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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미스테리

인조, ‘비호감’ 군주의 조건

by 501™ 2015. 8. 29.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29 - 인조 : 살아서도, 죽어서도 욕먹는 군주]


임금이 이렇게 욕을 많이 먹어도 되는 걸까? 드라마 ‘화정’에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조 말이다. 사극 속 역사인물 캐릭터에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비친 그이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오늘날 인조는 조선사 500년을 통틀어 최악의 임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반정을 일으켜 광해를 끌어내리고 왕위에 올랐다. 이괄의 난을 피하여 도성에서 도망쳤고, 병자호란을 초래해 삼전도의 치욕을 맛봤으며, 왕권을 지키려고 아들 내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못났다. 무모하다. 비정하다. 한 마디로 ‘비호감’이다. 

인조는 당대에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위에 열거한 행적과 별개로 그 이유가 성품에서 비롯돼 보인다는 것이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그는 무거운 분위기에 말수가 극단적으로 적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모시는 궁녀조차도 인조가 웃거나 말하는 걸 거의 접하지 못했다. 신하들은 늘 임금의 뜻을 몰라 전전긍긍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되었다고 무게 잡은 게 아니다. 능양군 시절부터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임금답게 근엄한 면모지만, 나쁘게 보자면 음울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다. 

능양군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손자였다. 선조는 후궁 가운데 인빈을 가장 총애했다. 그래서인지 능양군을 예뻐해 궁중에서 길렀다. 세자 자리가 불안했던 광해는 이 조카를 마뜩찮게 대했지만 왕위 경쟁자로 보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1615년 서인계 인사들이 능양군의 친동생 능창군을 추대하려다가 발각되었을 때 장자인 그이에게도 칼을 겨눴을 것이다. 광해도, 서인들도 감정이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를 왕의 재목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동생은 물론 아버지까지 잃은 능양군은 내심 복수를 다짐했던 것 같다.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인조가 직접 꾸미고 지휘한 거사였다. 중종반정의 경우 신하들이 일을 벌인 후 새 임금으로 중종을 추대했지만 인조반정은 달랐다. 인조는 주모자로서 계획부터 실행까지 앞장서서 이끌었다. 하지만 그가 명분으로 내세웠던 광해의 패륜과 실정은 사림은 몰라도 백성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백성에게 인조반정은 인조가 사사로이 가족의 원한을 갚고, 조정에서 소외된 서인들이 정권을 찬탈한 ‘정변’이었다. 이듬해 이괄이 도성으로 쳐들어오자 백성은 도망치는 인조를 팽개치고 반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정통성이 취약한데다 민심마저 싸늘해지자 인조는 무리수를 둔다. 위기의식을 느끼는 권력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명하고 강경한 노선을 취하기 마련이다. 그가 광해군의 중립외교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친명배금(親明排金 : 명나라와 손잡고 여진족을 배척함) 정책을 밀어붙인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청나라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는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감수해야 했고, 수십만 명의 백성이 임금을 원망하며 만주로 끌려갔다.

위신을 잃은 인조는 아마도 자기만의 음울한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심지어 자식들도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던 모양이다. 청나라에 볼모로 갔다가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불과 두 달 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세자빈 강씨도 시아버지로부터 사약을 받았다. 자식에게도 이러는 사람이 신하라고 마음을 열 리 없다. 인조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벌을 삼가고 벼슬도 아꼈다. 한 마디 칭찬과 꾸짖음이 곧 평생의 판정이 되었다. 

“아무쪼록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를 분명히 내보여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이 지향하는 바를 알게 해야 합니다.” 1581년 율곡 이이가 인조의 할아버지 선조에게 올린 간언이다. 조선은 중국과 달리 임금의 권한이 절대적이지 않았다. 대체로 왕과 신하들이 협의해서 다스렸다. 조선식 통치체제에서는 군주의 신호가 분명해야 한다. 속을 알 수 없는 임금은 국정을 혼란으로 몰고 간다. ‘비호감’ 군주는 이런 조건에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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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