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월드컵 예선때문에 벌어진 전쟁이 있습니다 중미 대륙 나라인 엘살바도르와 혼두라스(우리나라에선 온두라스로 알려진) 군이 벌인 전쟁으로 영어로도 축구전쟁입니다 69년 6월 22일 열렸던 두 나라 사이의 국제축구경기가 이전부터 대립상태를 격화시켜 벌어진 전쟁으로,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한다. 1970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은 1968년 5월부터 시작됐다. 북중미 예선 14조 A지역은 중미 6개국이 혈전을 벌인 끝에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최종전을 갖게 됐다. 1969년 6월7일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는 밤새도록 온두라스 응원단이 소란을 피웠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깡통을 두르리며 고함을 질러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탓이었는지 이튿날 열린 1차전에서 엘살바 도르가 1대0으로 지고 말았다. 엘살바도르에서 이 경기를 TV로 지켜보던 한 소녀가 충격에 못 이겨 권총으로 자 살하고 말았다. 그 소녀 장례식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전각료가 참석하고 대표선수단도 조의를 표했는데 이 장면이 TV로 전국에 중계됐다. 6월14일 온두라스 팀이 2차전을 위해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왔다. 경기 전날 밤 온두라스 팀이 묵고 있는 호텔 밖은 소란스러웠다. 엘살바도르 응원단이 보복이라도 하듯 호텔 창문을 깨고 죽은 쥐를 던지며 난동을 피운 것이다. 역시 한숨 자지 못한 온두라스 선수 들은 엘살바도르에 3대0으로 지고 말았다. 경기장에서 열띤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이미 응원단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두라스 응원단 차 150여 대가 불타고 응원단 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이 다쳤다. 같은 시각 온두라스 전역에서는 엘살바도르 인에 대한 사냥이 벌어져 수십명의 엘살바도르 인이 살해됐다. 약탈 방화도 일어나 재산 피해만도 2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온두라스 정부는 또 엘살바도르에서 수입을 전면 금지 시켰다. 이에 화가 난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 만행을 제소했다. 6월23일 극도로 감정이 악화된 두 나라는 국교를 끊었다. 6월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두 나라의 최종전이 열렸다. 이 날은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았으며 경기는 난폭했다. 결과는 2대2무승부라서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 전반 12분 엘살바도르의 로드리게스가 결승골 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 한골이 바로 전쟁의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7월14일 엘살바도르 비행기가 선전포고와 동 시에 온두라스 네 개 도시를 폭격했다. 탱크를 앞세운 보병부대는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25마일이나 진격했다. 이에 온두라스는 즉각 대응했다. 낙하산 부대를 엘살바도르 후방에 투입해 교란작전을 펼쳤다. 이 전쟁은 사흘 간 이나 계속되다가 미주기구와 이웃나라들의 중재로 7월18일 정전에 들어갔다. 피해는 온두라스가 더 커 온두라스는 축구에도 지고 전쟁에도 져 더 큰 상처를 입은 셈이었다. 이 두 나라는 130여 년 전부터 국경분쟁으로 충돌이 잦았다. 평균 수명 27세인 불행한 나라 엘살바도르와 문맹률 60%가 넘는 후진국 온두라스. 그러나 땅이 넒은 온두라스에는 지난 60년 간 30만명의 엘살바도르 인이 이민와 살고있었다. 130여 회의 혁명으로 온두라스가 불안과 빈곤에 허덕이는 틈에 엘살바도르 이민들이 경제권을 장악 했다. 이렇게 두 나라는 불씨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전쟁으로 3000명이 죽고 1만2000여 명이 부상했으며 15만명이 집을 잃었다. 축구가 전쟁 배경이 되었으나 다른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배경은 1950년대∼1960년대 초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약 30만 명 엘살바도르 농민들이 국경을 넘어 온두라스에서 무단거주를 하였는데, 69년 온두라스정부가 새로이 농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엘살바도르난민 수만 명을 추방하자 두 나라 사이 감정이 악화되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어렵게 전쟁까지 벌이며 월드컵에 나간 엘살바도르는 유럽 강팀들에게 10-1대패를 당하며 3전전패로 최하위로 탈락합니다 이것이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엘살바도르야 전쟁에 이겼으나 남한 면적의 1/5수준인 작은 나라로 넘치는 인구와 실업자문제로 경제난에 시달렸고 온두라스(엘살바도르의 6배 크기인 나라)수출이 막혀 막대한 피해를 본 것도 온두라스 못지않았습니다. 온두라스 경제를 여럿 잡던 엘살바도르 인들은 전쟁 중에 마구잡이로 살해당했으며 애써 모은 재산을 통째로 다 빼앗기고 사람들에게 맞아죽거나 총으로 살해당해 버려지거나 엘살바도르로 쫓겨나야 했기에.이들이 보내는 돈으로 그나마 도움이 되던 엘살바도르 경제까지 풍지박산이 난 것이죠 게다가 어려운 경제사정 중에 군사반란이 연이어 벌어졌고 이를 비난하던 로메로 엘살바도르 대주교조차도 군인들에게 살해당하는 참극까지 벌어지며 세계적인 빈민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전쟁은 ...........둘 다 깊은 상처밖에 없었죠 이 와중에 당시 이 두 나라에 적은 수로 이민해온 인도인들이 재빨리 경제권을 잡으며 지금도 이 두 나라 경제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두 나라 국립은행 VIP고객이 거의 인도인 갑부들로 이들이 두 나라 재정경제부 부처 관리들이 고개를 못 드는 경제계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죠) 내용출처 : http://my.netian.com/~doli2/story/w-3.html /내가 아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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