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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미스테리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나

by 501™ 2012. 6. 20.



몇 년 전부터 엠팍을 눈팅만 하다가 2년 전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동안 진보진영 내의 문제점들에 대해 글을 써왔습니다. 주로 NL에 대한 글을 많이 썼던 것은 제가 그들을 특별하게 증오해서도 아니고 제 청춘의 배신감 때문도 아닙니다. 단순하게 그들이 진보진영의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급격하게 변하는 내부의 정세를 보면서 놀랍기도 합니다. 전 글을 쓰면서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거든요. 그냥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심정으로 내부고발 비슷한 글들을 제가 애정을 가진 이 곳에 올렸을 뿐입니다. 아무튼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진보진영에 대한 글은 따로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사실 대단한 운동 경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학교 단위에서 운동한 평범한 대중활동가였습니다. 정태인이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을 '돌 던지는 사람'으로 규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와 동기였던 유시민과의 추억을 회고하면서 나온 말인데, 유시민은 '택 짜는 사람', 자신은 '돌 던지는 사람'이었다는 거죠. 저 역시도 지도부가 아닌 '돌 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지금까지 썼던 글이나 이 글이나 예전에 운동을 하셨던 많은 불페너들이 보시기에 수준이 낮아보일 수 있습니다. 세밀하게 들어가면 틀린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올리는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만 이런 글들도 누군가는 한 번쯤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담담한 글을 하나 올립니다.


제목은 거창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주사파. 단어부터 무시무시합니다. 이미 체제경쟁이 끝난 마당에 어떻게 주사파가 있을 수 있는가. NL은 무엇이고 주사파는 무엇인가. 그 둘은 다른 것인가. 주사파는 제거할 수 없는가. 비주사 NL은 또 무엇이며, 합리적 주사는 또 무엇인가. NL과 주사파는 다르다는데 NL은 왜 주사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가. 


여기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면 보통 엔하위키 등의 링크나 운동권의 복잡한 계보들이 댓글로 달립니다. 적절한 대답이기는 하지만 짧은 댓글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계보 이런 것들을 떠나 90년대 대학시절로 돌아가 당시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주사파에 대한 악마, 광신도라는 규정을 넘어 인간 개인에 대한 글입니다. 유시민은 항소이유서에서 평범한 청년이 어떻게 폭력 과격 학생의 대명사가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이 글에서 90년대 평범한 학생들이 어떻게 주사파가 되고 신념의 강자가 되고 운동에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기술해보고자 합니다. 


(글이 길어서 몇 편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먼저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1. 편의를 위해 현재형으로 서술합니다.

2. 경제성을 위해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3. 이 글의 내용은 전형적인 사례를 예시로 든 것이며 예외는 많습니다.

    큰 틀에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PD와 관련해 비하의 소지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조금씩 나오는데 

    PD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NL에서 바라본 모습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 재생산 (1) -



*


학생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인자의 재생산입니다. 선배들은 학년마다 맡은 역할이 있고, 결국에는 졸업을 하게 되기 때문에 후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그 단위에서의 운동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신입생 사업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나쁘게 바라보면 소위 '순진한 후배들 꼬시는' 선배들이 되는 건데 그렇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방식이 좀 음습하기는 하지만 정권의 탄압이 여전하던 시대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글을 읽으시면 아시겠지만, 순진하게 세뇌되서 포섭되는 신입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기로들이 있습니다. 운동을 정리한다고 어딘가로 납치해 폭력을 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운동을 정리하는 순간 잃는 것들이 있습니다만 그건 성인으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몫입니다. 그걸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은 학생회 사업으로 매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학생회 1년 스케쥴은  신입생 사업이 알파이자 오메가가 됩니다. 이걸 PD 일각에서는 달력식 투쟁이라고 비판합니다. 학생회 본관을 점거하며 농성을 하다가도, 철거촌에서 용역들과 싸우다가도 정해진 날짜가 되면 썰물 빠지듯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 신입생 OT


이때 선배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각 조마다 골고루 배치됩니다. 그리고 OT가 하루씩 끝날 때마다 모여 신입생들의 성향을 총화합니다. (NL들은 '총화'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정보의 교환, 정리, 상담 등을 통틀어 '총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OT가 끝나면 날을 잡아서 제대로 총화를 다시 합니다. 여기서 논의되는 것들은 신입생들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치적 성향, 대중성, 취미, 그룹 등 정말 모든 것이죠. 


예를 들면 같은 단위 내에 상대정파인 PD가 있는 경우 PD멤버들이 친한 신입생은 누구인지도 유심히 관찰해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래서 그 신입생과 친분이 있는 NL멤버가 그 신입생을 맡는 형식입니다. 


그 정보들을 토대로 개강 이전까지 사전작업을 합니다. 일단 진보적 정치성향을 보이는 친구들과 대중성이 뛰어나 보이는 친구들에게는 따로 연락을 해서 만납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각자 유별나게 친해진 후배들을 또 따로 만납니다. 스스로 정치성향을 보이는 친구에게는 가능하다면 직접적으로 학생운동 제의를 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그 외의 신입생들과는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만나서 놀고 친분관계를 쌓습니다.



* 학기초


두가지 핵심 사업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아리 가입, 다른 하나는 학자투(학원자주화투쟁)입니다.


재생산의 핵심 고리 중 하나가 동아리 가입입니다. NL이든 PD든 각자가 장악하고 있는 동아리들이 있습니다. 신입생들에게 각자 자신의 동아리에 들어오도록 권유를 합니다. 과동아리의 경우에는 주로 사회과학 동아리이고, 중앙동아리의 경우에는 풍물패, 교지, 신문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내용의 동아리들이 운동권인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동아리로 묶여 있어야 신입생들과 인간적 관계를 맺기가 용이하며, 체계적인 학습을 시키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대개 이 동아리 후배들 중에 NL운동권이 나오게 됩니다.


학자투도 굉장히 중요한 사업입니다. (PD들은 교육투쟁이라고 합니다.) 등록금 투쟁이 대표적입니다. 등록금 문제는 학우들의 피부에 와닿는 부분이기 때문에 신입생들을 설득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선전전과 집회에 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입생들 대부분이 나갑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떨어져 나갑니다. 남는 이들 중에 운동인자들이 발견됩니다. 대개 동아리 소속이거나, 선배들이 각자 공을 들여 인간관계를 형성한 이들입니다.


이때의 선전 내용은 이러합니다. "등록금 문제는 국가의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국방비가 너무 많다. 특히 주한미군 지원비 비율이 높다. 대학생들 등록금 줄 돈은 없으면서 주한미군에게 줄 돈은 있단 말인가. 이건 불합리하다." 물론 이런 내용이 등록금투쟁의 전부는 아니지만 반드시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합리적 주장들 속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적절하게 섞여 들어갑니다.



* 정파의 결정


학생운동에 정파는 많습니다. PD만 정파가 많은 게 아니라 NL도 따지고 들어가면 정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신입생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최초에 만나는 선배 그룹, 혹은 동아리, 소속 학교가 정파 결정의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저희 학교의 모 단과대는 학부제를 실시했는데 재미있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부제를 실시하는 학번부터는 NL은 모두 김씨, 학생연대(PD계열, 훗날 전학협)는 모두 이씨 이런 식입니다. 학부제가 되면서 이름 순서대로 반을 잘라버린 다음에 각 과별로 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씨가 모인 반은 NL이, 이씨가 모인 반은 PD가 선배가 됩니다. 가끔 같은 박씨인데도 누구는 NL, 누구는 PD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중간에 잘려서 그렇습니다. 


우습기는 합니다. 김씨에게는 민족해방의 피가 흐르고, 이씨에게는 노동해방의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만큼 신입생들에게 선배가 누구인가는 절대적입니다. 그렇지만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 주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파간에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저는 다행히도 신입생 시절 PD계열의 좋은 선배들과도 교류하게 되어 최소한의 균형은 잡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결국 NL을 선택하면서부터는 싸늘한 취급을 받다가 결국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 5.18


학원자주화투쟁은 4월말이 되면 흐지부지 됩니다. 장기적 투쟁이 되면서 동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일단 PD에서 5.1 메이데이(노동절)에 총집중을 하면서 이완이 되기 시작합니다. 4.30 청년학생투쟁대회와 5.1 메이데이는 PD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도 이 사업을 통해 신입생들을 포섭합니다. 이때 신입생들을 두고 정파 간에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메이데이에 참석할 정도의 신입생이라면 어느 정도의 정치의식이 생긴 경우인데, 메이데이 행사를 권유하는 PD 선배들에게는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입생들이 NL 선배들에게 메이데이 참석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든 PD 쪽으로는 참석하지 않도록 설득을 합니다. 


당연히 NL들은 PD가 중심이 되는 메이데이 투쟁을 고의적으로 방기합니다. 통일운동 사업이 아니기도 하지만, 어차피 PD들이 주도권을 잡는 판에 쪽수를 보태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메이데이 당일에만 참석하고 그것도 집결지는 PD들과 다른 곳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노동절임에도 불구하고 통일 구호를 외치고 통일 노래를 부릅니다. 어느 해에는 저희 학교 NL 중에 4.30대회에 저 혼자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 동료들이 제 행동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5.18이 다가오면서 NL들도 이완이 됩니다. 5.18은 NL, PD 모두에게 중요한 사업이지만 방점이 다릅니다. PD는 주로 '광주꼬뮌' 같은 단어를 쓰며 민중들의 자발적 항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렇지만 NL은 미국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때부터가 본격적으로 신입생들에게 반미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시기입니다. 일반인이라면 광주항쟁은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안이며 90년대는 지금보다 더했고, 80년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국이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묵인하고 방조했다는 주장이 곁들어집니다. '광주학살 진짜 주범, 미국놈들 몰아내자'라는 구호가 등장합니다.



* 커리(커리큘럼)


사회과학 동아리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PD는 공부를 많이 하지만 NL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90년대 들어서고 시간이 흐를수록 NL이나 PD나 학습량이 줄면서 다함께 무식해집니다. 그래도 PD가 더 똑똑하기는 합니다.) 읽어야 할 책도 적고, 문화 전반이 감성적입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치의식이 높고 자기 주장이 강한 신입생을 NL에서는 경계합니다. 똑똑하다고 생각하기보다 품성이 좋지 않고, 쓸데없는 의문을 많이 가진다고 평가합니다. 그런 신입생은 선배들이 주의 깊게 관리합니다. 애초부터 권위주의 문화에 순응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해주기 때문에 주로 그런 사람들이 남고, 톡톡 튀는 신입생들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결국 운동을 정리하거나 PD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NL은 사람이 좋고, PD는 싸가지가 없어 보입니다. NL의 특징인 집단주의에 걸맞는 이들만 남게 되는 이유입니다. 


학기초에 읽는 커리 주제는 주로 철학, 역사인데 얇고 가벼운 책들을 읽힙니다. 철학의 경우 '철학에세이'나 '철학의 기초이론 (PD들이 읽는 두꺼운 책이 아니라 백산서당에서 나온 얇은 책이 있습니다)', 역사의 경우 유시민이 쓴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이야기' 등을 봅니다. 이 책들을 보면서 사회모순에 대해 기본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시작은 아주 건전합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보지 못했던 사회문제들을 깨닫는 시간들입니다. 이때 따로 권유되는 책들이 '껍데기를 벗고서' 시리즈입니다. 이 책에는 사회문제의 사례들이 신입생 수준에 맞게끔 편집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멈추면 그냥 건전한 민주시민 정도가 됩니다.


이게 끝나면 박세길이 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로 역사 공부를 하고,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로 경제 공부를 합니다. 박세길의 이 책들은 NL입문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사회문제들의 원인이 대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답을 찾는 단계입니다. 물론 책은 재미가 있습니다. 반미와 통일로 모든 것을 관통해버립니다. 이 땅 악의 근원은 미국이고, 통일만이 사회 근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그래서 세계관이 더 명확해지고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해집니다. 대개 어느 정도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진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 때문에 순식간에 반미와 통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문제는 이 때부터 여기에만 매몰되게 됩니다. 


네. 신입생은 이 정도만 읽어도 이후에 NL-주사파로 성장하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다른 책 읽고 와서 의문을 제기하면 역시 요주의 대상이 됩니다. PD들이 읽는 '학생운동논쟁사' 이런 거 읽지 않고, 권장하지도 않습니다. 대동단결하기도 바쁜 마당에 분열의 역사를 읽어 무엇하나라고 이야기하지만, 논쟁사를 읽게 되면 골치 아픈 의문들을 품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은 신입생들이 커리 외에 무슨 책들을 읽는지 늘 관심을 둡니다. 한 PD 선배가 제게 논쟁사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그걸 옆에서 보던 NL 선배가 바로 태클을 걸었던 적도 있습니다. '운동이란 실천이 중요한 건데 그런 식의 계보를 훑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생길 뿐이다.' 어린 제게는 꽤나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읽었습니다.



* 한총련 출범식


5.18의 기세를 이어 한총련 출범식으로 갑니다. 앞에서 기술하지 않았지만 3월에는 총학생회 출범식이 있습니다. NL들이 총학을 잡은 경우 총학을 중심으로 모든 사업이 돌아갑니다. 총학생회 출범식, 학자투, 5.18 등 모든 사업마다 자봉단(자원봉사단)이 꾸려지고 신입생들을 결합시킵니다. 그때마다 당연히 신입생들의 수준에 맞는 교양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들을 통해 신입생들은 다른 과, 다른 단과대의 선배들과 크로스가 되고, 총학생회 간부들과도 만나게 됩니다. 이런 과정들은 신입생들에게 꽤나 자극이 되고, 평범한 학우들과는 다른 경험을 한다는 기분을 갖게 합니다.


한총련 출범식의 경우 자봉단이 아닌 참가단이 꾸려집니다.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서도 교양이 이루어지고 과 차원을 넘는 교류가 이뤄집니다. 교양 내용은 한총련이라는 조직의 정당성과 당위성, 노선 등입니다. 반미와 통일이 주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때까지 남아있는 신입생들의 경우 자신의 선배들이 학생운동가들인 것도 알게 되고, 거부감도 사라진 상태가 됩니다. 학생운동에 투신할 생각은 없더라도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이런 것들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박3일 간의 한총련 출범식은 신입생들에게 꽤 큰 경험이 됩니다. 출범식이 벌어지는 동안 그 대학이 있는 도시의 아스팔트를 밟고 다니며 집회를 하게 되고, 경찰이 칠 지도 모른다는 아슬할 긴장감도 함께 느낍니다. 어느 해에는 평화적으로 치뤄지지만, 어느 해에는 탄압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96년 전북대에서 이뤄진 출범식은 도지사까지 참석하며 축제처럼 이뤄졌지만, 97년 한양대에서 이뤄진 출범식은 유혈사태를 빚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2박3일을 보내고 마지막 날 밤 출범식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의 모습들은 꽤 장관입니다. 한총련의 문화역량이 총집결되는 판이고 준비도와 무대 수준도 높습니다. 피를 끓게 만드는 시간들이 수 시간 이어진 후 클라이막스로 한총련 의장이 극적 과정을 통해 무대 위로 오르게 됩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장엄한 장면들입니다. 이게 그 말 많은 의장님 '옹립식'입니다. 한총련 의장을 꼬마수령님이라고 비꼬는 이유가 괜한 게 아닙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입생들을 비롯한 참가단 전체가 의장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는 감성을 공유하게 됩니다. 비유를 들기에 꺼림칙하지만, 독일인들이 나치의 집회에서 느꼈던 감정과 유사합니다.


이때까지의 과정을 통해 신입생들 중에 운동인자들이 가려지는 일단의 과정이 끝납니다.



* 어떤 이들을 선호하는가


대학 시절 NL의 필독서 하나를 소개합니다. 홍치산이라는 시인이 지은 '바보과대표'라는 시집입니다. NL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나 아시는 '자주민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거기 기자 중 이창기라는 사람이 있는데 부정적 의미로 꽤 유명합니다. 얼마 전 북한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구속이 되었는데, 바로 그 이창기가 홍치산입니다. 시집의 대표적인 시는 동제목인 '바보과대표'인데 뒷 편에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똑똑한 운동가의 모습으로 학우를 가르치려들지 말고 바보처럼 헌신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집을 왜 소개하냐면 그 시의 내용에 걸맞는 대중운동가 양성이 NL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에 걸맞는 스타일의 신입생을 뽑습니다. 톡톡 튀는 후배들은 어떻게든 두드려서 똑같이 만듭니다. 그래서 NL은 집단주의가 강하고 내부비판의 문화가 없습니다. 개신교와의 비교가 잦은 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NL은 자의식이 강하고 정치적 관심이 많은 신입생들은 오히려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친구들은 대중사업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우들 앞에서 똑똑한 척 하고 가르치려 들면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NL의 강점입니다. 


그렇지만 운동권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이 친구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버린다면 PD가 반드시 주워갑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안고 가려고 노력을 합니다. 마치 요미우리가 1군에서 쓰지도 않을 인재를 다른 팀이 주워갈까봐 연봉 많이 주며 2군에 잡아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마냥 신입생을 2군에 두지 않습니다. 언젠가 1군에서 핵심인자로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신입생들은 학기초부터 중앙으로 보내버립니다. 학자투 선봉대, 총학생회 출범식 자봉단, 5.18 망월동 참배단, 한총련 출범식 참가단 등 주로 상층 조직에서 머물게 하며 경험을 쌓게 합니다. 그리고 수위가 높은 집회에도 처음부터 데려갑니다. 이런 친구들의 경우 대개 인정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선민의식까지 가지며 열정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사고가 납니다. 과단위로 돌아와 동기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심지어는 선배들에도 훈계를 늘어놓는 일이 생깁니다. 이게 컨트롤이 되면 핵심인자로 성장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깁니다. 후자의 경우 다른 곳으로 정파를 옮기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친구들의 경우 PD에서도 버티지 못하고 2학년 정도 때 운동을 정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PD 역시도 대중사업을 해야 하는데 이 친구들이 용납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친구들이 정파를 옮기는 것은 신념 때문이 아닙니다. 정치판으로 치면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당적으로 옮기는 성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노파심에 덧붙이지만 이런 친구들만 NL에서 PD로 옮기는 게 아닙니다. NL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학생운동의 대안으로서 PD로 옮기는 제대로 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 농활


6월에 기말고사가 끝나면 7월초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 PD는 농촌현장활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농활은 한총련과 전농의 연대로 이루어지는 사업입니다. 농활은 대학생활의 꽃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비운동권 학우들의 참여도가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배들은 한총련 출범식까지 걸러진 신입생들 말고 다른 신입생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농활에서도 물론 교양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정부의 농업정책 비판이 중심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민족농업사수' 등 민족주의 내용이 슬로건으로 걸립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이 20% 중반대에 머물지만, 북한은 100%에 가깝다는 주장이 깨알처럼 들어갑니다. 좀 못 먹어도 100% 자급자족의 농업이 낫지 않겠는가라는 거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만, NL 주장의 방점은 후자에 찍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한총련 사업 중 가장 알차고 건전하게 이뤄지는 게 농활입니다.


9박10일 동안 서로 함께 노동하고 부대끼며 지낸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입니다. 농활에 참석하지 않으면 그동안 친했던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가 됩니다. 그렇기에 한총련 사업임에도 PD들 역시 눈물을 머금고 참석을 합니다. 자신들도 후배를 키워야 하니까요. 


NL들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견제를 합니다. 농활의 중심은 겉으로 보기에 농활대장이지만, 실세는 작업반장입니다. 작업반장이 조를 짜서 일거리를 배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괜찮은 신입생들은 주로 자신들이 있는 조로 배치를 하고, 어차피 운동권이 되지 않을 후배들은 PD 선배들이 있는 조로 밀어넣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골고루 조에 배치를 시키지만, PD들은 자기들끼리 묶어버립니다. 그리고 PD들 조에는 내공이 강한 NL 고학번을 배치합니다. PD들이 혹시나 뻘짓을 하지 않을까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PD들이 학생회를 잡고 농활을 가는 경우에도 PD들 역시 NL들을 똑같이 다룹니다.^^ (그리고 PD들은 자신들이 총학을 잡으면 농활을 가지 않고 환활(환경현장활동)을 갑니다. 물론 환활도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만 이런 배경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 농활을 통해 NL 선배들과 인간적, 정치적으로 굳건하게 결합된 신입생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멤버 그대로 대망의 8.15 범민족대회로 나아가게 됩니다.


(계속)


* 8.15 범민족대회 (통일대축전)


8.15 범민족대회. 통일대축전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통축이라고 합니다. 96년 연대사태가 바로 이 대회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 범민족대회가 NL들 1년 사업의 총집중판입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가을 이후 총학생회선거부터 이때까지의 모든 일정들은 이 범민족대회를 위해 지나왔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입니다. 범민족대회는 우리사회의 학생, 노동자, 농민, 재야에 있는 모든 통일운동세력(NL)들이 총집결하는 대회입니다. 이 대회를 주관하는 단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범민련 남측본부입니다. 지금 북한에 가 있는 노수희가 범민련 부의장입니다. 통일운동세력이라고 해서 모두 단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범민족대회와 관련해서도 통일운동세력들 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따로 8.15 통일운동행사가 치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 저희는 분열세력이라고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NL이라고 언제나 한 편은 아닙니다. 


이 사업은 7월 농활이 끝난 직후부터 일정이 시작됩니다.


먼저 통일선봉대(이하 통선대) 인원이 선발됩니다. 각 학교에서 모인 통선대는 8월초부터 전국을 돌며 투쟁을 하다 범대회 일정에 맞춰 집회장소로 합류를 하게 됩니다. 대략 오백에서 천 명 정도가 모입니다. 십여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전국을 돌기 때문에 꽤 큰 결심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통선대는 NL에서 꽤 큰 상징성을 가집니다. 어디 가서도 통선대 출신이라고 하면 인정해줍니다. 


신입생 중에 이미 상당수준 정치적 결의가 높아진 이들에게 제의가 들어갑니다. 대개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중앙에서 활동하는 신입생'이 합류합니다. 그렇지만 꽤 고된 일정이기 때문에 신입생이 결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소에 말빨이 서던 선배들도 통선대 참가는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정말 뜬금없는 친구가 통선대에 합류하기도 합니다. 선배들이 별 생각 없이 제안을 했는데 덜컥 수락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친구들이 나중에 대중간부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튼 이런 친구들의 경우 반드시 선배 하나가 함께 참여합니다. 전자의 친구와는 달리 중앙에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다른 단과대의 선배가 책임을 지고 챙겨주게 합니다. NL은 자신들과 함께 하는 경우 목숨을 걸고 책임져 줍니다. 이때 받는 감동 역시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통선대에 참여한 신입생들이라면 어느 정도 자신의 활동에 대해 알고 있거나 짐작을 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연방제 통일, 반미, 북한 바로알기 등의 교양들이 과감하게 이뤄집니다. 그리고 전국을 돌며 십여 일 동안 온갖 현장에서 온갖 경험들을 하고 투쟁을 하면서 단련됩니다. 스스로도 강한 신념과 경험을 갖게 되지만, 갖다 온 뒤 선배들의 대우도 달라집니다. 통선대를 다녀온 신입생들은 거의 열에 아홉은 이후 NL의 핵심적 운동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범민족대회 행사 중에는, 전국을 돌다 행사장으로 들어오는 통일선봉대를 맞는 시간이 있습니다. '통일선봉대 찬가'라는 노래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이때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통일선봉대 찬가'를 부르며 이들을 환영하는데 들어가는 통선대나 맞는 사람들이나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물론 통일선봉대만 핵심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사실 더욱 중요합니다. 통일선봉대에 참가하는 학우들은 어차피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자봉단이나 참가단이 꾸려지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교양들이 이뤄집니다. 통일선봉대에서의 교양 수준보다는 낮지만 큰 틀에서 대동소이한 내용들입니다. 최초 등록금 투쟁에서부터 시작된 각각의 사업에서의 교양들은 그 수준들이 점점 높아집니다.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남게 됩니다. 


이 범민족대회까지의 일정이 끝나고, 그때까지 남은 신입생들은 연방제 통일, 반미의 기본적인 틀에는 동의하거나 혹은 거부감은 없는 수준까지 이르릅니다. NL 선배들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감은 흔들리지 않는 정도까지 높아지는 상태가 됩니다.



* 이탈하는 신입생들


이런 과정을 통해 2학기 개강으로 들어갑니다. 그동안의 과정들 속에서 여러 신입생들이 대오에서 이탈을 하고, 한 편으로는 농활, 범대회 등을 통해 새로운 신입생들이 새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NL들이 잘하는 게 이 이탈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리입니다. 함께 운동의 길로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호적 세력으로 남아 있게 노력합니다. 우호적 세력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이 선배와는 생각이 다른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은 좋구나, 열심히 사는구나 정도의 생각을 가지면 됩니다. 그리고 이게 NL의 강점입니다. 이들은 나중 선거 기간이 되면 힘이 됩니다. 본인이 표를 던져줄 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에게 한마디라도 해주기 때문입니다. 



* 11월 학생회 선거


가을에는 별 다른 사업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학생회 사업은 꾸준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을농활을 2박3일 정도로 갑니다. 9월에 축제가 있는 캠퍼스라면 거기에 집중합니다. 특별한 정치사업의 성격은 아니지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10월말이나 11월에 학생회 선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NL, PD 가릴 것 없이 모든 역량들이 선거에 집중됩니다. 그래서 가을에는 신입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피튀기는 경쟁이 펼쳐집니다. 


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회를 잡아야 모든 게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로 치면 여당이 야당보다 편한 이유와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단 학생회를 잡으면 그 해의 모든 행사에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슬로건으로 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행사에 학생회비를 쓸 수 있습니다. 총학의 경우 리베이트 등을 통해 따로 자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운동권 총학생회장이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주로 조직의 빚을 갚거나 다른 어떤 곳에 지원을 해주거나 하는 식으로 사용됩니다. 물론 아주 잘못된 관행입니다.


무엇보다 신입생 사업을 하기가 편합니다. 신입생들의 경우 학생회가 있는데 또다른 성향의 선배들이 있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 합니다. 학생회에서 참여하는 집회가 있는데, 거기에 가지 않고 다른 곳에 가는 것 역시 이상해 보입니다. 그래서 NL들은 자신들이 총학생회를 잡으면 '학생회로 대동단결'을 주장하지만, 자신들이 떨어지면 '조국통일위원회'라는 조직을 따로 만들어 총학을 비토합니다. 물론 PD들도 자신들이 떨어지면 따로 조직을 만듭니다. 다만 NL은 '조국통일위원회'라는 통일된 명칭을 쓰지만 PD들은 그때그때마다 제각각입니다.


한총련이라는 조직의 존재 자체가 주는 영향력도 대단합니다. PD들이 한총련은 주사파들이 장악했다고 이야기해봤자 씨도 안 먹힙니다. NL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한총련은 학우들의 민주적 선거로 뽑힌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의 연합체인데, 그렇다면 그들에게 표를 던진 학우들이 모두 주사파란 말이냐.'라는 식입니다. 그에 덧붙여 '그래도 운동한다는 인간들이 어떻게 동지의 등에 칼을 꼽는단 말인가. 저들이 수구작당들과 다른 게 뭐가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던져주면 게임 끝입니다. 당장 여기 불펜만 봐도 그동안 이와 같은 논리가 잘 먹혔습니다. 


일단 범민족대회까지 따라온 신입생들+동아리 신입생들+개인적으로 친분을 가져온 신입생들은 대부분 선거에 투입됩니다. 선거는 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과학생회가 동시에 치뤄집니다. 선배들은 나름의 판단을 가지고 신입생들을 총학, 단과대, 과학생회 선거로 배치를 합니다. 정치적 수준, 대중성 등이 판단기준이 됩니다. NL 노선에 거의 동의하는 경우에는 총학생회 선거로 보내 중앙 차원의 경험을 쌓게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선배들이 직접 단과대, 과학생회 선거 기간동안 데리고 다닙니다.


선거라는 건 마력이 대단합니다. 선거를 치루고 나면 정치적 수준과는 관계 없이, 본인은 이제 어느 진영에 속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선거 기간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너희'와 '우리'를 구분 짓게 됩니다. 이건 굉장히 감정적 영역이어서 선거를 한 번 거치고 나면 미묘하게 뒤틀어진 인간관계의 복구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NL이나 PD나 선거 때가 되면 신입생 확보를 위헤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끄러운 짓들이 벌어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입생들은 단련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상처를 안고 떠나기도 하는 게 학생회 선거입니다.


선거 기간에 들어가면 상대 선본에 예상치 못한 신입생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럼 그 신입생들이 마지막 공략 대상입니다. 상대방이 공들여 키워온 신입생들을 데려오는 겁니다. 물론 바로 제의하는 건 아니고, 인간적 관계를 형성한 후 만약 자신들이 학생회를 잡으면 집행부 자리를 제의하는 형식으로 데려옵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학생회는 함께 해보자는 명분 있는 제의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고, 상대측 선배도 말리기가 난감합니다. 속만 터집니다.


그래도 이건 신사적인 행위입니다. 때로는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심정으로 돌직구를 던지기도 합니다. "너랑 같이 하는 선배들 주사파인 거 아니?", "너랑 같이 하는 선배들 과에서 평판이 별로인데 너도 이제 그쪽이랑 같이 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넘어오면 고맙고, 안 넘어와도 그만입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 선본에 의도적으로 편지풍파를 일으킵니다. 물론 다수의 운동가들은 페어플레이를 펼치고자 하지만 통제 안 되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고, 일단 사단이 벌어지고 나면 어쨌든 같은 편을 감싸줍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선거 때만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등록금 투쟁 때부터 계속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배들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신입생들을 다른 정파 선배들이 낚아채는 일이 없도록 상당한 신경을 씁니다. 저도 신입생 시절 PD 선배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동아리 선배들에게 '우리가 주사파인가요? 형, 4월 15일(태양절, 김일성 생일)에 미역국 드세요?'라고 물어봤다가 뒤집어진 적이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1년 사업이 마무리가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NL 성향의 신입생들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겨울방학 동안 NL 성향을 넘어 본격적인 단련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계속)


글을 쓰다보니 제목을 너무 거창하게 지은 것 같아 후회가 됩니다. 이 글은 90년대 평범한 대학생들이 어떻게 투사가 되고 나아가 주사파까지 되는지, 그리고 NL 내부의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90년대 후반 이전의 일들을 전형적 사례로 재구성했기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는 무수한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그리고 십수 년을 훌쩍 뛰어넘은 이전의 기억들이기 때문에 소소한 사실관계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큰 틀에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솔직히 이론이나 책 제목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글이 어떤 분들에게는 그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후일담으로 소비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진보진영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이들에게 좋은 먹잇거리를 던져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미미한 글에 그런 영향력이 있을 리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하나, 그리고 어떻게 글을 쓰던, 텍스트가 던져지는 순간 해석은 읽는 분들의 몫이라는 색각이 둘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필요해 보이는 회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애초 예상보다 글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냥 최초에 구상한대로 내용을 이어가겠습니다. 



- 4 - 쉬어가는 이야기



* 학생회 선거 이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상처를 던져준 학생회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패한 측은 요즘 말로 멘붕 상태가 됩니다. 과학생회 선거의 경우 주로 2학년이 나가게 되는데, 패한 후보가 남자인 경우 2학기가 끝나면 바로 군대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거가 끝날 당시에야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지만, 돌아보면 다들 '그때 내가 패하기를 잘 했구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선거에 승리했더라면 인생이 아주 달라졌을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과학생회장에 당선되면 이후 최소 2,3년 동안은 군대에 가지 못합니다. 일단 3학년 운동가가 되면 맡는 역할도 커지고 행여나 차기 단과대 학생회장이라도 나가게 된다면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건 후일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고, 닥치게 되면 마음가짐은 아주 달라집니다.


총학에서의 패배가 주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총학생회를 잡고 있었던 측에서 패하는 경우 비참함은 더욱 큽니다. 총학생회실은 폐허로 변하고, 술병과 담배꽁초, 중국집 그릇들이 무질서하게 널려집니다. 차기 총학으로의 순조로운 이월이 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존 총학 간부들의 정신적 충격도 주된 원인입니다. 


NL이 총학 및 단위 학생회 선거에서 이긴 것을 가정하겠습니다. 일단 총학을 잡고 나면 다음 해 1년 스케쥴이 바로 나옵니다. 겨울방학 스케쥴도 빡빡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이 단계에서 총학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과학생회입니다.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이런저런 직책을 제안하며 학생회 체계를 잡아갑니다. 학생회 정파가 교체되는 경우 이월 과정에서 늘 이런저런 잡음이 생깁니다. 주로 돈 문제입니다. 제가 대학 시절 늘 한심하게 생각했던 게 바로 이 돈 문제입니다. 


돈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정이 개입되었다기보다 그냥 평소에 회계 정리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1년치를 한 번에 하려니 제대로 될 리도 없고, 영수증이 남아 있을 리도 없습니다. 온갖 가라 영수증들이 판을 칩니다. 그래도 이런 경우에는 대충 맞춰보면 금액이 얼추 맞습니다. 그렇기에 정파가 다르더라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줍니다. 문제는 두번째입니다.


어떻게 맞춰봐도 금액이 크게 비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학내에서 학생회를 적게 잡고 있는 정파의 경우에 생기는 일입니다. NL, PD 가릴 것 없습니다. 학생회 숫자가 적어도 사업 규모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각 학생회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어쨌든 학생회를 잡고 있는 단위에서 그 금액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래서 금액이 비는 경우가 나옵니다. 대의를 위한 조치며 사적인 부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의식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전대 학생회장이 비는 금액을 책임 지고 메꿔주는 식으로 약속을 하고 넘어갑니다. 물론 이 금액이 메꿔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없던 돈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끔 노가다나 과외를 뛰어서 메꿔주는 개인들도 있고, 1년이 지나 총학을 잡은 다음에 조직에서 갚아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파들 간에 어지간히 감정이 상해 있지 않거나, 굳이 싸워야 할 정세가 아닌 경우 그 정도로 넘어가 줍니다. 자신들도 언젠가 당할 수 있는 문제니까요. 물론 아주 잘못된 관행입니다.


현재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통진당 내부의 사건들은 이러한 문화적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고 도덕적 해이로 굳어지며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어찌 보면 흥미로운 후일담에 불과한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런 소소한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죠. 



* 달력식 투쟁


1년 스케쥴이 끝난 마당에 엉뚱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학생운동은 학생회 사업에 매몰되어 있고, 학생회 사업은 매년 똑같은 사업들로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 스케쥴은 학생운동가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시스템이 아닙니다. 80년대 중반 학원자유화 조치 이후 수 년간의 사업들이 반복되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한 시스템으로 정착이 된 것입니다. 90년대 들어서는 학생운동이 점차 쇠퇴기에 접어들지만, 역설적으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시스템은 한 층 정교해지게 됩니다. 한총련 조직 역시 상당히 체계적인 조직으로 규모가 커져갑니다. 그런 관료화가 결국 90년대 후반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을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달력식 투쟁입니다. 노동탄압, 빈민촌 등의 사회문제는 달력에 맞춰 터지지 않습니다. 기간도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학생운동은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강력한 동원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회모순의 현장마다 학생운동 세력은 5분 대기조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학생운동=학생회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스케쥴에 따른 제약을 받게 됩니다. 노동현장으로 가서 낮에는 목 터져라 외치며 투쟁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학교로 돌아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대중사업을 벌려야 했고, 축제 날이라도 되면 현장을 이탈해 장터를 해야 했습니다. 등록금 투쟁이 처음에는 총장실이라도 때려부술 듯이 전개되다가도 5월이 되면 흐지부지 되는 것도 메이데이와 5.18 등의 사업 스케쥴 때문인 게 큽니다. 


어느 순간부터 학생운동가들은 학생회 관료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무게에 짓눌려 갑니다. 신입생으로서 학생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은 분명 사회문제에 대한 각성과 분노 때문인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회 사업을 열심히 하는 쪽으로 매몰됩니다. 그래서 반미, 통일 등의 간단하지만 거대한 구호만 읊조리게 되는 것이 자기합리화 기제로 작동하게 됩니다. 마치 사회 낮은 자들에 대한 사역보다 전도와 교회사업에만 치중하는 일부 교회의 모습과 매치됩니다. 아쉽고 씁쓸한 기억입니다. 


(계속)


'무협 학생운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가 김영하가 썼던 책인데, 학생운동을 무협지처럼 묘사한 책입니다. 선배들 말로는 무척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제가 당시 신뢰하던 선배께서 거룩한 학생운동을 희화화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며 읽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 말씀에 공감해 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학번이 되어서도 딱히 구해서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이 글 역시도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학생운동을 희화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마음 한 구석에 죄의식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엄중한 시기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들도 아니고, 거짓말로 창작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회고록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통진당의 많은 분들이 이제는 주사파가 없다고 주장하시니 이런 글 하나쯤은 상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은 기억에서 많은 것들이 지워지기 전에 평범하게 운동을 했던 제 나름의 수준으로 90년대 학생운동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양이 많아 일일이 퇴고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해야하는 일이 있어서 조금씩 쓰고 바로 올리는 식입니다. 이 글이 논쟁을 위한 글은 아니기에 나중에 표현에 조금씩 수정이 가해지거나 문장이 한두 줄 추가되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나중에 다 쓰고 나면 전면적으로 다듬어 정리본을 올릴 생각도 있습니다. 아마도 양이 무지막지하겠네요.)



- 5 - 낮은 수준의 목표 (1)



신입생들은 이제 겨울방학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스케쥴들이 잡혀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선배가 될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겨울방학 동안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짚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NL과 주사파의 관계.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딱히 나눠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NL이 성장하면 반드시 주사파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견실한 NL 운동가라면 윗선이 주사파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면 주사파 운동가라면 한총련 의장단이나 중집(중앙집행부) 이상의 윗선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이건 음모 수준도 아닙니다. 당장 그 시절 한총련 총노선 자료집 등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절이라면 자료집의 온갖 부분들이 발췌되어 떠돌아다닐 겁니다. 사실 당장 검색만 해봐도 되기는 합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차근차근 보여드리겠습니다.


1학년 때부터 책 몇 권 읽고, 집회 몇 번 나갔다 오고, 선배들과 술 몇 번 마신 다음에 자기는 주사파라고 거만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기는 합니다. 어디서 수위가 높은 노래들도 배워가지고 와서는 술자리에서 자랑스레 불러 제끼기도 합니다. 골방에서 장군님 만세를 외치기도 하죠. 이처럼 주사파가 되는 과정이 꼭 제 글처럼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특정한 책들을 읽고 나서야 주사파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에서의 신앙고백 과정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앞 글에서도 적었듯 NL은 이런 스타일을 경계합니다. 이런 친구들은 열에 아홉이 운동을 금세 그만 둡니다. 그리고 돌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주사파의 속살을 보기는 본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무용담 중의 하나로 소비됩니다. 급격하게 광신적 태도를 보였던 친구들일수록 변신도 과감합니다. 주사파가 뉴라이트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주장 때문이라기보다 습성 때문입니다. 뉴라이트들 중에는 제대로 된 성찰과 공부를 통해 전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남게 되는 운동가들은 대개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 키워지는 이들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운동을 정리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는데, 그 과정을 견뎌낼수록 대나무가 마디를 남기듯 단단해져 갑니다. 그렇지만 굳은 결의를 하지 못하면서도 어찌어찌 고학번까지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내면에 숨기고 있는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원래 강철은 쉽게 단련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강철이 만들어지는 공정이 달라졌고, 소비패턴도 달라졌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신념 하나만 움켜쥐고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현 시대의 시스템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광신도나 정치자영업자라는 규정만으로 이들의 행태가 설명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아무튼 강철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고 반복되면서 서서히 이뤄집니다. 이건 훌륭한 대중운동가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적 요구이기도 하지만, 신입생들이나 초보 수준의 운동가들이 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현실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이탈하지 않고 적정 수준에 안착하도록 만드는 부수적 효과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언급하는 이들은 NL운동에 어느 정도 참여는 하지만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주사파는 전혀 보지 못하고 그다지 관심도 없습니다. 주사파 문제가 나오면 대개 인터넷에서 이런 분들이 적극적으로 방어를 합니다. 자신들이 부대끼고 경험했던 이들은 그저 성실한 통일운동가이자 친근했던 동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사파 문제가 나오면 열심히 살았던 자신들의 대학시절이 부정당하는 모욕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분들의 주장은 사실과 어긋나지만, 감정적인 측면은 이해가 가는 이유입니다.


(계속)


댓글들 정말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읽고 있지만 일일이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반응들 때문에 댓글을 달기가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불페너들의 다양한 댓글들이 있기에 졸필로 갈겨진 이 글들이 좀 더 풍성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리즈들을 퍼가시는 경우 링크와 출처를 함께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이 글들은 다른 곳으로 퍼가셔도 괜찮습니다. 


시리즈의 순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되, 중간중간에 쟁점들이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들어가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번에 쫘악 써서 조금씩 올리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 일부 반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주제의 글마다 이렇게 조금씩 코멘트가 들어갑니다. 코멘트는 최근 사태에 대한 잡설이나 댓글 내용에 대한 피드백 몇 줄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좋아지만 직업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예전에 잠깐 관련이 있었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글을 못 써서 늘 한 소리씩 들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퇴고의 유무를 떠나 비문 투성이에, 맞춤법도 엉망입니다. 표현력은 부끄럽기만 합니다. 글 제목부터가 무시무시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쓰고 있는 내용과 비교해 제목이 에러입니다. 그럼에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분께서는 제 글이 프락치가 쓴 것 같다고 비판을 하셨는데, 제가 읽어봐도 앞 부분은 정말 프락치가 쓴 것 같습니다. 90년대 학생운동 그 중에서도 NL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년 스케쥴의 숙지가 필수적이기에 거칠고 단정적으로 글을 써서 그래보입니다. 농담이지만, 알바라고 하기에는 제 글에 나름 정성이 넘치고, 미제의 간첩이라기에는 스케일이 작습니다. 


그리고 어느 분께서 글의 이해 때문에 제 학교와 학번을 궁금해하셨는데,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실 것 같습니다. 서총련 산하 대학의 90년대 중반 학번인 것 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들을 악마화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직은 제가 누군지 밝히기에 마음의 부담이 있습니다. 지금 통진당 사태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현장의 옛 동료들 얼굴도 가슴 한 편으로 지나갑니다. 혹시 제목에 분노하시는 분들이라도 이 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제목의 뉘앙스가 그런 것이었구나 하실 겁니다. 물론 제 일방적 바람입니다.



- 6 -  패배의 시절, 잊혀진 세대



* 90년대


저도 얼마 전에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봄날은 간다'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여운이 깊은 영화였습니다. 스토리에 대한 평은 언젠가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여기서는 필요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제가 여운이 남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청춘을 보냈던 시절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우리는 청춘이었습니다. 그 뿐입니다. 물론 우리 중 일부만이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지라도 말이죠. 그리고 스크린에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쪽에서 우리는 최루탄을 마시며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도 사회 모순은 해결된 게 없는데, 시대는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탄압 받는 노동자들은 넘쳐나고, 농업 문제는 심각해져 가며, 철거촌의 용역 깡패들은 기세등등합니다. 모순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습니다. 다만 언론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가 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나섰을 겁니다. 


전 90년대 운동권을 잊혀진 세대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합니다. 80년대 선배들에게는 못 미더운 후배들이고, 2000년대 후배들에게는 구시대적 인물들로 보이는 게 90년대 운동권입니다. 90년대는 승리의 기억은 없이, 패배만이 이어진 시절입니다. 그래서 90년대 운동권들에게는 감동보다 트라우마들이 가득합니다. 옛 시절의 무용담으로 술자리가 달궈지다가도 어느 샌가 씁쓸한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기억해주지 않는 우리들만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이 시대의 피 끊는 청춘들 이야기를 그려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아직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해서인지, 가치가 없는 시절이어서 그런지, 돈이 되지 않아서인지 90년대 운동은 사회의 기억 속에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분명히 존재했던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운동판에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던 제가 이렇게 불펜에나마 글을 납깁니다. 어찌 보면 이 글들은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도,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아직도 그 시절의 기억들로 가끔씩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저를 치유하기 위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80년대든, 2000년대든 비슷한 경험들의 댓글을 보며 저는 뭔가 하나씩 마음의 정리가 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글이 누군가들에게도 치유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센치해져서 죄송합니다.


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 대학에서 운동권은 헤게모니를 급격히 상실해 갑니다. 학우들은 더 이상 운동권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비운동권 총학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 속 깊숙이에서는 인정하고픈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인정하면 지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깃발을 들고 전진합니다. 그렇지만 학우들의 무관심하고 때로는 싸늘한 시선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 싸늘했던 시선들은 가끔씩 꿈에도 나타납니다.



* 시스템의 역설


90년대 운동권의 비극 중 하나는 무식함입니다. 80년대 운동권들에 비해 학습량이 턱없이 적어집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학생회로의 매몰, 그리고 고민의 부재입니다.


90년대로 넘어들며 학생운동은 전반적으로 퇴조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지만, 반대로 시스템은 정교해져 갑니다.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조직은 안정화가 되어가지만 외부변화에 대한 대응력은 떨어집니다. 해가 바뀌면 이미 1년치 투쟁계획이 나와 있습니다. 어느샌가 학생운동은 곧 학생회가 됩니다. 사회 모순에 대해 눈을 뜨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운동을 시작했으며, 동지들을 배가하기 위해 대중사업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도구인 대중사업이 학생운동의 본질처럼 인식됩니다. 


사실 학생회와 학생운동은 필수적 연관성이 없습니다. 학생운동은 고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학생회 장악을 통한 정당성과 자금의 확보는 포기할 수 없는 메리트입니다. 우리가 안 하면 상대 정파에서 하게 되고, 우리의 쇠퇴는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학생회 선거는 매년 피가 튀깁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 분께서 댓글로 묻습니다. 공부는 언제 하냐고. 못 합니다. 그래서 운동권 학생회는 학생회장을 비롯한 몇몇이 꼴아박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는 체제입니다. 저도 여러 해 동안 고민했지만 정답은 하나입니다. 학생회를 놓아야 한다. 학생회는 학우들에게 돌려주자. 그렇지만 결국 놓지 못합니다.


이런 마당에 새로운 시도를 할 시간도 여력도 없습니다. 학교 공부를 할 시간도 없는데 학습을 할 마음의 여유가 생길 리 만무합니다. 저는 그래서 학점을 포기하고 읽고 싶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에 진출하다보니 학점은 어느 정도 해놔야 합니다. 


그렇지만 조직원 개개인이 무식해도 조직이 굴러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고민은 중앙이 하고 아래에서는 관철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노선에 의문을 가질 시간에 자보 한 장을 더 쓰는 게 운동가의 미덕입니다. 비극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택지는 언제나 O와 X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자유주의자', '개량주의자'로 몰리고, 좀 더 투쟁적인 방안을 읊조리면 '좌익소아병자'가 됩니다. 오직 '접수' 뿐입니다. 주체사상은 인간의 본성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으로 분류하는데, 우리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오직 상층의 지시를 주체의 역량과 정세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관철시킬 때 뿐입니다. 그래서 한총련에서 내려오는 문건에는 아래로부터의 고민은 하나도 없고, 전국 각지의 다양한 상황에서 중앙의 의지를 관철시킨 '모범적' 사례들만 가득합니다. 관철시키지 못하면 지도부의 판단 미스가 아니라 못한 우리들이 잘못한 것이라 스스로를 비판합니다.


해야 할 일들은 엄청나게 많고, 청춘을 소비하며 꼴아박지만, 선택의 자유는 없습니다. 대안도 없습니다. 이미 NLPDR과 수령론이라는 정답이 나와 있습니다. 이걸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일 뿐입니다. 어느 샌가 마음 한 구석에 나는 소모품이지 않은가 하는 자괴감이 스물스물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면 내 청춘이 너무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거대해진 조직을 통하지 않고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학생들의 연대를 필요로 하고 투쟁을 해야 하는 현장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여기에 눈 감고 운동을 정리하기에는 동지들이 눈에 어른거리고, 제 후배들에게 부끄럽습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의구심들은 가슴 속 깊숙이에 다시 집어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스템이 정교해지고 커질수록 선택의 자유는 사라지고, 사색과 성찰의 여유는 줄어들며, 주체적이어야 할 개인은 도구가 되어 갑니다. 자유로운 인간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시스템의 역설입니다. 그렇기에 이 글의 제목은 '왜' 주사파가 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NL들이 그동안 헌신해왔던 사회적 투쟁과 대중사업들은 그 모두가 촘촘한 음모하에 이루어진 것들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끝났을 운동입니다. 병렬적으로 따지면 부정적인 것들보다 가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행위들의 유기적 관계가 문제였던 거죠. NL과 함께 하면서 좋은 일들을 하셨다면 자괴감을 갖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누구와 함께 하고 누구의 의도였건, 당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댓글 중의 이런 내용들에 대한 저의 부끄러운 변명입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는 NL과 PD는 모든 게 다른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입생 사업의 경우에는 NL이나 PD나 대동소이하게 접근합니다. 다만 경향성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NL과 PD에 대해서는 후에 '정파'라는 주제에서 다시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시린새벽님께서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과 지방 간에는 차이가 많습니다. 하물며 같은 서울이라도 캠퍼스 간에 차이가 있고, 정파들의 존재나 세력균형에 따른 차이도 있습니다. 그걸 염두에 두시고 글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이 글은 제 시선으로 바라본 회고록이지, 그 시절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운동권 백서는 아닙니다.


DCin님께서 말씀하신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이란 책은 제가 보지 못했습니다. 제목을 들은 것도 같기는 한데 '오래된 미래'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많이 회자되었던 책이라면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제목과 내용을 봤을 확률이 높습니다. 언젠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부터 드디어 민감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주체사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정통 주사파 분들이 보시면 코웃음 칠 설명들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제 와서 주체사상 공부를 다시 할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 주체사상 관련 책들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글이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글도 아니기에 그냥 제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대로 씁니다. 제대로 알고 싶으신 분은 검색을 하시면 됩니다.



- 7 -  낮은 수준의 목표 (2) 



* 이상적 인간형 


NL과 PD가 다른 것 중 하나가 '품성론'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이상적 인간상의 강조 차이입니다. 물론 PD에서도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이상으로 이야기하며 희생, 헌신, 협동 등을 이야기합니다. 어렵죠.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사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가 대체 어떤 것인가도 감이 잘 안 오는 판에 거기에 걸맞는 인간형이 쉽게 떠오르겠습니까. (물론 이 부분은 순전히 제 개인적 견해입니다.) 


그렇지만 NL은 다릅니다. 이상적 인간의 모델이 존재하며 그를 기준으로 배우고 익혀야 할 품성이 있습니다. 이상적 인간이란 누구인가. 바로 김일성입니다. 김일성이 이상적 인간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김 주석께서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을 개척해 민족영생의 철학을 창시하셨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항일유격대 시절까지 대중을 중심으로 한 사업을 모범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깨달으신 게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행 끝에 스스로 열반의 경지에 올라 민족을 영도하시는 지도자인 셈입니다.


항일유격대 시절 김일성의 대중사업을 진솔하게 그린 책 중으로는 '회상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항일무장투쟁사 등 다른 책에서도 끊임 없이 강조하는 게 김일성의 사람중심적 면모입니다. 최근 유행어처럼 김일성의 교시들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성경 말씀에 세상만사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이들은 혁명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은 김일성의 경험과 교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모든 사업은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하라는 건데, 그 모범들이 바로 김일성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김일성 버젼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상식적으로 마냥 이상한 이야기들만 있을 리도 없고, 분명 사람을 강하게 설득하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80년대 사람은 사라지고 이론논쟁만으로 황량하던 시절 주사파가 대학가를 순식간에 석권한 게 괜한 일이 아닙니다. 주사파들이 데일 카네기의 책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김 주석께서 이미 우리 민족의 실정에 맞는 교시들을 내리셨건만...' 농담 반, 진담 반입니다.


그렇지만 이걸 초입자나 평범한 NL들에게 들이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1, 2학년 때 많이 읽게 되는 시집이 바로 '바보과대표'입니다. 2학년 운동가들의 경우 '우리는 일꾼'이라던가 '활가론(대중활동가론)' 같은 딱딱한 책들도 있지만 돌아보면 다 필요 없습니다. 정수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바보과대표. 90년대 NL 운동가라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던 시집입니다. 시집은 안 읽었어도 '바보과대표'라는 시는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방금 책장을 이리저리 뒤지다보니 홍치산의 '바보과대표',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 문부식의 '꽃들'이 세트로 꽂혀 있습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브레히트 시집과 함께 이단 책꽂이 너머에 숨어 있는 듯 합니다. 앞의 세 시집은 NL들이 읽는 시집이고, 브레히트는 주로 PD들이 읽습니다. '노동의 새벽'은 둘 다 읽는데 제가 무의식 중에 PD쪽으로 분류해 정리를 한 모양입니다.


 일단 시 '바보 과대표'를 소개합니다. 



< 바보 과대표 > - 홍치산


우리학교 1학년에 바보 과대표가 한 명 있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고 

밍맹몽, 007빵 무얼 하더라도 진짠지 가짠지

야튼 맨날 걸려 얻어맞으며 헤헤 웃고

벌주 발칵발칵 마시며 배꼽 뚜딜겨

뽕짝 걸판지게 뽑아대는 천하에 바보가 있다.


항상 그 바보 곁에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그 수첩에는 120명 동기 이름 모두 적혀있다.

누구누구와 언제 만났고

누구의 고민은 무엇이고

누구와는 아직 얘기 못해 보았느니

멋있는 싯구 하나 없지만 그런 것들이 잔뜩 쓰여있다.


수업 안 들어오는 애들 리포트 알려주고

시험 때는 쏘스(자료) 제비 벌레 물듯 물어와 노놔주고


역사연구반이니, 사회과학 연구반이니

소수의 의식을 위한 것보다

바둑반이니 농구반이니

그런 모임을 만들어 120명 모두를

함께하는 고민으로 자기 과 소모임에 참여시켰다.


일기장에는 자신의 참된 삶의 문제

누구보다 겸허하게 치열하게 고민하였으며

개인의 안락에는 추호의 타협이 없었으며

항상 5시간 수면을 철저히 지킬것을 강제했고

서재에는 항일무투사(항일무장투쟁사)가 손 때묻어 간직되어 있었다.


그날

자기 과 친구들에게는 아직 이르다며 본대에 있으라 하고

아스팔트 하이바에 우리 선배 전투조들 떨고 있을때

익살스런 춤 "간다 간다 뽕간다"

신명나게 두려움 누그려주고

전투대장의 진격의 나팔 우렁차게 울리니

그는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정확하게 꽃병(화염병)을 꽃았다.


드디어 놈들이 사나운 이빨 으르렁 거리며 덤벼들 때

한 친구 전사는 미끄러지고

모두 안타까이 돌아섰을 때

그 바보 전사는 바보처럼 의연히 달려 나갔다.


다음날 한계레신문에 조그맣게 바보 이야기가 실렸다

고대에서 2명이 화염병으로 잡혀오고 100명이나 친구들이

성북서 항의 방문을 했다고 바보를 풀어 달라고 울부짓었다고

총학생회장님이 잡혀가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리고 다음날 교문과 식당에서는

바보의 바보같은 친구들을 누구나 만났다.

그들 손에는 당구 큐대가 아니라,

볼펜이 아니라 오락실 운전대도 아닌

규탄 성명서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뒤 학생의 날 가투 전투조 사전모임에서

한 1학년 학우의 결의 발표가 나의 심장을 쳤다


"나는 바보의 다른 과 친구입니다.

투쟁하란 말은 없었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 짱돌 한 번 던진 적이 없지만 바보를 잡아 간 놈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 비록 제가 잡혀 간다 하여도....."



이 시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똑똑한 척 하지 말고, 학우들 중심으로 바보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는 학우들이 우리를 반드시 알아준다는 내용입니다. 이게 NL이 요구하는 인간형이자 바로 말 많은 '품성론'의 핵심입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은 지금 보면 유치한 신파지만 시대성을 놓고 보면 끄덕일만도 합니다. 저도 이 바보과대표처럼 살아야 하는데라고 고민하며 밤잠을 설쳤습니다. 


품성론의 강점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 타협해야 합니다. 매년 돌아오는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는 대중들 사이에 보이는 분명한 문제점에 침묵해야 합니다. 곁다리지만 민주노조 운동이 쇠퇴기에 접어든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각 정파들은 노동조합을 장악해야 하고 선거 때 표를 얻어야 하니, 조합원들 사이의 불합리한 문화에 눈을 감습니다. 입 바른 소리하는 놈이 지는 싸움입니다. 학생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품성은 조직 내에서도 요구됩니다. 오늘의 폭투(폭력투쟁)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무리한 지시라도 기꺼이 받아 안으며 간다 간다 뿅간다를 외치면서 정확히 꽃병을 꽂고 돌아오는 게 올바른 품성입니다. 권위주의 문화에 길들여지게 됩니다. 왕년에 운동을 했다는 분들 중에 생각은 진보적인데 행태는 권위주의적인 경우가 많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품성론은 대중운동 측면에서 명과 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품성론을 강조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중 진정으로 품성을 갖추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는 겁니다. 어차피 대학 들어와서 운동을 한다면 NL이든 PD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품성론을 뒤집으면 그건 선민의식입니다. 너희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바보처럼 보이라는 겁니다. 민중을 무한히 믿으라고 하면서도 실제 믿고 따라야 할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민중들이 통진당 비례대표 당선자들에게 사퇴를 하라고 하는데 그건 당원들의 수준과 맞지 않다며 거부합니다. NL 지도부들의 민중중심이라는 말은 곧 자신들의 견해와 일치할 때만 성립합니다. 정치권에서 필요할 때만 국민의 뜻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품성론이 통하는 것도 잘 나가는 캠퍼스의 조직원 많은 단위에서나 가능합니다. 사람 하나가 아쉬운 곳에서는 인간이 개차반이어서 뒤에서 욕을 하더라도 어쨌든 함께 합니다. 노년을 혼자서 쓸쓸히 보내느니 차라리 악처와 함께 욕을 하며 늙어가는 게 낫듯 말입니다.



끝으로 오늘 일어난 재미 없는 에피소드로 마무리합니다. 혹시나 하고 이 시집을 찾았는데 서재를 무질서하게 채우고 있는 책꽂이들 중에서 다행히 찾기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서재라고 이야기하니 괜히 있어 보입니다. 창고 같은 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문화가 있습니다. 후배에게 책을 사주면 꼭 맨 앞 표지에 몇 마디의 좋은 말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써 줍니다. 신입생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켜주는 효과도 있지만, 아끼는 후배와 다짐을 공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뽀얗게 바래버린 아름다운 기억들입니다. '바보과대표'도 대개 선배가 후배에게 선물해주는 시집입니다. 누가 나에게 이 시집을 주었을까. 몇몇 얼굴들을 떠올리며 첫 장을 열었습니다. 역시 글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 글씨입니다. 분노한 듯 십여 줄로 빽빽히 휘갈겨진 제 글씨입니다.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당시 무슨 회의가 있었는데, 공개적인 자리에서 여러 명의 선배들이 돌아가며 저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이십대 초반이었을 제가 그에 대해 얼마나 서운했던지 비판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너의 언행은 왜 그 모양이냐. 대중관은 도대체 어떻냐. 동기들이 너에게 데였다." 그 외의 내용은 중2병 수준이라 부끄러워 옮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죽고 나면 모교 도서관 등에 제 책들을 기증할 생각인데, 만에 하나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그러니까 이 시집은 선배들로부터 대중성에 대한 치명적인 비판들을 받고 나서 홧김에 제가 직접 산 겁니다. 아마 나도 바보과대표처럼 살겠노라며 다짐에 다짐을 했겠죠.


학생운동과 관련해 괴로운 기억들 중의 하나가 비판을 가장했던 모욕들입니다. 통진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마찬가지인데,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에게 모욕을 주는 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가 봐도 모욕인데 자신들은 그걸 올바른 비판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곧 죽어도 동지애적 비판이라고 하니 발끈하면 저만 바보가 됩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냥 인간에 대한 예의의 부재,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저 역시도 모욕을 당했던 기억들이 많습니다. 선배로부터 얻어 맞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진짜 바보여서 모두 내 잘못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넘어갔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잠자리에서 떠오릅니다. 물론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겁니다. 가해했던 기억들은 언제나 쉽게 잊혀지니까요. 그래서 그런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울컥하는 마음에 자다가도 하이킥을 날리고 싶지만, 이것도 다 스스로 만든 업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시 잠을 청합니다.


(계속)


<솔직한 품성은 신뢰를 낳고 / 신뢰는 동지에 대한 의리를 가지게 하고 / 의리는 사상과 실천에서 견고성을 가진다. // 혁명적 사업작풍과 민중적 사업작풍을 잘 요해한 사람은 사업에 철저한 완성형 인간이 되어갈수 있다.> 이런 언설들을 꼼꼼하게 기억하고 계신 평화다방님.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기억력이 좋았더라면 글을 좀 분위기 있게 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어느 유저님께서 쪽지를 통해 이석기의 인터뷰 내용 중 '내재적 접근법'에 대해 느낌을 물어오셨습니다. 90년대 송두율 교수가 주장한 내재적 접근법은 신선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물론 학계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내재적 접근법 자체가 문제는 아니며, 정치인이 아닌 학자로서 충분히 주장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내재적 접근법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더 잘 되는 부분들도 있겠죠.


문제는 내재적 접근법으로"만" 북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거죠. 북한 문제만 나오면 곤혹스럽던 NL들에게 '내재적 접근법'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논리였습니다. 뭐든지 피해가니까요. 그럼 누군가 물어보죠. "일단 내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치자. 그래서 내재적으로 들어가 나온 결론이 무엇인가." 그럼 이런 대답이 나옵니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다시 되묻죠. "지금 우리 사회에 있는 북한 정보는 다 무엇인가." 답입니다. "수구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국정원의 정보는 신뢰할 수 없다." 힘이 빠지지만 또 묻습니다. "지금 북환 관련 정보가 국정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수의 탈북자, 조선족, 해외기관 등 다양한 루트에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크로스해보면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정해진 답이 나옵니다. "조국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탈출한 탈북자들이 북한을 폄하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족이야 돈 벌러 왔는데 수구세력에 밉보이는 내용들을 이야기하겠는가. 해외기관들이 북한을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신도 잘 알지 않는가." 


결론은 '별들에게 물어봐'입니다. 


이석기 뿐만 아니라 NL쪽 인사들의 공통된 문제입니다. '북한 정권에는 이러저러한 문제점들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내재적으로 들어가보면 이런 어쩔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상식의 영역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정도의 이야기도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상식적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비상식을 옹호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TV 토론에 나와서 망신 당하는 보수 정치인들, 그들이 바보여서 어버버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죠. 포지션이 좋으면 이준석도 노회찬을 바릅니다.



- 8 -  시리즈의 예정된 결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인가. 의구심을 품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이 글의 결론이 무엇이 될지는 이미 그동안 제가 불펜에 썼던 글들에 나와 있습니다. 올바른 운동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보통 운동권에서 대화 중에 '올바른 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나오면 밤을 그냥 꼴딱 샙니다. 불펜에서 자주 최다댓글란을 메우는 떡밥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 주제로 논쟁을 한 게 살아오면서 백 번은 넘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셨던 분들도 운동권과 대화하다 무심코 이런 주제를 던지면 원치 않게 길어지는 대화를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최다댓글란의 무수한 댓글들이 나중에는 참여한 사람들조차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이 주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올바른' 운동이라는 기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양지로 나오라는 겁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신념이 주체사상이든 무엇이든 나와서 그 존경하는 대중들에게 검증을 받으라는 겁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대중의 지혜와 요구에 의거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분들이 왜 이럴 때는 대중을 믿지 못합니까. 국가보안법이 문제라구요? 그런데 지금 당신들이 국가보안법에 반대해서 정견을 밝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심판과 외면이 두려워 정견을 밝히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보안법은 핑계일 뿐입니다. 왜냐구요? 당신들은 그동안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압살해왔으니까요. 이 글에서도 다루겠지만 운동권 내부에는 '운동권보안법'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판단자료가 부족하다는 것도 이제는 초라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소련 비밀 외교문서들이 공개된 이후, 한국전쟁이 김일성에 의해 이뤄졌음은  이제 남조선 괴뢰정권의 선전선동이 아닌 명백하고 건조한 팩트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있으며, 탈북자들의 진술들은 많은 부분 일치합니다. 민주 정권 10년 동안 북한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역시 많은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북한 주민들을 뿔 달린 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북한사회를 이상향 사회주의로 볼 만한 근거들이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사파들은 그동안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대해, 김정일이 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에 권력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김정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김정일의 주체사상 논문들이나 그가 청년 시절 당 사업을 맡아 성과를 냈던 일들을 들먹입니다. 이게 얼마나 우습고 빈약한 신앙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서 그럴 수도 있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이 아슬아슬한 믿음들이 모두 허위였음은 3대 세습을 통해 밝혀집니다. 김정은도 백마를 탄 장군님이란 말입니까. 


이걸 진심으로 믿는다면 김정은 말고 저를 북한정권의 지도자로 추대하는 운동을 벌여주십시오. 2012년 미제와의 북미평화협정을 담판 짓고, 2014년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지나 2017년 차차기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자와 연방제 통일에 합의하며, 2022년 하나의 지도자 아래 영도되는 통일 조국 새시대를 열어나가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표를 던지는 이는 내 표로 생성되는 권력이 누구에게 가는지 알아야 하며, 돈을 내는 당원은 내 돈이 어디에 쓰여지는지 알아야 하며, 현장의 활동가는 자신의 활동이 누구와 함께 무슨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골방 서클이 아닌 공식 정당이라면 형식적 강령이 아닌 자신들의 진정한 정치적 견해와 목표를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게 이 시리즈의 예정된 결론입니다. 

(다만 이렇게 쪽대본으로 쓰여지고 있는 시리즈물의 특성상 결론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_-;)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많은 분들께서 느끼시겠지만, 이 글들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쓰여지는 게 아닙니다. 군사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생겨난 이 음습한 흐름들이 왜 극복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왜 90년대인가. 80년대라는 시대적 특수성에서만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운동권의 조직문화와 사고체계는 90년대 들어와 극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가 되고 소멸의 길로 접어듭니다. 


제 청춘의 시대여서 자꾸 돌아보는 면도 있겠지만, 이 시대 우리들이 역사적 소명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한 뼈저린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 때는 사직불바다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계속된 좌절들이 민주노동당 탄생의 자양분이 되었다며 스스로 위로를 하고 뿌듯해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2008년 분당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황망한 사태들은 그 위로들이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고 머물러 있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글이 단순한 추억 따먹기가 아닌 생산적 회고라고 제 나름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계속)


C급좌파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도 제 글이 어떻게 읽혀질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마음에 담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전달이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마지막 에필로그에 이런 저런 부탁의 말씀을 드릴 생각입니다. 


"그때는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말씀도 공감합니다. 이후에 쓰려고 놔둔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 저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저는 성인이었고, 제 모든 행동들은 제가 스스로 결정해서 행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후회는 있지만 원망은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치유되지 않음이 오래 가더군요. 몇 년 전 그것 때문에 1년여를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문지방에 스스로 발가락을 찧었을 때, 원망할 이 하나 없는 불쾌함의 고통구조. 잠자리에 누우면 옛 기억들이 무한대로 퍼져나갑니다. 


결론은 스스로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스스로 얻는 것이다." 이 글도 그래서 씁니다. 기억을 지우려는 게 아니라 제대로 정리해서 가슴 속 어딘가에 넣어두고 싶은 거죠. 보고 싶은 때만 꺼내볼 수 있게요. 그리고 잠을 푹 자고, 좋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C급좌파님께서도 예전 기억들이 그렇게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또 센치해졌네요.


연대사태 글은 제가 그냥 날렸습니다.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해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리즈물과는 맞지 않는 것 같더군요. 부록으로 돌려도 좀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태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니, 아무래도 좀... 


이번 편까지는 좀 지루하실 수가 있는데 다음 편부터 다시 성장과정으로 돌아갑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글에서 설명되지 않은 많은 것들은 후반부에 다뤄집니다. 권위주의적 문화, 침묵 이런 것들 말이죠. 그리고 주제명이나 소제목들이 좀 유치한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대부분 제가 그냥 붙인 말이지, 운동권에서 쓰였던 용어들은 아닙니다. "너희 재생산 사업은 잘 되고 있어?" ,"아니. 낮은 단계의 목표까지 끌어올리는 게 생각보다 힘드네." 뭐 이런 식으로 쓰일 리가 없겠죠. ^^;



- 9 -  낮은 단계의 목표 (3)



* 바보과대표 (2)


먼저 지난 편에서 제가 여러분께 오해를 드렸을 수도 있는데, 바보 과대표 같은 삶이 곧 주체사상은 아닙니다. 바보 과대표라는 시집을 가지고 다니고 그렇게 산다고 곧 주사파는 아니라는 거죠. 낮은 자세로 봉사하며 살아가라는 게 뭐 그렇게 심오한 이야기겠습니까. 바보 과대표는 품성론의 대중적인 버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품성론은 주체사상과 다른 건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딱 필요한 만큼만 몇 단락으로 터치를 하겠습니다. 제 시리즈에서 나오는 부분을 갖고 어디 가서 아는 척을 하시면 안 되지만, 적어도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이해되지 않던 모습들 중의 일부는 이해가 가실 겁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 수준은 바닥입니다.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 했을 때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사람이라는 것이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명제가 핵심입니다. 맑스 이전의 세계관은 정신을 강조하는 세계관이었고, 맑스가 비로소 그것을 물질과 정신의 대립으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보통 운동권에서는 맑스가 최고입니다. NL도 처음 시작은 얇은 책에 있는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NL의 맑스는 거기까지입니다. 왜냐하면 맑스를 극복한 선진사상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PD들이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비판해봤자 별 무소용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저 어리석은 PD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세계관 자체가 사람 중심이기 때문에 '주체'사상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뭐냐, 사람의 본질은 뭐냐라는 거죠.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며,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존재'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그 나름의 깊은 논의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물질로 이루어진 구조적 여건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겁니다. 네. '하면 된다'이고 '정신일도 하사불성'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주사파입니다. 농담입니다.



결국 사회변혁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주체의 신념과 의지'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을 단어들입니다. 나치 참여로 비난을 받았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나치 전당대회 등을 그린 다큐멘터리들의 제목이 '신념의 승리', '의지의 승리'였는데 이게 우연한 일치일까요. 전체주의 사회에서 유독 개인의 신념, 의지 등을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준 시스템 하에서 지도부를 믿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주체'에 모든 것의 성패가 달려 있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품성은 사회적 관계에 걸맞도록 길러져야 합니다. 혼자 독야청청 잘나봤자 소용 없습니다. 그래서 품성론이 도출되고 중요시됩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혹자들은 주체사상에는 품성론이라는 게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그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는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니 어떻습니까. 주체사상이 뭔가 무시무시한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별 게 아닙니다. 고3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들은 알고 보면 모두 주체사상의 핵심 정수들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가진 개인들이 정교한 시스템 속의 개인으로 파편화되면 전체주의사회가 됩니다. 우리의 현대사도 마찬가지구요. 그렇기에 87년 민주화운동은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 사건입니다.



아무튼 대중사업을 하는 운동가들에게는 구원과 같은 사상입니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자본도, 권력도 없이 동지애적 의리만 가지고 싸우는데, 주체사상은 "자본, 권력 그런 거 없어도 돼. 너희들의 주체적 역량만 있으면 사회는 바꿀 수 있어"라고 이야기를 해주니 얼마나 고맙고 마음에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주체의 본질은 완벽한데 그게 현상으로 드러난 것은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끝없이 학습을 하고 실천을 하며 좀 더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요구합니다. 유학에서의 수양론도 보입니다. 주체사상을 보면 기독교적 세계관이 많이 보이고, 유학의 가르침 등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들이  모두 짬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적 모범들은 김일성의 교시들이나 관련 서적들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르침대로 품성을 닦고 대중사업을 하니 효과가 만빵입니다. 설득하기 위해서는 논쟁을 하기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절대 대가를 바라지 말고 헌신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정말로 나중에는 사람들이 붙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칩시다. 문제는 수령론입니다. 


주체사상의 좋은 이야기들은 수령론을 목적으로 한 경전들일 뿐입니다. 수령론을 통해 지금까지의 좋아 보이는 이야기들이 모두 일인 독재의 전체주의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받침대와 지주가 됩니다. 실제로 주체사상대로 하다보니 현실에서 성과가 나고, 그래서 신뢰가 생기니 마지막 순간 수령론으로의 점프가 가능합니다. 물론 운동권 내부의 권위주의적 문화, 미제와 싸우고 있는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 혁명을 위한 지도부의 필요성 등 다른 요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이들이 이 수령론으로의 점프에서 멈춥니다. 설사 조직의 분위기 때문에 그런 척 하고 넘어가더라도 속으로는 거부를 합니다. 비주사 NL이라고 하면 보통 이 단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이론과 경험들을 통해 납득을 했다 하더라도, 수령론은 믿음의 영역입니다. 믿는 자만이 뛰어오릅니다. 유일신 신앙으로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천주교에서 1년 동안 교리교육을 받고도 마지막 순간에 결심을 하지 못하고 세례를 포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령론은 어떻겠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후에 기술합니다. 물론 주사/비주사 NL의 구분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비주사NL인지 진짜 주사파인지 그걸 외부에서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만큼 비판하면 그만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체사상의 일반적 내용과 관련한 것들은 서점의 자기개발 코너에 가면 쌓여 있습니다. 혁명가의 자세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자기개발 내용이고, 대중사업의 요체 이런 것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과 대동소이합니다. 그게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버전으로 쓰여져 있고, 이전의 엄중한 분위기에서 진지한 자세로 받아들여졌을 따름입니다. 주사파 출신들은 운동을 정리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조직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우리 사회의 조직이 원하는 인간형으로 수년간 단련이 되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항일유격대 정신으로 청춘을 보냈는데 그 얼마나 단단한 인간이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바보 과대표'에서 보여주는 내용들은 주체사상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대중활동가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낮은 단계의 목표라고 제목을 지었구요. NL이 이상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대중사업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학우들에게 다가가도 절대 '언젠가는 꼬셔야지'라는 생각을 안 합니다. 일단 그런 생각을 하면 티가 납니다. 그래서 정말로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다가가서 헌신합니다. 이 사람이 결국 운동에 관심을 갖지 않고, 때로는 비판자로 변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관계로서의 사람만 남으면 됩니다. 그러니 신입생 시절 여러분들께 다가왔던 운동권 선배들을 모두 흑심 품은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돌아보니 정말 좋았던 사람들은 분명 그때도 좋은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위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상입니다. 운동가들에게 위와 같은 모습들이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강조가 되는 거겠죠. 저 역시도 처음 선배가 되었을 때에는 티를 내면서 접근해 후배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았던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았던 바보 과대표들의 말로는 대개 씁쓸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상의 어느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거나 동의를 못하면 결국 조직의 하부에만 있다가 쓸쓸히 운동을 정리합니다. 때로는 싸가지 없는 후배들에게 치이기도 합니다.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것은 책에만 있는 것이지, 조직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NLPDR론도 먼저 짚고 넘어가면 좋을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계속)


댓글들 감사합니다. 글을 올리는데 힘이 붙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동안에는 제가 댓글들에 대해 바로바로 피드백이나 코멘트를 했는데, 그러다보니 코멘트가 본문만큼 길어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질문들이나 중요한 댓글들은 챙겨두었다가 이 시리즈가 끝난 뒤에 하나의 글로 따로 정리해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대신 연재의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부분은 자료를 찾기보다 그냥 공백으로 남겨두고, 책 제목, 이론의 세밀함 등에서 기억이 사라진 부분들도 그냥 과감하게 건너뛰겠습니다. 어차피 아시는 분들께는 없어도 될 내용들이고,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기억하는 만큼만 아셔도 됩니다. 그리고 나서 연재가 끝난 뒤에 여력이 된다면 내용을 보강해보려 합니다. 


행간이 보이시는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제 글의 내용은 제 개인적 경험과 관찰 그리고 직접 들었던 사례들을 제 나름대로 재구성한 것들입니다. 당연히 여러 캠퍼스, 여러 단위들의 사례가 섞여 있습니다. 그걸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마치 하나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 제 글은 운동권 백서가 아니라 그 내부를 잘 모르셨던 분들 눈높이에 맞춘 회고적 성격의 글임을 이해 바랍니다.


제가 겪은 일들을 직접 사례로 제시할 때는 분명히 제 경험이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나중에 제가 누군지 아시게 되더라도 문제 있는 사안들의 주인공들이 제 주위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씀 드립니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세상은 좁지 않습니까. 특히 앞으로 '정파' 부분을 쓸 때가 고민이 됩니다.


위의 내용들 말고도 어제부터 이 글과 관련해 여러 모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방금 마음의 정리가 끝났습니다. 이 글의 취지와 제 진심 등 지금 제 머리 속에 있는 많은 고민들은 모두 에필로그로 미뤄두겠습니다. 



- 10 -  신입생, 갈등과 선택 (1)



민중가요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 난감하지만 여기서는 운동하는 분들이 부르는 노래들이라고 해두죠. 민중가요는 집회 현장에서 부르기도 하고, 뒷풀이 자리에서 떼창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혼자 밤길을 걸으며 나직이 읖조리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던 노래들을 나중에 한 챕터로 뽑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제가 좋아하는 민중가요 중 하나입니다. 학창시절 늦은 밤에 귀가를 하다 가끔씩 마음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한 쪽에 벽을 끼고 있는 도로를 따라 이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주제에서 이 노래를 소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신입생들의 갈등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리즈의 앞 부분에서는 1년 과정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을 하느라 신입생은 마치 일방적으로 세뇌를 당하는 수동적 존재처럼 묘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과 동아리에 들어가 평범하게 성장하는 신입생들을 모델로 각 시기마다의 모습들을 그려봅니다.



* 동아리의 선택


학생운동에 있어 동아리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신입생들을 키우는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동아리를 통하는 것입니다. 운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학습, 투쟁경험 등인데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입생의 동아리 선택 문제는 운동권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운동권 선배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학기초에는 성향에 관계 없이 동아리 선배들은 모두 학생회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래야 신입생들과 인간적 교류를 맺고 동아리에 데려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아리 선택의 기준은 인간관계, 관심사 두가지입니다. 인간관계의 경우 선배와 신입생의 일대일 관계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입생이 동아리에 들어가는 경우 그 동아리에 어떤 동기가 있는지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개 친한 신입생 그룹은 동아리에 같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운동권이나 비운동권 가릴 것 없이 신입생들의 그룹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에 대해 본능적인 관심을 갖습니다. 그렇지만 그룹으로 들어오는 경우에도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빠져나갈 때도 그룹으로 빠져나갑니다. 동아리가 작은 규모라면 신입생이 그룹으로 들어왔다가 그룹으로 빠지면서 휘청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대학에 들어오면 사회과학 공부는 한 번쯤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언뜻 운동권 비스무레한 동아리처럼 보이더라도 사회과학 동아리를 선택하는데 있어 주저하지 않는 신입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개 운동권 동아리의 구성원 숫자가 많고 적극적이기 때문에 사회과학 동아리의 신입생 숫자가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첫번째 갈등의 순간이 생깁니다.


이전 글들에서 정파 갈등에 대해 언급을 한 바 있지만, 학기초에는 서로 간에 자제를 합니다. 가끔 가다 스스로의 감정에 못 이겨 과격함을 표출하는 선배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정파를 막론하고 극소수이며, 자기 정파에서는 실제로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컴플렉스를 신입생들에게 자기과시로 풀려고 합니다. 이런 인물들의 경우 대개 신입생 행사 이전에 선배나 동기들이 신신당부를 해서 어떻게든 통제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입생들의 동아리 선택을 두고 정파갈등이 표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끔 가다 사회참여의식이 대단히 높은 새내기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1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케이스입니다. 상대 동아리 신입생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대개 한두 달 뒤에 운동인자로 보일 때부터입니다.


갈등은 오히려 비운동권 선배들로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간 신입생이라고 선배가 운동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초반에는 다양합니다. 그 중에는 운동권을 싫어하는 선배들도 있고, 순수하게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가는 걸 안쓰러워하는 선배들도 있습니다. 이 선배들이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간 친분 있는 신입생들에게 몇 마디를 던지는데, 그게 신입생들 사이에서 파문으로 번져갑니다. 돌아보면 운동권 동아리를 운동권이라고 했을 뿐인데 그게 왜 갈등요소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표와 의도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는 언제나 어긋난 부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때 탈퇴하는 신입생들은 아무 말도 없이 나가거나 다른 이유를 대면서 나갑니다. 운동권 동아리인줄 몰랐다 하면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입생의 태도에서 이상한 느낌을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 운동권 선배들이 이걸 인지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래도 결국 밝혀집니다. 대개 남아 있던 신입생 중 비운동권 선배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지만 본인은 남았노라며 뿌듯해하는 발언을 하다가 모두가 알게 됩니다. 그 비운동권 선배가 동아리 고학번 선배보다 상대적으로 선배거나 동기인 경우에는 진지하게 항의를 하고, 후배인 경우에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대개 NL 동아리에는 선배들과 비슷한 성향의 신입생들이 들어옵니다. 대개 얌전하고 착한 이들이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선배들을 본능적으로 따라갑니다. 그 중에도 이리저리 튀는 신입생이 있지만 대개 중간에 나가게 되거나, 적은 동아리에 두되 외곽으로 빠지게 됩니다. 신입생인 동기들과도 겉돌게 됩니다.



* 세미나


동아리의 세미나 커리는 이미 선배들이 정해 놓았습니다. 물론 어떤 책을 읽을까 정하는데 있어 신입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만 결국에는 철학을 먼저 할까, 역사를 먼저 할까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선택권은 분명 신입생들에게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1년이 지나고 나서 커리 책들을 돌아보면 지난 해에 선배들이 1학년 때 읽었던 책들과 똑같습니다. 가끔 눈치 없는 신입생이 PD쪽 책들을 들고 와서 세미나를 하자고 주장할 때가 있습니다. 그 책을 왜 지금 읽으면 안 되는지를 설득하기 위해 선배들은 진땀을 뺍니다. 그래도 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진땀을 빼는 선배들은 그 안에서 합리적인 사람들입니다. 대개는 신입생이 무언의 압력을 느끼면서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물론 다음 기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답답함과 작은 상처들이 쌓이면서 나중에 동아리를 탈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책으로 하든 학기초 세미나의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지만 모든 결론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회에는 이런저런 모순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의 해결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참여가 필요한 것이고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라면 그것에 대해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명제에 대해 반대할 새내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뒷풀이로 이어집니다.


동아리에서 이 '뒷풀이'는 중요합니다. 선배들이 진짜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서 나옵니다. 처음에는 일상적 이야기들로 시작하고, 사람 좋은 선배들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 갑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고 밤이 깊으면 자연스레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주로 그 날의 세미나 내용들이 나오며, 신입생이 거기에 동의하는 모습이 보이면 수위가 낮은 형식의 집회를 제의하기도 합니다. 이건 목적의식이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합니다. 밤이 늦어 술자리가 깊어지면 서로간에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선배든 새내기든 본인들이 정말 말하고픈 내용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아까 세미나 때는 차마 분위기를 깰 수 없어 다른 말을 꺼내지 못했던 새내기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배의 최초 의도에서 벗어난 내용으로 대화가 전개되지는 않습니다. 


성인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생 정치토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초기의 1, 2년차의 간극은 생각보다 큽니다. 새내기들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전형적 질문들에 대한 답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결론과 과정이 이미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선배들은 새내기들을 반드시 제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술자리는 선배들의 주장에 진심으로 납득하거나 혹은 납득하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자리가 마무리됩니다. 납득이 안 되더라도 당장 선배의 논리를 이기기란 쉽지 않고 사이가 좋았던 선배들과 서먹해지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선배들의 역량도 한계는 있기 때문에 제압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새내기들은 미리부터 경계합니다. 쟤는 품성이 안 좋다, 현학적이고 사변적이다, 실천보다 말싸움만 즐길 타입이다라고 미리 자기합리화 기제를 마련해 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새내기의 논리가 선배들보다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선배의 인정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운동하는 이들 특유의 끝없는 말 돌리기와 전형적 논리의 반복이 이어집니다. 인정하면 지는 겁니다. 이 단계 쯤으로 들어가면 선배들 역시 이 친구는 어차피 운동을 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만한 놈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말싸움으로 이어지며 사이가 나빠지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은 새내기는 결국 동아리를 나가게 됩니다.


세미나와 뒷풀이를 거치면서 애초에 다양하게 들어온 새내기들은 동아리 본래 분위기에 맞는 이들만 남거나 혹은 유사하게 다듬어집니다.


(계속)


최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질리시는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대단하지도 않은 글을 이렇게 길게 연재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편부터는 3, 4개 정도의 주제를 모아서 한번에 올리려고 합니다. 그럼 아마 이번 편을 제외하고 3, 4번 정도 글을 올리면 끝나게 됩니다. 한 번에 올리게 되는 양이 상당히 많겠지만,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양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듯 싶어 그렇게 정했습니다.


제 글의 목적은 '암'이 아니라 '명'입니다. '암'을 제대로 보여줘야 '명'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에필로그에서 제대로 정리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 11 - 신입생, 갈등과 선택 (2)



* 집회


앞 부분에서 선배들의 의도를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의도 여부와는 별개로 대학에 들어와 사회문제와 실천 여부에 대해 고민을 갖는 것은 이상할 것 없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로 넘어가는 것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기에 대학 내에 사회참여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운동들이 존재한다면 특정 정파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경로의 제한입니다. 거대 정파들은 끝없이 희망을 독점하고 싶어합니다. 이런 그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은 운동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신입생이 그러기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신입생들의 집회 참여는 자발적 선택으로 시작됩니다. 선배들이 조심스레 제안을 하든, 직접 참여의사를 밝히든 선택은 자발적입니다. 세미나에서의 발언이야 분위기상 침묵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지만, 집회 참여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집회에 데려나가는데 있어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처음부터 수위가 높은 집회에 참여하게 되면 쉽게 떨어져나갈까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성급함 때문에 인간관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둡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위가 낮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집회로 갑니다. 수위가 낮다는 건 주제의 과격함이 아니라, 합법 집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야 경찰의 진압 가능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제가 과격하면 진압 가능성도 높습니다. 신입생들의 안전은 선배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신입생들도 선배들이 자신들을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집회에 나갈 때는 반드시 집회의 목적과 내용에 대한 교양이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집회에 나가고, 어떤 내용으로 펼쳐지는지에 대해 모르고 나가는 신입생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단순히 인간관계만 믿고 별 생각없이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시리즈의 서두에서 밝혔듯 예외는 많습니다.) 물론 집회에 나갔는데 선배들도 의도치 않는 상황들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호의 과격함이라던가, 집회 성격의 변질, 경찰의 갑작스런 통제로 분위기가 험해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이런저런 구호들 중에 어떤 부분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들은 무시하라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험해지는 경우 신입생들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선택을 물어봅니다. "여기서 빠져도 되고, 같이 가도 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빠지는 선택을 할 경우네는 선배 하나가 함께 빠집니다. 집회에 계속 참여하는 경우에도 어떻게든 가장 안전한 공간을 찾습니다. 


이는 신입생을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서로간의 신뢰를 위해서입니다. NL 구성원 간의 신뢰는 인간관계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주 사소한 솔직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많은 것들을 감추면서 신입생을 포섭할 것이라는 상상과는 달리 정반대의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본 집회가 끝나면 반드시 평가집회가 있습니다. 제가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참 쓸데없는 형식이라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주최였다면, 서총련 평가집회, 서부총련(서울서부지구총학생회연합), 학교 단위 집회로 연달아 이어집니다. 구성은 간단합니다. 각 단위의 의장들이 평가발언을 하고, 단위 학생회 회장 중 한 명이 평가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반드시 들어가는 게 '새내기 발언'입니다. 그날 처음 집회에 나온 신입생들 중 몇몇이 선발되어 앞으로 나가 집회 참여 소감과 앞으로의 결의를 발표합니다. 이들이 앞에 설 때는 보통 '잘 생겼다, 예쁘다'와 같은 추임새들이 함께 합니다. 교회에서 예배 마지막 순서로 그날 처음 나온 신도들을 소개하는 시간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이 평가집회라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집회라는 건 누군가에게 우리의 주장을 알리는 것이고 그 목표는 이미 본 집회로 끝이 난 것인데, 우리끼리 따로 모여 집회를 또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시간낭비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진이 빠집니다. 물론 결속을 다지고 새로운 구성원들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위해 최소한 한두 시간을 더 소비한다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대학 시절 내내 고민했던 게 학생운동과 학생회활동의 효율화입니다. 그래야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고, 지속이 가능하니까요.


이게 끝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뒷풀이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뒷풀이가 진짜 평가입니다. 여기서 선후배들 간에 진지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신입생들은 여기서 집회 참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나옵니다. 신기함, 어색함, 거부감, 공포, 분노, 의문점 등 많은 것들이 나옵니다. 물론 선배들이 함께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한 답들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방식은 부드럽습니다. 그렇지만 그 답들의 내용이 모두 의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선배들이 해줄 수 있고, 알고 있는 내용이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고, 그게 신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이후 한총련 출범식, 범민족 대회 등 굵직한 집회 뿐만 아니라 소소한 집회들에서도 반복적으로 이뤄집니다. 수위는 점차 높아지는데 이때에도 반드시 사전에 정보를 알려줘서 신입생들이 자발적 선택을 통해 집회에 나오도록 합니다. 물론 이때마다 주저하는 신입생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선배들이 자신들의 경험, 엄혹한 정세, 청년학생의 의무 등을 거론하며 한 단계 위로 뛰어오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결코 강압적이지는 않으며, 선배들의 바람과는 다른 선택이 이뤄지더라도 분위기가 서먹해지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물론 이것은 '노력'입니다. 실제로는 한 단계씩 점프에 실패할 때마다 동지적 의식이 옅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20대 초반의 학생들에게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이란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일정 단계에서 계속 머무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속도를 높이며 과정들을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처음 집회에 나가는 것은 어쩌면 그다지 큰 결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선배들에게 아무리 이야기를 들었어도, 머리 속에서 그리는 것은 무지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용감해집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경찰과 학생이 폭력적으로 맞붙는 집회를 참여할수록 마음 속에 두려움은 커져갑니다. 집회에 나갈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남학생들의 경우 사수대에 서게 됩니다. 전경들과의 첫 대치에서 생기는 심리상태는 평생 지워지지 않습니다. 분노와 공포심 뿐만 아니라, 왜 이 자리에 나왔는가라는 후회심도 겹쳐집니다. 저 역시 대한극장 앞에서 처음 앞에 나섰을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 고립의 시작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내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고립'입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내적 고통과 많은 외적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90년대 학생운동에 더 이상 사회적 영광은 없습니다.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학우들의 경외감이나 부채의식 역시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동안 학교 내에서 형성하고 있던 헤게모니 역시 급격히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전국적 집회를 하면 여전히 예전만큼의 학생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그 학생들 하나하나가 단위에서 가지고 있는 파급력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집회에 나가고, 운동의 길로 한 발자국씩 들어갈수록 이 '고립'의 의미는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학기초에 형성되었던 많은 인간관계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친했던 선배들과도 어색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동기들의 눈빛도 뭔가 복잡미묘하게 바뀝니다. 어느샌가 그 신입생은 '운동권'으로 규정되고 그에 따라 관계들이 재구성됩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의도를 가지고 관계를 비틀지는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누가 욕을 하는 것도 아니며, 대놓고 수군거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운동을 선택한 신입생만이 느낄 수 있는 '고립'입니다. 


물론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운동하는 선배들이나 동기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와도 진솔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각성 단계에 있는 신입생들이 많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 하나가 '설교'입니다. 왜 자신에게는 명확히 보이는 것들이 남들에게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안락에만 신경 쓰는 학우들이 한심해보이고, 때로는 분노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선배들이 운동 초기 단계에 진입한 신입생들에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소소한 사고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와 미묘한 관계들이 쌓이다보면 어느 샌가 주위에는 운동권만 남게 됩니다. 학우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깁니다. 이 벽 때문에 운동 초반에 들어선 신입생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이탈을 합니다. 그리고 이 '고립'의 느낌 때문에 이탈한 신입생들은 대개 운동 쪽에 다시는 눈을 두지 않고, 운동 선배들과도 서먹해집니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예전처럼 '왕따' 비슷한 감정들을 느낄까봐 두려워서입니다.


집회와 고립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신념과 동지애입니다. 신념이 없다면 마음 속 깊숙이에 있는 두려움들을 떨쳐 낼 수 없으며, 동지들이 없다면 위로를 받을 공간이 없습니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고구조의 화석화입니다. 주변의 상황 변화에 대해,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고립을 탈출하는 게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돌파를 하려고 듭니다. 조직의 힘이라는 게 있기에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돌파가 가능합니다. 그런 제한된 승리의 경험들은 조직의 결정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품게 합니다. 사회 변화의 관건은 주체의 역량과 의지라는 생각에 확신이 생깁니다.


90년대 학생운동가들에게 이 고립의 문제는 곧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어도 쉽지 않을 판에 지금의 고립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가능한 불안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은 연대를 구하여 고립에서 빠져나오기보다 폐쇄된 구조에서 고립의 심화를 자초합니다. 


운동가의 성장은 깨달음이 쌓이면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고뇌와 두려움을 억누르며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운동가들도 인간입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들을 모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잘못을 했을 때 쏟아지는 비난들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고통 구조는 중고등학교에서의 '왕따'와 유사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누르고 이겨내지 않으면 운동가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의 사고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주체사상으로의 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됩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론이 나와서 지루합니다. 그렇지만 재미 없는 이론 이야기는 이 편이 거의 마지막입니다.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도록 최대한 쉽게 쓰는 과정에서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논리적 과정을 전체적으로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펜에는 전문가들이 많이 계셔서 부담이 됩니다. 


어제, 오늘은 글의 후반부 주제와 내용 정리를 좀 했습니다. 쭉쭉 쓰기만 하면 되기에 금, 토 안에 끝날 듯 합니다.



- 12 -  NLPDR



1년의 과정을 통해 신입생들은 사회 문제에 눈을 뜨고, 분노하며, 사회 참여를 모색합니다. 그런데 사회 문제는 노동, 농업, 빈민 할 것 없이 온갖 분야에서 벌어집니다. 일일이 고민하고 참여하기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보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은 적은데 하나하나의 사안에 몰두하다보면 죽기 전까지도 세상은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신입생들은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의문에 맞딱뜨리게 됩니다. "대체 이 모든 문제들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혹시 근본 원인이 있다면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논쟁들이 바로 사구체(사회구성체)논쟁입니다. 


사회구성체론이라고 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간단합니다. 대체 이 사회의 성격은 어떠하며 무슨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의사가 치료를 하기에 앞서 진단을 하는 과정입니다. 올바른 진단이 나와야 적절한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진단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이 바로 사구체 논쟁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정파가 갈립니다. 


NL은 우리 사회를 '식반자'(식민지 반자본주의)로 규정합니다. 우리나라는 미제(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이며, 언뜻 보면 그냥 자본주의 사회로 보이지만 식민지의 성격상 자본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반자본주의'(기형적인 자본주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일까요.



 NL은 주로 '정치, 경제, 군사, 문화'라는 틀을 가지고 사회를 분석합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CIA 등이 배후조종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CIA에 포섭되어 있으며, 설사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 틀에 심취하신 어떤 분들은 08년 문국현의 대선 출마를 민주진영을 분열시키려는 미제의 공작으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직접 지배가 어렵기 때문에 매판자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탈합니다. 매판자본이란 재벌을 의미합니다. 이건 주로 지주-마름-소작인으로 비유를 합니다. 마름이란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중간 수탈 계급입니다. 재벌이 바로 마름입니다. 미국 자본의 이익을 대신해 남한 민중들을 수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 자본주의가 아무리 발전해도 미국 자본의 이해관계를 넘어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반자본주의'입니다.


군사적인 면으로 들어가면 식민지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주적 국가에 외국 군대가 주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주한미군은 남한 민중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같은 민족인 북한까지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게다가 주한미군으로 인해 기지촌이라는 여성 문제까지 생깁니다.


문화적인 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음식, 영화 등 할 것 없이 모든 분야가 미국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정치, 경제, 군사에 이어 한민족의 정신까지 오염되어 있습니다. 다른 부분이 종속되어 있어도 정신이 살아 있다면 후일을 도모할텐데 그것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이게 바로 NL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NL 민중가요에는 '식민지 조국'이라는 가사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은 바로 미제국주의라는 외세에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됩니다. 이게 이론에서의 첫 점프입니다. 점프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1년 동안의 세미나, 교양, 강연 등을 통해 미국이라는 존재를 다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까지 친미 성향의 사회 속에 살다가 처음으로 알게 된 미국의 모습은 정신적 충격입니다. 미국이 제국주의적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우리 사회가 그에 종속된 것 역시 사실입니다. (물론 같은 사실을 두고도 사회적 해석은 천양지차겠지만 일단 글의 주제와 맞지 않기에 논외로 합니다.) 그렇기에 선배들에 대한 신뢰가 더해지면 이 단계로 넘어가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진단이 나오면 처방은 자연스레 따라옵니다. (같은 진단이 나와도 처방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에 따라 정파가 또 갈립니다. 정파의 분열은 진단과 처방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외세를 몰아내는 게 우리의 제 1 임무입니다. 미제국주의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노동 문제 같은 작은 부분에 아무리 신경을 써봤자 사회 변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성장해도 기형적인 자본주의 체제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반미'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출되는게 '자주'입니다.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세력들이 연대해서 통일전선을 꾸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과 이념의 차이는 되도록 신경 쓰지 말고 하나로 뭉치자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정주영은 노조를 탄압한 매판자본가가 아니라 통일에 힘쓴 민족자본가입니다. 좌파들과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세력과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미제에 부역하고 있는 매국노들은 안 됩니다. 기준이 있어야 하고, 통일전선의 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과 전선체의 목표가 '민주'입니다. 그래서 NL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목표로 합니다. 이건 꽤 매력적입니다. 우리 편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도 넉넉해지지만, 왠지 현실 가능한 목표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외세를 몰아내기에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미제에 수탈 당하고 있는 남한 민중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은 미제국주의에 맞서 50여 년 동안 결연히 투쟁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북한과 힘을 합친다면 미국을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주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도출되는 게 '통일'입니다.


차근차근 따라가면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과제가 나옵니다. 바로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입니다. 핵심은 NL(민족해방)입니다. 뒷 부분의 PD는 곁다리입니다. 그래서 그냥 NL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결국 북한이라는 나라에 접근하게 되며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측면들이 보입니다. 김정일 독재 국가에, 세습에, 지지리도 못 사는 나라에서 순식간에 세계 최강 미제와 50년 동안 결연히 맞짱을 뜨고 있는 대단한 국가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동구 공산권 국가들이 모두 무너진 마당에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대단한 나라입니다. 늘 외세에 짓눌리고 자신감 없이 살아왔던 우리 민족에게 저런 당당한 저력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왜 이걸 몰랐단 말인가. 독재 정권의 문제도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미제와 싸우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체제가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런 과정을 밟게 되면 결국 북한 정권과 남한 민중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고 판단을 내립니다. 통일이란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쳐 외세를 몰아내기 위한 필수적 과정입니다. 그래서 NL은 통일운동에 집중합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반미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노조에서도 통일, 농촌에서도 통일, 모두 통일입니다. NL 여성운동 단체 이름은 '반미여성회'입니다. 여성 문제도 반미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NL은 다른 여성문제에는 둔감하지만, 기지촌 문제에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렇지만 NL의 통일운동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통일운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순수히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NL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통일운동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스스로 NL이라고 생각한다면 보통 이 정도이거나 옅어지거나 합니다. 속으로 식민지까지는 아니라 생각해도 미국이라는 국가에 문제는 있으며 우리는 좀 더 자주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합의하고 넘어갑니다. 그것도 아니면 어쨌든 통일하자는데 뭐가 나쁘다는 건가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범NL이라고 하면 그 범위가 굉장히 넓습니다. 분명 문제는 있는데 구별해서 비판의 타겟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NL 운동은 대개 이 정도에서 합의됩니다. 그리고 이 정도에서 거의 모든 사업들이 이뤄지고 논의가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더 넘어가면 바로 남한 민중의 부족한 역량을 한반도 혁명 기지인 북한이 메워줘야 한다는 생각까지 이르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는 점입니다. 스스로 결론을 도출해 북한 정권의 지도를 갈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자생적 주사파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들이 NL의 윗선에 자리합니다. 


(계속)


글을 쓰다 보니 확실히 제목이 약간 에러입니다. 자극적인 것도 있지만, 제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내용은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내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운동 내부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짚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NL과 주체사상에 대해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90년대 학생운동가의 삶 : 우리는 어떻게 NL이 되었는가"가 제일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화살은 날라갔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텍스트의 해석과 강조는 어느 정도 읽는 이들의 몫입니다. 제 의도와 달리 받아들여지는 것을 감수하고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 12 - NLPDR 보충



* 민족주의


어젯밤 글을 써서 게시판에 올려 놓고 아침에 다시 읽어보니 제가 빠뜨린 부분들이 좀 있었습니다. 전면적으로 수정을 할까 하다가 이미 추천과 댓글들이 많아 그냥 여기에서 보충을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시는 게, 민족주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동, 빈민 등 사회문제들을 목도하며 각성했던 대학생들이 어떻게 갑자기 비장한 민족주의자가 되었을까요. 지난 글에서 말씀 드렸듯 NL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에는 미제가 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악의 근원, 미국놈들 몰아내자'라는 구호는 그래서 나옵니다. 이 땅에서 미제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문제점들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부문 운동들은 그것만 해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거죠.


그렇지만 이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반미와 통일에만 신경을 쓰고, 다른 사회 문제들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 현장에는 늘 이들이 있습니다. 단기적 목표인 자주적민주정부 수립을 위해서는 사회의 양심적인 세력들은 모두 연대해야 하고 그것은 투쟁을 통해 이뤄집니다. 평소에 신뢰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연대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 때문에 NL은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으면서도 진보진영 곳곳에서 헌신성을 보여주며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가장 상위 과제는 반미와 통일입니다. 그를 위해서 진보진영의 모든 부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통일 사업과 노동 문제가 겹치는 경우 전자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NL에게 반미와 통일은 노동, 농업, 빈민, 교육 등의 다른 요소들과 동등한 과제가 아닙니다. 통일운동도 하고, 노동운동도 하고 서로 존중하는 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회의 모든 부문 운동들은 반미와 통일을 위해 복무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여러 사회문제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적지 않은 운동가들, 특히 현장에서 멀어진 상층의 운동가들에게는 오직 반미와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만 남게 됩니다. 


인간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운동가들에게서, 구체적 삶으로써의 인간은 사라지고 민족주의라는 추상적 가치만 남게 되는 이유입니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가 내 삶의 전부를 운동의 대의에 바치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분노와 열정에는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최초에 운동을 시작했던 그 마음과 가치들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립니다. 유통기한이 끝나고 남게 되는 것은 그것들을 담아두었던 케이스 뿐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담아두던 도구에 불과했던 케이스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판단하려 합니다. 사고의 화석화는 이렇게 이뤄집니다. 



* NL이 다수가 될 수 있는 이유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노선과 관련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NL 노선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생각이 좀 더 극단적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뭔가 심각하고 어려운 것들을 알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 다 필요없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 의식만 강하게 쥐고 있으면 되니 참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온갖 지식들은 다 섭렵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PD들은 헛똑똑이로 보입니다. 딸리던 말빨이 한 방에 해결이 됩니다. 


NL이라고 하면 원칙적으로 앞의 내용들이지만, 거기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친숙한 부분은 취사선택을 하면 됩니다. NL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 중에서도 '식민지'라는 개념은 비유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차피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대원칙에만 합의를 보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 좋은 이야기들입니다. 자주 국가를 만들고, 민주 사회를 만들며, 통일 조국을 만드는 게 대체 뭐가 나쁜 이야기겠습니까. 그래서 NL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대체 자주 민주 통일 하자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회피합니다. 실제 대화를 나눠보면 NLPDR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NL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토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최강 미제국주의와의 한 판 결전을 통한, 자주통일 강성대국의 완성이라는 비전은 좌파들의 어려운 이야기에 비해 선악구도가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50년 동안 싸워온 북한이라는 존재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해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김일성, 김정일이 뛰어난 지도자로 보입니다. 


소명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조직에서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스토리는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지난한 고난의 과정을 거쳐 최후의 결전에서 결국 세계최강 미제를 거꾸러뜨리고 영광을 차지하는 한민족의 대서사시. 수천년 전 신화 속에서나 나오던 이야기를 지금 90년대 중반에 바로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입니다.


이렇게 듣기 좋고 가슴 뛰는 이야기에 친숙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진리란 또 그렇게 쉽게 찾아지지 않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그 괴리 속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자라납니다. 




- 13 - 정파



학생운동을 이야기할 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정파'입니다. 특히 정파의 분열은 외부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학생운동가들의 기억 속에 가장 아프게 남아 있는 것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정파 갈등은 운동가들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20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건조하게만 터치하겠습니다.



* 발생과 분열


지난 글에서 말씀 드렸지만 정파의 발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집니다. 먼저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나옵니다. 의사의 진단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놓고 어떻게 투쟁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효율적인가에 대해 투쟁방법을 도출합니다. 이게 혁명이론 혹은 변혁이론입니다. 의사의 처방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처방을 바탕으로 치료과정에 들어가는 게 투쟁입니다.


정파의 분열은 바로 이 진단과 처방의 입장 차이에 따라 이뤄집니다. 지극히 당연한 과정입니다. 한반도 남단이 미국의 식민지이며,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진단에 동의할 수 없는 이들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전반적인 틀에는 동의하더라도, 미국에 제국주의적 속성은 있지만 우리나라가 식민지는 아니며, 북한의 저런 모습이 이해는 가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진단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처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중정당을 선택할 수도 있고, 지하혁명을 꿈꿀 수도 있으며, 통일사업과는 별개로 북한과의 연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NL이라고 하더라도 정파가 나뉘고 입장이 갈립니다. 



* 정파 투쟁


문제는 분열이 아닙니다. NL이든 PD든 어떤 정파를 막론하고 '대부분' 조직 내에서의 독재를 꿈꾼다는 점입니다. 사회를 진단하고 처방이 내려지면 반드시 따라오는 게 '지도'나 '전위'의 개념입니다. 사회를 분석하고 투쟁방법을 정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닙니다. 내 온 몸을 바쳐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최선의 길을 결정하고, 자신의 신념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삶을 걸고 선택한 투쟁노선이 스스로에게는 가장 올바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노선이 전체 운동을 지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정파들의 존재를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다함께 힘을 합치자는 식으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엄혹한 시기 투쟁의 역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헛짓거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대오를 흐뜨러뜨리고 적들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까지 판단합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반대의견에 대해 걸핏하면 '개량주의자', '분열주의자'의 딱지를 붙이고 때로는 '미제의 간첩'이라는 표현까지 거침없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상적 의견에 대해서까지 '알바' 딱지를 붙이는 인터넷 분위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겉으로는 좋은 모습을 보이던 분들이라도 술자리에서는 다른 정파에 대해 당황스러울 정도로 증오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NL에게서만 나오는 사고구조가 아니라 PD에게서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른 정파는 용납이 되지 않으며 상대에 대한 배제는 폭력적이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립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가지 합리화 기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노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선민의식, 다른 하나는 사적 이익이 아닌 대의를 위한 것이라는 정의감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행동으로 나타나기에 사고가 잇따릅니다. 상대에 대한 공개적 비난과 모욕은 당연합니다. 상대 정파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마타도어도 행해집니다. 이성 문제를 비롯해 여러 이간질들이 행해집니다. 그 외에도 아주 자잘한 곳들에서 씁쓸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몸 담은 정파에 관계 없이 다함께 투쟁하는 동지라고 생각하며, 생각이 달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함께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경험들을 거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정파가 내포하고 있는 적대적 의식들을 억누르고 있던 호의와 연대의식은 몇 번의 뒤통수를 통해 간단히 부서집니다. 그러면서 지난한 정파 투쟁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과 경험들은 술자리에서의 울분을 통해 후배들에게 전승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설사 저들이 주도권을 잡기라도 하면 큰 일입니다. 서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스포츠 정신은 아주 나이브한 태도입니다. 그건 운동이 망하는 길이고,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복음의 전파가 우리의 사명이며, 승리는 지상과제입니다. 그래서 각 정파들은 선거 때마다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타격을 주고, 때로는 선거규정을 악용해 후보자격을 박탈시키기도 합니다. 때로는 소소한 반칙이나 비열한 짓들도 대의의 이름 아래 정당화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죄의식을 갖게 되는 운동가들이 운동판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가들이 정파 갈등 때문에 피폐해지는 것은 본인들이 당했던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자괴감 때문도 큽니다. 


이 정파투쟁이 끝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렵더라도 선민의식을 버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연대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둘 중 하나가 죽는 겁니다. 학생운동은 후자를 통해 평화가 이뤄집니다. NL이 절대 다수가 되고, PD가 소수가 되면서 적어도 한총련이라는 조직 내부는 싸움 없이 아주 효율적으로 운영되게 됩니다. 이런 구도에서 NL이 다른 정파들을 일방적 폭력으로 배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 NL은 주체사상의 영향 하에 선민의식과 집단주의 성향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에 그 폭력의 양상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NL 내부의 구성원들은 그 폭력의 구조와 사례들에 대해 잘 모릅니다. 원래 여당 지지자들은 정권이 무슨 짓을 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PD들이 울분을 토하면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PD들도 자신들이 장악한 단위에서는 마찬가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그런 경우에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무신경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NL들도 자신들이 피해를 당하면 그 원한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면 다들 애초 운동을 선택했을 때의 마음가짐은 사라지고 정파투쟁으로 끝없이 빨려들어갑니다. 그리고 많은 운동가들의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층에서의 문제입니다. 역사적 책임은 전체 권력을 독점하고 비민주적 행위를 일삼았던 NL이 져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입니다.



* 선택


NL은 신입생들에게 정파와 관련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소수파인 PD 계열 선배들은 사석에서 정파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줄기차게 합니다. NL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지만, PD 내부의 다른 정파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정파 문제를 대하는 NL과 PD의 대응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당과 야당의 차이입니다. 


새누리당은 야당간의 차이점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여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상대적입니다.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진보신당 이런 식으로 각각 오른쪽에 있는 정당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보기에는 모두 붉으죽죽한 정당들이고, 민주당이 보기에는 한심하게 갈라진 진보정당들이며, 통진당이 보기에는 단결을 저해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다수는 늘 소수에게 단결을 강요하며, 소수는 다수에게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계열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자, 그다지 소용이 없습니다. 계열이 아무리 많다 한들, 어차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정파는 많아봤자 NL 아니면 PD의 한 분파, 두 개입니다. 이것도 90년대 들어서면 점차 드물어져가는 케이스가 되고, 각 과마다 한 개의 정파만이 살아남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운동을 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지만 존재할 뿐, 어떤 정파에 몸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는 선택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어떤 정파가 최선인지에 대해 알기도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로 보이고, 분열이 의아할 뿐입니다.


야당의 삶은 고달픕니다. PD가 아무리 NL 비판에 열을 올려도 NL과 함께 하는 신입생들에게는 뭔가 이상한 선배들처럼 보입니다. NL 선배들은 인간적이고, 삶의 문제들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던져주는데 비해, PD 선배들과 술을 마시면 불편합니다. 뭔가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하면 이 곳, 저 곳에서 날 선 비판이 날라듭니다. 신입생이 뭘 모르는 건 당연한데 그걸 용납 못합니다. 술자리가 조금만 깊어져도 전문지식들이 쏟아지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NL 선배들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선배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닌데 이 사람들의 비난에는 날이 서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봐도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이고 기분이 불쾌해집니다. 이 사람들 따라가면 NL의 소중한 사람들을 적으로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파 간에 신입생 쟁탈전은 치열하지만 지나고 나면 애초에 가지고 있는 능력치만큼의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클래스는 영원합니다. 다수파가 계속 다수파가 됩니다.



* 순기능


위에서는 정파가 부정적으로만 묘사가 됐지만 당연히 순기능도 있습니다. 어쨌든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게 정파입니다. 초보운동가들에게 정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등 많은 의문들에 답을 제시해 줍니다. 9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스스로 깨닫고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운동 선배들과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상호 교류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같은 단위 안에 둘 이상의 정파가 있는 경우 반드시 갈등이 생기지만, 그 갈등이 적정 수준에 머무는 경우 긍정적 효과가 분명 있습니다. 먼저 두 정파 모두 경쟁력이 생깁니다. 술자리에서의 논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학습을 열심히 합니다. 특정 이념에 경도된 이론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전반적 수준이 높아집니다. 대중사업도 최선을 다할 뿐더러, 방식이 세련되어지는 면도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파가 공존하는 단위의 경우 학생회실이 학우들로 복작복작합니다.


학생회 운영도 투명해집니다. 상대 정파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때문입니다. 한 편으로는 진영 내부에서 여성운동가들의 지위가 높아집니다. NL에서 줄기차게 지적되는 게 남성운동가들의 가부장주의입니다. 그렇지만 PD가 공존하는 단위의 경우 확실히 NL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해야 하고 공존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상대 정파가 존재하기에 운동을 정리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감정적 부분입니다. 내 운동에 확신이 흔들려도 저들이 학생회를 잡는 것은 용납이 안 됩니다. 그리고 NL의 경우 학생회 운영을 다른 정파들보다 상대적으로 잘 하는 경우가 많아서, 학우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학생회를 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케바케입니다. 



* 에피소드


NL과 PD는 노래도 다르고, 구호도 다릅니다. 심지어 총학을 잡았을 때 내세우는 학교 이름과 깃발도 다릅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NL이 잡으면 깃발부터 PC통신 ID까지 모두 '통일연세'입니다. 그렇지만 PD가 잡으면 '연세총학'입니다. 고려대학교도 ID가 '민족고대'와 '고려총학'으로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NL 노래에는 식민지, 자주, 민주, 통일 등의 가사가 많이 들어갑니다. 언뜻 떠오르는 제목들도 '조선은 하나다', '조국과 청춘', '아침은 빛나라', '통일선봉대 찬가', '혁명동지가' 등 뭔가 민족적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가사도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내용이 많습니다. '혁명동지가'의 경우 '동만주를 내달리며, 시린 장백을 넘어'로 가사가 시작됩니다.


PD에는 주로 노동 관련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드립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 중에 꽃다지의 '가자 노동해방'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1학년때 PD선배들 따라 집회에 다니면서 NL에서는 부르지 않는 노래들을 많이 배웠는데 그 중에 제일 좋았던 게 바로 이 '가자 노동해방'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NL 선배들과 함께 갔던 집회에서 이 노래가 나오길래 아주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아주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한 누나의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가는 술집도 다릅니다. 전통 찻집조차도 좀 다를 정도입니다. PD 선배들이 자주 가던 치킨집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치킨만 먹나 싶었습니다. 그것도 매일 같은 집에서. 그리고 거기에 가면 학교 내의 그쪽 계열 사람들은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가격도 싸고 양도 많아서 저도 개인적으로 자주 갔습니다. 하지만 뭔가 죄를 짓는 기분에 그 치킨집에 갈 때는 운동과 상관 없는 친구들만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들이 자주 가던 호프집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외상도 받아줬습니다. 외상은 보통 학기초에 과학생회장들이 봉사장학금을 타면 갚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운동권들이 받는 장학금은 대개 이런 공적(?)자금으로 쓰여집니다. 호프집 주인 아저씨가 경찰의 프락치라는 루머도 돌았습니다. 학생들이 누가누가 오는지,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지 경찰에 보고를 한다는 거였습니다.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가 설마... 아직도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 술집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망해서 그 술집들도 망한 건지, 아니면 우리 때문에 그 술집들이 망한 건지.


(계속)


오늘은 5. 18 민중항쟁의 날입니다. 최근 진보진영의 모습을 보면 동지는 간 데 없다는 노래 가사가 이처럼 뼈저리게 들리는 시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권파라는 사람들도 그 청춘의 시작은 순수한 분노였을 것이고,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운동이었을텐데 지금은 대체 왜 그런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2, 3편 재생산 뒤에 이어지는 시간들이 이제야 시작됩니다.



- 14 -  겨울방학



신입생은 입학 이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제 겨울방학으로 들어갑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1년 일정이 꽉 짜여져 있습니다. 운동가들에게 방학은 없습니다. 여름방학 때는 농활과 범민족대회가, 겨울방학 때는 학생회 정비와 신입생 맞이 준비로 바쁩니다. 저 역시도 대학 시절, 계절학기를 수강한 적도 없고 장기간의 여행을 떠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말씀 드렸다시피 90년대 학생운동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일정에서 한두 번 이탈하는 순간 운동도 자연스레 접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총학생회 선거 이후


신입생 시절에는 정파에 대한 관념이 별로 없기에 내가 어디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총학생회 선거를 거치면서 비로소 '우리'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생깁니다. 그리고 경쟁했던 선본들과의 구분을 짓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이론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감정의 영역입니다. 그렇지만 너와 나를 구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닌 감정입니다. 생각이 다른 분과는 함께 할 수 있지만, 미운 놈과는 함께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했던 신입생들의 인적 테두리는 선거가 끝나도 이어집니다. 겨울방학에 들어가면 곧바로 총학생회 선거 정리 MT가 있습니다. 신입생들에게 이 MT는 재미가 있습니다. 일단 2주 동안 동고동락했던 선배, 동기들과 다시 모이는 자리라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흥미를 당기게 하는 것은 일정과 뒷풀이입니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신입생들의 지적 욕구와 참여 의식은 상당히 높아진 상태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고, 어떤 제의를 받아도 거절함이 없습니다.


이 MT에서는 주로 선배들의 강연 일정이 잡합니다. 때로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졸업한 선배의 강연이 있기도 합니다. 이 때부터는 상당히 강도 높은 내용들이 전달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신입생들의 거부감은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주장들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대충 파악을 한 상태입니다. 내용들이 강도가 높아질수록 거부감이 아닌 신선함으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거부감을 가진 만한 친구들은 아예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뒷풀이에서는 참여한 동료들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결의를 주고 받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신의 안위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걷겠다는 이들의 존재에 흐뭇합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을 얻는다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든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입니다.



* 과학생회


과학생회 선거가 끝나면 선배들은 방학이 되기 전에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신입생들에게 방학 때 장기간의 일정을 잡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고향이 지방인 신입생들은 방학 때 되도록 서울에 머물도록 조언을 합니다. 방학 때 고향에 머물다 돌아오게 되면 감을 잃어 운동을 정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행부를 꾸리는 일입니다. 집행부에서 가장 먼저 채워지는 사람들은 당연히 같은 정파입니다. 그리고 신입생들 중 운동과는 관련이 없지만 학우들의 신임을 받고 대중성이 뛰어난 이에게도 제안이 들어갑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목적이 함께 합니다. 하나는 함께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운동을 제안하겠다는 당연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의도는 견물생심과 같은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 친구가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이 친구가 있음으로 해서 학생회 활동은 더욱 풍요로워지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관계로 맺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냉혹한 운동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학생회 활동은 당연히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며, 학생회 그 자체에서 멈춘다면 조합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합니다. 학생회는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지난한 논쟁입니다. 선거 시기가 되면 마음 약한 운동가들은 이런 요구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목적의식 없이 대했던 학우들에게 무언가를 위해 다가간다는 것은, 지인들에게 세일즈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을 필요로 합니다. 세일즈가 적성에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운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도 선거 때마다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상대 선본에서 뛰었지만 괜찮다 싶은 신입생에게도 제의가 들어갑니다. 선본은 달랐지만 같이 힘을 합쳐 학생회를 해보자는 선배의 제의는 신입생이 보기에 굉장히 명분 있고 멋진 모습입니다. 상대 정파의 선배들은 그 모습에 분이 터지지만, 바라볼 수밖에 없고, 말릴 만한 논리도 없습니다. 여당이 유리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케이스는 대개 실패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의 학생회라고 하면서도 정작 상대 정파의 선배들은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선본을 막론하고 신입생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 선배들은 평소 과 활동에 열심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을 왜 배제하고 학생회를 꾸려야 하는지 의아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제안을 해도 거절을 한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되면서 이 의문들은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상대 정파들은 1년 동안 학생회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회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이야기는 오직 자신들이 잡았을 때 뿐입니다. 그런데 이걸 한 쪽만 나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설사 한두 명이 상대 정파가 잡은 학생회 집행부로 구색 맞춰 들어간다 한들 어차피 철저하게 소외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신입생들은 정파 갈등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 학습


그리고 이 때부터 NLPDR론에 대한 학습이 시작됩니다. 학습을 하는 방법은 사람, 단위, 캠퍼스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다만 비합법 복사본을 가지고 학습을 하는 것이기에 보안이 중요시되는 것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보안을 중요시한다고 어디 골방에 숨어 이불을 덮고 자료를 읽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학교내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도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소지하지 않는 걸 권장합니다. 


이 때의 학습내용은 NLPDR론의 기본적인 내용들입니다. 우리 사회는 실제 어떤 모습이고, 가장 올바른 변혁이론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지침들이죠. 앞부분에서 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선배들에게 술자리 등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 실제 활자화된 것을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기에 이해가 잘 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심리적 충격입니다. 서적으로 접하게 되면 뭔가 깊숙이 빠져들어간다는 기분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 비합법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무협소설에서 비급을 얻는 것과 유사합니다. 주변의 평범한 학우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진지함을 던져 줍니다. 또한 금기를 건드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지적 쾌감을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수동적 자세에서 적극적 자세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첫 학습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역시 미국과의 관계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NLPDR론에서 주장하는 미국 문제를 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8,90년대 학생운동에서 '반미'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이제 당연한 팩트가 되었습니다. 친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부분은 전제사실로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다만 그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강대국이라면 국제정치에서 당연히 가지게 되는 속성일 수도 있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유달리 우리나라에만 모질게 굴었을 수도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문제도, 세계적 관점에서 용인을 할 수도 있고, 동북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주권국가로서 절대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과 관련한 논의들이 일방적 찬양 외에는 이뤄지지 않다보니 '식민지'라는 극단적 개념이 한 쪽에서 나오게 됩니다. 만약 미국 문제가 이런저런 관점에서 토론이 되어오던 분위기였다면 결국 적정한 수준에서의 해석에 머물렀을 겁니다. 공개적 토론이 이뤄질 수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해석이 힘을 얻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어왔던 미국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다는 점은 NL 운동의 공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극단적이나마 문제제기가 있었기에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이런저런 관점들이 제기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말이죠.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도 많은 것들을 공개된 장소에서 이야기하는 게 결국에는 가장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 신입생 OT 준비


운동가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지만, 한 편으로는 가장 활력이 넘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1년 후배가 들어오든, 2년 후배가 들어오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설레는 일입니다. 특히 1년의 과정을 거치고 처음으로 선배가 되는 신입생 운동가들에게는 설레임과 더불어 함께 할 동지를 찾는 과정이기에 긴장감도 더해집니다. 


이 때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신입생들이 다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1년여 동안 아웃사이더로 지내다 신입생 OT를 기회로 다시 공동체로 돌아오려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신입생 사업은 운동권만의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성향에 가릴 것 없이 최대한의 인원들이 모여듭니다. 후배를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비운동권 동아리들도 신입생들을 받아야 하기에 굉장히 적극적이 됩니다. 1년 동안 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 이 시기만 되면 1달 동안 반짝 활동을 해서 신입생들을 끌어간 뒤 다시 잠적하는 사이클을 가지는 동아리들도 있습니다. 운동가들이 재생산을 위해 신입생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비운동권 동아리 선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 음흉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후배를 만들어야 하는 조직의 구성원들에게는 동물의 번식본능과 같은 행위입니다. 예쁜 여자신입생이 들어오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남자 선배들이 갑자기 학생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신입생 OT도 기획단이 꾸려집니다. 그리고 이 기획단을 통해 최대의 성과를 얻으려 합니다. 보통 이 기획단에는 자신의 정파에 소속된 신입생들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운동과는 관련이 없지만 학우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는 신입생에게도 중요한 자리를 제안합니다. 제 글에서는 마치 NL만이 대중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PD도 대중성을 중요시합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입니다. 


이런 친구들은 1년 뒤 과학생회장까지 염두에 두면서 길러냅니다. 일단 과학생회는 가장 대중적이고 중요한 단위이기 때문에 대안이 없지 않은 이상 투철한 운동가보다는 대중적인 운동가를 선호합니다. 설사 운동의 길로 들어서지 않더라도, 이 친구를 보좌하면서 운동에 우호적 운영이 되도록 이끌면 됩니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얼굴마담이지만 과 단위에서는 그런 의미까지는 아닙니다. NL에게 학생회의 원활한 운영은 운동 만큼이나 중요시되기 때문에 설사 정치적 성향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중성 있는 인물이 과학생회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과학생회장으로 1년을 지내며 대중운동가로 성장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자산으로 남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학습수준이 높고 자의식이 강한 후배운동가들이 보기에 선배들의 이런 처사는 불공정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잡은 고기에는 밥을 주지 않는 법이고, 20대 초반의 선배들이 실수를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후배운동가들에게 위와 같은 설명들을 해주며 대의를 생각하라며 달래곤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법입니다.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학생회장이 되고, 학우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때로는 모멸감까지 느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파를 옮기거나, 운동을 정리하는 경우가 나옵니다. 때로는 위와 같은 식으로 발탁된 과학생회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얼굴마담으로 격하시키려는 시도도 나옵니다. 


학생운동 이야기가 나오면 의례 따라나오는 게 정치권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80년대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들에게나 해당되고 그나마 90년대에는 찾기 힘든 사례입니다. 다수의 운동가들에게는 학생회장이라는 스포트라이트조차 없이 끝없이 자기를 억누르고 아래로 향해야만 하는 수도자 같은 삶들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갑니다.



* 기획


신입생 OT는 정치선전의 장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자료집입니다. 학생회장의 인삿말부터 해서, 최근 사회 문제들까지 정파의 정치성향이 곳곳에 스며들도록 노력합니다. 이 때문에 학생회를 잡지 못한 정파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학생회를 잡은 쪽이 의도한 대로 진행됩니다. 신입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들 중 노래와 율동을 배우는 시간에는 운동가요가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물론 과격한 노래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대중적인 노래가 들어갑니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의도는 희석되고 OT 때면 의례히 집어넣는 순서로 자리를 잡습니다. 


돌아보면 대체 이 자료집이나 기획에 왜 그렇게 신경을 많이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놀면 그만인 것을 말이죠. 



* 그 외



겨울방학의 꽃 중 하나가 동아리 합숙입니다. 이 때는 동아리 성격에 따라 집중적으로 책을 읽기도 하고, 무언가를 배우러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학 때 일정이 없으면 이탈자가 생기는 건 학생운동만이 아닙니다. 돈을 받고 하는 게 아닌 이상 자발적 의지로 참여하는 조직에서 일정 기간 이상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방학 때도 이런저런 일정들을 잡아 서로 얼굴을 봅니다. 


대중사업 중의 하나로 겨울농활이 있습니다. 한총련 사업 중에 가장 대중적이며 정치색이 없는 활동입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더불어 비운동권 선배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이한 대중사업입니다.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전, 선배 운동가들이 신경을 쓰는 부분 중의 하나가 '돈'입니다. 학생운동을 하면 매 순간마다 '돈'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지만 이 시기의 '돈'은 의미가 다릅니다. '돈'이 있어야 신입생들에게 밥과 술을 사줄 수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안면을 터야 하고, 술을 마셔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신입생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90년대 중반보다 이전 선배들 중에는 방학 때 노가다를 뛰어서 '총알'을 준비했다는 분도 있지만 저희 때는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방학 동안 알바를 하거나 과외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역시 과외입니다. 학생운동가들이 정기적으로 시간을 뺐긴다는 것은 곧 활동력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운동가가 과외로 돈을 버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들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노동에 비해 큰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대부분의 운동가들이 대의를 위한 것이라며 합리화를 하고 과외를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번 돈은 모두 학우들에게 쓰고 저를 위해서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만, 그건 개인적인 정당화일뿐 정답은 아니었겠죠. 이렇듯 운동을 하는 이들의 고민은 온갖 군데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하나씩 무뎌지지 않으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운동의 시작이 점점 일정한 틀로 굳어져 가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계속)


애초 생각보다 시리즈가 길어져서 계속 올리기에 마음에 부담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15. 초보 운동가의 삶과 고민", "16. 한총련", "17. 총학생회 선거" 이렇게 세 편을 함께 올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회로 마무리가 됩니다. 



- 15 - 초보 운동가의 삶과 고민 



신입생 OT가 시작되고 후배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신입생들은 비로소 선배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 신입생 OT와 개강


선배들이 했던 실수들을 그대로 반복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선배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반추하며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지만 대개 잘 되지 않습니다. 2학년과 3학년만 비교해도 어느 정도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학생운동에서 초반 1, 2년의 격차는 지적 수준 뿐만 아니라 열정이라는 측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2학년 초반의 시기는 이제 막 각성의 단계로 들어가,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강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운동의 확신만을 심어주던 선배 운동가들이 '신입생들에게 목적의식을 갖고 다가가지 말라'는 조언을 하게 되면 당황스러워하게 됩니다. 


이들은 신입생들을 대할 때 어떻게든 이들을 운동의 길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은 자연스레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신입생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생운동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들에게 운동 이야기를 꺼낼 때는 뻘쭘함과 긴장감이 있습니다. 선배들에게 조언을 받은대로 사심 없이 다가가고 싶지만 그렇게 능수능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분명하고 세련되게 거절의 의사표시를 하는 친구들의 경우 오히려 고맙기도 합니다. 앞으로 그 선을 지켜가며 관계를 유지하면 됩니다. 그것보다 힘든 것은 은근한 싸늘함과 무관심입니다. 이게 대체 어떤 의사표시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알고는 있지만 애써 외면합니다. 세상은 어느 정도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이 되어야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목적의식이 없이 다가가도 문제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선배들에게 '목적의식 없는 대중활동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라는 질책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선배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의 길로 들어서면 선배들이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잡은 물고기에 밥을 주지 않는 원리이기도 하지만, 일단 서로 간의 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학년에 따라 맡아야 할 역할과 의무가 있고, 그것은 학번 문화의 특성상 일방적 지시로 나타나게 됩니다. 후배 운동가들은 갑자기 달라진 듯한 선배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모순된 조언들에 우왕좌왕하기도 합니다.



* 과부하


2학년이 되면 신입생 시절과는 달리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합니다. 80년대와는 달리 학생운동을 한다고 무조건 잡아가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80년대와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학생운동가들에게 지워진 업무들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진 점입니다. 신입생 사업, 집회, 학습, 동아리, 학생회 활동 등 갑자기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학생이기에 수업도 들어야 하고 학점도 챙겨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90년대 운동가들의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상실감"입니다.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남은 게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학생운동가로서 주어진 의무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매일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됩니다. 학우들을 만나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 학생회 사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봉사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집니다. 운동가로서의 성찰과 학습이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운동 이론조차도 제대로 학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번 회의나 모임 때마다 위에서 내려온 문건들 읽기에도 급급합니다. 그래서 머리에는 조악한 이론의 틀만 남고 내용이 채워지지 않게 됩니다. 반성과 성찰도 뭔가 머리 속에 많은 것들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나마 이론가로 키워지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대중활동가들에게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본인이 할 수 있고 인정을 받는 게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술자리를 만드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전문성은 커녕 학점 메꾸기도 버겁습니다. 물론 특출난 운동가들은 자기 생활도 챙기면서 운동도 제대로 해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대학생들입니다. 운동도 하지만 다른 것들도 하고 싶습니다. 문화적 소양도 쌓고 싶고, 다른 전문 지식도 갖추고 싶습니다. 이런 모든 욕망과 자기계발을 포기하고 바보처럼 살아야 합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이 결국 몰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론의 낙후함도 있지만, 이런 시스템의 문제도 결정적입니다.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서로서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갉아먹으면서 운동을 하게 됩니다. 한총련이라는 시스템은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이 소모품처럼 사용됨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많은 이들이 낮은 수준에서 결의하고 자기 생활을 챙기면서 운동하는 것을 용납치 못합니다. 


과도한 요구들을 받아안을 수 있는 운동가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줄어든 만큼 업무의 양은 많아집니다. 언제나 대중사업을 강조하고 좀 더 많은 동지들이 있기를 원하지만 열심히 사는 만큼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갈빈다. 결국 신념이 투철하거나, 극단적 성향을 가진 운동가들만이 남게 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됩니다. 


운동가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언제고 반드시 옵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정파 내부에서는 언제나 심각한 정세 속에 살고 있는 분위기지만, 그 밖으로 나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고, 문제점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청춘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까지는 운동가의 삶이라는 추상적 형상을 가지고 마음 속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메워 갑니다. 그러다 더 이상 그 구멍들이 메꿔지지 않는 순간 운동을 정리하게 됩니다. 



* 자주적 학생회


대학에서 '자주적 학생회'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NL은 학생회를 잡으면 자신들 학생회를 '자주적 학생회'라고 명명합니다. 의미는 좋습니다. 학우들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학생회가 자주적 학생회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학우들이 생각하는 이해와 요구가 학생회에서 실현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학우들이 생각하는 '자주적 이해와 요구'는 NL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NL에게는 NL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학우들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괴리는 간단하게 합리화가 됩니다. 학우들이 보통 생각하는 '이해와 요구'들은 사실 학우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왜곡된 과정과 피상적 사고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주적 이해와 요구'란 학우들의 진짜 삶과 처지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인식론적 사고와 존재론적 사고 중 후자라는 거죠. 그래서 학우들이 당장 이해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자신들의 노선이야말로 진정 학우들의 '자주적 이해와 요구'라는 합리화가 이루어집니다. 신앙에서의 '전도'와 똑같은 구조입니다. 자신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모르는 무지한 학우들을 위해 우리가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선민의식입니다. 


그리고 여론은 반영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론작업은 선전선동이지, 소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회의 때가 되면 자주 충돌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만약 어느 누가 조직의 방침과는 달리 학우들의 의견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주장을 하면 학우들의 여론을 잘못 읽고 있다는 반박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패배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이 가해집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니 결국에는 문제제기를 한 운동가가 지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토론을 통해 모두가 동의했다는 결론을 냅니다. 차후에 납득이 되지 못한 운동가가 재차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너도 토론을 통해 동의한 결론 아니냐'라며 족쇄를 채우게 됩니다. 


여기서 대중성의 딜레마가 생깁니다. 입만 열면 대중적이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지만 실제 대중들의 의견을 따라가려고 하면 '대중추수주의'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자주적 학생회와 같은 논리입니다. 결국 대중적이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주장을 잘 관철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소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 좋아 보이는 운동가들이라도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딱 막히는 부분이 나옵니다. 


학생운동을 하고 성장을 하다보면 이런 순간들이 여러 번 닥칩니다. 논리적 과정이 아니라 신념과 같은 결단으로 사고의 틀을 정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언제나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지만 중요한 단계에 다다르면 믿음으로 극복해서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이 시리즈에서 '점프'라고 명명하는 부분입니다. 아이러니입니다. 그렇지만 분노에도 열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몇 번 넘어가게 되면 머리가 굳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마음가짐도 사라지게 됩니다. 정파적 관성만 남습니다. 그래서 운동가의 성장은 깨달음의 축적이 아니라 의문을 억누름으로 인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남긴 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의문은 튀어오르지 않고, 억누르는 기제들만 발달하게 됩니다. 조직의 방침에 대해서는 언제나 의문을 삼키는 과정만이 반복되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유연해야 할 진보가 가장 보수적이고 경직된 집단이 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보면 정해진 생각들만 하게 되고, 조직의 방침에 부합되는 판단만 하게 됩니다. 자연스레 정상적 토론 스킬이 부족해지고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상대방이 백 번 옳은 이야기를 해도 그게 자신의 신념을 꺾는 결론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공개적 토론에서 져서도 안 되기에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기술만 늘게 됩니다. 자신의 견해를 잘 이해시키기보다 상대에 대한 비판에만 능숙한 운동가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 고립의 심화


2학년이 되면 고립은 더욱 심화됩니다. '고립'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좁아지는 것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동아리나 운동가들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굳어져가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은 활달한 운동가들도 있지만 대개의 운동가들이 그렇습니다. 이 때부터는 대오에서의 이탈이 개인적 이탈이 아닙니다. 여기서 운동을 그만둔다는 것은 지금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대부분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뭔가 생각이 달라져도 동기나 선배들에게 차마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등록금투쟁을 비롯해 일 년 내내 이어지는 집회들에 나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농활과 같은 대중적인 사업들 역시 한 번이라도 빠지게 되면 곧바로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다른 이들끼리 내부를 바꿔보거나 다 같이 빠지자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혼자 나갈 수도 없고, 혼자 바꿀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란 다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 때 선배들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후배들의 반란은 사실 소박합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두 공존할 수 있는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만, 선배들이 보기에는 용납불가의 요구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매 년 일어납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당연합니다. 그래서 선배들도 뭔가 불만을 가진 것 같거나 갑자기 소극적이 된 후배들은 따로 불러 조용히 정리를 하고 나가도록 합니다. 초기에 손을 쓰지 않으면 동아리나 모임 자체가 휘청입니다. 그렇지만 절대 나쁘게 끝내지는 않고 기존의 인간관계들이 연착륙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면서 우호적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운동을 계속하거나 혹은 비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친분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운동을 정리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당장 밥을 먹을 사람이 없어지고, 술을 마실 사람이 없어짐을 의미합니다. 순식간에 컴퍼스에서 혼자가 됩니다. 나이를 좀 더 먹어서의 상황이라면 당직자나 상근자 등의 밥줄이 끊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부비판에 용감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인간관계나 밥줄에 어느 정도 초연할 수 있는 아들이 대부분입니다. 운동조직이라고 특별한 법칙이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조직은 어디를 가나 비슷한 원리로 돌아갑니다. 



* 대중사업의 스트레스


많은 운동가들에게 대중사업은 대단한 스트레스입니다. 운동가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사실은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실제 성격과 맞지 않는 대중사업들입니다. 매일 같이 많은 학우들을 모아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가집니다. 점심 때면 친하지 않은 후배들과도 따로 약속을 잡아 밥을 먹습니다. 본래 활달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굉장히 곤혹스런 일입니다. 서비스업의 감정노동 같은 스트레스입니다.


무엇보다 목적의식을 갖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입니다. 마치 불편한 소개팅을 하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많은 만남들은 어느샌가 증발해버리고 파편화가 됩니다. 캠퍼스를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아지지만 가슴을 터놓고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듭니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대체 언제까지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만나야 할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민족해방의 그 날이 올 때까지 계속 이래야 하는 것인지 지칩니다. 



* 후배


학생운동가들의 제 1의 목표는 후배 양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재생산에 실패하는 순간 단위 운동은 끝입니다. 한 번 대가 끊긴 단위에 사람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바로 밑 학번에 후배가 한둘이라도 생기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만든 후배들의 존재는 한 편으로는 마음의 짐이 되기도 합니다. 일단 자신이 직접 만든 후배운동가들이 존재하는 경우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운동을 정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 달라져도 그걸 쉽게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배운동가의 양성은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노선과 생각이 달라졌다는 게 인증되는 순간 사문난적이 됩니다. 후배들에게도 기피대상이 되고 학생회실에서 투명인간과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조직의 노선이란 받아들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선택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달라졌다 해도, 그 공간을 떠날 생각이 없는 이상 그냥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운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 군대


학생운동가들에게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것 중 하나가 '군대'입니다. 이건 당사자에게도 고민거리겠지만, 조직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돌아보면 RPG 게임처럼 돌아갑니다. 끝없이 미션들이 내려오고 그걸 하나하나 깨 나가면서 성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중요한 역할들이 부여됩니다. 그런데 군대는 그 모든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계속 언급하다시피 학생운동가들에게 부여된 업무들은 많아지고, 그건 사람이 줄어든다고 따라서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단위에 운동가가 한 사람 밖에 없어도, 출범식은 가야 하고, 농활대는 조직해야 합니다. 어느 한 미션도 방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대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차원의 결정사항입니다. 물론 어떻게든 미루고 희생하기를 원합니다.


반면에 대다수의 남성 운동가들은 군대를 빨리 갔다오고 싶어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늦게 가게 됩니다. 대개 단위에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견실한 운동가가 빠지게 되면 타격이 큽니다. 본인이 떠나면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질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남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투철한 운동가 이전에 학생들이고 20대 초반의 청년들입니다. 집안에 사정이 있는 경우도 많고, 본인 스스로도 군대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파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조직에서 최대한 배려를 해줍니다. 이 친구가 군대에 갔을 때 단위 운동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해본 뒤에 남은 운동가들이 빈 자리를 메꿀 수 있겠다 판단이 되면 허락을 해줍니다. 계속 잡고 있으면서 망가지느니 깔끔하게 갔다 온 뒤에 운동을 지속하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군대를 갔다 오면 대개의 경우 정리를 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 역시도 이상적인 해결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잠수를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불쑥 학교에 모습을 내밉니다. 군대 가기 일주일 전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와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습니까. 결국에는 성대하게 환송회를 해주고 따뜻하게 배웅을 해줍니다. 


따뜻한 배웅 뒤에 남겨진 것은 차가운 현실입니다. 남은 운동가들은 또 다시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운동을 계속합니다.




- 16 -  한총련



* 체계


한총련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줄임말입니다. 한총련은 90년대 NL 학생운동 그 자체입니다. 학생회에 매몰된 학생운동에 있어 총학, 단과대 학생회의 연합체인 한총련은 당연히 시작이자 끝입니다. 


한총련의 체계는 한총련 의장을 중심으로 과학생회까지 수직으로 뻗어있는 구조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총련-지역총련-지구총련-총학생회-단과대학생회-과학생회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총련은 주요 도시 및 도 단위의 총련 단위입니다. 지구총련은 그 밑에서 쪼개지는 단위입니다. 홍익대를 예로 들면, 홍익대의 체계는 이렇습니다. 한총련-서총련(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부총련(서울서부지구총학생회연합)-홍익대총학생회로 이어지게 됩니다. 각 단위마다 의장이 있고 집행부가 있으며 대의원체계가 존재합니다.


이름은 총학생회연합이지만 의결기구는 총학생회장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들도 총학생회장들과 같은 1표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한총련대의원이라고 하면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과 단과대학생회장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자격은 당연직대의원이라고 해서,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총학생회장이나 단과대학생회장이 되면 자동적으로 한총련 대의원이 됩니다. 굉장히 문제가 많은 규정입니다.


한총련을 잡게 되면 엄청난 이점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돈과 조직을 장악하게 됩니다. 전국대학의 총학생회는 정치노선과 관계 없이 한총련 분담금을 내야 합니다. 거대 규모의 정치집회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생회까지 수직으로 뻗어있는 구조이기에 한총련 중집(중앙집행부)의 지침이 말단까지 빛의 속도로 전파가 됩니다. 그래서 일방적 동원에 유리하고 운동가 하나하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운동 자체의 영향력은 줄었지만 예전과 비슷한 숫자의 운동가 및 주변 세력들을 끌어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체계는 필연적인 문제점을 내포합니다. 통제는 용이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진보진영에서 내부 문제가 외부로 터질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왜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고 외부로 발설하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입니다. 불만이 있으면 조직체계를 통해 제기하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과-단과대-총학-지구-지역-한총련까지 무수히 많은 단계들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반드시 커트 당합니다. 내부에서 절차를 밟고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은 그냥 묵살하겠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한총련이라는 체계는 조직동원에는 유리하지만 기층 단위에서의 연대는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개개인들이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들을 서로 공유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체계는 윗선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들 간의 연대를 통한 반란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의식은 소수의 생각일 뿐입니다. NL 운동가들에게 한총련은 절대적 대상입니다. 흔한 표현으로 '중앙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워낙에 방대한 조직이기 때문에 한총련을 벗어나서 무언가를 해본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대안도 없습니다. 그래도 투쟁의 현장에는 언제나 한총련 깃발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사 뭔가 불만이 있더라도 한총련을 버린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습니다. 


한총련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투쟁지침들이 떨어집니다. 그것들을 소화하기도 벅찹니다. 운동가들에게 토론이란 상부의 지침들을 어떻게 하면 잘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지,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아닙니다. 거대한 조직에서 내려오는 지침들은 운동가 개개인의 소박한 고민들을 지워버립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투쟁지침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필요해보이는 것들이기는 합니다. 모두가 시급해보이고 유의미한 과제들입니다. 어쨌든 조직은 올바른 지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한총련이란 조직에서 1, 2년을 운동하다 보면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자세가 사라져버리게 됩니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위에서 지시만 내려오기를 기다립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날려도 이에 대해 일단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하다 못해 스스로 대응논리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며칠 뒤에 상층에서 관련 문건이 내려오면 그제서야 그 문건의 논리대로 반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NL과 관련한 문제가 터지면 늘 며칠 뒤에야 반박이 시작되고 다들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단어와 문장들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 한총련 의장님


한총련에서는 '의장'에 대해 엄청난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의장님'이라는 호칭은 물론이며 출범식 때는 엄청난 규모의 '옹립식'을 거행합니다. 운동가들이 '의장님'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처음에는 선배들의 열광적인 '의장님' 사랑에 거부감을 갖는 초보운동가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출범식에서의 장엄한 옹립식부터 해서, 끝없이 강조되는 의장님과 지도부에 대한 찬양을 접하다 보면 어느샌가 거부감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한총련이라는 거대 조직의 이런저런 성과들을 보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의장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투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만이 열광을 가능케 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정권의 탄압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를 믿고 그를 중심으로 한 단결만이 최선의 길이라는 비장한 인식도 한 몫을 차지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는 전쟁 중이니 그에 걸맞는 군대 조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군대에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뛰어난 지휘관과 그에 따르는 일사불란한 군사조직입니다.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NL 운동가들이 생각하는 한총련도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한총련 의장은 군대 지휘관의 역할에 더불어 사상의 지도자 역할도 함께 겸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장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주체사상으로 들어가 결국 수령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런 조직 문화와 현실 인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 문제점 1


한총련의 문제점은 학생운동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학생운동이 곧 학생회가 되는 구조다 보니, 공식적이어야 할 기구를 비공식적기구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 통합진보당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학우들에게 한총련은 본인들이 뽑은 학생회의 연합체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학우들의 의견들도 반영되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총련 지도부를 비롯해 한총련을 장악하고 있는 NL 운동가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한총련은 운동 조직이고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생각은 굉장히 나이브한 태도라고 비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고질적인 책임과 운영의 분리 문제가 생깁니다. 한총련 의장은 '상징성'이 큰 존재지만 말 그대로 '상징성'에 머무릅니다. 실제 모든 결정들은 그 주변의 중집이나 때로는 그것도 아닌 '비선' 조직에서 이뤄집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체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건 총학생회 단위까지 마찬가지입니다. 


한총련 의장이 잡혀가든, 총학생회장이 잡혀가든, 모든 것은 흔들림 없이 멀쩡하게 돌아갑니다. 이건 학우들이 던진 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총학생회장이든, 단과대 학생회장이든 학우들이 표를 던질 때는 그 사람을 보고 던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출된 대표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기를 바랍니다. 이게 상식입니다. 그렇지만 한총련의 운영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우들은 상식적인 기준에서 한총련을 비판하면 정세의 엄혹함이라던가, 수배 중인 학생회장들의 불행한 처지와 같은 다른 세계의 답들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학우들의 손으로 뽑힌 학생회장이 수배를 당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집니다. 97년 이후로는 하도 많은 학생회장들이 잡혀가서 만성화가 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생회라는 조직에 대한 관점 차이를 좁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찬반의식과는 별개로 우리 학생회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됩니다.



* 문제점 2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서 밑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지침들을 가지고 토론을 벌입니다. 다른 정파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NL에서는 아무리 봐도 형식적인 과정들을 반드시 거칩니다. 토론을 했고, 모두가 동의했으니 각자 거기에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합리합니다. 경험 하나를 기술합니다.


운동가들은 겨울방학이 되면 수련회를 갑니다. 이 때 하게 되는 게 한총련 총노선 토론입니다. 이때도 역시 총노선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방식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올해 한총련 총노선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칠판이나 벽에 붙은 대자보 용지에 쓴 다음에 토론을 하자고 합니다. 그럼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이 시기에 참 적절한 노선이다라던가, 거기에 덧붙여 이런 면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럼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듣고 난 뒤에 학교 책임자 선배가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딱 지금 나온 노선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라고 정리를 합니다. 


4학년 때였습니다. 그 날도 한총련 총노선 토론이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날은 뭔가 잘못 먹었던 듯 싶습니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토론 초장에 손을 들고 발언을 했습니다. 우리가 토론을 해는데 만약 지금 나온 이 총노선이 아니라고 결론이 난다면 한총련 차원으로 들고가 바꿀 수 있는 거냐고 말이죠.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토론'이라는 말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상황은 저로서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사회자 선배는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이어붙였지만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제가 '토론'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주위 동료들도 손을 들고 발언을 하며 제가 잘못하고 있다며 지적을 했습니다. 그 전부터 뭔가 마음에 균열이 가고는 있었지만, 그 날이 저에게는 결정적 하루가 되었습니다.



* 문제점 3


한총련은 구조상 좌파들이 결코 장악할 수 없습니다. 매년 좌파에서도 후보가 나오지만 표를 까면 9:1 정도의 압도적 차이로 NL계열이 당선됩니다. 여기까지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칩시다. 문제는 소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좌파도 대학사회에서 유의미한 운동세력인데 한총련에서는 티끌만큼의 존재감도 없습니다. 누가 봐도 심각한 문제인데 그 내부에는 조금의 문제의식도 없습니다. 표대결을 해서 이겼으니 끝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권이나 여당을 비판할 때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건 사상적으로도 정당화가 됩니다. 다른 정파들을 배제하는 것은 권력욕이나 독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운동의 단일대오 형성을 위한 지극히 바람직한 행위입니다.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면 그건 나이브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사상임으로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폭력은 선의의 폭력인 법입니다.


한총련 단위까지 올라가게 되면 과학생회 같은 기층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딴 세상의 일이 됩니다. 입으로는 '대중'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떨어져버린 운동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해서 밑으로 내려꽂기만 합니다. 아래에서 보면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지시들만 쏟아집니다. 이걸 정말 학우들에게 이야기를 하라는 건지 싶은 내용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면서 학우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다가가라는 조언도 깨알처럼 함께 내려옵니다. 결국에는 한총련 중앙은 중앙대로, 아래는 아래대로 따로 놀게 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지시들은 단위 책임자들이 그냥 씹어버립니다. 


제가 처음 단책(단과대 책임자)이 되었을 때 직속 선배가 해 준 조언이 '후배들을 위한 핵우산이 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지시들은 제 선에서 알아서 무시하라는 겁니다. 참 고마운 조언이었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제가 너무 심했던 겆니 상층에서도 얼마 뒤부터는 저를 거치지 않고 후배들에게 직접 통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17 -  총학생회선거


늦가을에 치러지는 총학생회 선거는 각 정파들이 1년 동안 쌓아온 대중사업의 성과가 표로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학생회 선거가 정파들에게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앞부분에서 설명을 했으므로 여기서는 총학 선거가 어떻게 치뤄지고,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에 대해 기술하겠습니다. 



* 결의


정파의 운동가들 중에 누가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갈 것인지는 조직이 결정합니다. 리더쉽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가 조직원들을 규합하고, 나름의 고민들을 풀어놓는 총학생회 선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중성, 사상적 투철함, 외모, 언변, 정세 등 여러 요소가 고려됩니다. 주로 해당년도 단과대 학생회장이나 낙선자등 4학년들이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소속 단과대입니다. 사범대나 공대 등 규모가 큰 단과대에서 후보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야 거기서 몰표가 쏟아지고 표계산에 유리해집니다. 안타깝지만 표를 던지는 학우들 중 많은 이들이 많은 고민을 갖고 한 표를 던지지는 않습니다.


외부의 시각과는 달리 총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학생회장 출마는 운동가들에게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특히 총학생회장 출마의 경우 인생이 완전히 바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집회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 확률이 높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한 학교 운동의 대표라는 총학생회장을 맡고 나면 책임감 때문에라도 운동을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운동가라면 누구나 나중에 발을 뺄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그게 현실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97년 이석씨 치사사건 이후로는 한총련 자체가 이적단체로 규정됩니다. 그래서 한총련 대의원인 단과대학생회장들도 당선과 동시에 수배가 떨어집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학번들이라면 교내에서 먹고자고 생활하는 수배자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별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당선되고 한총련 탈퇴서를 내지 않으면 수배고, 잡히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직에서 권유가 들어오면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나갈 사람이 자신 하나라도 어쨌든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보통 학생회장 선거 출마를 결의시킬 때는 MT를 갑니다. 가을이 되고 이런저런 선배들이 MT 제의를 하면 당사자들도 감을 잡습니다. "왔구나." 그렇지만 안 갈 수도 없으니 갑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은 많습니다. 끝까지 출마를 거부하는 운동가 앞에서 상 한가운데 칼을 박고 을러대기도 하고 무릎 꿇고 애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학생회장 출마란 큰 짐을 후보 하나에게만 지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출마를 강권하는 선배나 동기들은 최소한 그와 함께 하는 1년 동안은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을 함께 결의합니다. 결국에는 조직의 힘으로 결의하고 돌파합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예 2학기가 되면 휴학을 하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두고 비난은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길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 준비


총학생회 선거와 단과대학생회 선거는 같이 치뤄집니다. 규모가 있는 정파들은 여력이 있는 한 모든 곳에 후보를 냅니다. 그리고 대개 슬로건이나 선본명을 통일시킵니다. 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활동했던 곳은 언제나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입니다. 총학 후보와 단과대 후보 모두 같은 계열에 투표를 하도록 전략을 짭니다. 그렇지만 이건 꼭 긍정적 효과만 있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침몰하기도 합니다. 


선거는 곧 돈입니다. 이건 학생회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 때면 등장하는 대형 광고판이나 통일된 복장, 리플렛 등 모두가 돈입니다. 그리고 꽤 많이 들어갑니다. 이것 역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학생회비를 끌어다 쓰지는 않습니다. 각 후보들과 선본 구성원, 선거운동원들이 갹출해서 부담합니다. 그리고 선거 때가 되면 운동을 했던 선배들로부터 후원을 받습니다. 이걸 반진담, 반농담으로 '보투(보급투쟁)'라고 합니다. 선배들의 도움은 꽤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조직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규모가 작은 조직에서도 어쨌든 다른 선본만큼은 해야 합니다. 그럼 해답은 하나 뿐입니다. 빚입니다. 이 빚 때문에 심적고통을 받는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이건 결국 누군가의 개인 부담으로 처리되어 떠버리게 됩니다. 조직 차원에서 해결해달라 말하고 싶어도 순간순간의 일정에 치이며 돈 문제에 허덕이는 후배들에게 차마 빚 갚아달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직장에 들어가든, 알바를 하든 개인적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 고민 1


선거 운동에 들어서면 운동가들은 몇 가지 고민들에 부딪치게 됩니다.


먼저 그동안 쌓았던 인맥의 활용입니다. 아무리 목적의식 없이 인간관계를 쌓았다 한들 선거 때가 되면 그걸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오다 선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민망한 일입니다. 마치 이때를 위해 인간관계를 맺어온 것은 아닌가 오해를 받을까 두렵습니다. 실제로 지지 관련 부탁을 하면 '그럼 그렇지'라며 싸늘하게 비웃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처음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밤잠을 설칠 정도입니다. 내가 대체 뭐가 못나서 그런 취급을 받아가며 운동을 해야 하나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처들에 대해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결국 운동가들 사이에서 풀어내야 하지만 운동가의 올바른 자세와 같은 모범답안 말고는 위로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눈 딱 감고 사람들을 만나갑니다. 여린 마음들이 어느 한 쪽에서부터 차갑게 식어가고 무감각해집니다. 어느 순간부터 철면피가 되어가는 것 같아 괴롭기도 합니다.



* 고민 2


학생회 선거가 매년 이어질수록, 학우들의 무관심과 냉소도 더해갑니다. 간단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결국 당선이 되면 본인들이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거에 임할 때만큼은 다들 진심입니다. 학우들 뜻대로 학생회를 운영하고 싶어 합니다. 올해의 마음가짐은 정말 다르고, 만약 당선이 된다면 새로운 차원의 학생회를 만들어가겠다 다짐을 합니다. 선거운동원들 사이의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당선만 되고 나면 이 모든 진심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고 강경한 입장을 가진 선배들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잡아가고, 1년치 일정이 나오고, 다들 바쁘게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돌아보면 다들 마음만 있지 고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정들과 눈 앞에 놓인 과제들에만 급급하며 1년을 보내고, 선거 때가 되면 다시 진심만 갖고 임합니다. 그리고 학우들의 싸늘함 역시 반복되고 커져만 갑니다.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상황은 점차 나빠져만 갑니다. 머리는 잘 돌아가지 않고, 답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부에서 결단을 내려주고 혁신해주기를 바라는 관성만이 존재합니다. 어쨌든 지도부만 믿고 더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할 뿐입니다. 



* 비권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점차 비운동권 후보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총학생회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을 때라 노골적으로 반운동권을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고 센스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는 마냥 반대하고 공격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동의하는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인정하면 지는 거니까요. 


비권이 총학을 잡게 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풍경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일을 잘 못해서 학생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운동권을 비판하며 학내 복지 등을 주장하며 당선이 되었지만 정작 복지 공약조차도 지키지 못합니다. 운동권 총학보다도 학우들을 위한 사업에 소홀합니다. 비운동권 총학생회는 대개 1학기 중간고사가 되면 퍼지기 시작합니다. 다들 학생이기에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를 전후해 2,3주는 총학생회가 마비가 되고, 한 번 풀어진 긴장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중간고사 이후에 벌어지는 축제까지 어찌어찌 치루고 나면 평범한 학생들로 이뤄진 비권 총학은 1년이 끝나버립니다. 총학 선거 때 야심차게 내세운 복지공약들을 챙길 여력은 집행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비권의 무능을 탓하기 전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역시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총학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들이 집중되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걸 소화할 수 있는 집단은 오직 조직화된 운동권 뿐입니다. 운동권조차도 총학 일은 버겁기 때문에 집행부 중 상당수가 휴학을 하면서 꼴아박아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들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운동권만이 아닌 비권들도 능히 꾸려갈 수 있는 학생회 시스템이 되어야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학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학생운동가들에게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학내에서 운동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안티조선 운동이 학우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졌다고 하면, 그걸 기어이 본인들의 영향력 하에 두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운동들은 올바른 지도 하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미,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틀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 운동이라면 그건 운동대오를 흐트러뜨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NL 운동이 온갖 분야에 퍼져 있는 데에는 그 분야 자체에 대한 순수한 신념과 분노가 가장 기본이겠지만, 전체적 틀에서 부문운동들이 움직이게끔 하는 의도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모 이런 게 아니라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야권의 여러 정치세력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연대를 해야 한다는 사고구조와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게 이론으로 정립되어 있고, 신념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게 좀 다를 뿐입니다.


한 편으로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축제, 학내 행사 등도 본인들이 주도하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결국 대중사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갖 일들이 모두 학생회 사업으로 들어옵니다. 시험기간 때에는 야식 판매조차도 운동가들이 맡아서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게 학생회 시스템의 하나로 편입됩니다. 새롭게 들어오는 비권 총학에서는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비권 총학은 무엇보다 아마추어입니다. 세부적인 규정들이나 학생회 시스템에 무지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 운동권들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입니다. 운동권은 학생회 시행규칙 등 세부적인 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빠삭합니다. 그래서 회의 진행 규정 중 지엽적인 부분을 문제 삼아 비권 총학을 흔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하는 측에서는 억울합니다. 그냥 상식대로 진행해서 처리했을 뿐인데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절차적 하자를 지적 받고 죽일 놈이 됩니다. 이걸 몇 번 당하게 되면 애초에 운동권에 적대적이지 않았던 비권들도 학을 떼게 됩니다. 물론 가끔씩은 운동권 머리 위에서 노는 인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자보를 비롯한 여론주도 능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비난여론을 뒤집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권들이 당선 뒤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운동권은 정치투쟁에 있어 프로입니다. 세부규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서 상대 선본들의 작은 잘못들을 집어내서 경고를 먹입니다. 그래서 선관위에서의 회의 분위기는 살벌합니다. 때로는 선관위 구성에 대한 의문들이 꼬리를 뭅니다. 어느 선관위원이 어떤 쪽 선본과 친하고 그쪽에 유리한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소문이 돌고, 지나고 나면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각 선본장들은 악역을 맡습니다. 상대를 고발하고, 작은 실수를 용납치 않으며 때로는 후보자격 박탈도 주도합니다. 선거규정의 해석을 놓고 밤을 지새는 회의 끝에 합의점에 다다랐어도 밖에 나가 전화 한 통을 하고 들어오면 판을 뒤집기가 일쑤입니다. 운동권 간에는 현장에서의 타협이나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회의에 들어올 때 이미 정파 지도부에서 정해놓은 결정들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오직 관철 뿐입니다. 사실 악역을 맡은 운동가도 괴롭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본인에게 재량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동권은 회의가 깁니다. 


선거가 한 번 끝나고 나면 이 사람들은 상대정파에게 영원한 원수가 됩니다. 정파가 다르다고 언제나 으르렁거리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운동하는 동지들이기에 술도 마시고, 친분관계도 유지합니다. 그렇지만 선거 때 직접 칼을 들이댔던 인사들은 감정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얼굴가죽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시선들을 모르지 않습니다. 물론 걔 중에는 심성이 진짜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죄의식 없이 잘 살아갑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들도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되지만, 가해자들도 자신들이 행한 짓들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용서를 구할 데도 없어집니다. 적을 만들고 산다는 것은 본인의 업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대단히 불행한 일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도 인생의 온갖 적들을 만들어가는 행위입니다. 진심과는 관계 없이 누군가들에게는 분노할만한 내용들이니까요. 


(다음에 올리는 글이 마지막입니다.)


원래 오늘 마지막회를 올리고, 며칠 뒤에 에필로그를 올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대충 내용들을 정리해놓고 보니, 마지막 편인 19회와 에필로그를 묶어서 올리는 게 나은 것 같아 오늘 18회를 먼저 올립니다. 아무 것도 아닌 글들을 가지고 이리저리 말을 바꿔 죄송합니다.



- 18 - 운명공동체



* 운명공동체


지금까지 기술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NL 운동가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갑니다. 그  안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대개 사회의 일반적인 조직에서 나타나는 것들과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전편까지는 학생운동의 사이클과 쟁점 등을 짚어가며 주로 운동가의 성장과 그 내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탄압'과 '투쟁'입니다. 그리고 그 "탄압"과 

투쟁"이 NL이라는 집단을 특수한 성격의 공동체로 만듭니다. 9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싸우는 학생운동가들 역시 정파를 가리지 않고 강력한 탄압을 받습니다. 학생운동가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구속되며, 집회는 늘 경찰의 진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구성원들의 과대망상이나 지도부의 의도적인 '적' 만들기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외부의 탄압과 그에 맞선 투쟁은 내부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동료가 구속이 되고, 나 역시도 언제든 잡혀갈 수 있다는 현실은 구성원들을 특정 이념의 결사체를 넘어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 만듭니다. 생활, 사상, 투쟁 등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조직체계, 사상, 의사결정문화 등 많은 것에 동의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종교에서 교단에 들어가는 것과 유사한 행위입니다. 개개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면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개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외부의 탄압이 거셀수록 내부는 그만큼 비정상적으로 돌아갑니다. NL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위와 같은 현실들은 NL 집단을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와 멀어지게 만듭니다. 당연합니다. 투쟁하는 조직이 사회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에게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올라도 내부에서 그것을 개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운동가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생각들은 '엄혹한 정세'라는 현실 앞에서 무력화됩니다. 내부의 문제들은 일단 탄압을 이겨낸 뒤에 고민해야 하는 것이며, 지금은 일단 지도부를 믿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는 동료들의 논리를 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민주주의 등 나이브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감옥에 끌려간 동지들을 욕되게 하는 짓입니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이해하기 힘든 논리들이 내부 구성원에게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감옥에 간 동지들의 문제는 구성원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고, 탄압 받는 동지들은 공동체 차원의 책임을 개인이 짊어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일반적 조직의 속성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선한 목표로 조직을 만들어도 어느 시기가 지나면 최초의 목표는 마음 속에서 티미해집니다. 반면에 조직 그 자체를 보위하는 것은 언제나 피부로 와닿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민주주의나 일반적 상식을 거스를 지라도 조직의 보위가 최우선이 됩니다. 외부 인사들이 우리 안의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우리 조직의 보존이라는 생각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는 내부에서 문제가 터지면 일반 상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문제해결이 진행됩니다. 만약 진실과 조직의 보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일단 조직입니다.

 

이렇듯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는 폐쇄적 분위기가 내부를 압도하다보니 강경한 목소리들이 힘을 얻고 지도부를 차지합니다. 공동체를 떠나지 않는 이상 이런 분위기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탄압 받는 공동체 내부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결국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공동체의 구성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직의 비민주성, 폭력성 등을 목도하면서도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 싶어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사정이 있을 것이고, 혹여나 그게 아무리 큰 잘못이라 한들 일단 동지애로 감싸주고 공동체를 건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동지들을 적들에게 헌납해야 하는 상황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면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몇차례 반복되면 구성원들 스스로가 반민주, 폭력 등에 무감각해집니다.


NL운동가들 하나하나를 만나보면 다들 나름의 불만들과 합리적인 문제의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인들은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합리적 NL들이 조만간 내부에서 개혁의 돌풍을 일으키리라 기대를 합니다. 그렇지만 조직의 결정이 내려지면 그 모든 논의들은 정말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들로 사그라듭니다. 그 모든 고민들은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지도부의 의사대로 일사불란해집니다. 이런 걸 몇 번 목도하게 되면 내부 구성원들의 자정 능력에 대한 신뢰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NL에게는 결국 아래로부터 이뤄져야 하는 혁신마저도 지도부의 몫이 됩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며 믿고 가는 것도 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이들이 지도부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고 딴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죄의식을 갖게 합니다. 동시에 지속적인 무뎌짐을 통해 자율적 판단 능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도 한 몫을 합니다. 그래서 설사 불만이 있더라도 결국 지도부가 올바른 혁신의 길을 제시해줄 것이라며 메시아를 바라는 사고가 강해집니다. 


그래서 NL이 개신교회와 종종 비교가 됩니다. 생활과 이념을 강하게 공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선악의 세계관이 분명하고, 내부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리고 외부(세속)의 잣대로 내부를 재단하는 것은 안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부에서 아무리 나쁜 짓들이 벌어져도 그건 조직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외부의 개입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금기시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거룩한 조직이라 하더라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대부분은 결국 사회의 다른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똑같은 것들입니다. 성직자의 강간과 신앙공동체 간에는 사실 그 어떠한 연관도 없습니다. 사회 조직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오랜 역사와 케이스 연구들을 통해 가장 적절한 해결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그건 상식일 수도 있고, 공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거부하기 때문에 조직이 내적으로 썩어들어갑니다. 내부에서의 해결이란 결국 가장 힘 센 자들의 의지에 불과합니다.



* 침묵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내면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고립'이었다면, NL 운동가들의 행동양태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침묵'입니다. 대중성이 강하고 활달해보이는 NL 운동가들이지만, 민감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주제가 대화거리로 떠오르면 철저하게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무리 운명공동체라고 하더라도, 위의 소주제에서 거론하는 조직문화나 거기에서 나오는 획일화된 지침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의문을 가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공동체를 떠나거나 깨려고 들지 않는 이상 유일한 선택은 '침묵'입니다. 마음 속으로 이것저것 타협하고 정리한 후 그 선을 지키며 생활합니다. 정반대로 조직을 절대적으로 믿고 내부 문화에 잘 적응하는 운동가들에게는 다른 면에서의 '침묵'이 있습니다. 이런 운동가들의 경우 절대 스스로 생각하고 발언하지 않습니다. 내부토론에서는 늘 정해진 정답만을 이야기합니다. 외부 인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이미 조직의 방침으로 정해진 것들만 거론하고 만약 미리 나와 있는 정답이 없는 경우 침묵하거나 회피합니다. 


NL 운동가들 대부분이 자기검열 기제를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건 굉장히 강력하게 만들어진 습관이라 운동을 정리한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보진영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동안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침묵해왔던 게 바로 자기검열의 아픈 모습들입니다. 



경험담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NL운동가는 학년이 올라가고 일정 정도의 위치가 되면 북한 한민전방송(한국민족민주전선 방송, 대남방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녹취록을 문건으로 보게 됩니다. (이건 무슨 폭로도 아니고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다 나오는 사실입니다. 사실 제가 이 시리즈에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 모두가 아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것들입니다. 남들도 잘 모르는 것들을 폭로하고 싶어도 아는 게 없습니다.) 저는 사실 그 이전까지는 주체사상은 그저 사상일 뿐이고 실제 NL 운동은 NLPDR 노선 정도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문건들의 관련 내용들이 모두 한총련 지침으로 그대로 내려오는 것을 보며 그동안 굉장히 순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안 이후에는 북과 한총련의 관계에 대한 비판이 있으면 저 역시도 침묵과 회피를 했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일정 학번 이상이 되면 교내 강의실 등을 빌려 정기적으로 정세토론을 합니다. 물론 위에서 이야기하는 문건들이 토론자료입니다. 당시의 토론 쟁점은 북미관계였는데 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을 압도하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정세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분에서부터 현실인식이 잘못되어 있으니 우리 운동이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NL 내부의 토론 분위기는 늘 똑같습니다. 사회자가 발제를 하고 나서 토론을 하자고 하면 정말 다들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그럼 사회자가 답답해하다가 몇몇 사람들을 찍어서 발언을 시킵니다. 그러면 정말 다들 판에 박은 듯, 적절한 발제였고, 역시 지도부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고, 우리가 열심히 해야겠다고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회자가 정리를 하고 토론을 끝냅니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왠 시간낭비인가 싶습니다. 그냥 그 시간에 문건을 읽으면 될텐데 말입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사회자가 발언할 사람을 찾았지만 역시나 다들 조용했습니다. 어차피 다들 아무 이야기도 없겠다 싶어, 제가 손을 들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미국을 압도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현실인식이다. 가장 전제가 되어야 할 현실인식이 잘못된다면 이후의 분석과 대책들도 당연히 잘못될 것 아닌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사회자가 제 동기 하나를 찍어서 이 질문에 답하라고 했습니다. 사상적으로 투철한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일어나자마자 정해진 대답을 읊었습니다. "군사력을 분석할 때는 물리적 전력과 정신전력을 구분하는 게 올바른 법칙이다. 그리고 그 중 결정적인 것은 바로 정신전력이다. 올바른 지도와 사상으로 무장한 인민군의 정신전력이 제국주의 군대인 미군의 그것보다 월등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북한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저 역시도 대충 선을 지켜가며 사는 평범한 운동가였기에 "실제 군사력은 차이가 나지만, 체제의 특성상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통한 북한의 운신이 좀 더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북한이 미국보다 군사적 우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도의 대답만 나왔어도 늘 그랬듯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동기의 대답은 상식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답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모두의 침묵이었습니다. 정말 다들 무표정했습니다. 동의가 되어서 그런 건지, 체념인 건지 알 수 없는 모습들. 정말 저 황당한 이야기에 동의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무언가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저 역시도 방금 전까지는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예전에도 저처럼 문제제기를 했던 운동가들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저는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봤을 겁니다. 



* 학습


학년이 올라가면 선배들로부터 자연스레 학습 제의를 받습니다. 당연히 주체사상 학습입니다. 여기서 운동을 그만두지 않을 이상 대부분의 운동가들은 제의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의 근원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2년차 이상의 운동가라면 비합법적 일들에 대해 두려움은 없습니다. 주체사상을 학습한다고 주사파가 되는 것도 아니기에 일단 한 번 공부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학습을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주체사상 학습은 운명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성인식'과 같습니다.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수령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하게 하나만 떼어놓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NL 운동가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았더라도 스스로 판단해 주체사상으로 나아갈 확률은 제로입니다. 그래서 NL 비주사다, 주사파다라는 구분이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주체사상이 강력한 지도사상인 공동체 내에 속해 있고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선에서 정리하고 사회로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일단 학습을 하고 한 단계 올라서는 게 맞습니다. 학습의 방법은 역시 천차만별입니다. 외부의 안전한 장소에서 선후배끼리 서적을 읽고 토론하기도 하고, 학내의 공개된 카페 같은 곳에서 선배로부터 편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학습을 하기도 합니다. 


학습을 시작하면 여러가지 기분이 듭니다. 이제는 정말 뭔가 깊숙이 들어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정말 운동가가 되어가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동안은 '아래'에 있었는데 이제는 '위'로 올라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NL이론의 틀 정도에서 합의되었다고 생각한 우리의 운동이 실제로는 훨씬 더 큰 그림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보통 학습의 시작은 김정일의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책들도 있는데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기억 나는 만큼만 쓰겠습니다.) 그런데 학습을 시작하고 조금씩 들어갈수록 그동안 공부해왔던 철학이라는 체계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아예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체사상은 물질과 정신의 대립이라는 세계관을 사람과 세계의 대립이라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꿨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왜 맑스에서 주체사상으로 넘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없습니다. 이후에는 계속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됩니다. 철학이라기보다 경전에 가깝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학습 때마다 선배와 토론을 벌였는데, 결국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계속 물어보자니 마치 선배에게 따지는 것 같아 어느 정도 선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예전에 NL쪽에서 운동을 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저만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시리즈의 앞 부분에서 설명드렸다시피, 주제사상의 전반적인 내용은 특별할 게 없습니다. 당연하고 좋은 이야기들이 딱딱한 용어로 쓰여져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창시했기에 엄청나게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상식적인 의문들이 꼬리를 뭅니다.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고,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이야기인데 이게 굳이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의 독창적인 내용인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정말 김일성이 창시한 것인가. 그리고 일단 김일성을 수령으로 모셔야 한다고 치자. 대단한 건 김일성인데 왜 그 아들인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력과 존경을 이어받아야 하는가. 이에 대해 NL 관련 단체에서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아들이어서 권력을 물려 받은 게 아니라, 마침 북한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김정일이었기에 그런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의문들이 풀리지 않는 이들은 그냥 나름대로 좋은 이야기들만 받아들이는 선에서 이해를 하고 넘어 갑니다. 물론 그걸 입 밖에 내지는 않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들을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허무한 결론이지만 그렇습니다. 수령론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들은 대개 이 믿음의 단계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분께서 제 시리즈에 나오는 '점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하셨지만,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믿고 넘어가야 하는 단계들입니다.


그리고 주체사상 학습에 들어가서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란 양립 불가임을 깨닫게 됩니다. 꼭 수령론만이 독재를 정당화시키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유일한 진리며, 다른 사상들은 모두 사변적인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NL은 좌파들을 비롯한 다른 견해들에 대해 '잡사상'으로 간단하게 규정합니다.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것들도 '서구식' 사상의 한계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전 민노당의 어느 교수가 인권은 가장 저급한 수준의 진보라고 명명한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민주집중제라던가, 우리식 사회주의를 한반도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의, 미국과의 대결이라는 특수한 시기에만 해당하는 한시적 이론으로 이해하던 논리가 붕괴됩니다. 조직 내부를 짓누르던 반민주, 독재의 기제들이 사실은 가장 완벽한 사상이라는 주장 앞에서 다들 멈칫하게 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의문들과 부딪치는 지점들을 놓아두고 마지막 단계인 수령론으로 다가갑니다.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현실적 필요성으로 나아가는, 이왕 시작한 것 뭔지는 알아야겠다는 지적 호기심으로 나아가는, 수령론까지 다가가면 기존의 의문들이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가장 금기시되는 곳으로 많은 운동가들이 한 발자욱을 내딛습니다.



(다음 19회 혁명의 문턱, 20회 에필로그로 이 시리즈는 끝이 납니다. 정말입니다. -_-;)


- 19 -  혁명의 문턱



* 의문들


앞 편에서 언급했듯 주체사상은 그 도입부에서부터 많은 의문들을 갖게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의문들은 바로 '수령론'이라는 부분에서 부딪칩니다. 이건 세계관이라는 추상적 차원이라던가, 급박한 시기의 지도부 인정이라는 현실적 필요성을 넘어 실존하는 인물에 대한 신격화입니다. 타협이나 선별적 수용이 불가능한 지점입니다. 지금까지가 종교에서의 교리공부 단계였다면 수령론은 "세례"를 받는 단계입니다. 


주체사상은 맨 처음에 인간의 속성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면서 사람 중심의 세계관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수령론으로 넘어가면 "사회적 주체인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체로서 역할을 다하자면 반드시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 하며 따라서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 주체 확립에서 핵이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애초에 물질 중심의 세계관에서 사람 중심으로 넘어갈 때도 논리적 과정 없이 뛰어넘었는데, 수령론에 들어서면 주체사상에서 내세운 전제마저 뛰어넘습니다. 자주적 인간이 왜 남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깊게 들어가면 복잡한 설명들과 함께 어떻게든 가교를 놓으려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들은 믿으려 하지 않으면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주체사상 안에서조차 가장 중요한 세계관과 수령론이 충돌을 일으킵니다.


여기까지도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나 혁명적 지도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돌파했다고 칩시다. 마지막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그 수령이 왜 김일성이 되어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인민대중은 그 아들인 김정일에 대를 이어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지 논리적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불가능합니다. 현존 인물을 신격화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걸 납득하기 위해서는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한 저작들을 읽어야 합니다. 



* 혁명의 문턱


이런 모든 의문들을 일소하고, 김일성, 김정일을 수령으로 받들고, 북한 정권을 대남혁명의 근거지로 인정하게 되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 운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형성된 무비판적 "관성"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지도부만 바라보는 "열망"입니다. 이 "신뢰"와 "관성"과 "열망"이 지금까지의 모든 의문들을 일소하고 수령론으로 넘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이 그러하듯, 의문을 버리고 믿음으로 극복하고 넘어간 세계에는 일관된 체계가 존재합니다. 외부와는 소통할 수 없는 사상체계지만, 그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일관된 질서를 가지고 순환을 합니다. 그리고 세계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성적 사고로는 넘어가거나 타협할 수 없는 단계가 수령론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주체사상 학습까지는 무난하게 들어가면서도 결국에는 이 단계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성이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이해를 하고 싶거나, 어떻게든 확신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해결책이 "혁명에 대한 관점"입니다. 그 모든 의문들이 있더라도 한반도에서 정말 "혁명"을 하고 싶다면 그 유일한 해결책은 수령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합니다. 지금까지 밟아왔던 신념, 이론, 투쟁, 삶 등 모든 것들을 "혁명"이라는 과업에 몰아넣고 수령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이 헛되다 이야기합니다. 



결국 수령론으로 넘어가는 길은 "혁명의 문턱"입니다.


그 혁명의 문턱에서 자신을 마주 보게 됩니다. 근본적인 의문들이 꼬리를 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혁명이란 대체 무엇인가. 북한 사회주의가 과연 혁명의 이상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운동을 했는가. 내가 속한 이 공동체의 노선은 과연 내 삶을 바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집단주의'적 삶은 과연 개인에게 행복한 것인가. 어떻게 '당'은 언제나 옳은 수 있는가. 


마지막 질문에 다다릅니다. "혁명"이란 반드시 이 길로만 가야 하는 것인가. 이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의 공동체로 사고가 돌아갑니다. "신뢰"와 "관성"과 "열망"으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의 운동을 진중하게 돌아보고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 무게와 고민에 따라 각자 선택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문턱을 넘고, 누군가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누가 넘었고, 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밖으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관계 없이 우리의 조직은 여전히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기 전까지는 계속 반복되는 일정과 정해진 틀과 조직문화 속에서 운동가들은 살아갈 것이고, 학습과 투쟁을 반복할 것입니다. 




- 20 -  에필로그



* 이 글의 성격


대학에 입학해서 학생운동을 하는 동안, 그리고 졸업 이후에는 운동과 관련 없는 삶을 살면서도 늘 머리 속에 맴돌던 의문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에는 그 의문들에 대한 제 나름의 고민들이 조금이나마 담겨 있습니다.이 글은 처음부터 말씀 드렸다시피 운동권 백서도 아니고, 90년대 학생운동 전체를 일반화시킬 수 있는 내용도아닙니다. 제 개인적 경험, 관찰, 전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뒤 각각의 쟁점들에 제 나름의 해석을 덧붙인 글입니다. 그래서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과 후반, 서울 지역의 한 남자 대학생의 회고록 정도로 규정하시면 됩니다. 


이런 글을 내어놓으면 보통 "왜 하필 지금과 같은 시기냐.", "몇몇 사실관계가 틀렸다. 그래서 전체적 신빙성이 떨어진다.", "왜 이런 부분만 다루는가. 편향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있다." 등의 비판들이 따라붙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오류 없이, 모든 것을 다루라는 요구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지적은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는 압박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 권위를 가진 교과서가 아니라 평범한 운동가들의 다양한 기록들입니다. 제 글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시기보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하시는 게 사회적으로 훨씬 건강한 주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말씀을 드립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역사가 전대협 동우회가 펴낸 ‘불패의 신화’ 하나로 정리될 수 없듯 말이죠. 


그리고 제 글은 선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폭로나 고발이 목적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이미 폭로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이야기들입니다. 90년대 학생운동을 거론하기 위해서는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진보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이미 대부분 알고 있는 일들입니다. 다만 다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던 것 뿐인 거죠.



제가 그리고자 한 것은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계의 부속품처럼 비춰지는 무표정한 인간들이 아닌 살아있고 고민하는 운동가의 삶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통진당 사태에서 전면에 나섰던 대학생들. 사진과 영상에 비춰지는 그들의 모습은 홍위병이라 비판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답답할 것입니다. 요즘 사회 분위기를 거스르며 '내'가 아닌 '남'의 문제에 고민하고, 그에 헌신해왔을 뿐인데 어느 샌가 사회의 암적 존재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90년대의 운동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을 쪼개가며 학우들을 만났고, 학생회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들 앞에서는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투쟁 현장으로,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한 삶 앞에 놓여있는 것은 저희들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들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요.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좀 더 열심히 살지 못해서 그랬던 걸까요. 그런데 우리는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이죠.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할 용기가 그때는 없었을 뿐입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었습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모순들에 대해서는 입바른 소리를 하던 우리들이, 정작 우리 안의 심각한 문제들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경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대의 관성으로 모든 것을 묻어 두기에는 개인들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분명 우리 자신들의 문제들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의무도 있었습니다. 우리 안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무엇 때문인지 가장 정확하게 아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누군가 들춰보게 마련입니다. 조중동을 비난하기 전에 이 문제에 침묵해왔던 우리들의 모습에 아파해야 합니다.


이제 와서 지나버린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책임을 질 수는 있습니다. 그건 우리 안의 잘못들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보가 진보인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진보가 보수에게 늘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비틀어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진보가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진보에게 역사적 책무가 있다면 그건 남에게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 아닐까요. 



* 왜 90년대였는가 


이번 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면서 90년대 학생운동가 출신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청춘이 부정 당하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고, 우리들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 저 모습들에 대해 쓴 소리만 날릴 수 있는 자격이 과연 있을까요.


90년대 학생운동에 있었던 많은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이 80년대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해결했어야 할 내부의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짐들을 2000년대로 넘겨버렸습니다. 역사의 발전이란 냉정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저절로 극복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지금 외면하고 넘어가는 것들은 미래에 반드시 후과로 나타납니다. 지금 통진당 사태는 우리들의 동조와 방조, 그리고 침묵이 낳은 괴물입니다. 저 괴물이 사라져도 처절한 반성이 없는 한 우리 주변의 순수한 얼굴들이 다시 괴물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리운 시대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간들이며, 그리운 동지들의 시절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이들 중 가장 착하고 이타적이었던 사람들은 학생운동 시절의 동료들입니다. 이들은 졸업 이후에도 대부분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사회문제에도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진보정당에 후원을 하며, 촛불을 들어야 할 때는 기꺼이 광장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주변의 작은 문제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고자 고민하며 삽니다. 반성해야 하는 모습과 함께 그 순수의 기록들도 조금이나마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학생운동가들 중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우리는 운동가의 숙명 정도로 생각하며 견디고 넘어갔습니다. 조직이 개인들을 병들게 하고, 아픈 개인들이 다시 조직을 병들게 만듭니다. 악순환의 구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운동을 정리하고 사회에 나간 동료들을 보면 예전 그때보다 다들 정신적으로 건강해 보입니다. 편협하고 냉혹했던 운동가들도 어느 샌가 넉넉하고 인간적인 얼굴로 살아갑니다. 조직이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요.


"정신적 상처의 기록들". 어쩌면 이걸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과연 NL만이 문제인가.


NL만이 문제인가 하는 점도 은연 중에 짚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는 어디나 비슷합니다. NL이 진보진영에서 다수가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진보진영 내부도 일반 사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입 바른 소리를 하는 놈이 미움을 받고 소수가 되는 구조입니다. 


진보진영은 주변의 모든 것들에 의심을 하고 비판을 가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신뢰로 일관합니다. 진보진영은 아주 도덕적이고 정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그렇기에 문제해결의 방법도 달라야 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이 부분은 시리즈 중간에서도 짚었지만 굉장히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NL은 뭔가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집단이 아닙니다. 개개인만 따지면 사회의 평균적인 도덕과 상식의 수준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면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수를 차지합니다. 주변의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은 침묵합니다. 때로는 NL의 후원을 받아 명예욕을 채우고자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진보를 떠나 정상적인 사회라면 작동해야 할 많은 것들이 정지합니다. NL이 괴물이라면 그 괴물의 모습들을 다 알면서도 옹호하거나 침묵하던 이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 편으로는 주사, 비주사의 구분도 무의미합니다. 조직은 조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수령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대체 NL 운동에서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운동조직이란 지도이념, 생활, 학습, 투쟁 등 모든 것들이 유기체처럼 돌아가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활동가들도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조직의 비민주성, 상대적 약자에 대한 폭력적 태도, 내부의 부정 등에 언제 한 번 자기 반성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언제 한 번이라도 당당하게 조직을 비판하고 대세를 거스른 적이 있습니까. 


조직의 관성이란 무섭습니다. 설사 이제 집단적으로 주체사상을 버렸다 해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위만 바라보며, 자신들의 문제에 무감각한 습성들은 쉽게 버려지지 않습니다. 메시아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금송아지를 가져다 놓게 마련입니다.



* 바람


이 글은 90년대 중후반의 이야기만 짚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당시의 그것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한총련이었지만, 이제는 통진당이라는 것 뿐입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해, NL이 바라보는 통진당은 성인판 한총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시스템의 결정적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치집단이 공식 정치기구를 장악하는 점입니다. 


십 수 년 전의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80년대 주사파 출신들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정상적인 시민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90년대라고 과거에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당에 진입하고, 국회에 들어간 이상 본인들의 정치성향을 솔직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건 시민들에 대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당원을 비롯한 지지세력에 대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대학생들의 운동 참여를 염려하는 글도 아닙니다. 통진당에서 좋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줬던 대학생들도 어쩌면 이 사회에서 소중한 존재들일 수 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직접 참여를 모색하는 대학생들의 숫자는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대학생들 하나하나가 처음부터 내가 누구와 함께 무슨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지 알아야 하고 다양한 선택지들 중 하나를 자유롭게 골라야 합니다. 물론 예전의 모든 운동가들 역시 종국에는 모두 자발적 선택이었지만, 경로의 제한이 있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부의 운동가들도 침묵의 카르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침묵이 선의일 수 있는 것은 동지에 대한 신뢰와 스스로의 변화가능성이 존재할 때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의 침묵은 내부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동조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그리고 선의의 침묵이 조직 내에 아무런 변화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은 증명이 되었습니다. 내부 비판도 없고, 심판의 위험도 없는데 대체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변화란 누가 가져다 주는 게 아닙니다. 



* 국가보안법


위의 요구들에 대해 NL은 늘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대답을 회피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정권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자들은 늘 자신들이 사회주의자임을 떳떳하게 밝힙니다. 그런데 북한 정권과도 관련이 없고, 사회주의자도 아니라는 사람들이 대체 왜 국가보안법을 방패 삼아 정치집단의 의무를 회피하는 걸까요. 상식적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식적이지 못한 것을 옹호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진보가 아닌 보수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이제 폐기하는 게 맞습니다. 주체사상이나 김정은 찬양 등은 사상의 자유시장 체제로 끌어내 국민적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체제경쟁은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좀 더 완성시킬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체제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진보진영 내부에서 친북적인 세력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광화문 앞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김일성 찬양을 외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방패 삼아 공식기구를 장악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주민보와 같은 사이트의 클릭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많은 이들이 친북세력들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알게 됩니다.


한 편으로는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진보진영의 자정을 힘들게 합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찬양은 우리 사회의 금기지만,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은 진보진영의 금기입니다. 친북 세력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려 하면 '동지를 적들에게 팔아넘길 셈이냐'는 내부의 공격이 거셉니다. 당장 진보진영 전체가 들고 일어납니다. 어떻게든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이런 내부비판은 반드시 보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동안 친북세력들을 비판했던 진보인사들 중에 정치적으로 순탄했던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비판하려던 사람들도 국가보안법 때문에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나의 비판이나 폭로가 그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NL 문제에 대해 논쟁을 하다 보면 가장 비열한 공격들이 나옵니다. “정말 주사파 문제가 있다면 국가보안법이 있으니 경찰에 신고하라”는 역공입니다. 그런 비판을 날리는 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내부비판자들이 결코 신고하지 못하리란 사실을 말이죠. 그러면서 내부비판자들의 주장을 색깔론이자 악의적 음해로 몰아 붙입니다. 그런데 동료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과 그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내부비판자들 모두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 신고한다면 어떨까요. 그들이 박수를 칠까요. 그때는 ‘동지의 등에 칼을 박은 자’로 낙인 찍고 사회적 매장을 시도할 겁니다. 


물론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고 NL 핵심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다른 핑계를 대겠죠.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내부비판자들을 억누르던 강력한 고리 하나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듯,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걸맞지 않고, 진보진영 내부마저 썩어들어가게 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하는 게 사회 전반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건강한 진보가 있어야 건강한 보수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진영에서는 종북 딱지가 억울하다고만 하지 말고, 내부의 많은 문제점들을 시민들 앞에 투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보진영 내부의 건강한 운동가들이 힘을 얻고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도 그런 맥락에서 조심스레 내어놓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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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불페너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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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 과분한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 중간에는 딴지일보에서 중간에 쪽지로 연재 제의가 들어와 수락을 했습니다. 딴지일보에서는 어제부터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얼떨떨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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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원래 구상은 소설이었습니다. (물론 이 글 말고도 다른 소재를 가지고 구상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당연히 소설은 써본 적도 없고,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습니다. 심지어 습작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언젠가 나도 한 번쯤은…” 정도의 낭만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많은 고민들과 이런저런 스토리 라인들을 머리 속에 넣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마음의 기회가 생겨 필요한 부분만 뽑아내 이 부족한 시리즈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제가 늘 머리 속에 넣고 다니던 이야기들의 해설본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제가 이번에 쓴 글의 양을 보니 만약 소설을 쓴다면 대하소설급의 양이 될 것 같습니다. -_-; 본편이야 죽기 전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해설본이라도 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도 최초에 잡아놓았던 주제들 중 여러 부분들을 뺐습니다. 주로 시리즈의 흐름을 해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부분들을 뺐습니다. 그래서 연애 문제, 폭력 시위 등의 주제는 정리만 해놓고 아예 들어냈습니다. 정파들 간의 대립도 자세한 내용들은 대거 들어내고 양상만 건조하게 서술했습니다. 연대 사태, 이석씨 치사사건 등의 굵직한 사건들 뿐 아니라 전북총련 해체 등 뉴라이트와 관련해 예민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뺐습니다.



* 책


이런 식으로 글이 쓰여졌다는 말씀과 함께 이 시리즈가 책으로도 출간될 것 같다는 소식을 함께 전해 드립니다. 연재 도중에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곳에서 쪽지로 제의가 왔습니다. 그에 대해 제 글이 출판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정치적 파장 역시 걱정이 되어 좀 망설였습니다. 무엇보다 제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다 못해 학창 시절 조그만 학내 잡지에조차 글을 기고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표님을 만나 뵙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한 끝에 출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책을 낸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구요, 이와 관련한 고민들로 ‘뒷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일단 제 책이 나온다면 언론에 어떻게 비춰질까 우려가 되기는 합니다. 아마 어떻게 쓰더라도 내용 중 ‘반성과 성찰’이 있는 부분이 발췌되어 기사로 쓰여질 겁니다. 주로 진보진영에 대한 전반적 공격이겠죠. 한 편으로는 그런 공격을 근거로 진보진영에서는 제 책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조중동에 빌미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책 내용 자체도 문제가 많았다는 식으로 말이죠. 한 쪽에서는 전향, 다른 한 쪽에서는 배신이자 무책임한 폭로 정도로 바라보겠죠. 


그렇지만 전 이에 대해 학생운동 시절부터 뚜렷하게 가져온 생각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게재한 것이나 출판 제의를 받아들인 것도 저로서는 모두 하나의 맥락에 있는 행위입니다. 진보진영의 문제점 중 하나가 뭐냐 하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에 대한 혐오입니다.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면 바로 그 순간 모두 망할 것 같은 공포심들이 있어요. 그리고 이런 공포심이 여론이란 선전선동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하는 낡은 사고구조와 결합되어 내부비판을 입 닥치게 만들게 만들죠. 


통진당 청년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기사를 쓴 언론사가 프레시안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청년비례대표 선출에 관련된 당직자들과 대학생 당원들이 항의방문을 갔습니다. 경향신문에서 3대 세습에 대한 민노당의 미심쩍은 대응을 비판하자 울산연합에서 절독 선언을 했습니다. 진보신당과의 분당 국면에서 한겨레가 비판 기사를 내자 역시나 당직자들이 항의방문을 간 적이 있죠. 언론에 대한 황망한 인식들을 보여주는 단면들이죠.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들과 관련한 좋은 이야기들이 언론에 나오지 않는 데 대한 불만들이 있어요. 이번에도 통진당 관련 비판들이 쏟아지자, ‘사실 알고 보면 좋은 면들이 얼마나 많은데, 참 안타깝다’라는 반응이 곁가지로 나옵니다. 이율배반적이고, 여론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정치집단도 좋은 모습만 보여질 수는 없습니다. 


정치집단이 좋은 이미지로 비춰지는 방법은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두를 속이는 것입니다. 독재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죠. 그리고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욕망입니다. 속인 사람이 비극으로 끝나던가, 속은 사람들이 비극으로 끝나던가 하는 식이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좋은 정치를 하는 겁니다. 전 이게 가장 올바르고, 힘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 안의 나쁜 점들이 고쳐질 수 있습니다. 진보운동의 면면한 역사 속에서 감추고 감싸주면서 문제가 해결된 것들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반면에 악화된 사례를 꼽으라면 18시간 필리버스터로도 감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조직과 권력의 속성이란 추구하는 가치와 무관하게 어디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또 진보진영 내부의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거론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회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제대로 하는 학생회들도 많았는데 왜 그런 것만 거론하느냐, 등록금 투쟁에 대해 짚으려고 하면, 좋은 의미들도 얼마나 많았는데 왜 작은 부분만 갖고 트집을 잡느냐 항의를 하십니다. 


선의를 가진 지적들입니다. 피와 눈물로 이뤄진 학생운동이 한 단면만으로 비춰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하나의 잣대로 갈려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중하게 비판하라는 주문이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선한 의도가 의도치 않는 압박이 되는 경우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제 글에도 단정적 표현들이나, 한 쪽만 묘사한 부분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비판과 성찰을 하고자 글을 쓰는 건데, 영광과 눈물의 역사를 기계적으로 집어 넣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정말 능력자라면 모든 것들을 버무리면서 걸작을 쓰실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 합니다. 자아비판의 모범이 될 수 있을만한 책들은 대체 언제 나오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정말 그런 책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요. 만약 그런 책들이 진작에 나왔더라면 저 같은 사람들은 그냥 댓글만 깔짝대면서 5월의 햇볕 따사한 날들을 나른하게 보냈을 겁니다. 우리의 반성과 성찰과 영광을 책 한 권 속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언론들 앞에서 감추려 드는 진보운동이 아니라 투명하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그런 운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엄혹한 시기도 뚫고 지나왔습니다. 지금 진보운동 앞에 놓여 있는 과제들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누가 감옥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며, 도서관 옥상에서 줄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걸고 뛰어내려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의도와 달리 왜곡되어 비춰질 수 있다는 위험과 책 내용의 한계를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부족한 책이나마 세상에 내고자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고민들은 머릿말에 충실히 반영하려고 합니다. 진보운동에서 지금은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떠나 있지만, 일방적 폄훼의 의도가 아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 필명


출판시에 제 이름을 밝힐지 필명을 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순수히 개인적 입장에서는 신분을 숨기고 싶습니다. 일단 제 이름이 나가는 순간 인간관계의 한 축이 무너집니다. 그러면서 한 쪽에서는 배신자가 될 것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믿지 못할 전향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물론 저는 배신을 한 것도 전향을 한 것도 아니지만 세상 일이 마음처럼 돌아가지는 않겠죠. 


아무튼 실명 공개를 했을 때의 피해는 예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한데 반해 개인적 이득은 거의 없어 현실적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늘 이런 고민들 때문에 진보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내부의 문제점들에 침묵을 하며 살겠죠. 당장 통진당의 지지율을 꽤 높이 올려주는데 앞장 섰던 유시민조차 '세작' 소리를 듣는 마당에 저 같은 미미하고 평범한 사람이야...



*


제가 민노당 당직자였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제 소개를 하다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아주 정말 평범한 당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당 이후에는 진보신당 당원이었고, 지금은 무소속 일반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튼 마지막 글까지 과분한 칭찬을 해주신 불페너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만약 책이 출간까지 무사히 이뤄진다면 이 글과 관련해 한 번 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가끔씩 댓글이나 달까 합니다.^^



엠팍펌 matti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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