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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미스테리

세계 최악의 교도소 5곳

by 501™ 2013. 1. 8.

1. 프랑스: La Sante


파리에 남아있는 유일한 교도소인 이 곳은 1867년 만들어져 기욤 아폴리네르부터 카를로스 자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죄수들을 수용해 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이라는 이름의 이 감옥은 실로 최악의 환경을 자랑하는데, 매트리스는 이(lice)로 가득 차 있고, 죄수들은 일주일 두 번의 냉수샤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피부병이 일상화돼 있다고 합니다. 죄수들이 너무 많아 쥐들이 병을 옮겨대는가 하면, 죄수들 사이의 가혹행위와 강간도 일상적이라고 하네요. 1999년 한 해에만 124회의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 이는 미국 캘리포니아 교도소 전체의 시도를 합친 것보다 5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2000년에 감독 외과의사인 Veronique Vasseur가 책을 펴내기 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사실이 더 ㅎㄷㄷ합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막장짓은 선진국도 피해가지 않나 봅니다. 우리 모두 위안을 가져도 될 듯... -_-;

2. 적도 기니, 검은 해안


앰네스티에 의하면 화산섬에 위치한 이 감옥의 환경은 '느리고 오래가는 사형'과 다름없다고 하는군요. 불로 지지거나 구타, 강간 등의 고문이 체계적이고 잔인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종종 6일 간 배급이 안 될 정도로 식량 사정은 최악이며 죄수가 굶어죽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영국의 용병 Simon Mann(사진 왼쪽의 백인)이 적도기니 정부 전복 혐의로 검은 해안에서의 34년 형을 선고받으면서 국제적인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는군요.

3. 러시아, 블라디미르 중앙 교도소

중부 러시아에 위치한 이 곳은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 정치범 수용을 위해 건축됐고 현재는 악질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 투옥된 유명한 범죄자로는 스탈린의 아들 바실리 주가쉬빌리, 반체제 인사인 나탄 샤란스키, U2 파일럿 프랜시스 개리 파워즈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폴란드의 나치 학살 수용소에서 가져 온 죄수복들을 이 중앙 교도소 죄수복으로 사용했다고 하고, 이 현재 죄수복의 디자인은 아직도 당시 죄수복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교도소 외곽은 시민들에게 공개돼 있지만, 교도소 안의 사정은 여전합니다. 교도관의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HIV와 결핵이 만연하고 있다고 하네요. 


4. 이스라엘, 캠프 1391

공식적으로 캠프 1391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이 곳의 상황에 대한 정보는 미디어에 여러 번 흘러나갔었지요. 적십자의 방문이 허용되지 않고, 죄수들은 교도소를 나간 뒤에도 이 곳에 대해 말하는 게 금지돼 있습니다. 보통 '이스라엘의 관타나모'로 불리지만, 쿠바에 위치한 관타나모와는 다르게 텔아비브에서 차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죠. 

1391은 영국에 의해 식민정부에 대한 아랍, 유대인 음모자들을 잡아넣기 위한 용도로 건설됐습니다. 그러나 2004년 오래된 지도를 연구하던 이스라엘의 역사학자가 잡지 기사를 보고 아직도 이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었죠. 아부 그라이브의 미군 시설에서처럼, 대부분 무슬림인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성추행과 강간이 취조의 수단으로 일상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5. 북한, 강제 노동 수용소


20만 명 이상의 죄수들이 김정일의 굴라그에 수용돼 있습니다. 그 중 한 곳인 행용(Haengyong)의 굴라그는 워싱턴 D.C보다 넓은 면적에 5만 명의 죄수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굴라그에는 죄수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들까지 모두 끌려가는데, 몇몇 캠프에서는 매년 수용자 1/4이 사망하고 새로운 수용자로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시설은 중러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용자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뿐만 아니라 혹독한 날씨와도 투쟁해야 한다고 합니다.

북한의 굴라그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우측 사진의 신동혁 씨와 같은 탈북자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신동혁 씨는 1982년 14번 캠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탈북자와 친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굴라그에 수용됐다고 하네요. 2006년 탈출하기 전까지 굴라그에서만 생활했었던 신씨는, 경비병이 탈옥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처형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아야 했으며, 또한 그도 구타에 시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14번 캠프에서 탈출한 사람은 신동혁 씨가 유일합니다.









http://www.foreignpolicy.com/articles/2009/01/20/the_list_the_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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