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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예능

[펌]서태지,현진영,이수만 비하인드스토리-90년대가요사

by 501™ 2014. 10. 27.


출처 - http://pgr21.com/?b=8&n=32868


부제: 댄스음악의 성지 문나이트와 이수만과 서태지의 기묘한 인연


1. 댄스음악의 태동

1978년 한백희는 인순이를 희자매로 데뷔시킨후에 김완선, 이주노, 박철우를 발굴하여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시켰습니다.
(한국가요계에서 최초의 연습생, 덧붙여서 김완선의 발탁시기는 1983년이고 14살이였음)
한백희는 희자매가 해체되자 인순이를 솔로로 전향시키면서 "인순이와 리듬터치"라는 백댄서팀을 구성하고 로드매니저로 김광수(현 코어사장)를 채용합니다. (1985년, 리듬터치의 백댄서멤버: 이주노, 김완선, 박철우)
한백희는 김완선을 백댄서로 기량을 가다듬게하고 1986년 김완선을 17세의 나이에 데뷔시킵니다.
김완선의 등장은 한 마디로 쇼킹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가 들고 나온 음악과 스타일, 컨셉, 안무, 무대 구성등은 예전의 기성 가요와는 궤적을 달리하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였죠. 그 후 인순이, 이주노, 박철우는 한백희곁을 떠나게됩니다.

김완선데뷔후에 조갑경, 이지연, 김희애, 양수경, 강수지, 하수빈이 차례로 데뷔하여 솔로여가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특히 김완선, 강수지, 하수빈은 솔로 여가수 트로이카를 구축하였죠.

김완선 - 리듬 속의 그 춤을


하수빈- 노노노노노


강수지 - 보라빛향기


http://www.youtube.com/watch?v=qSyoOPPp2S8 이지연 - 바람아 멈추어다오
http://www.youtube.com/watch?v=ohq2Cif8HZU 양수경 - 사랑은 차가운 유혹
http://www.youtube.com/watch?v=Jncj6m9bcFY 조갑경 - 바보 같은 미소
http://www.youtube.com/watch?v=qIADkWc2si0 김희애 - 나를 잊지 말아요



이주노와 박철우는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입단하는데 여기서 양현석과 박남정을 만나게 됩니다.
이주노와 양현석은 문나이트에 출입하면서 이현도, 김성재, 구준엽, 강원래, 이탁, 현진영과 친분을 맺습니다.
또한 이주노가 이수만에게 가수오디션을 받았지만 현진영에게 밀려 탈락합니다.(2의 이야기에 연결됨)

1988년 박남정은 양현석, 이주노, 박철우, 김영완을 백댄서로 영입해 "박남정과 프렌즈"를 결성합니다.
그당시 김완선과 박남정은 댄스음악계를 양분하였으며 소방차와 현진영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서태지의 등장으로 박남정과 현진영의 운명은 바뀌게 됩니다.
(박철우는 R.ef로 데뷔, 김영완은 콜라로 데뷔)

박남정 - 널 그리며


1987년 한밭기획의 이사였던 이호연은 소방차를 기획하여 성공하였고 그걸 발판으로 나중에 대성기획(後身:DSP)를 설립합니다.
그후 일본의 개그맨인 다운타운이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오쟈파멘이라는 커버곡를 발표하였는데 일본에서 괘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밖에 1990년 나미는 붐붐과 함께 "나미와 붐붐"를 결성하여 "인디언 인형처럼"를 발표하였는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ZCpZoVZ_krM 소방차 - 어제밤이야기
http://www.youtube.com/watch?v=072IdwBcUk0 다운타운 - オジャパメン
http://www.youtube.com/watch?v=UZVnuogr6IA 나미와 붐붐 - 인디언인형처럼





2. 연예기획사 SM의 탄생


1981년 이수만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컴퓨터공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때 이수만은 미국의 MTV와 미국의 음반산업을 보며 연예기획자로 꿈을 꿉니다.
8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수만은 방송활동을 재개합니다. 다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홍종화라는 작곡가를 설득 끝에 섭외하며 앨범을 발표했으나 실패한 후 가수를 그만두고 프로듀서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본격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인천 월미도에 헤밍웨이 까페와 방배동 까페를 차려 기획사의 사업자금을 마련한 다음 한동준과 김광진을 영입합니다.


이수만은 댄스음악과 힙합을 믹싱해서 프로듀싱하기로 마음먹고 이태원이나 여러 유명클럽에 찾아다니며 쓸만한 인재를 탐색합니다.
이수만은 이태원의 한 클럽인 문나이트에서 DJ를 하는 최진열을 고용한후 "음반을 낼까 하는데 주변에 춤되고 노래되는 애 있으면 찾아달라"고 일을 시킵니다. 최진열은 평소에 알고 있던 이주노와 현진영을 이수만에게 소개합니다.
이주노와 현진영을 저울질하던 이수만은 현진영이 이주노보다 노래을 잘하는 점에 현진영을 발탁합니다.
이때는 1988년이며 현진영은 당시나이가 16세였습니다. 이수만은 미국인트레이너를 고용해서 힙합과 댄스를 가르치게 합니다. 그리고 최진열은 현진영의 매니저를 담당합니다.


1989년 이수만은 송파에서 SM기획를 창립합니다. 얼마후 댄스페스티벌을 개최하여 우승한 구준엽과 강원래를 발탁해서 와와의 멤버로 키웁니다.

(와와1기) (구준엽, 강원래는 훗날 클론이 됨)
1990년 이수만은 제1집 "New Dance"를 발표하며 현진영과 와와(구준엽,강원래)를 데뷔시킵니다. 그후 한동준과 김광진의 앨범도 발표합니다.



야한 여자 -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와와1기)


하지만 "현진영과 와와"의 야한여자는 그당시 대세였던 박남정과 김완선, 소방차에 밀렸지만 어느정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편 구준엽, 강원래는 군대문제로 입영하게 되자 친한 동생사이였던 이현도, 김성재를 이수만에게 소개합니다.
이수만은 새로 이현도, 김성재를 와와2기로 발탁한후 후속곡 '슬픈 마네킹'을 발표했는데 인기를 얻어 현진영은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
(이현도, 김성재는 훗날 듀스가 됨)

슬픈 마네킹 - 현진영, 이현도, 김성재(와와2기)

http://londonkoreanlinks.net/wp-content/uploads/2010/08/img_7_12615_7.jpg



3. 대격변 - 서태지와 아이들

사나위에서 활동을 하던 서태지는 신대철과 마찰로 시나위를 떠나게 됩니다.

그후 서태지는 무궁화밴드에 입단하고 여러 나이트클럽에 진전합니다.
무궁화밴드는 캐피탈호텔에 공연하게 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 "박남정과 프렌즈"도 공연을 하러왔습니다.

이때 서태지는 "박남정과 프렌즈"라는 댄스그룹팀의 춤에 반하여
춤을 배울려고 무궁화밴드의 리더인 황인영에게 부탁해서 양현석을 소개받습니다.
서태지는 양현석에게 춤을 배우고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노래를 배웁니다.
서태지는 낮에는 작곡을 하면서 양현석에게 춤을 배우고 밤에는 연주을 하는 생활을 합니다.
드디어 곡을 완성한후 데모음악을 양현석에게 듣려줍니다.

이때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노래가 좋다. 그런데 이 노래는 혼자 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고
서태지는 양현석의 조언에 3명의 팀을 결성하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멤버을 구합니다.
첫후보을 탈락시킨후 결국 이주노까지 영입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한편 SM의 대표이사였던 최진열은 현진영의 대마초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며 큰 고초를 껶었은데 반도음반사의 제의로 SM기획를 그만두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가 됩니다. 최진열은 몇년동안 SM기획에서 경영과 매니지먼트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라 인맥과 노하우가 상당했죠.
(SM의 대표이사들): 최진열(1988) - 정해익(1992 ?) - 김경욱(1998) - 김영민(2005))

1992년 4월, 서태지는 1집 난 알아요를 발표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고 난 알아요는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판매량인 17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는등 대성공을 거둡니다.






4. 이수만 힙합과 결별하다.

1990년 슬픈 마네킹이 인기을 끌면서 단숨에 그당시 대세였던 박남정의 라이벌이 되지만 1991년에 현진영은 대미초혐의로 구속됩니다.
그 여파로 최진열, 정해익, 김경욱 같은 SM직원들이 경찰에게 수사를 받아 곤욕을 치르면서 결국 최진열은 서태지의 매니저로 이직하게 됩니다.
이때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한 이현도는 그때부터 다른 기획사로 오디션을 보면서 가수로써 독립을 꿈꾸게 되며 나중에 가수가 된후 현진영을 디스합니다.
이때 자신의 1호 가수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볼수없었던 이수만의 노력으로 현진영은 1년만에 출소를 합니다.
그후 부활을 꿈꾸던 현진영은 이탁과 함께 여러 곡을 공동작곡을 하였습니다.

1992년 4월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잊고 있던 현진영을 찾게되고 8월에 이수만은 현진영의 2집 앨범 "New Dance 2"를 발표합니다.
타이틀곡은 문나이트에서 친한 이탁이 만든 "흐린 기억 속에 그대"였는데 당시 현진영은 커다란 후드티와 한껏 내려 입은 청바지로 코디한 후 빨라진 음악에 맞춰 현란한 댄스를 선보입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높은 완성도와 함께 굉장한 인기를 얻었으며 같은 앨범의 '너는 왜'는 '현진영 고 진영고'라는 후렴구와 랩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과소평가되었던 싱어로써의 자질을 "너는 왜"에서 여성 백댄서와 격렬한 권투춤을 추면서 현진영 Go 진영 Go를 하면서 라이브로 빠른 랩을 소화해내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과 음악에 익숙한 대중들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도 커다란 지지를 보냈고, 현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

한편 이수만에게 프로듀싱을 배운 이현도는 "New Dance 2"의 수록곡인 "너에게만"로 직접 프로듀싱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현진영때문에 SM에 떠나기로 한 이현도와 김성재는 어느정도 프로듀싱능력을 갖추자 SM과 결별하여 1993년 듀스로 데뷔합니다.
이현도와 김성재가 떠나자 이수만은 와와 3기 멤버로 션을 발탁합니다. (션은 훗날 지누션으로 데뷔)
하지만 SM은 2집앨범이 유통사인 서라벌레코드의 부도로 인해 큰 손해를 입어버립니다.



1993년 성공을 확신한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과 현진영 3집이 정면대결을 펼칠 93년 가요계는 모두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발표한지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진영은 구속되었고 방송정지을 당합니다.
이때의 여파로 무려 40만장을 찍었던 현진영의 음반은 검찰에 압류되고 상품은 소각처리되어 SM은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월미도와 방배동의 까페를 매각하여 부도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소속 연예인인 한동준, 김광진, 신동엽, 김승현, 이홍렬이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그만두게 됩니다. 이수만은 사력을 다해 현진영을 띄웠으나 그때마다 대마초와 필로폰으로 무너졌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서태지가 이수만과 힙합주도권 경쟁에 승리하게 됩니다.


한편 1993년 구준엽은 이탁과 함께 탁이준이로 데뷔하였으나 실패했지만 1996년에 구준엽은 강원래와 함께 클론을 결성하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이탁은 현진영과 I.W.B.H를 결성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5. 이수만 힙합외에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 - 김광진, 한동준, 유영진


이수만은 힙합외에 알앤비, 포크록, 발라드등 여러장르를 기획합니다. 이때 한동준과 김광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1집앨범을 기획합니다. 특히 김광진은 작곡능력까지 있었죠.
김광진은 1991년 한동준에게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라는 곡을 줬고, 같은 해 김광진 본인도 1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1993년에 현진영의 필로폰사건으로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김광진과 한동준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떠나게 됩니다.
그후 김광진과 한동준은 명곡을 발표하며 뛰어난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김광진의 대표곡으로 편지, 마법의 성등이 있습니다. 한동준의 대표곡으로 사량의 서약이 있습니다.)


한동준 -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윤하가 부른 한동준의 명곡 사량의 서약
http://www.youtube.com/watch?v=5crDXWlUURs


1992년 유영진은 군대제대후 가수가 되고자 여러 기획사에 여러 오디션를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거듭하였습니다.
문나이트에서 친했던 구준엽과 강원래의 인연으로 인해 마지막으로 유영진은 SM기획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 CD를 보냈습니다.
이수만은 유영진에게 3일 정도 “곡이 더 있냐”고 물어보면서 유영진은 하루에 10곡씩 준비해 들려줍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유영진은 스스로 원해서 종신계약을 맺습니다.
1993년에 한국 R&B 역사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그대의 향기’가 나왔는데 유영진은 뮤직비디오에서 턴을 하기도 하고, 2집에서는 댄스음악 ‘너의 착각’을 내놓는 등 R&B뮤지션과 댄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당시 그의 뒤에는 문희준과 강타가 춤을 췄죠.

유영진- 그대의 향기



1993년 하반기에 새로 오디션을 벌여 서연수와 임범준을 발탁합니다.
임범준은 락밴드활동으로 다져진 굵은 남성적 음색를 가졌고 서연수는 여성적인 맑은 미성을 지녔죠.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메이저라는 2인조 그룹으로 데뷔쇼케이스을 하였고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이들이 선보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도발적의상에 제재를 가했고 단정하게 나오지 않으면 방송활동을 할수 없다고 통보을 하였습니다.
이수만이 그들을 설득해도 서연수와 임범준은 비굴하게 음악을 할수없다고 거절하였고 결국 공중분해가 되어버렸죠.

Early spring day (이른 봄날), 1994 - 메이저(Major) 서연수, 임범준


1994년 마지막으로 이수만은 2명의 재미교포로 이루어진 J&J라는 그룹을 선보입니다. .
하지만 시장의 반응이 없어 처참하게 실패로 끝나자 메인프로듀서인 홍종화는 SM를 떠나는데 유영진이 그의 자리를 맡게 됩니다

J&J 강준식, 김주현 - 미지수야 미지수.1994

이 모든 기획들이 실패한 이수만은 대중들의 속성을 알겠다고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고 아이돌을 기획하게 됩니다.
유영진은 이수만의 기획 아래 프로듀싱하며 HOT, SES, 신화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아이돌기획사로 완전하게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이수만과 홍종화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5wjY7Nnt6xg



가수들 데뷔년도비교
소방차(1987) - 박남정과 친구들(1988) - 현진영과 와와(1990) - 나미와 붐붐(1990) - 서태지와 아이들(1992) - 듀스(1993) - 탁이준이(1993) - 클론(1996) - H.O.T(1996) - I.W.B.H (1997)


솔로여가수 데뷔년도비교

김완선(1986) - 조갑경(1986) - 이지연(1987) - 김희애(1987, 배우데뷔는 1983년) - 양수경(1988) - 강수지(1990) - 하수빈(1992)

댄스가수의 그룹의 멤버에 관해서
박남정과 친구들: 박남정, 양현석, 이주노, 박철우, 김영완
현진영과 와와: 현진영, 1기 - 구준엽·강원래, 2기 - 이현도·김성재, 3기 - 션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 이주노, 양현석

문나이트의 인맥
최진열, 이주노, 양현석, 현진영, 이현도, 김성재, 구준엽, 강원래, 이탁

SM의 초창기사람들
SM의 아티스트들: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 이탁, 션, 김광진, 한동준, 유영진, 서연수,임범준, 강준식,김주현
SM의 예능인: 이홍렬, 김승현, 박명수, 신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