 김영란법으로 처벌하지 않는다기에 또 이런 호사를 앞으로 누릴 일도 없어 보이기에 여기서 다 까겠다. 단 나의 경험은 전부 2011년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라 요즘도 이런 문화가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이른바 '메이저' 매체의 기자로 일해본 적이 없다.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영자신문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받고 살았으니 메이저 매체 기자는 뭐 맘만 먹으면 집이라도 한 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옛날엔 더 심했다 한다. 

- 밥: 밥은 하도 많이 얻어먹어서 셀 수가 없다. 기자는 늘 돈을 안 낸다. 과천 정부청사에 출입하면 점심때마다 공무원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사려 내려오곤 했다. 간혹 순번을 정해서 관련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홍보팀에서도 밥을 사러 온다. 예를 들어 대형 건설사의 홍보팀에서 돌아가면서 건교부 출입기자실에 밥을 사러 오거나, 기획재정부 산하기관에서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기관장이 직접 점심을 사러 오는 식이다. 이런 경우 보통 청사 앞에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다. 과천 일대 산속에 쏙쏙 박혀있는 무슨무슨 가든이네 하는 고깃집으로 부웅~~~ 봉고차를 타고 가서 식사를 한다. 점심시간만큼은 어디 여행온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홍보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기자실에 점심을 사러 내려온다. 내가 정말 단 한 번도 이런 자리에서 더치페이 하는 기자를 본 적이 없다. 물론 혼자 먹고 싶으면 혼자 먹어도 된다. 삼성전자 출입하던 시절에는 혼밥하고픈 기자들을 위해 매일 따로 도시락 신청도 받아줬다. 나도 초반에는 아무 부끄러움이나 문제의식 없이 기자실에서 근무하는 '실장'에게 '저 오늘 도시락 하나 시켜주세요' 이러고 살았다. 

나중엔 이렇게 사는 게 좀 비굴하게 느껴져서, 홍보팀 따라다니지 않고 혼자 밥먹는 날이 많아졌다.

- 술: 술도 뭐 셀 수가 없다. 단체로도 먹고, 소수로 먹기도 한다. 단체로 먹은 자리 중에는 기재부에서 장관부터 공무원들 쫙, 그리고 출입기자들 우루루 해서 양평인가 어디에 1박 2일 워크숍을 갔던 기억이 난다. 국민세금이다.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날 하도 술을 많이 먹어서 다음날 토요일 친구 순혁이 결혼식에 증인을 못 섰다. 미안하다 순혁아... 이렇게 출입기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술자리는 사실 딱히 문제삼는 사람이 없다. 그냥 공무원과 기자 서로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한다. 소수로 먹었던 술 중에는 이른바 '텐프로'라고 하는 업소 같은데 데리고 갔던 모 대기업 차장님 생각이 난다. 그냥 저녁에 탕수육 먹으러 오래서 갔더니 '아끼는 기자' 몇 명만 불렀다면서 묘한 업소에 데려갔다. 원래는 나 같은 클라스의 기자는 데려가지 않는 술집인데(기자 클래스마다 쓸 수 있는 술값이 정해져 있는 듯) 특별히 불러줬다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셔서 약간 고까운 마음으로 양주를 마셨던 것 같다.

- 선물: 친구 돌석이네 회사에서 하는 기자간담회에 갔더니 그 회사 디카를 하나씩 줬다. 하하 이런 게 애매한 경우 아닐까? 친구가 주는 선물인데... 암튼 나는 받지 않았다 쿨한 척 하느라고. 돌석이한테 바보소리 들었다. 어차피 그거 다 이미 비용처리 된 건데 안받는다고 뭐가 달라지느냐고... 하지만 달라지는 게 있겠지! 장기적으론. 

그밖에 닌텐도인지 애플인지 기자간담회 갔다가 명함 추첨에 뽑혀서 뭔가 비싼 전자제품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아이패드였나? 하튼 뭐 그런거). 이런 경우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지 잘 모르겠다. 추첨으로 받는 선물은 예외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정작 그 선물은 당시 여자친구에게 바로 헌납했고 나는 구경도 못 했다. 'Easy come, easy go'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 밖에 전자회사에서 연말에 청소기를 보내줘서 어머니한테 이쁨받았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자기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물로 주는 경우는 아주 흔해서 다 기억도 나지 않고, 주위에 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기자뿐 아니라 뭐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이렇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 기억에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선물은 비싼 전자제품이 아니었다. 고구마였다. 딱히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출입기자라고, 연말에 현대중공업 홍보실 이사님이 직접 농사지은 거라면서 고구마를 한 상자 보내줬다. 암을 앓고난 이후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고 술을 덜 먹고 주말에 농사를 짓는다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었던 것 같다. 직접 키운 고구마 한 상자면 김영란법에 걸릴만한 가격도 아니면서 고마움도 왈칵 느끼게 하는 좋은 선물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 해외출장: 해외출장은 솔직히 내가 너무 좋아하는 떡고물이다. 첫 경험은 2004년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게임대회였다. 야 이거 기자 할 만 하구나.. 싶었던 행복한 경험이었다. 우리 회사가 게임 전문 매체가 아니라서 기사는 일주일 동안 딱 2개 쓰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샌프란을 만끽하며 놀았다. 자전거 빌려서 금문교 넘어 소살리토 구경했던 아름다운 기억도 난다. 삼성 돈으로 해외여행 잘 했다. 

선배 기자들에게 나쁜 버릇도 여기서 배웠다. 밤 1시 넘어서까지 호텔방에 앉아서 술을 먹는데, 각자의 미니바에 꺼내온 술을 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자고 있는 홍보대행사 직원을 방전화로 깨워서 술을 사오라고 시켰다. 그 전화를 내가 했다. 직원분께는 좀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술도 다 마신 다음에는, 막내였던 나와 연합뉴스 여기자가 술 사러 밖에 나갔다. 미국의 밤거리가 무서운 줄 그때 알았다. 총 맞는 줄 알았다. 암튼 그 홍보대행사 직원분은 그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마 후에 퇴사하시고 미국에 이민갔다고 들었다. (약 10년이 지난 후에 나도 게임회사 홍보팀에서 일하면서 기자들에게 갑질 조금 당했으니 이때의 업보였는지도 모른다)

몇 년 후 삼성과 LG에서 대거 기자들을 초청해서 갔었던 라스베이거스 CES쇼는 그 자체로도 참 재미있었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그랜드캐년에 가서 경비행기까지 태워주셨던 홍보팀 분들에게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_-; 부끄럽지만 솔직히 좋았다. 그날 밤 호텔방에 누가 찾아왔길래 문을 열어봤더니 그 두 기업 중 한 곳의 부장님이었다. 봉투를 돌리고 계셨다. "괜찮습니다 부장님. 데려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딱히 돈 쓸 일도 없는데 안 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부장이 진짜 심각하게 짜증을 냈다. "조기자님, 저도 지금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진짜 피곤해요. 이거 그냥 빨리 받아주시는 게 저를 도와주시는 길이에요. 이거 반납하면 그거 나중에 회계처리하는 게 더 골치아파요."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받았다. 봉투는 반 년 정도 내 책상서랍속에서 잠자다가 연말에 그 업체 홍보팀 이름으로 유네스코인지 어딘지에 기부했다.

그나마 전자회사들은 돈을 아끼는 편이었다. 가장 호화로운 출장은 중공업 분야 출입하던 시절에 갔다. 모 업체에서 아랍에미리트 한 번 찍고 서유럽 한 번 찍는 코스의 장기 출장을 데려갔는데 비행기부터 비즈니스클래스를 태워줬다. 20대 후반에 비즈니스클래스 타니까 기분 째지더라.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사막 투어도 하고, 요트(그렇다 요트!)도 빌렸다. 샴페인과 카나페를 먹으며 둘러보는 두바이의 분위기가 어찌나 좋았는지, 그 요트 위에서 다른 매체 여기자와 눈이 맞아서 한국에 돌아와 따로 만나기도 했다. 

해외출장에도 여러 급이 있다. 중국출장은 기자들이 꺼려하는 편이다. 의외로 편견이 강한 집단이다. 가장 선호하는 건 주류회사가 보내주는 스코틀랜드 위스키투어 같은 거다. 가서 술먹다 오는 게 일이다. 어차피 사진 같은 건 다 알아서 챙겨주는 거고. 그 다음은 각 나라 관광청에서 초청하는 관광투어다.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라 하는 것들이다. 그냥 경치 좋은 동네에 가서 좋은 리조트에서 묵으면서 좋은 거 먹고 나중에 '관광천국 몰디브...'따위의 기사 하나만 써주면 된다. 동료 한 명은 아예 가족 휴가를 이런 공짜 출장과 묶어서 갔다. 타스매니아였던가... 나는 전생에 덕이 부족했는지 팸투어는 가보지 못했다.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이런 류의 릴랙스 해외출장을 후하게 보내주는 편이었다. 나는 1년에 한두 번은 갔다. 회사 형편상 월급은 많이 못 주지만 이런 거라도 즐기게 해준다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해외 견문을 쌓게 되는 효과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기업 초청 해외 출장을 법으로 금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폰서를 받았다고 기사에 명시는 해야할 것이다. 그래야 독자들이 기사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 

- 국내출장: 국내출장은 특별히 화려하게 누린 적은 없다. 기자들이 국내출장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많이들 가는 것은 전경련에서 매년 여름 제주도에서 하는 행사다. 회원사들이 모여서 무슨 포럼을 하는데 기자들도 초청해서 취재도 하면서 가족끼리 콘도에서 놀다 갈 수 있게 해준다. 가족이 있는 기자들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체육부 시절 전북 무주군에 초청받아 갔던 것이 가장 인상깊게 남아있다. 거기 무슨 국제 태권도 공원인가를 짓겠다고 해서 무주군수가 직접 서울의 기자들을 초청하셨다. 금-토 1박 2일 일정이었고 신청은 많이들 했는데 정작 버스 타는 집결지에 나타난 것은 나와 한국일보 선배 딱 두 명이었다. 군수님은 이 중앙에서 온 기자 두 명을 정말 극진히 대접해주셨다. 물론 한국일보 기자가 접대의 중심이고 나는 곁다리였겠지만... 암튼 그날 밤에 무주리조트에서 제일 좋은 스위트룸에서 엄청 좋은 양주를 먹었는데, '여기가 마이클 잭슨이 묵었던 방입니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군수님은 정말 술을 잘 드셨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는데 선물이라면서 톨스토이의 라는 두꺼운 책 한 권과 커다란 말통에 담긴 고로쇠 수액을 주셨다. 나는 고로쇠가 뭔지 몰랐다. 전철역에서 집까지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술도 덜 깨고 날씨는 너무 더웠다. 짐이 너무 무거운데 그래도 선물받은 책을 버릴 수는 없기에, 말통에 담긴 고로쇠액을 동작역 화장실에 90% 쏟아 버렸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거의 빈 말통을 보여줬더니 한심해하셨다. 결국 도 조금 읽다가 말았다.

- 성접대: 그 중공업 출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성접대도 받았다. 좀 특이한, 뭔가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독일이었다. 낮에 관광버스를 타고 투어를 할 때는 관광가이드가 여성분이었는데, 저녁엔 남성으로 교체됐다. 현지에서 사회학인가 역사학인가 무슨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분이라 했다. 박사급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버스는 울창한 독일의 숲속을 한 시간 정도 달렸다. 적막한 곳에, 성처럼 생긴 대형 업소에 도착했다. 한국의 찜질방과 비슷한 구조인데, 단 한 가지가 달랐다. 여기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발가벗고 있다는 점이었다. 들어갈 때 홍보팀분이 문 앞에 서서 한 명당 100유로 지폐 한 장씩을 쥐어줬다. 그게 기본가격이라고 하고, 옵션은 각자 부담하시라 했다. 갑자기 동양남자 한 무리가 발가벗고 우르르 들어가니 현지 독일인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들의 구경거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분위기도 어색하고 말도 잘 안 통하고 독일 남자들 사이에서 위축되기도 하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날 거기 갔던 기자들 대부분 못했을 것이다. 나처럼 쫄아서. 그리고 서로 알몸이 부끄러워서. 하지만 누구도 '나는 못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그 100유로는 돌아오면서 회사 동료들 줄 선물사는 데 썼다. 근데 이 출장 중에 소수의 기자들은 따로 호텔에서 더 고급 성접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침 오늘 낮에 우연히 그 분 중 한 분이 어떤 신문 논설위원이 되어 쓴 글과 사진을 봤는데, 그 얼굴이 호텔방에 두바이 창녀와 누워있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글에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변태인건가? 암튼 혼자왔다면 모를까, 단체로 놀러와서 그렇게 개인플레이 하는 건 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 봉투: 돈봉투를 받은 경험은 많지 않다. 내 이전 세대, 아마도 90년대에 거의 끝나버린 관습인 것 같다. 사회가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다고나 할까. 해외 출장 때 여비로 쓰라면서 달러나 유로화를 받은 적은 몇 번 있다. 돌려준 적도 있지만 그냥 쓴 적도 있다. 돌아올 때 양주 한 병 사서 데스크 드리고, 초콜릿 같은 거 사서 동료들에게 돌리고, 남는 돈은 뒀다가 개인적으로 해외여행 갈 때 썼다. 

처음 받았을 땐 이런 거 받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심각한 얼굴로 돌려줬다. 모 대기업의 초대로 유럽 박람회 출장가는 길이었다. 공항에 집합해서 여행사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는데 가이드분이 마지막에 봉투를 하나씩 나눠줬다. 완전 백주대낮에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봉투를... 이거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과장급 직원에게 반납했더니 별 말 없이 그러시냐면서 가져갔다. 그때 나와 함께 반납하셨던 딱 한 분은 내일신문의 구본홍 선배였다. 아마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시겠지만.. 암튼 그때부터 내일신문을 좋아하게 됐다. 그냥 내 맘속에 이미지가 좋다. 

출장이 아닌 자리에서 받은 봉투는 체육부 시절 딱 한 번 있었다. 어떤 종목의 단체장이 취임 기자간담회를 한다 해서 갔다. 근데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했다. 기자간담회인데 질문도 거의 없고 관심들도 없고, 주최측도 특별히 뭔가 메시지를 전하려 하지 않았다. 기사를 쓸 만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보도자료가 담긴 서류봉투만 하나씩 나눠줬는데 거기 보니까 뭔가 작은 봉투가 또 들어있었다. 이건 뭐지 하고 그 단체장 연설하는 중에 무심코 꺼내보니 돈봉투였다. 어린 마음에 화들짝 놀랐다. 행사가 끝나고 남들 다 나갈 때까지 앉아있다가 쿵쿵 뛰는 가슴을 잡고 홍보 담당하시던 분께 돌려드렸다. 나중에 들으니 체육계에는 그런 관습이 다른 분야보다 오래 남아있었다고 한다. 신임 단체장이 오면 인사 차원에서 담당 기자들에게 봉투를 돌린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봉투를 나눠줬던 분과의 인연이다. 원래 언론사 출신이셨는데 그 체육단체로 이직하셔서 후배 기자들에게 용돈(?) 주는 일까지 맡으셨던 거다. 근데 얼마 후에 그 일도 그만두시고 우리 회사에 기자로 다시 입사하셨다. 이 참 묘한 관계란... 세상이 참 좁다. 조심조심 살아야지.

- 골프: 나는 골프를 좋아하지도 않고 거의 안 치기 때문에 골프 접대를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산업부/경제부 근무 당시 골프 좀 배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주말에 기업인들(그래봐야 대기업 홍보팀 임직원이겠지만)과 골프를 쳐야 돈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산업부 기자는 어느 정도 연차가 되면 기업으로부터 돈을 따와야 한다. 큰 신문이라고 다르지 않다.

기업인 중에 골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많이들 친다. 어떨 때 보면 기업인이 기자를 만나기 위해 골프를 치는 건지, 아니면 회삿돈으로 골프를 치기 위해 기자를 불러내는 건지 모를 정도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먹고 싶은 비싼 밥과 술을 회삿돈으로 먹기 위해 만만한 기자를 불러내는 영악한 홍보인들도 있다!) 그래서 기자는 마음만 먹으면 주말마다 기업인 따라다니며 공짜 골프를 칠 수 있다. 우리 회사엔 젊은 기자중에도 골프광들이 있었다. 그 중 한 후배는 국방부에 출입하면서 군인들과 골프를 많이 쳐서 사람들이 걱정을 좀 했었다. 국방부에서 기사 딸린 차를 후배네 집에 보내준다는 루머도 있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지.... 싶다가도 대한민국 국방부는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국방부가 너무 골프를 좋아한다.

골프는 지금도 조금 고민되는 문제다. 배워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골프 말고 게임 접대 이런거 하면 내가 정말 잘 할 자신 있는데. 스타크래프트 교묘하게 저주기 등. 골프는 그냥 너무 재미가 없고, 갖춰야 할 예절이 많아서 짜증난다.

- 해외연수: 액수로만 따지면 해외연수만큼 큰 선물이 없다. 삼성, LG, SK 등 재벌기업들은 자체적인 언론재단이나 스폰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일 년에 기자 몇 명 씩을 뽑아서 해외 대학에 연수나 유학을 보내준다. 한국의 저널리즘 발전을 위한다는 좋은 명분을 세운다. 학비뿐 아니라 가족 생활비까지 준다. 소속 신문사/방송사 측의 추천이 있어야 하므로 실제로는 기자 개인이 아니라 그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원의 대가로 요구하는 것은 간단한 경과 보고서뿐이다. 대부분의 기자 지원 프로그램은 돌아와서 몇 년 이상 미디어에서 근무할 것을 조건으로 붙이지만 어긴다고 해서 그 개인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 

여기 뽑히는 기자들은 말이 연수지 실제로는 그냥 안식년처럼 쉬다 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삼성 재단 웹사이트에 올라온 어느 기자의 보고서를 봤더니 거기에 대놓고 '공부는 거의 안 했고 그동안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썼더라. 기자가 남의 돈으로 1년 놀다온 걸 자랑이랍시고 보고서에 써서 공개된 웹사이트에 올릴 정도라니... 이 정도면 뇌 전두엽이 마비되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단, 기업 장학금을 받아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된 석박사 학위를 따오는 기자도 있다. 전 회사 선배도 그런 분이 계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류의 해외연수 지원 프로그램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재벌그룹이 진심으로 한국의 저널리즘 수준이 염려되어서 저런 기자들 미국 보내주는 데 연간 몇억에서 몇십억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신문사 방송사들 안에 자기들의 장학생을 심어놓고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측면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걸 규제할 수 있을까? 분명히 해외연수 지원은 술접대나 성접대보다는 훨씬 긍정적이다. 놀다 오든 쉬다 오든, 뭔가 배워서 오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김영란법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면 법의 판단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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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기타 짜잘한 혜택들이 많다. 예를 들어 큰 매체에 소속된 기자들은 수입차 공짜로 빌릴 수 있다. 자동차 담당 기자가 아니라도 해당 수입업체에게 얘기하면 웬만하면 시승차를 걍 빌려준다. 기름도 꽉 채워서 준다. 길게는 한 달까지도 빌렸다는 사람도 본 적 있다. 몇 년 전 회사 동료가 웨딩카로 쓰려고 외제차를 빌렸는데 접촉사고가 났지만 그냥 반납하시라고 하더라. 국산 메이커들도 빌려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현대차나 대우차를 빌려 타겠다는 사람은 아직 못봤기 때문에... 암튼 이런 건 김영란법에 저촉될 것으로 보이니 앞으로는 불가능해질 것 같다.

또 시내 좋은 위치에 있는 기업의 주차장을 무료로 쓸 수 있다거나 기자실을 쓸 수 있다거나 하는 것도 작지만 유용한 혜택이었다. 주말에 조용한 빈 기자실에 나와서 책을 쓴다거나 공부를 하는 기자들도 봤다. 이런 건 돈으로 따졌을 때 액수가 크지 않으니 김영란법 이후에도 계속 기자들이 챙길 수 있는 혜택 아닌가 싶다. 가장 최근에는 좀 부끄럽지만 작년인가 성남 탄천운동장에서 했던 성남FC와 KBS 청춘FC팀과의 경기를 사촌 진석이랑 보러 갔다가 사원증 내밀고 '기자인데 취재왔다'고 뻥치고 들어간 적이 있다. 진석이는 사진기자 아님 인턴기자라 하자고 입을 맞췄다. 시범경기라서 입장료는 원래 공짜였는데, 다만 일반석에는 좋은 자리가 없어서 일반인 출입 통제된 본부석에서 들어가기 위해... 헤헷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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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젊은 분들은 이 글을 보고 한국 기자들이 정말 썩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서구의 저널리즘에 비하면 낮은 도덕성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미디어 업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문방송이 갖는 공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라는 거지, 다른 분야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다고 믿었다가는 사회생활하며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다른 직업 갖고 있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나의 경험은 새발의 피다. 뭐 별의 별일들이 다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 룸싸롱이 그렇게 많은 거다. 심지어 학계(대학교)처럼 고상해 보이는 곳에서도 지저분한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대체로 봐서, 외부로부터 폐쇄되어있고, 바닥이 좁고, 글로벌화가 덜 되어 있으며, 이권이 크게 걸린 사회일수록 뇌물과 접대와 갑질이 심하다. 

그리고 꼭 접대를 하는 쪽이 을이고 접대를 받는 쪽이 갑인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자 접대는 돈 쓰는 쪽이 갑이다. 기자 본인들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가 갑이라고 착각하고 있겠지만, 기자는 사실 을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기업 홍보팀에서 일해보니까 알겠더라. 기자들, 적어도 기업담당 기자들은 홍보인의 손에서 놀아나게 되어있다. 많든 적든 항상 돈 쓰는 사람이 갑이다. 

그러니 김영란법은 기자들을 괴롭히는 법이 아니라 실제로는 기자들을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자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난 전망한다. 지금은 불평들을 하지만, 아마 1년만 깨끗하게 살아보면 다들 우리가 언제 저렇게 지저분하게 살았던가 싶을 것이다. 기자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배우고 또 빨리 적응하니까. 오늘은 한국 기자들에게 기쁜 날이다.

아, 또 한 가지만 추가한다. 김영란법을 만든 김영란 씨에 대한 찬사다. 이런 공익적인 제안은 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강렬한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그 혜택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조금씩 돌아가지만, 그 피해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그 소수 이익집단의 강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입법이 쉽지 않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해냈다. 이익집단, 그것도 농민집단과 언론사 등 대한민국에서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집단들의 반대를 뚫고 진짜로 법이 됐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차차 수정 보완하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럴 때 보면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