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기술을 발전시킨 나치와 건스미스 건스미스 제럴드 불(Gerald Bull) 박사와 대륙간 대포 이야기 제랄드 빈센트 불(Gerald Vincent Bull)박사는 1928년 3월 9일에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실부모하고 삼촌집에 얹혀살게 되고, 그 삼촌마저 유명을 달리하여 숙모의 밑에서 그다지 좋지 못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비상한 천재였던 그는 24살에 박사가 되어 당시 2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영국의 과학기술들이 피난차 이전되었던 캐나다 무기 연구 및 발전 시설(Canadian Armament Research and Development Establishment)에 들어가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가 맡은 일은 모형과 풍동실험을 통하여 초음속이 비행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였습니다. 기존 방식은 기체 주변의 공기를 이동시켜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법이었는데, 초음속 레벨에 달하자, 그만한 기류를 만들어주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때 박사는 발상을 전환하여, 관찰모형을 새보트에 집어넣고 대포를 이용하여 발사하는 방식으로 모형을 초음속상태로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박사는 자신의 목표를 결정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캐나다 정부의 군사기술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투자 문제이겠지요)와 고루한 관료주의와 더불어 소득에 대한 불만 - CARDE에서 공기동역학 학자로서 박사가 1959년에 받은 월급은 1만7천불인데 반해, 1961년 박사는 10만불이 넘는 소득을 미국 국방성과의 노즈콘(탄두뚜껑이라고 생각하시면)관련한 상담으로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 은 박사를 기존 직장을 버리고 몬트리올의 McGill대학의 교수로 옮겨앉게 하였습니다. 또한 미군 탄도연구실(US Army's Ballistic Research Lab)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지요. 일생에 걸친 박사의 꿈이라면 대포로 발사한 투사체가 바로 지구 중력권을 빠져나가 외부궤도에 올라앉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언급한 쥘 베르느의 '달세계여행'이라는 소설에서 따온 모티브라고 할까요. 이라하여 1961년, 박사는 HARP(High Altitude Research Project) 계획을 시작하게 됩니다. HARP 계획은 McGill대학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비군사적인 학문적 계획이었습니다. 박사는 기계공학부분의 교수로 차가를 하계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획의 특성상 미군 탄도연구실도 이 계획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고, 관대하게도 미군은 실험을 위해 퇴역한 전함의 함포와 레이더를 비롯한 군사장비를 제공하였습니다. HARP 계획은 바아베이도스(Barbados)섬 - 유명한 로켓발사기지인 플로리다의 카나베럴 곶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 에서 거점을 마련하게 됩니다. 퇴역한 구경 16inch함포의 20m의 포신을 36m로 연장한 포에 '마틀렛(Martlet)'으로 이름붙여진 나무로 만들어진 새보트에 담긴 투사체를 발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포 발사순간의 포음은 섬 전체에 들릴 정도였으나 실질적인 피해는 전무하였으며, 섬의 주민들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기뻐하였다고 하더군요. 마틀렛은 연구 목적으로 만들어져, 금속 채프, 화학적 연기 혹은 기상학용 풍선을 탑재할 수 있었습니다. 장거리 탐색 레이더를 이용하여 투사체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1965년말에는 HARP 계획은 100여발의 마틀렛들을 날렸고 그것들은 고도 50마일(80km) - 대기가 거의 없는 전리층에까지 날아갔습니다. 1966년 11월 19일에 미군 탄도연구실은 박사의 HARP 포를 이용하여 185파운드(90kg)의 마틀렛 미사일을 고도 111마일(178km)까지 날릴 수 있었습니다. 저 고도는 대포로 발사된 투사체가 도달한 최고 고도로 지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론적으로 말해서 대포로 지구궤도에 투사체를 발사하는 일은 로켓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투사체의 크기에 제한을 받고 발사 순간의 강력한 압력 - 거의 1만G에 달하므로, 생물은 탈 수 없음 - 을 견뎌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나, 고정위치에서 발사되므로 발사체의 제어를 로켓보다 훨씬 정확하게 할 수 있으며, 연료를 기내에 탑재하지 않는 이유로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가지며 뭐니뭐니해도 로켓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사는 로켓추진체의 도움을 받는 투사체인 마틀렛4를 이용하여 그 동안 꿈꾸어왔던 일인, 대포로 발사하는 투사체를 우주로 올릴 계획을 야심적으로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HARP 계획은 1967년에 중단 - 월남전이 한창이다 보니 군사적 여력이 그 쪽으로 집중되어서인 듯 싶습니다 - 되었습니다. 박사는 이렇게 된 이상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기로 하고, 계획의 경력자들을 재조직하여 상업적 기업인 우주연구회사(Space Research Corporation)를 세웠습니다. 박사는 그의 슈퍼 건에 관한 비전의 실현을 도와줄 후원자를 찾기 위하여 나토, 미군, 캐나다, 중국, 이스라엘, 핀란드 그리고 이라크등의 다양한 나라들과 접촉을 하게 됩니다. (16inch HARP Gun ) 당시는 베트남전이 한창이었고, 박사의 항공역학 투사체 연구 덕에 박사는 회사를 군사병기회사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투사체를 고고도까지 날도록 한 그 동안의 연구는 또한 기존의 포탄에 비해 더 먼 거리를 날아가 목표를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신형 포탄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박사의 회사에서 만들어진 포탄은 당장 미 해군에 채택되어, 월남의 해안에서 미군의 구축함들이 소련이 지어준 신형 해안요새를 요새포의 사거리 밖에서 피해없이 침묵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박사의 회사가 생산하는 포탄은 박사의 국적이 있는 캐나다의 공장에서 생산되었는데, 박사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박사의 생산품을 많이 사용하는 미 국방성의 무기 거래에 걸리적거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사의 전략적 중요함을 알게 된 이상 박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저런 문제는 사소한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상원의원 베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후원으로 박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미국 국적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이전에 단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마르퀴스 라파예트(the Marquis de Lafayette)만이 누릴 수 있었던 아주 드문 영예였습니다. 상원의 의결에도 불구하고, 해군과의 거래는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나 미해군이 박사의 상품을 경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은 그런 단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사의 사거리 연장 포탄과 그를 쏘기 위하여 디자인된 살상용으로는 끝내주는 성능의 야포는, 이집트, 이스라엘, 네델란드, 이태리, 영국, 카나다, 베네수엘라, 칠레, 태국, 이란,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스트리아 그리고 소말리아 등 많은 나라들이 채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국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박사의 입장은, 두 나라 군수제품의 수출법령의 차이를 이용하여, 법망을 피할 수 있는 나라에서 상품을 선적하여 수출하면 되는, 사업에 잇점을 제공하였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박사는 버몬트 주 북쪽 경계의 고립된 시골에, 무기의 천재는 그 자신의 포격장, 측정탑, 사격제어탑, 레이더 추적실, 작업장 그리고 기계실을 지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SRC는 300명이 넘는 사람을 고용하고 1500만$가 넘는 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HARP 사업의 중단은 박사에게 정부 출자 과학 기관을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정부의 연구자들을 "광대" 혹은 "잡종과학자"라고 언급하였고, 자신의 미래는 자유로운 사업의 활력있는 세계에 의존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고고도를 탐색하는 대신, 박사는 그의 준비된 지능을 치명적인 군수품의 개량에 바쳤습니다. 박사는 그가 싫어하였던 소련이나 그 동맹국에 대해서는 자사제품을 팔지 않았지만, 그 외는 누구에게나 팔았습니다. 박사의 대포는 앙골라의 요나스 사빔비의 UNITA전쟁에서 큰 도움이 되었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도 양 측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우주개발자였던 박사는 이제 전문 무기상이 되었습니다. 박사는 무기상으로는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는데, 상업적인 재능은 없던 이유에서였습니다. 많은 엔지니어들처럼, 박사도 사업적인 경영에 지배되기보다는, 기술적 성취의 결과에 즐거워하고는 했습니다. SRC의 분위기는 박사는 교수, 고용인들은 학생으로 비교가 되는 매우 학구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박사의 고용인들은 그에게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아 거의 숭배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SRC는 박사의 천재적인 기술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 박사는 1980년에 큰 시련을 맞게 됩니다. 카터 행정부는 박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거래를 비난하며 박사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이 형벌은 박사에게 보통 이상으로 큰 충격을 주게 되었습니다. 박사는 자신이 위선자이며 편향되고 배타적인 워싱턴의 관료집단의 정치적 희생양으로서 고립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는 미국 감옥에서 7개월동안 옥살이를 하였고, 많은 양의 서적을 읽고, 감옥의 난방시설을 성공적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감옥에서의 경험은 박사를 씁쓸하고 냉소적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감옥 안에 있을 때, 박사는 벌써 그를 열렬히 원하였던 고객 중의 하나로 판명된 공산주의 중국으로부터의 상업적인 접근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 감옥에서의 판결이 끝난 다음에, 박사는 미국-카나다 경계 안의 이상한 고립을 포기하고 벨기에의 브뤼셀로 이전하였습니다. SRC는 국제적 무기 거래의 유럽의 최전방 무기고이며, 어떤 전쟁상품도 거래될 수 있는 이곳에서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1987년 11월, 박사는 브뤼셀의 이라크 대사관의 정중한 접촉을 받고 이라크측의 모든 경비제공하에 바그다드로 가게 되었습니다. 1980~1989년의 오래되고, 치명저깅고 끈질기게 결론이 나지 않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정권은 800억$의 병기와 병장비를 소비하였습니다. 사담은 특별히 소련이 지원한 스커드(Scud) 미사일을 좋아하였는데, 이것은 "도시간의 전쟁"으로 불리어진 기간동안 도시 한가운데에 발사되어 시민들을 살상함으로서 이란인들의 전쟁사기를 가혹하게 흔들었습니다. 사담의 심중에서 스커드 미사일의 가장 큰 문제는 제한된 사거리와 낮은 명중율이었습니다. 그리래서 그는 이라크 로켓 기술의 발전에 많은 장비와 인력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이라크는 이미 박사의 155mm야포를 남아프리카와 오스트리아로부터 많은 양을 사들였었고, 그 위력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이라크는 미군이 했던 이상으로 더 좋고, 더 멀리 나가며, 더 정확한 박사의 야포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사는 다시 감옥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깨는 일에 대해 마지못해 동의하였습니다. 박사는 그의 후견인이 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고, 그들은 그 손님의 꺼림직함을 주의깊게 경청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박사의 평화적인 우주대포계획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 박사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주도권을 생각하십시요" 박사는 이라크 산업부에 제의하였고 그 생각은 이라크 정부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988년 9월에 그들의 샤비트(Shavit) 로켓을 궤도상에 올려놓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아랍 연맹에게는 매우 감명을 주었으며 또한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박사는 이라크는 수십 혹은 수백의 아랍 인공위성을 궤도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작고 무인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였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발사체들은 한 개에 단지 5천$정도의 비용만이 들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이것이 달성된다면 이라크는 대단한 우주력을 가질 것이었습니다. 초강대국에 비하면 작지만 유일한 아랍의 우주력이 될 터인 힘을 말이죠. 그리고 비록 작은 위성들은 단지 보이지 않을 뿐만이 아니고, 작은 위성일지라도 감시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터였습니다. 미국 군부는 이란-이라크 전쟁의 가장 나쁠 때에 그들의 스파이 위성을 사담 후세인의 머리로 날려보내여 스파이 위성의 유용성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라크 측은 박사와의 협력을 통하여 매우 넓은 범위에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과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지식이 평화적이든 아니든 말이죠. 평화로운 목적인 HARP 프로젝트도, 결론적으로 박사 자신이 스스로 익힌 지식을 이용하여 병기시장에서 이득을 얻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별을 노려서 만든 비군사적인 목적의 노즈콘의 디자인 또한 잠자는 런던시민을 머리위에 떨어지던 초음속의 비명을 내게 만든 물건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튼 박사는 그의 인생에서 최초로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는 관대한 후견인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1989년 이라크는 박사와 그 회사에 그들의 야포를 개량하는 댓가로 1년에 500만$를 지불하고, 이라크 우주 야포를 만들기 위한, 계획의 절정인 "바빌론 프로젝트(Babylon Project)"에 착수하였습니다. 박사는 북부 이라크에 사드 16(Saad 16) 미사일 테스트 복합단지와 같은 전조 무기 벙커를, 서방 기술자의 관리와 그레이 마켓에서 구한 텍트로닉스(Tektronix), 과학 아틀란타(Scientific Atlanta) 그리고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사의 첨단장비들을 가지고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바빌론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꿈꾸어 온 박사의 대망이었고, 이제 모든것이 그의 손 안에 들어오려 하고 있었습니다. (Babylon Gun) 1989년 8월, 아기 바빌론(Baby Babylon)이라고 이름지어진 작은 규모의 원형이 중앙 이라크의 자바이 함랸(Jabai Hamrayn)이라는 비밀장소에서 건조되었습니다. 아기 바빌론은 탄두를 우주궤도에 올릴 수는 없었지만, 국제적인, 아마도 대륙간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형은 첫 번째 시험사격을 하였습니다. 이라크는 다른 슈퍼 건 원형을 제작을 시도하였으나 부품 밀수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무기 상인으로서의 박사의 재능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은 그가 이미 감옥을 다녀 온 것으로부터 증명이 된 바였습니다. 박사는 알랑거리는 대신에 말하였고, 말하는 대신에 떠벌이곤 했습니다. 박사의 역할이 상당하였던 "지적 공동체"의 내부에서 말들이 새기 시작하였고, 몇 가지는 이라크와 미사일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단어가 이스라엘측에 도달하였을 때, 그들은 박사의 천재적인 재능을 두려워하였고, 박사에게 여러 측면에서 경고와 위협을 하였습니다. 이라크의 슈퍼 건은 통상적인 군사무기로서의 효용성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너무 커서 은폐를 할 수 없고 이동은 커녕 방향전환마저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발사시에는 500피트(150m) 크기의 화염을 내뿜는데 이는 일반적인 스파이 위성이 간단히 잡아낼 수 있었으며 그 파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F-15기의 단 한 번의 공격이면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슈퍼 건은 단 한방의 발사체로로도 적국을 끝낼 충분한 가능성 - NBC병기를 적의 수도 한 가운데에 떨구는 방법 -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사는 그러나 바빌론 계획이 전적으로 평화롭게 쓰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사는 계획의 군사적 용도로서의 전용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박사가 그의 바빌론 계획에서 원한 것은 "명성"이었습니다. 박사는 전 세계가 "제리 불(Jerry Bull)" 자신을 우주개발계획을, 더도말고 덜도말고 홀로 이루어 낸 사람으로서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푸트니크(Sputnik)가 처음 발사되었을 때 들렸던 세계의 반응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에게 있어서 바빌론 프로젝트는 군사적 무기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무기였습니다. 단지 얼마간의 야포대대로부터 이라크의 명성이라는 성공이 얻어질 수 있다는 환상적인 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랍 세계를 주도권을 쥐는 것은 사담의 야망이었고, 박사의 대포는 이라크 주도권의 상징이 될 것이었습니다. 호메이니와의 오랜 전쟁은 사담의 위대함을 위한 야망을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80년 파리 호텔방에서 이라크 핵물리학자 야하 엘 메스하드(Yayha El Meshad)가 모사드에 의하여 살해된 사건과, 1981년의 오시리크 원자로 폭격작전을 통하여, 이런 사담의 야망을 좌절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었습니다. 위에 언급된 약점들로 인하여, 슈퍼 건 자체는 그리 위협적인 무기는 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이스라엘은 일단 박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는 이라크 측의 요청에 의해 스커드 미사일의 노즈콘 설계에 나서게 되고, 이것은 (슈퍼 건과는 달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이스라엘측은 여러 번의 암시적 경고를 박사가 듣지 않자, 행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1990년 3월 22일 박사는 브뤼셀의 그의 아파트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만나, 무소음 자동권총으로부터 발사된 30구경 총탄 5발을 목과 뒷머리에 얻어맞고 절명하였습니다. 박사를 암살한 자는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빌론 대포(Babylon Gun) - 슈퍼건(Super Gun) 1988년부터 90년에 걸쳐 이라크는 캐나다인이었던 제랄드 빈센트 불(Gerald Vincent Bull) 박사에게 2대의 바빌론 포(구경 1000mm)와 1대의 아기 바빌론 포(구경 350mm)의 제작을 의뢰하였는데, 결과적으로 후자 1대만 완성되었습니다. 전자의 성능이 상당히-_- 인상깊은데, 9t의 특수 추진제를 이용하여 600kg의 투사체를 1000km까지 날릴 수 있으며, 또한 200kg의 물체를 위성궤도-_-에 올릴 수 있는 2t의 로켓 투사체를 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참고로 위성궤도까지 물체를 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kg당 600$이라고 합니다. 대포로 인공위성을 쏠 수 있다는 말이지-_-요. 당연히 투사체는 지름 1m안에 들어가주어야 합니-_-다. 그래서 크기는 대충 전화박스만한 물체까지로 제한된다고 하더군요. 박사는 1980년 이라크와 접촉하여 서방 정보기관들의 묵인 하에 이라크측과 무기거래를 하였습니다. 회교원리주의를 내세운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이라크측에 대한 서방측의 묵시적인 도움이라고 하는 듯 싶습니다. 1988년 3월에 박사는 이라크측과 25만$에 위 3개의 대포들에 대한 제작 계약을 맺었고, 영국 엔지니어 크리스토퍼 코우레이(Christoper Cowley)의 관할 하에 PC-2(Petrochemical Complex 2)라는 이름의 석유화학플랜트 제작계획으로 위장을 하고 계획은 진행되었습니다. 바빌론 대포의 길이는 156m, 구경은 1m, 포미부의 두께는 30cm에서 시작하여 6.5cm까지 좁아지게 됩니다. 플랜트의 파이프라는 이름으로 26개의 부분으로 쪼개져 영국에 주문이 된 이 대포의 무게는 1510t이나 되었으며 거기에 220t의 반동실린더 4개와 165t의 포미부가 더해졌습니다. 발사시 대포의 반동력은 2만7000t정도로 계산되었다고 합니다. 1989년 5월 아기 바빌론 포가 바그다드(Baghdad) 145km 북쪽의 자바이 함랸(Jabai Hamraya)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일단 수평상태로 놓아진 포는 길이 45m와 구경 35cm에 모두 하여 102t의 무게였으며, 발사를 위해 45도 상태로 언덕에 기대어진 포는 750km의 사거리를 보였습니다. 이런 대포는 군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합니다. 1. 상대국에 대한 NBC무기의 발사. 탄도탄의 역할입니다. 2. 대위성무기(Anti-Satellate Weapon) 발사체. 궤도에 방해/파괴물을 쏘아 기능을 정지시킵니다. 바빌론 대포 역시 영국과 미국의 정보기관에 알려져 있었으며, 1990년 3월 22일 이스라엘측으로 보이는 암살자에 의해 박사가 암살당한지 3주 후에 영국은 자국에서 제작되는 바빌론 대포 몸체 8조각에 대한 대한 선적을 금지시킵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하게 됩니다. 전쟁 후에 UN사찰단에 의해 완성되었고 건조중인 3개의 바빌론 대포는 44개의 대포 구성부, 4개의 반동실린더와 1t정도의 추진제와 더불어 파괴됩니다. 이라크는 공식적으로 프로젝트의 중지를 선언하지만, 1995년 11월 말의 첩보에 의하면 구경 600mm의 대포가 제작중인게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니콜라 테슬라 [Tesla, Nikola, 1856.7.9~1943.1.7] [1]출생설:세르비아 크로아티아구 리카시 스밀리얀이란 작은 마을 목사의 다섯째 막내로 태어났다. 그라츠공과대학과 프라하대학에서 수학·물리학·기계학 등을 공부하였다. 비상한 암기력과 6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했다. [2[출생설:1857년 7월, 구 유고 슬라비아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집안의 오랜 전통 대로 그리스 정교 성직자가 되어 마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지역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한편 테슬라의 어머니는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집안의 가구 등을 비롯한 여러 발명품을 고안하였다. 또한 기억력도 월등하게 뛰어나서 상당히 긴 책의 내용을 암기 했다고 한다. 그리고 12살 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테슬라의 형도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천재였다. 이처럼 집안의 천재성을 물려받은 테슬라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수(水)차를 발명하였고, 친척들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에너지를 얻는 계획을 설명했다고 한다. 테슬라의 아버지가 그리스정교성직자인지 아니면 목사인지는 모르겠다, 크로아티아 출생. 그라츠의 공업학교와 프라하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전신국에 근무하다가, 후에 부다페스트 및 파리에서 전기기사로 일하였다. 18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 회사에서 수년간 발전기와 전동기(電動機)를 연구, 뉴욕에서 테슬라 연구소를 설립하고, 1888년 최초의 교류유도전동기(交流誘導電動機), 1891년 테슬라 변압기 등을 만들었다. 1895년 그가 개발한 2상교류방식은 웨스팅하우스사(社)에 의하여 나이아가라 수력발전소에 이용되었다. 자기력선속밀도(磁氣力線束密度)의 단위인 테슬라는 이 이름에서 딴 것이다. 과학문명을 1백년 앞당긴 천재과학자, 우주에서 길을 잃어 지구에 잘못 태어난 외계인. 미국의 전설적인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1856~1943)를 일컫는 말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태생인 테슬라는 28세 때인 1884년 미국으로 이주해 수많은 중요한 발명과 선구적 업적을 이뤄냈다. 교류전압 송신, 다상교류 시스템, 무선통신, 고압전원을 만드는 케슬라 코일, 형광등, 라디오 등의 발명자로 그는 기록되고 있다.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네는 기본 단위 T는 그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것이다. 그는 에디슨에 필적할 혁혁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생전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불운한 생애을 살았다. 영국 BBC방송의 인터넷 온라인 이용자들은 지난 1천년간 가장 위대한 발명가로 에디슨, 구텐베르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이어 테슬라를 4위로 꼽았다. 테슬라의 꿈은 세계 곳곳으로 통신을 가능하게 하며, 기상을 조절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꺼지지 않는 빛을 만들고, 다른 행성에 존재한다고 믿는 생명체와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에 사람들로부터 몽상가, 미치광이란 오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연구했던 무선에너지 전송기술, 테슬라 터빈, 테슬라 엔진, 입자빔 무기, 공간 자체에서 무한한 에너지를 뽑아쓰는 실험 등은 현재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뒤를 이어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테슬라의 연구자료 중 상당 부분은 그의 사후 미국의 국방 정보기관에서 입수해 현재까지도 비밀문서로 분류돼 있다. 그의 연구 중에 현대 과학자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작은 공 모양의 전기덩어리(구형 번개라고도 불린다)를 마음대로 만들고 다루는 시범을 여러차례 보였다.이 현상은 핵융합 플라즈마 연구의 혁신적인 돌파구로 밝혀졌지만 아직도 과학자들은 못하고 있다. 1915년 11월 6일자 뉴욕타임스는 에디슨과 테슬라가 노벨물리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수상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이 막판에 수상자를 바꾼 이유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니콜라 테슬라는 1857년 7월, 구 유고 슬라비아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집안의 오랜 전통 대로 그리스 정교 성직자가 되어 마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지역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한편 테슬라의 어머니는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집안의 가구 등을 비롯한 여러 발명품을 고안하였다. 또한 기억력도 월등하게 뛰어나서 상당히 긴 책의 내용을 암기 했다고 한다. 그리고 12살 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테슬라의 형도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천재였다. 이처럼 집안의 천재성을 물려받은 테슬라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수(水)차를 발명하였고, 친척들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에너지를 얻는 계획을 설명했다고 한다. 결국 테슬라의 이 계획은, 1895년에 테슬라의 특허를 이용하여 웨스팅 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 발전소를 만듦으로써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그 후 전기 공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헝가리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교류 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였으며 친척의 소개로 파리에 있는 에디슨의 유럽 지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교류 모터에 대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던 중,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교류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 받기 위해서 1884년 6월 미국으로 이주하여 에디슨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테슬라의 기대와는 달리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전구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직류 방식을 주장하였다. 결국 테슬라는 에디슨과 결별하고 독립된 연구소를 운영하며 교류 발전기와 교류 모터 등 교류 송, 발전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그 후 계속해서 무선 전신과 각종 터빈 등 많은 중요한 발명과 연구를 하여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발명에 대한 열정은 만년까지 식지 않았으나 자금 부족으로 매우 불우한 노년을 보냈으며 빈곤과 고독함 속에서 마지막 생애를 마쳤다. 다른 대부분의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테슬라도 사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업적을 니정받게 되었으며 1943년 그가 죽은 후에 미국은 무선 전신에 대한 테슬라의 특허가 마르코니의 특허에 우선함을 인정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웨스팅 하우스 등이 가지고 있던 많은 기술들이 테슬라의 업적으로 평가받게 되면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테슬라의 뛰어난 재능과 낭만적인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지금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 테슬라 터빈, 테슬라 엔진, 그리고 죽음의 광선 딱딱하고 고정된 필라멘트를 쓰지 않는 네온등은 길이와 모양에 관계없이 제작할 수 있다. 무한 동력 장치, 번개 충전용 코일, 무선 전기전송, 지진 발생기 등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연구를 하여 그의 이름이 붙은 여러 가지 장치를 만 들기도 하였다. 노년에는 전자기파 등을 이용하여 지진을 일으키는 지진병기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기도 하였는데, 현재 미국 국방성에서 그에 대한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전한다. 당시에 그의 많은 연구가 일반에 공개 되었다면 원자력에너지 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었거나, 원자탄 보다 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테슬라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주 에너지를 동력화 해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속력이 시속 90마일(약 144 km)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미 1900년대 초에 연료가 전혀 필요없는 자동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스스로 없애버렸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이뤄낸 발명들의 대부분을 자신의 손으로 없애 버려야 했다. 인류에게 신기술을 공개할 수 없었던 테슬라. 그는 당시의 인류의 인식 수준 으로는 그의 연구가 당초 의도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의 살상에 사용되거나, 소수 사람들의 치부에 사용되어지는 것을 우려했었다. 그러나 그전에 라디오를 발명하는 등 이미 그가 이뤄 놓은 연구와 업적들은 이후 모국 유고슬라비아의 화폐에 자신의 초상이 실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이르렀다. 니콜라 테슬라는 1856년 크로아티아(Croatia)의 스미즈란(Smijlan)에서 태어났다. 그는 놀랄만한 기억력을 가졌으며 6개 국어를 말할 수 있었다. 그는 그라츠(Gratz)에 위치한 폴리테크닉 공대(Polytechnic Institute)에서 수학, 물리학,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4년을 보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적 탐험을 계속하던 그는 1943년에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여든일곱해의 생을 마감했다. 본인이 다양한곳에서 알아낸 테슬라의 발명품들: 찾아봐서도 잘안나오는 것들을 상당수 노력으로 알아내었다, 네온사인, 스피드메타, 자동차 점화시스템 그리고 레이다의 기초, 전자현미경, 전자렌지를 발명,브러시리스모터 발명,샌드위치형태의 태양전지 발명, 산업계에서 형광등이 발명되기 40여 년 전에 그의 실험실에서 형광등 발명 및 사용, 1898년에 그는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세계최초의 무선조종 모형보트를 시연했다.(무선조종 모형보트 발명했다는 말임). 테슬라는 전세계에 프리에너지를 제공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1900년에 자본가 J. P. Morgan으로부터 15만불의 후원을 받았던 테슬라는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그가 "Wireless Broadcasting System"라고 부르는 타워를 짓기 시작했다. 이 방송타워는 전화, 전신 서비스 및 화상전송, 주식정보, 날씨정보등을 전세계적으로 연결시킬 계획이었다. 불행하게도 모건은 그것이 전세계에 대한 프리에너지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금을 끊어버리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은 그 타워가 독일의 유보트의 항로를 잡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미국정부가 세계 1차대전당시 그 타워를 파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그 프로젝트에 대한 모건의 자금이 끊긴 후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그 타워는 채권자들에게 고철로 팔리게 되었다. 세상은 그를 바보로 여겼다. 아무튼 이 당시에는 목소리, 화상, 전기의 전송에 대해서 귀담아 들어주질 않았다. 그들이 몰랐던 것은 마르코니의 발명이 알려지기 거의 십 년 전에 라디오의 원리를 이미 시연했었다는 것이다. 사실 테슬라가 사망한 1943년에 대법원은 마르코니의 특허가 테슬라의 이전의 기술 때문에 무효라는 판정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거의 모든 문헌들은 테슬라가 라디오를 발명한 것에 대해 인정하질 않고 있다. 이점에 있어서 언론계는 테슬라의 주장들을 과장하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화성과 금성으로부터 라디오 신호를 수신했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실제로 머나먼 별들로부터 신호를 받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우주에 대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 대신에 언론계는 그의 엉뚱한 주장들이라고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화성과 금성을 비롯한 달과 지구와 모든 전 우주의 모든 행성과 태양같은 항성들은 모두 전기신호를 발생한다, 이유인즉슨, 모든 행성과 태양같은 항성들은 전부 전리층이 존재하며 자기장도 존재한다, 전리층들은 항상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이로인해 전기신호가 전 우주로 퍼져 나가는것이다, 테슬라는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전파를 외계의것으로 오해했다,). 그의 맨하턴 실험실에서 테슬라는 지구를 전기튜닝포크로 만들었다. 그는 그가 위치한 바로 아래의 땅과 같은 주파수로 진동시기키 위해 증기로 작동되는 진동장치를 작동시켰다. 결과는? 도시의 모든 주변에 지진이 발생했다. 빌딩들은 흔들렸고 창문이 부서지고 벽에서 회반죽들이 떨어졌다. 테슬라는 이론에 따르면 같은 원리로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을 파괴하거나 지구를 둘로 나누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테슬라는 과학적으로 그의 결과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 60여 년 전에 지구의 공진주파수를 정확하게 알아냈었던 것이다. 그가 공개적으로 지구를 둘로 나누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실험들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1899년 그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연구실에서 그는 에너지 파동을 지구의 모든 방향으로 보냈고 그 파동들은 원점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지진의 진원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에 관한 이론을 제공하였다. 파동들이 되돌아올 때, 그는 거기에 전기를 추가했다. 결과는? 인간이 만든 인공번개 중에 기록된 적이 없는 130 피트(약 40 미터)의 인공번개를 만들어내었으며 아직까지 그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제와는 다르다,현재 선진국들은 인공번개의 길이를 무려 태양계 그 이상의 길이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와 동반된 천둥소리는 22 마일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며 그의 연구실 주위의 모든 초원은 이상한 푸른 발광현상을 나타내었고 그것은 St. Elmo"s Fire와 유사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의 실제 실험에 대한 워밍업에 지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지역 발전소의 장비를 파괴시켰고 그는 그 실험을 다시는 행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1차 대전 초기에 미국정부는 필사적으로 독일잠수함의 항로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정부는 적당한 방법을 찾는 일에 토마스에디슨이 일하도록 하였다. 테슬라는 이 배들을 찾기 위해 에너지 파동을 사용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다에 해당된다. 에디슨은 테슬라의 아이디어를 웃기는 일이라 치부하고 거절하였으며 인류는 그것이 발명되기 까지 25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의 독창성을 가진 창조적인 일생에 대한 보답은? 테슬라만 빼고 모두에게 주어진 "에디슨 메달"이다.!! 테슬라가 에디슨으로부터 받았던 모든 언어적 모욕 후에 우리가 그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들은 계속된다. 과학문헌들로부터 그를 지워내기 위한 산업계의 노력이 거의 20년 동안에 걸쳐 추진되었었다. 자본이 부족하게 되면서 그는 실험이 행해지지 못한 이론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은 노트에 단지 기록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인 세상을 만든 그는 1943년 1월 7일 무일푼으로 8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2천 여 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참석하였다. 테슬라는 그의 일생동안 800개 이상의 여러 특허권을 받았다. 그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에디슨의 기록을 능가했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매우 적은 특허출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에디슨과는 달리 테슬라는 대체로 과학에서 선례가 없는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었던 독창적인 사상가였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테슬라의 독창성에 금전적인 보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테슬라가 알려준 개념들을 정제하여 유용한 생산품들을 만든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과학자들은 오늘도 계속해서 그의 노트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 너무도 앞서있는 그의 이론들은 이제서야 최고수준의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가 설계한 날개 없는 디스크 터빈엔진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재질들로 제작될 때 지금껏 설계되었던 가장 효율이 좋은 모터에 속한다고 증명되어지고 있다. 그가 1901년 특허를 얻은 극저온 액체와 전기를 사용한 실험들은 현재의 초전도체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 그는 전자의 부분 전하를 갖는 입자를 제안하게 되었던 실험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1977년에야 비로소 과학자들이 발견하게된 것으로서 바로 쿼크(quarks)를 뜻한다. 테슬라 코일은 TV 세트, 사진기의 플래시, 자동차의 점화장치, 그리고 예술적 창작 등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죽음의 광선무기: 발전소 수십기의 전력을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실어서 발사한다,(그 설계도 공개되었다,그러나 모르는 이가 많다,), 마일 떨어져 있는 1만대의 비행기를 파괴시킬 수 있는 "죽음의 광선"(death ray). 이온레이건: 간단히 말해서 고전압의 전기를 발사하는 총이다, 그냥 초고전압 파이프형 공기청정기와 같은 형태이다, 인공지진기계: 간단히 말해서 규칙적인 진동을 일으켜서 지진을 일으키는 장치이다, 100년이상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그 원본 서적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땅에 묻고 폭파시킨다,하루정도 지나면 지구반대편에서 그 충격파가 다시 되돌아온다, 그때 다시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킨다, 하루쯤 지나면 다시 충격파가 돌아오고 다시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킨다, 이것을 여러번 반복하면 공진의 원리에 의해 지구를 둘로 쪼개는 방법 발명,중국정부가 과거 지구점프? 아무튼 대량의 사람들이 동시에 점프해서 인공지진을 일으켜서 미정부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미정부측에서는 여러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동시에 점프해서 이를 막아냈다고함, 미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의 모든 선진국가들은 인공지진 기계를 발전시켜서 인공위성에 장착했다고한다, 무선방송 발명:1800년 후반에 목소리와 이미지를 공기를 통해 전송방법 발명 무선 송전기술: 간단히 말해서 테슬라 코일로 규칙적인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반대편 테슬라 코일로 그 에너지를 수신해서 증폭시켜서 전등을 밝히거나 모터를 작동시키거나 그외의 여러가지 일상생활과 산업에 사용할수 있다고한다, 테슬라의 무선송전 장치를 작게 축소시키면 헨리 모레이의 무한동력 발전기가 된다고한다, 전기추진 광속 비행접시: 1900년쯤에 미정부에 특허로 났다고한다, 테슬라의 발명품은 미국,유럽전역, 독일,소련,캐나다,호주등 무수히 많은 나라들에 퍼져서 전 세계의 나라들이 독자적으로 개발 발전시켰다고한다, 테슬라는 자신의 발명품이 광속 그이상으로 날아갈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전기추진 우주전함 발명:특허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테슬라가 죽기전에 발명한것으로 추정될뿐이다, 형광등발명, 네온 발명,무선방송 발명,텔레비전 발명,인공기상조절기 발명,핵폭탄의 이론적 발명, 레이저 발명,교류모터발명,반도체 발명,무선조종 로봇발명,무선조종 선박 발명,날개없는 테슬라터빈발명,전깃줄 필요없는 무선 백열전구 발명,전깃줄 필요없는 무선 라디오 발명, 전류방패막 이론: 테슬라코일에서 발생되는 고전압의 전기들은 테슬라 코일에서 발생되는 자기장에 의해 지구 둘레를 감싸고 있는 전리층처럼 테슬라 코일 주위를 감싸는 인공전리층을 만들어낸다, 이론적으로는 무한정의 전력을 사용할경우, 무한정의 방어력을 가진다고한다, 마이너스 정전기 전류방패막 이론: 초기의 전류방패막을 발전시킨것이다, 마이너스정전기로 둘레를 감싸는 인공전리층을 만들어내는것이다, 테슬라는 이 원리를 이용해 전기추진 비행접시를 설계 및 제작했다고한다, 전기추진 비행접시 장치 자체를 원반형 전자석으로한다, 전도대 방전으로 전기추진 비행접시의 둘레에 사용한다, 전기추진 비행접시의 둘레는 마이너스 정전기로 대전된 상태이다, 마이너스 정전기는 전도대 방전으로 인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는데 자기장에 의해 갖혀서 전기추진 비행접시의 둘레에 마이너스 정전기로 이루어져있는 인공전리층을 형성케 된다, 이것이 테슬라의 마이너스 정전기 전류방패막이론인것이다, 엄청난 전류발전장치의 발명가로 유명한 테슬라박사는 당시 텅거스카지방의 사람이 살지않던 숲속에, 독자적으로 개발했던 세계최초의 250만 와트 '전류방패'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실험을 하고있던 전류방패란, 당시 테슬라박사가 250만 와뜨의 전력을 형성, 포탄을 막아내는 실험을 하던 전력장치로, 그 실험장치는 텅거스카 지방의 원인모를 폭발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현재 학자들이 제시하는 테슬라코일의 폭발설은 당시 테슬라박사가 만들었던 발전소가 텅거스카 지방에 있던 사실과, 당시 폭발했던 괴물체가 한번도 보지못한 엄청난 힘을 발휘하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1908년후 테슬라박사는 전류방패를 만드는 일을 일시적으로 포기했지만 테슬라는 절대로 포기 하지 않았다, 니콜라 테슬러는 라디오, 리모컨, 형광등, 발전기, 전자레인지(왼쪽부터)등 800여개의 발명특허권을 보유했다. 테슬라는 110V 또는 220V로 각 가정에 전송되는 전기공급방식인 교류전류 시스템과, 다양한 색을 자랑하는 네온등, 형광등, 자동점화장치, 전자레인지, 자동차의 속도계, 리모트 컨트롤, 유도전동기발명,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의 특허를 가지고 있고, 테슬라코일 발명했다. 무선에너지전송기술 연구했고, 세계 최초로 나이아가라폭포에 교류발전소를 책임지고 설치했다. 가히 천재라는 말을 할 수 있다. 1943년 사망할 당시 그에게는 8백 개의 발명특허권이 남겼다. 놀라운 점은 무선통신의 선구자 마르코니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라디오 역시 사실은 테슬라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음성, 그림을 무선으로 전송한다는 생각은 테슬라의 것이었다. 뉴욕의 메디슨 광장에서 세계 최초로 원격조종 보트를 시연하기도 하였다. 무선인터넷도 테슬라의 발명, 1880년대 후반, 전기 과학지 trade journal은 가까운 장래에 “자유전기”가 실용화 될 것을 예측했다. 상상도 못했던 전기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니콜라 테슬라는 “전선이 필요 없는 등화(wireless lighting)"를 시현해 보였고, 기타 고주파전류와 관련된 업적을 이루어 보였다. 당시에는 과거에 보지 못했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 후 20년 사이에 자동차, 비행기, 영화, 녹음기, 전화기, 라디오와 카메라가 등장했다. 니콜라 테슬라의 확대송신기(Magnifying transmitter): 테슬라의 확대송신기에서, 에너지는 지구와 반사커패시턴스 사이에서 지구의 자연적(고유) 진동수의 배수율로 계속적인 왕복운동을 한다. 교류전류는 자계가 변화할 때마다 전자파를 발생한다. 교류전압기를 대형화하면 전선에 의지하지 않고 전기에너지를 공급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다. 그는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설립한 연구소에서 장치의 개발에 몰두했다. 1899년 변압기는 약 1200만 볼트, 1100암페어를 달성,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에 놓여진 50와트 백열등을 점화시킨다. 재벌의 원조를 얻은 테스라는 롱아일랜드의 워딘클리프에서 거대한 송신탑 건설에 나섰다. -전선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에너지 정보네트워크 의 실현-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컴퓨터의 최소단위인 논리회로를 고안해냈다. 지금도 수많은 플라즈마물리학자들이 재현에 실패하고 있는 구전 (ball lightening)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구전현상은 핵융합기술의 중요한 열쇠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테슬라의 업적에는 몇가지 과장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미 하나의 신화가 되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1900년대 초에 이미 144 km/h의 속도로 달리는 연료 없는 자동차를 발명했으며, 미 정부의 지원속에 비밀리에 지진을 발생시키는 지진 병기에 관한 연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테슬라의 공간에너지 발전기: 처음 보는 사람은, 이것을 태양전지판으로 생각할 것이다. 테슬라의 발명은 매우 다르지만, 이것은 재래식 기술의 광기전장치와 가장 비슷하다. 가장 근원적 차이점으로 태양전지판은 실리콘결정으로 코팅되어있고, 최근에는 무결정실리콘을 사용하고 있다. 재래식 태양전지판은 비싸고, 코팅의 경우, 매우 복잡한 제조공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테슬라의 "solar panel"은 단지 투명한 플라스틱 스프레이를 표면에 코팅한 반짝이는 금속판이다. 이 안테나의 한쪽은 공중에 설치하고, 높을수록 좋다, 커패시터의 한쪽에 연결한다. 다른 한 쪽은 그라운드 시킨다. 이제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는 커패시터를 충전시킨다. 커패시터에 어떤 종류의 변환기를 장착하면 이것은 리드미칼한 방전을 하고, 전기를 출력한다. 테슬라의 특허는 전기에너지를 얻는 것이 이렇게 단순함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절연판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태양전지판"보다 더 낫다. 이것은 작동을 위해 태양빛을 필수적으로 요구치 않는다. 이것은 야간에도 전기를 생산한다. 테슬라의 자유에너지 수신기는 방사에너지 응용장치로서 1901년에 특허되었다. 그 특허의 설명에는, " 태양, 다른 방사성에너지원과 마찬가지로, 우주방사선과 같다." 밤에도 작동이 가능한 것은 우주방사선이 밤에도 이용가능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또한 "지구는 음전기를 담는 거대한 그릇이다." 라고 설명했다 테슬라는 방사에너지와 그것의 자유로운 이용가능성에 매료되었다. 그는 크룩의 radiometer ( 진공유리관 내의 바람개비가 태양빛을 받으면 돌아가는 장치 )를 "아름다운 발명품" 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직접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76세 생일을 맞은 회견에서, 테슬라 ( 머릿속에 구상하는 발명품에대해 재정적 후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는 "cosmic-ray motor"를 발표했다. 그것이 크룩의 radio meter보다 더 강력히 돌아가는가하는 질문에 그는 "몇 천배가 더 강력하다"고 대답했다. 위쪽의 극판 (+) 과 접지된 판 (-) 사이의 전위차로부터, 커패시터에 에너지가 축적되며, "적정한 시간이 경과" 후, 축적된 에너지는 "스스로 강력한 방전"을 하여 일을하게 된다. 커패시터는, 테슬라가 말하길, 충분히 정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 용량"을 가져야 하며, 그것의 유전체로는 "최고품질의 마이카(운모)"가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위차를 견딜 수 있고 깨어지지 않아야 한다. 테슬라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환장치를 소개했다. 한 가지는 테슬라회로 조절기를 닮은 회전형 스위치이다. 다른 하나는 진공중에 장착된 매우 가볍고 얇은 박막의 도체로 이루어진 정전장치이다. 이것은 커패시터 내의 에너지 축적을 감지하여, 하나의 양극으로, 다른 하나는 음극으로 되어, 어느 일정 충전레벨에서 서로 잡아당겨 접촉됨으로서 커패시터를 방전시킨다. 테슬라는 또 다른 변환장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간극 또는 약한 유전체필름을 사용하여 일정 전위에 도달했을 때 방전되는 형태이다. 삐퍼와 시커 로켓 니콜라 테슬라의 많은 혁신적 발명품 중 하나인 삐퍼 로켓은 작은 AP로켓으로 발신기가 달려있다. 목표 기체에 발사되었을 때, 삐퍼는 그저 표면적인 손상만 입힌다. 대신에 목표물에 자신을 붙이고 수분간 유도용 신호를 송출한다. 한편, 시커 로켓은 삐퍼 로켓의 유도 신호를 쫓아 삐퍼 로켓과의 거리가 가까와 지면 폭발한다. 시커 로켓은 본질적으로 소형의 무선 조종되며, 로켓추진되는 항공기로 아주 복잡한 장치이다. 시커 로켓이 삐퍼를 쫓아 움직일 정도로 "똑똑하긴" 하지만, 다른 장애물과의 충돌을 회피할 정도로 정교하진 않다. (따라서, 파일럿들은 삐퍼로 꼬리표를 붙인 목표물에 시커를 발사하는 경우 목표와 장애물이 없는 시야를 확보하여야 한다. 이 무기들은 사용하기 어렵지만, 적절히 사용할 경우 매우 위력적이다. 높은 G가 걸리는 기동으로 시커 로켓을 따돌릴 수는 있지만, 그런 적극적인 회피 기동 또한 기체에 손상을 준다. 개들이 삐퍼 로켓에 의해 송출되는 고주파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파일롯들은 애완견을 -이 독특한 무기에 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써- 비행기 화물칸에 싣고 다닌다. 변압기 발명,테슬라 코일발명,테슬라 엔진, 초인되는법 발명: 마이너스 정전기로 인간의 몸을 대전시킨다, 마이너스 정전기로 대전된 인간은 구전번개를 만들수 있고,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고, 구름을 만들고 우박과 눈을 내리게 할수 있다,심지어 태풍까지도 만들수 있다고한다, 마이너스정전기로 대전된 사람은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수 있고 물위를 걸을수 있다, 이온크래프트효과: 마이너스정전기의 전압을 일정한 수준으로 높이면 대전된 물체 또는 인간의 무게와 관성이 소멸되는 현상이 발생된다고한다, 이로인해 인간은 마하1로 날아갈수 있고 광속으로 날아가거나 이동할수 있고 심지어 광속의 무한배로도 날아갈수 있다, 광속의 무한배로 날아가거나 이동하는 방법: 마이너스 정전기의 전압을 천문학적으로 높이면 인간은 시간을 제어할수 있게된다, 시간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이동한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 이순간의 시간을 정지시키고서 광속으로 수백만광년을 날아가거나 또는 이동하거나 한후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면 1초만에 수백만광년으로 이동이 가능한것이다, 그야물론 시간여행이 가능할경우에 통하는 이야기이다, 테슬라의 타임머신 발명: 테슬라는 타임머신을 발명했다고한다, 말년에는 시간여행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해서 완성시켰다고한다, 그 이론대로 치자면, 우리의 과거 즉 창세기때부터 지금 이순간 2004년부터 미래의 종말의 시간까지의 모든 시간이 하나로 겹쳐 있다고 한다, 마치 하나의 시간대에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집중시켜놓은 형태라고한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오직 직접 실험해보는수 밖에 없다, 1938년 독일정부에 한 백인이 전기추진 비행접시를 특허냈다고한다, 원반형 연꽃문양,중앙에 구멍여러개 난형태, 그 백인 발명가가 테슬라란 설이 있다, 입자광선무기:입자광선의 이론은 테슬러가 제안했는데 아원자 입자들이 에너지 장에 의해 자극되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특정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테슬라는 입자광선을 엄청난 양의 전자 광선인 번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자광선은 강력한 전자기 펄스(EMP)도 발생하기 때문에 적의 인공위성이나 미사일의 중력장에 혼란을 일으켜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이중의 파괴력을 지닙니다. 타임머신: 1943년 미 해군이 시공초월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한 특급 실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핵심 기술로 알려진 테슬라의 타임머신 발명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895년 3일 3일 미국의 뉴욕시에서는 전기를 증폭시켜 강력한 전류를 발산하는 테슬라 코일의 변압기 성능을 실험하던 테슬라가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현상이란 초강력 전류가 흐르는 자기장 물체가 속도와 방향을 특정 패턴으로 회전할 시 해당 지역의 시간, 그리고 공간이 전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회전하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은 부분 내부에 시간과 공간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보이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변압기의 작동을 멈추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였다고 합니다. 1895년 3월 12일 평소에 테슬라와 친분이 있던 뉴욕 헤랄드 신문기자 A는 커피를 마시려고 인근 카페를 방문 하였다가 그곳에서 테슬라를 만났다고 합니다. 처음에 테슬라가 자신을 못알아보고 어깨가 아픈지 이를 만지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본 A는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다 테슬라가 몇백만 볼트의 전류를 어깨에 맞았다며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을 하자 수첩을 꺼내 그가 말하는 내용을 빠짐없이 적기 시작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테슬라가 말한 내용은 테슬라 코일에서 발산된 강력한 전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었고 그는 일주일간 조수와 함께 이와 같은 실험을 계속 진행하다 전류를 어깨에 맞고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한꺼번에 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인보우 프로젝트(필라델피아 프로젝트) 프로젝트 레인보우라고도 불리는 필라델피아 실험은 1943년 2차 대전 당시 미국 군부의 스텔스 기술, 전함이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하는 기술의 연구에 있어서 발생했던 사건입니다. 이 연구에서의 목적은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투명 함선의 상태를 위한 것입니다. 이 당시 사용되었던 기법은 함선 주위에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여 빛이나 레이더 전파를 굴절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성공이었으나 너무 큰 부작용을 유발했습니다. 1943년 7월 22일 오전 9시, 필라델피아 조선창 앞바다에는 엘드리지 호가 수톤의 실험 전기 장비를 싣고 선창에 있는 발전기에 연결된 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1,500억 볼트의 전류가 유입되면서 엄청난 자기장이 구축함을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푸르스름한 안개가 배를 감쌌습니다. 안개가 사라지고 난 후 엘드리지 호도 안개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근처에서 실험을 지켜보던 해군 장교들과 과학자들은 경이로운 광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엘드리지 호는 레이더를 피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 앞에서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약 15분 정도 지나서 발전기를 중지시켰고 다시 안개가 스미면서 호위정이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이 때 발생했습니다. 배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이 방향감각을 잃었거나 구토 증세를 보이는 등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해군은 다시 한번 투명상태가 아닌 레이더의 추적 방지만을 목표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합니다 1943년 10월 28일 오후 5시 15분 엘드리지 호에 재실험이 행해졌습니다. 발전기가 돌아가고 엘드리지 호는 반투명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푸른 광선이 번쩍하더니 배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몇 초 후에 수 마일 떨어진 버지니아의 노포크에 나타났습니다. 배가 완전히 시공여행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몇 분 후 엘드리지 호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선상에는 비참한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총 181명이 탄 이 배에 살아 돌아온 사람은 21명으로 40명은 방사능에 노출되었거나 타 죽었고 충격을 견디지 못했거나 감전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120명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특이한 경우는 다섯명의 승무원들이 배의 철골 구조물과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부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실험이 실패한지 50년 뒤에 필라델피아 주민들은 항구주변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해군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벽을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것을 계속하여 목격되어진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실험의 총책임자는 니콜라 테슬라였습니다. 테슬라는 1956년 크로아티아에서 출생한 미국 이민자로 에디슨 회사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자신의 연구소를 세워 전기공학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교류유도전동기와 테슬라 변압기 등을 세계 최초로 발명해 오늘날 전기공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 실험이 행해졌던 1943년에 작고했습니다. 카를로스 알렌데라는 인물은 실험 당시 자신이 해상을 지나다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하여 화제가 되었고, 찰스 벌리츠와 윌리엄 무어라는 인물은 자신들의 조사를 바탕으로 '필라델피아 실험 : 투명화 계획'이란 저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실험이 행해졌는지에 대해서 미국 국방성은 실험이 있었다고만 할 뿐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 해군은 위와 같은 실험이 있었다고 발표한 바 있었습니다. 위 실험을 통해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빛을 굴절시켜 안보이게 할 수 있고, 시공을 왜곡해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기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실험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기술적으로 보완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테슬라는 엄청난 전자기장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개발해 필라델피아 실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비행체까지 개발해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텅거스카지방의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 방패막 연구소 사건 엄청난 전류발전장치의 발명가로 유명한 테슬라박사는 당시 텅거스카지방의 사람이 살지않던 숲속에, 독자적으로 개발했던 세계최초의 250만 와트 '전류방패'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실험을 하고있던 전류방패란, 당시 테슬라박사가 250만 와뜨의 전력을 형성,포탄을 막아내는 실험을 하던 전력장치로, 그 실험장치는 텅거스카 지방의 원인모를 폭발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현재 학자들이 제시하는 테슬라코일의 폭발설은 당시 테슬라박사가 만들었던 발전소가 텅거스카 지방에 있던 사실과, 당시 폭발했던 괴물체가 한번도 보지못한 엄청난 힘을 발휘하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이상한점은 1908년후 테슬라박사는 전류방패를 만드는 일을 영구히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실험했다고 전해진다고한다, 나치의 신무기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들 (참고로 이 글들은 전부 테슬라 관련 자료들을 모으다가 발견한것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침입과 이에 대한 영국·프랑스의 대독선전에서부터, 1941년의 독일·소련 개전,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발발을 거쳐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에 이르는 기간의 전쟁 나치의 V-7 계획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지구상에서 최고의 지식과 과학기술을 지니고 있던 나라는 바로 나치 독일이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은 앞다투어 독일의 과학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들의 온갖 실험 결과가 이후의 과학발전에 크게 공헌했던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5백명에 달하는 기술자들과 함께 미국으러 건너갔던 나치 독일의 V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브라운 박사를 들수 있다, 베를린을 함락시킨 연합군이 비밀 공장들을 샅샅이 찾아내려 했던 것이 바로 이 V-7이었다, V-7이란 나치 독일의 비밀 무기로 하늘을 나는 원반이었다, 나치의 과학력의 전부가 이것의 개발로 결집되었다고 한다, 1978년 5월, 당시 서독에서 개최된 과학 박람회에서 한 신문기사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원반형 비행기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원반형 비행기의 세부 스케치가 첨부되어 있었지만 설계자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당시 서독의 정부 당국은 이것이 공표되더라도 안전할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기사를 쓴 사람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 비행기의 발명자가 민간인이든 정부 기관이든 간에 관계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특허 신청소에 등록되어 곧바로 극비 취급을 받아 설계자의 손을 떠나게 되었고 히틀러 직속의 연구 기관으로 보내졌다고한다, 그때가 바로 1938년이었다고한다, 연꽂문양의 원반이었다, 중앙에는 구멍이 여러개 뚫린 형태였다, 한국에도 그 설계도는 전해졌다, 본인도 우연찮게 보았다,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응용한 형태라고한다, 신문에 실린 설계도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명칭들이 기록되어 있다, 컴퓨터 ,전자기 모터,레이저 레이더 등 첨단 과학 기술의 산물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여러 도면들이 독일 정부에 의해 처분되었거나 어딘가에 은닉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에 의하면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 당시의 SS(나치 친위대) 장관 겸 경찰장관이던 하인리히 히믈러의 지휘를 받고 있던 연구 기관에 의해 그 증거의 대부분이 인멸되었거나 어둠속으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 비밀 무기가 어떻게 되었다는 내용을 실은 기사는 더 이상 볼수 없었으며 그 신문도 제 1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어 버렸다, 기록이나 증언에 의하면 히틀러의 V-7계획은 1930년대 후반부터 갑작스럽게 연구가 개시된 것으로 보인다, 빅터 샤우버거의 지휘하에 튜링겐 등 3개의 지하 비밀 연구소에서 중력을 제어해 비행할수 있는 원반 비행체의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얼마후 이 연구소의 비밀이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에 알려졌다, 그래서 히틀러는 그 연구를 대외적으로는 없던 일로 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동시에 거짓 위장을 위해 제트 엔진의 추진력에 의한 원반 개발도 착수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샤우버거의 연구는 프라하의 노스트 홀에 있는 BMW공장등 몇 군데로 분산되었으며 우수한 과학자들이 총집결되었다, 샤우버거 박사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카틀사의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초전도 모터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체에 사용할 합금의 완성이 1944년으로 늦춰지면서 모터 개발은 빛이 바랬다, 주동력으로 초전도 모터가 설치되고 전자파 추진으로 비행한다는 시험 제작 비행기는 비행모자(Flying Hat)라고 불렸으며 최종적으로 지름 40~70미터 급의 것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1945년 2월 19일 튜링겐 지하 연구소에서 제작된 무인 비행기의 실험 비행이 실시되었다, 비록 3분간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이 비행기는 고도 5000미터까지 상승을 하였고 시속 2200킬로미터로 비행하였다, 또한 이 비행기의 성능은 경이적인 것이어서 공중 정지나 전후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또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운 각도의 회전을 할 수 있었으며 고속으로 비행할 때는 기체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날수도 있었다고 한다, V-7은 독일 치하인 폴란드의 베네문데에 있는 지하 비밀 공장에서 최종 완성 단계에 들어가 있었으나 1945년 5월에 베를린이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항공기 설계기사이자 공군 대위였던 루돌프 슈라이버는 1941년 봄, 원반형 비행기 설계를 완료했으며 1942년에는 이 장치에 대한 시험 비행을 실시 했다, 그리고 1943년 8월에 슈라이버는 신뢰할만한 세명의 동료들과 함께 하늘을 나는 원반의 실물 크기 모형을 조립했다, 그러나 다음 해 여름에 그는 프라하 근교의 BMW공장에서 가스 터빈 엔진을 제트 추진 장치로 바꾼 모델로 설계를 변경했다, 슈라이버의 말에 따르면 1944년 초 조립된 원반형 비행기는 1945년 4월에 실험 비행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이 위협적인 상황으로 변해감으로 인해 완성된 1호기까지 파괴해 버리게 되었다고한다, 슈라이버는 1950년대 말에 사망했지만 당시의 일기와 원반형 비행기의 스케치 및 자료가 발견되어 그와 주변의 연구 내용이 다소나마 밝혀지게 되었다, 원반형 항공기의 개발 계획은 원래 하벨모르와 미테라는 독일의 전문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베론소 박사의 3인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벨모르와 슈라이버는 조종석을 중심으로 날개가 회전하는 가동익형 원반 비행기의 설계를 추진하고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원반 비행기는 지름이 42미터, 바닥에서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2미터 정도였다, 최고로 올라갈수 있는 고도는 13만2천미터였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2천킬로미터였다고 한다, 연합군 측은 V-7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았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치는 재빨리 시험 비행기와 설계도 등을 파기 또는 파괴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몇몇 정보에 따르면 V-7의 신형 엔진의 시험을 마치자 독일의 과학자들은 이것을 기체로부터 분리시켜 1941년 이래로 건설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남극의 비밀 기지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V-7 제조 작업에 종사했던 노동자들은 모두 종전 직후 가스실에서 사라져 갔다고 한다, 이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던 샤우버거 박사는 미국으로 가서 캐나다 항공기 회사인 AVRO사와 미 공군의 공동 개발 계획이었던 인공 원반 계획이라 불리는 원반형 비행기의 개발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슈라이버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말의 어느 날, 시카고의 길가에서 타살된 채 발견되었다, (빅터 슈라이버==> 빅터샤우버거라고 국내에 알려져 있다, 살아있는 에너지란 책을 사서보라,), 푸 파이터(foo fighter):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연합국측의 폭격기 편대가 독일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 사이 연합군들의 시야에 묘하게 반짝거리는 불빛이 들어왔다. 그 빛은 지름이 10Cm에서 1M정도의 이상한 광구나 원반형 물체였다. 이러한 물체가 조종사들 사이에서 여러차례 목격되었다. 미 폭격기 조종사들은 이 괴 물체를 푸 파이터(FOO-FIGHTER)라고 불렀다. 푸 파이터는 폭격기의 날개 끝에서 도깨비 불처럼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대체로 시속 300~800Km로 이동했으며, 노란색, 빨간색, 흰색의 연속적인 빛을 내거나 단속적으로 깜박였다. 그러나 이렇게 요동쳤음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의 눈에만 어른거릴뿐 푸 파이터는 레이더에는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 조종사들은 두려운 마음에 푸 파이터가 나타나면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조종사들의 목격담을 들은 과학자들은 푸 파이터가 일종의 대전구체(전기를 뛴 구체)일 것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라는 특수상황이 여러 가지 소문을 낳았다. 그것은 푸 파이터가 폭격기의 점화장치를 망가트리려는 독일이나 일본에서 만든 비밀병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물체들이 폭격기에 이상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다시 미군의 조종사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일종의 심리무기일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독일이나 일본측도 이런 물체들을 목격하고 이것을 연합측의 신 무기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독일이나 일본측도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푸 파이터가 외계인의 비행물체가 아닌가 하는 주장이 일기도 했으나, 미 8군은 이 푸 파이터를 대중 환각의 산물로 얼버무려 대중의 호기심을 차단해 버렸다. 푸파이터는 나치의 직경 90센티미터의 전기추진 비행공이다, 사용 발전기:기계식 플라이휠 무한동력 발전기(패러데이의 단극발전기로 추정됨), 변압기:테슬라코일(테슬라 코일은 교류도 있지만 직류도 있다,), 비펠드 브라운 효과 또는 1938년 독일정부에 특허로난 원반형 연꽃 문양 중앙에 구멍 여러개난 형태의 전기추진 비행접시 두개중 한가지를 공모양으로 만들어서 1인승 비행전기 추진 비행접시로 다수 제작, 소형으로 제작해서 무선조종 사용,(이것의 후예가 바로 로드이다, 로드는 무선전기추진 비행접시의 일종이다,), 그렘린의 진실: 로켓배낭을 극도로 발전시킨 비행장치를 1인의 비행병이 장착하고 그 장치를 작동시킬때 온몸에서 푸르스름한 발광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들 날으는 나치의 비행병들은 연합군의 폭격기나 그외의 비행기들을 날아서 접근해서 엔진을 고장내거나 그외의 여러가지로 폭격기와 비행기들을 고장냈다고 한다, 연합군의 조종사들이 보기에는 온몸에서 푸르스름한 발광현상을 내는 기묘한 생명체로 오해해서 그렘린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빅터샤우버거:그는 내파의 원리를 이용해서 2차대전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하늘을 나는 시험적인 비행접시를 만들었다. 비행접시는 성공적이었는데 내파를 이용해 비행접시를 들어올리게 하는 자기장을 개발한 것이다. 1945년 2월 19일, 실험적으로 최초의 무인 비행접시를 하늘에 띄웠다. 3분이 경과하자 1만5천 미터 상공에서 시속 2천2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았다. 이것은 그냥 하늘 위에 멈춰있을 수도 있고 뒤로 날 수도 있다. 이 비행접시는 지름이 5미터 가량 된다. 살아있는 에너지 - 빅터 샤우버거의 삶과 아주 색다른 과학이야기,저자 : 콜럼 코츠(Callm Coats) / 역자 : 유상구 / 발행 : 도서출판 양문, (살아있는 에너지란 책을 사서 보시면 빅터 샤우버거가 만들엇다던 공기추진 비행접시를 볼수 있을겁니다, 당연히 그책에서는 몇가지 중요한점이 빠져있죠,그리고 공기추진 비행접시의 제작 연도는 실제보다 몇년 늦게 표시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어째서 실제 제작연도를 한참 늦게 조작하는지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어쨋든,,,,2차세계대전 도중,,,,,나치는 전기추진 비행접시와,,,푸파이터,들을 타고 일본에 자신들의 기술력을 전수해주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나치의 푸파이터, 전기추진 비행접시들을 보고는 나름대로 우주선을 만들었는데, 이름하여 잠수함의 원리로 하늘을 날으는 진공우주선,,,,,정식명칭은 알려지지는 않았다, (일본인이 밝힌것이다, 정전기 대전 전압의 한계를 말한것도 일본인이다,,).... 1980년경,,,, 일본에서는 우리 나라에 전기추진 비행접시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밝히는 선진국들의 우주 개척 상황도: 미국은 화성에 2006년까지 3000만명을 이주시킬 계획이라고 빌클린턴 대통령이 방송에서 발표했다,본인도 보았다, 목성에는 소련정부가, 나치의 기술을 전수받은 소련정부는 목성을 제2의 태양으로 만들려고 했다고한다, 그러나 소행성이 목성에 떨어져서 소련인들 대다수 소멸, 그로인해 인공태양 계획은 망했다, 금성은 일본이, 미국과 일본은 태양속의 나치독일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서 각각의 행성의 지하 깊숙이 기지이전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0년경 어느 선진국 정부가 발표하길(선진국들은 떳떳하게 발표하고 그 말대로 일을 저지른다, 대담한 선진국, 자신네 계획이 성공할것을 확신하고서 일을 저지르는것 같다,) "화성의 미정부의 지하기지와 전 우주의 모든 지하기지들과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의 지하에 있는 모든 지하기지와 그 안의 군대와 각종 중요시설들은 미래에 전우주적인 지진이 발생하여 전멸당한다" 그런데 선진국들이 어떻게 미래를 알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선진국들이 일부러 전우주적인 지진을 일으킬것으로 보였다, 선진국들은 이미 인공위성에 지진 기계르 장착해서 사용중이라고한다, 전우주적인 지진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나치 독일: 남극기지와 남아메리카와 미국과 아르헨티나,브라질, 소련,달기지와 태양기지로 다양한곳에 숨어살고 있다, 히틀러의 야망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세계정복을 이루기위해 지금도 노력중이다, 일본: 여전히 세계정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를 먹을 계획이라고한다, 중국: 중국 주변의 작은 나라들에 사람을 파견해서 다스리고 있다고한다, 중국에서 파견된 고위층은 우리 주변의 슈퍼마켓 주인처럼 위장해서 살고 있다고한다, 소련: 나치와 손잡고 있으니 무슨짓을 벌일지 예측불허이다, 현재 우주에서는 일본,나치독일,소련이 손잡고 있다고한다, 미정부는 과거 태양속에 살고 있는 나치독일을 제거하기 위해 핵폭탄을 태양에 버려서 폐기시키자고 했다, 그야물론 그당시 발표내용을 보면 평화적인 핵폭탄 제거 계획이긴 하지만, 실상은 나치독일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였다, 그러나 태양 둘레를 감싸고 있는 수백만도의 코로나장벽(지금 현재는 나치 독일에 의해 수천만도로 올라갔다,)은 방사능과 엄청난 에너지의 레이저를 막아내는 기능이 있다고한다, 초고온의 플라즈마는 거울과 같은 효과가 있어서 레이저를 반사시킨다고한다, 플라즈마의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반사효율이 높다고한다,(코로나도 플라즈마이다,), 파리 포(Paris Gun) 1차대전때 독일군은 파리 포(Parus Gun) - 빅 베르타(Big Berta - 대포 제작자인 크루프 사장의 부인 이름이라던-_-가)라고도 하는 - 라는 거포를 만들어 파리 포격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철도로 이동하는 이 대포는 34m의 길이와 125t의 무게로, 180kg의 장약을 이용하여 7kg의 폭발물을 탑재한 120kg의 포탄을 최대 131km까지 날릴 수 있었습니다. 52도 각도로 발사한 후 170초간의 탄도비행 끝에 포탄은 40km의 높이까지 날아갔으며, 이는 1942년 10월 3일 V-2로켓이 도달하기 전까지 인간이 지상에서 가장 높이까지 날린 물체였다고 합니다. 전함의 구경 15인치(38cm) 포신과 특수 제작된 40m포신을 합쳐서 21cm의 구경을 가진 7개의 포가 만들어졌는데, 포를 얹을 포가는 만들어진 것 중 2개만이 쓰였다고 합니다. 1918년 3월부터 8월에 걸쳐 이 포를 이용하여 독일군은 351발의 포탄을 크레피의 숲으로부터 파리에 퍼부었고, 그 포격으로 인하여 256명의 사상자와 620명의 부상자가 발상하였다고 합니다. 전쟁 후에 미군이 샤토우-티에리 근처에서 예비로 보관해두었던 포신은 없는 1개의 포가를 포획하였다고 합니다. 군사무기로서의 가치를 따지면 이 포는 실패작이라고 합니다. 포신은 65발만 쏘면 바꿔 주어야만 하며, 정확도는 형편없어서 목표물이 도시급은 되어야 맞출 수 있는데, 투사체는 그에 비해 엄청나게 자그마하지요. 그러나 그 때까지 인간이 만든 물건중 가장 장거리를 날아갈 수 있었던 물건으로, 2차대전의 V-series무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V-3 V-3 호츠드루크품페(Hochdruckpumpe)는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사르 로에츨링(Saar Roechling)에 의해 설계된 대포였습니다. 140m나 되는 긴 포신의 이15cm구경 대포는 140kg의 포탄을 165km까지 날리는 것으로 계획되어졌다고 합니다. 사진과 같이 생긴 V-3는 발사시에 포탄의 초구포속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본 피르퀘트(von Pirquet) 남작의 개념에서 나온 전기장치에 의한 순차적인 전기동작경사측면약실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 방식은 초구포속을 1500m/s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빌사되는 길쭉한 모양의 포탄은 안정된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꼬리날개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25년 후에 캐나다의 마틀렛(Martlet) 계열 투사체들이 사용한 방식과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미군의 리만(Lyman)과 하스켈(Haskell)은 1880년대에 이런 개념을 가진 시작품을 만들었으나 실패하였었습니다. 발화한 포연이 포탄이 지나가기 전에 미리 앞서나가 포탄의 추진력을 잡아먹기도 하고, 포탄이 지나간 다음에 발화하여 포탄에 추진력을 실어주어야 할 보조장약들이 미리 터져 방해가 되는 일이 생기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1941년 사르 로에츨링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기동작방식을 제안하였습니다. 20mm 구경의 시작품이 폴란드의 미스드로이(Misdroy)에 있는 테스트 사이트에 만들어졌고, 1943년 4-5월에 걸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히틀러는 이 대포가 V-1과 V-2를 보조하는 3번째의 테러무기가 될 수 있으며 1일 600t의 폭탄을 런던에 떨굴 수 있다는 말에 설득되었고, 영국을 포격하기 위하여 프랑스에 이것을 담을 50개의 콘크리트 벙커를 지을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우선 5개의 대포가 웨제(Wiese)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런던으로부터 165km 떨어진 칼레(Calais)근처의 미모에퀴즈(Mimoyecques) 지역에 설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대포들은 5.2m의 두꺼운 콘크리트로 방호된 30m의 석회함 언덕 안에 고정된 각도로 만들어졌습니다. 경사측면연소실들은 내강의 3.65m간격마다 위치해 있었는데, 이 모듈화된 병기는 몇 발 발사후에는 수명이 된 측면 연소실을 부분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수백 명의 강제노동자들이 1943년 9월부터 석회암 산의 표면으로부터 30m아래에 최초의 터널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스의 저항세력들은 연합군에게 거의 즉시 공사에 대한 새 첩보를 보냈고, 공사가 시작된 지 2달만에 이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연합군 중폭격기들의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사는 연합군의 폭격 - 그 중에는 전함 티르피츠(Tirpitz) 사냥에 썼던 5.4t의 톨보이(tallboy) 폭탄도 있었다고 합니다 - 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순탄하게 진척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44년 7월 6일, 3발의 톨보이 폭탄이 열려져 있던 포의 갱도를 따라들어가 30m정도 굴러들어간 다음에 폭발하였습니다. 수십 명의 일꾼들이 사망하였으며, 공사는 이 시점에서 중단되었습니다. 연합군은 폭격의 성공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모예퀴스와 다른 벙커들을 날려버리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구상했습니다. 미 공군 측에서는 아프로디테 계획(Aphrodite Project) 미 해군 측에서는 모루 작전(Operation Anvil)이라는 이름 아래에, 무선으로 원격조종되는 비행기 - B-17이나 B-24 - 에 10t정도의 폭탄을 싣고 목표물 근처에 떨어뜨린다는 계획이 연구되었습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비행기를 이륙시키고 동행하는 비행기가 이 (실제적으로) 미사일을 목표까지 정확하게 유도하는 동안 낙하산으로 탈출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전은 실험 후에 낮은 성공 가능성과 몇 명의 사상자 - 이 중에는 후일 대통령이 되는 동생이 있는 죠셉 케네디(Joseph P. Kennedy)가 있었다고 합니다 - 를 낸 이후 1944년 8월에 중단됩니다. 1944년 8월 말에 독일군은 영국군이 바로 앞에까지 진격해오자 이 시설들을 포기하였고, 영국군은 미모예퀴스 단지를 접수한 다음 1945년 5월 9일 폭파시켜버립니다. 또한 2개의 작은 크기(포신 길이 45m)의 V-3가 1944년 12월 아르덴느 진격 작전의 지원을 위하여 앤트워프(Antwarp)와 룩셈부르크(Luxemburg)에 만들어졌는데, 신뢰성은 별로 없다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몇 발이 발사되기는 했으나 결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 목 : 나치스의 제3제국 1944년,독일의 패전이 눈앞에 다가오자 게슈타포 장관 하인리히 뮬러의 지령에 의해 어떤 비밀조직이 만들어졌다.그 조직은 나치스가 안전하게 다른나라로 탈출할수 있도 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것이었다. 이 조직에 포함된 사람들은 독일인이 아니었다.히틀러의 백인 우월주의와 반 유태인 사상을 신봉하는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 등의 유럽인들이었다.이들의 도움으로 나치 스는 연합군을 피해 안전한 아르헨티나,파라과이 등으로 도망갈수 있었다.이들은 또 다른 조직인 스파이더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온 나치스와 독일인 과학자들과 합류해 아무도 모르게 잠적해 버렸다. 그렇다면 이들이 잠적한 곳은 어디이며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히틀러와 나치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남미 어딘가에 많은 나치스 잔당과 그들의 자손이 살고 있으며,그들은 전쟁 전 독일 그대로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리고 첨단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연구소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좌절된 미래병기의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그 병기들 중에는 미국과 옛 소련이 힘을다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것도 포함되 어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그들의 최종목표는 미국과 옛 소련이 대결할 때 그 조종자로 최후까지 살아남아 히틀러 총통의 유지를 계승하여 새로운 제3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라고 한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25만명의 독일인 남녀가 사라져 버렸다.국토도 좁고 주민등록증 제도도 있었던 독일에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는 일 이 발생할수 있었을까? 전쟁이 끝난 다음 연합군측은 이 부분에 대해 여러가지로 추측했으나 아무런 결론도 얻지못했다.사라진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1945년,히틀러는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 안 가서 소련과 미국이 충돌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그 때에 결정적인 역할 을 하는것은 우리 독일인 '라스트 바탈리온',즉 최후의 부대이다." 또한 1943년 독일 해군 장관 데니츠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U보트 함대는 총통을 위하여 비밀리에 이 세상의 천국인 동시에 난공 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는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히틀러를 위해 난공 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면 그 곳은 어디일까? 일부사람들은 바로 남미의 칠레에 있다는 에스탄자를 UFO기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히틀러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사람들이 많다.특히 히틀러를 잘 알고있는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과 소련의 스탈린은 그가 절대로 자살할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스탈린은 1948년 4월호<더 크로스 앤드 더 프래그>지에 히틀러는 죽지 않고 스페인 이나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고 말한다. 1945년,아돌프 히틀러는 베를린 관저 지하호에서 아내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 다고 했다.그런데 정말로 스탈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시체는 누구일까? 그 시체는 히틀러를 많이 닮은 바솔디라는 식료품상 주인으로 완벽한 훈련을 받은 다음,히틀러 대신 그 곳에서 죽었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서 '2차대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있다면 단지 사망자와 생존자가 있을 뿐이 다.그러나 최후의 부대는 독일군 부대가 될것이다.'라는 히틀러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독일이 패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미래에 대해 자신에 차 있었다.그렇다면 그는 미래의 전쟁을 생각하면서 최후의 부대를 착착 준비하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미국이 독일에서 압수한 과학 개발 관계에 관한 자료는 화물열차 30대분에 이른다 고 한다.이렇게 독일이 개발한 기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두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것은 미국과 옛 소련이다. 나치스의 제3제국 1944년,독일의 패전이 눈앞에 다가오자 게슈타포 장관 하인리히 뮬러의 지령에 의해 어떤 비밀조직이 만들어졌다.그 조직은 나치스가 안전하게 다른나라로 탈출할수 있도 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것이었다. 이 조직에 포함된 사람들은 독일인이 아니었다.히틀러의 백인 우월주의와 반 유태인 사상을 신봉하는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 등의 유럽인들이었다.이들의 도움으로 나치 스는 연합군을 피해 안전한 아르헨티나,파라과이 등으로 도망갈수 있었다.이들은 또 다른 조직인 스파이더의 도움으로 도망쳐 나온 나치스와 독일인 과학자들과 합류해 아무도 모르게 잠적해 버렸다. 그렇다면 이들이 잠적한 곳은 어디이며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히틀러와 나치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남미 어딘가에 많은 나치스 잔당과 그들의 자손이 살고 있으며,그들은 전쟁 전 독일 그대로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리고 첨단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연구소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좌절된 미래병기의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그 병기들 중에는 미국과 옛 소련이 힘을다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것도 포함되 어 있다고 한다. 더구나 그들의 최종목표는 미국과 옛 소련이 대결할 때 그 조종자로 최후까지 살아남아 히틀러 총통의 유지를 계승하여 새로운 제3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라고 한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25만명의 독일인 남녀가 사라져 버렸다.국토도 좁고 주민등록증 제도도 있었던 독일에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는 일 이 발생할수 있었을까? 전쟁이 끝난 다음 연합군측은 이 부분에 대해 여러가지로 추측했으나 아무런 결론도 얻지못했다.사라진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1945년,히틀러는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 안 가서 소련과 미국이 충돌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그 때에 결정적인 역할 을 하는것은 우리 독일인 '라스트 바탈리온',즉 최후의 부대이다." 또한 1943년 독일 해군 장관 데니츠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U보트 함대는 총통을 위하여 비밀리에 이 세상의 천국인 동시에 난공 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는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히틀러를 위해 난공 불락의 요새를 만들었다면 그 곳은 어디일까? 일부사람들은 바로 남미의 칠레에 있다는 에스탄자를 나치기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스탈린은 1948년 4월호<더 크로스 앤드 더 프래그>지에 히틀러는 죽지 않고 스페인 이나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고 말한다. 1945년,아돌프 히틀러는 베를린 관저 지하호에서 아내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 다고 했다.그런데 정말로 스탈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시체는 누구일까? 그 시체는 히틀러를 많이 닮은 바솔디라는 식료품상 주인으로 완벽한 훈련을 받은 다음,히틀러 대신 그 곳에서 죽었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서 '2차대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있다면 단지 사망자와 생존자가 있을 뿐이 다.그러나 최후의 부대는 독일군 부대가 될것이다.'라는 히틀러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독일이 패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미래에 대해 자신에 차 있었다.그렇다면 그는 미래의 전쟁을 생각하면서 최후의 부대를 착착 준비하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미국이 독일에서 압수한 과학 개발 관계에 관한 자료는 화물열차 30대분에 이른다 고 한다.이렇게 독일이 개발한 기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두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것은 미국과 옛 소련이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폴라리스 잠수함,인공위성등 모두가 독일의 과학자가 2차 대전 전부터 연구했던 것들이다. 이렇게 연합군은 독일이 비밀리에 개발하던 대부분의 병기들을 손에 넣었지만 딱 한가지,차지하지 못한것이 있었다.이 비밀병기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나라는 오직 영국뿐이었다.미국,옛 소련,프랑스는 그저 전쟁에서 빼앗은 독일의 병기를 차지하기 에 바빴다.그러나 영국은 첩보망이 가장 활발한 데다가 유럽에서는 독무대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수 있었다. 1945년 3월, 미군 폭격기 12대가 독일 상공에서 격추된 사건에 대해 영국 첩보활동 기록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날개와 방향타가 없는 원형의 독일 전투기가 돌연 미국 폭격기에 접근해서 그들의 비행로 앞을 무서운 속도로 통과했다.그 때 독일 전투기는 푸른 연기를 수차례 발사 했는데, 몇 초 후 미국 폭격기는 불을 뿜더니 차례차례 공중에서 폭팔되었다. 그 사이 독일의 원형 전투기는 벌써 지평선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영국 첩보부는 전쟁 후 독일에서 찾아 내야 할 많은 병기 중에서 이 원형의 비행물체를 제 1순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독일의 비밀 병기 설계도 가운데 지금의 우주비행 접시와 똑같은 설계도면이 발견되어 히틀러의 제3제국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옛 소련이나 미국에서조차 개발하지 못하는 비밀병기들을 제3제국이,제한된 밀림 지역에서 그것도 부족한 자본으로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독일의 비밀병기 개발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과 사람들이 정말 사라진것 일까? 제3제국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이 갈 곳은 오로지 한 곳,제 3제국뿐이라고 말한다. 히틀러의 의문의 자살, 사라진 사람들,비헹접시를 너무 닮은 독일의 비밀병기설계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후 , 남극 부근에서 푸른옷을 입은 나치의 친위대들이 발견되었다고한다, 뿐만 아니라, 달에 착륙한 미국정부는 나치의 전기 추진 비행접시들의 위협으로 인해 달을 포기하고 그 후로는 달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고한다, 소련역시 나치의 달기지를 발견하고 나치의 위협으로 인해 결국은 달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고한다, 현재 미국에는 많은수의 나치들이 살고 있다고한다, 뿐만 아니라 남미 전체에 나치들이 상당수 퍼져 살고 있을뿐만 아니라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다고한다, 독일전차 Sturmtiger[폭풍의 호랑이] 독일 전차 "Sturmtiger[독일어로 폭풍(Sturm)+호랑이(Tiger)]"는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에 스탈린그라드의 시가전을 지원하기위해 타이거(Tiger)전차를 개조하여 만든 65톤의 전차입니다. 이 전차는 5명의 전차병이 크레인을 이용하여 약 345kg의 무게와 1.5m에 이르는 로켓포를 12~13개 탑재하여 발사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700마력으로 시속 약 40Km로 달리며 약 120km까지의 범위를 540리터의 연료로 커버했다고 합니다. 자체추진 능력을 지닌 로켓포 일회의 발사로 주변의 3대의 셔만전차를 완벽하게 부수었다고 하니 그 화력이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이전차를 유심히 보면 다른 전차와는 다른 특징이 보이는데 그것은 380mm에 이르는 mortar(포)의 구경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설계를 했을까요? 그 장단점을 간단한 역학 계산으로 한번 검토해 봅시다. 우선 포의 단면적(S)는 포탄을 발사하는 내부압력(Pm)과 곱해져 포탄을 포신으로부터 밀어내게하는 힘이 되고, 계산식으로 표현하면 F=PmS가 됩니다. 포탄은 포신을 통과하면서 일을 받게되는데 그 크기는 포신의 길이를 L이라 하면 W=FL이 됩니다. 이때 포탄의 발사속도는 포신의 마찰력을 무시하면 포탄에 작용하는 일-운동에너지 보존법칙에의해서 다음과 같은 관계식이 성립합니다. 여기서 m은 포탄의 질량입니다. 그러므로 발사속도이고 D는 포의 직경입니다. 위의 식으로부터 Sturmtiger와 같이 질량이 큰 포탄을 사용하는 경우 발사속도를 크게하기 위해서 단면적(S)을 크게하거나 포신의 길이(L)를 길게 해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이 경우 단면적은 직경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직경을 키우는 것이 포신의 길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효과적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Sturmtiger의 mortar의 구경은 380mm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면 설계상의 다른 문제점은 없었을까요?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것은 재료역학적인 강도설계입니다. 포신안의 평균압력은 포신을 길이방향으로 쪼개려고 하고 이 쪼개는 힘을 포신의 원주방향의 재료가 견디게 되는데 간단한 계산식에 의해 이 포신의 두께를 계산할수 있습니다. "발사시 내부압에 의해 포신에 가해지는 힘= 포신이 재료역학적으로 저항하는 힘"이므로 이 됩니다. 여기서 b는 포신의 두께이고 σ는 재료의 허용응력입니다. 이 계산식에서 포신의 두께는 포신의 길이와 관계가 없고 직경에만 비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산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신의 직경이 커지면 이에 따라서 포신의 두께도 비례해서 증가해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Sturmtiger의 포신의 두께가 상당히 두꺼웠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포신의 길이가 그렇게 짧은가하는 의문입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이 경우 포신의 길이가 길어지면 전차의 포의 길이방향 질량분포에 의한 회전관성모멘트가 증가해서 전차의 조정성이 해쳐지기 때문입니다(물론 정조준을 하는 경우가아니고 전차의 이동중 조준하거나 움직이면서 조준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포신이 길어지면 위의 계산식에서 알 수 있듯이 발사속도(v)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Sturmtiger는 대전차포를 탑재한 전차와 같이 고속으로 탄환을 발사하는 전차가 아니고 박격포와 같이 큰 각도(앙각)로 포탄을 발사하는 전차에 가깝다는 것을 공학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전차의 포의 직경과 포신의 길이를 보면 대략 그전차가 어느 정도의 성능을 지녔는 지 알수 있을 것입니다. 포신이 길고 포의 직경이 작은경우 포신의 두께를 작게할 수 있고 고속의 포탄을 발사할수 있지만 회전시 조정성에 유의해야하며, 포신이 짧고 포의 직경이 큰경우 포신의 두께를 크게해야하고 포탄의 발사속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조정 안정성이 해결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서부극을 보면 원거리 저격시에는 총신이 긴 장총을 사용하고 권총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는데 총신이 짧은 권총은 목표를 겨냥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탄환의 발사속도가 총신이 짧아 장총에 비하여 느리기 때문입니다. Sturmtiger에 크레인을 이용하여 포탄을 올리는 모습. 포탄의 크기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쉬운 역학]탱크의 포신 끝 양쪽에 구멍을 둔 이유 전쟁기념관에서 과거의 전차에 달려있는 대포의 포신을 보면 끝 쪽에 양쪽으로 구멍이 뚫어져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일반적인 대포와 달리 왜 구멍이 뚫어져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 않습니까? 물체가 운동을 할 때는 뉴턴의 운동법칙에 의하여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등이 성립하는데 대포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중에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총을 쏠 때에 총탄이 나아가는 반작용으로 인하여 총의 개머리판이 위치한 어깨가 뒷쪽으로 밀리는 것을 느끼고 또 보게 됩니다. 이것은 스케이트를 신고 얼음판 위에 선 상태에서 두사람이 서로 밀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쉽게 체험하여 볼 수 있습니다.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이 가벼운 사람보다 덜 밀리게 되지만 두사람이 동시에 뒤로 밀리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뉴턴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포도 어마어마한 힘으로 포탄을 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대포 자체는 뒤로 밀리게 됩니다. 지상이나 군함에 설치되어 있는 대포의 발사 모습을 보면 대포에 완충장치가 있어 포신이 뒤로 밀려 들어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탱크에 설치되어 있는 대포는 탱크자체가 포탄의 반작용을 흡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포탄이 발사되면 포신속의 공기를 상당한 압력으로 뚫고 나아가야 하는데 이 공기의 반작용 압력을 줄여주는 방법이 바로 포신에 구멍을 뚫는 것입니다. 포신에 구멍을 뚫으면 포탄이 나아갈 때 밀어내는 공기의 양이 많아져 반작용을 줄여줄 수 있을 뿐더러 소리의 분산효과도 있고 방열에 의한 냉각효과와 아울러 포구에서 일어나는 먼지의 분산효과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니그마=에니그마(Enigma) - 에니그마(Enigma)는 2차대전때 독일군이 사용한 암호생성기이다. 가로세로 30cm, 높이 15cm, 무게 30kg의 에니그마는 독일군 사령부와 각 전선의 예하 부대는 물론, 대서양 U-Boat 함대와의 연락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령부와 예하 부대간의 교신을 연합군이 도청하더라도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도록 에니그마를 이용해 암호화했던 것이다. 에니그마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수수께끼라는 뜻으로서, 1919년 네덜란드의 후고 알렉산더 코흐가 기본 설계를 개발했고, 1927년 독일 기술자 아르투르 세르비우스(Arthur Schebius)가 특허권을 매입한 후 회전자를 설계하여 추가하였다. 그 후 1930년대에 들어 독일 해군이 에니그마를 도입했고, 잇달아 육군과 공군도 도입하게 되면서 에니그마의 성능은 더욱 향상되었다. 1938년 겨울에는 회전자가 5개로 늘어났고, 1940년 5월에는 8개까지 늘어났다. 에니그마 암호화의 비밀은 회전자(Rotor)에 있었다. 3개의 회전자를 가진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각각의 회전자는 26개의 알파벳 문자열을 가진 순열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기를 통해 문자를 입력하면 첫 번째 회전자가 회전하며, 첫 번째 회전자가 1회 회전하면 시계의 원리처럼 두 번째 회전자가 한 칸 움직이고 똑 같은 원리로 세 번째 회전자가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논리로 3개의 회전자를 사용할 경우의 조합 수를 계산하면 26×26×26 = 17,576 개가 된다. 그리고 3개의 회전자는 서로 위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의 수가 6가지가 되고, 또 회전자의 링 위에 표시된 알파벳도 임의 변경이 가능했기 때문에 회전자의 조합 수는 더욱 많아진다. 즉, 회전자의 위치 변경에 따른 경우의 수 6, 문자 하나 입력시 조합 가능한 경우의 수 26×26×26, 여기에 회전자 알파벳의 임의 변경을 통한 조합의 수 26×26×26를 감안하여 총 6×26×26×26×26×26×26 = 1,853,494,656 개의 조합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회전자 뒤의 반사체(Reflector)가 임의의 문자 교환을 통해 조합의 수를 더욱 늘려서 한 글자도 절대로 똑 같은 글자로 암호화되지 않게 해주었다.(예를 들어 B는 절대 B로 암호화되지 않는다.) 전쟁초기에는 7쌍(14글자)의 알파벳을 서로 교환하고 나머지 12 알파벳은 그대로 통과시키는 반사체를 사용했는데 이 경우 생성가능한 경우의 수는 1,305,093,289,500 개가 된다. 따라서 이 숫자에 앞에서 계산한 에니그마 조합의 수를 곱하면 생성가능한 조합의 총 개수는 약 4,920,000,000,000,000,000,000라는 엄청난 숫자가 되는 것이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존재하지 않던 당시로서는 이렇게 생성된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또한 독일군은 전쟁 발발 후 회전자의 설정을 8시간마다 교체하였으며 전송규칙을 수시로 개정하는 등 보안에도 힘썼기 때문에, 독일군 당국에서는 연합군이 도저히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하지 못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에니그마의 존재를 알고 그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폴란드였다. 독일이 에니그마를 군사용으로 개발했을 때부터 폴란드는 에니그마 해독을 위한 부서 BS4(독일 암호 해독반)를 만들었다. 그러나 별 성과없이 3~4년의 세월이 지났고, 수학자 르옙스키가 합류한 뒤에야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암호 시스템이 그러하듯이 시스템의 취약점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실수'이다. 에니그마를 사용하는 암호병은 전문을 암호화하여 보내기 전에 에니그마의 초기설정 값을 암호병 자신이 결정해서 그날의 초기설정 값으로 두 번 반복해서(예를 들어 'YUNYUN') 보내야 한다. 그런데 암호병들은 한번 사용한 설정 값은 다시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에도 불구하고 자주 같은 값을 반복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병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문자나 간단한('AAA'같은) 문자들을 사용하였다. 르옙스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자주 사용되는 처음의 6자에 무슨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 정보국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정보를 받게 된다. 독일군이 병사들에게 나누어준 에니그마의 사용설명서를 접하게 된 것이다. 이에 힌트를 얻어 모든 통신문의 처음 6자를 모아 분석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이 6자는 3자가 2번 반복된다는 사실과 회전자의 초기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에니그마는 서서히 해독되어져 갔다 분석은 계속되어 일 년의 시간이 지난 후 결국에는 105,456개의 회전자의 모든 초기상태를 한 도면에 정리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독일군의 암호문은 폴란드측에 의해 20분 안에 해독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폴란드 측의 해독 방법은 독일이 에니그마의 운용 방법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헛수고가 될 수 있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1937년 말에 독일군은 암호기의 초기설정(Grundstellung) 운용 방법을 변경하였고 또 1938년 12월에는 회전자의 수를 3개에서 5개로 높였다. 매번 폴란드 측에서는 새로 시작해야만 했지만 결국 에니그마를 해독할 ?있는 기계(Bomba)를 만들기는 하였다. 비록 해독을 위한 시간이 너무 길어 실용성이 없었지만 말이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 6주 전인 1939년 6월 25일, 폴란드 첩보부는 바르샤바 근교의 몰로코프-피리 숲 속 지하실에서 영국첩보원을 만나 자신들이 입수한 에니그마와 사용법을 넘겨주었다. 영국은 에니그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에니그마를 입수한 다음날 자정이 되기 전에 에니그마를 영국 본토로 이송했다. 1939년 2차대전 발발 후, 영국은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런던 근교 블레츨리(Bletchely) 파크의 농촌 주택에 특별센터를 설치하고 독일의 암호해독 작전에 “울트라”라는 암호명을 붙였다. 영국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모두 이곳에 소집되었다. 그 중에는 수학박사 알란 튜링(Alan Turing)도 포함되어 있었다. 블레츨리 파크의 과학자들은 분석 끝에 에니그마로 암호화되는 문자는 결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이용해 해독의 실마리를 잡아나갔다. 예를 들어 영국은 전술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지점에 폭격기를 출동시켜 발생하는 독일의 암호 전문을 도청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에니그마 암호 체계의 일부를 해독할 수 있었다. 이것을 크립(crib, 커닝 페이퍼)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독일군 통신문에 크립이 많이 생성되게 유도한 후 그것을 찾아냄으로써 그 날 쓰이는 에니그마 설정키를 찾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독일군은 한 달 동안 같은 회전자 배치를 두 번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므로, 이 방식을 통해 한 달 동안 매일 한 가지 씩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다. 그 밖에 전쟁 도중 노르웨이, 프랑스, 이스라엘 등지에서 에니그마 장비와 해독 코드 일부를 입수하는 전과도 있어서 해독에 도움을 주었다. 알란 튜링이 주축이 된 블레츨리 파크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폴란드의 해독기(Bomba)를 본 따 에니그마 해독기 ‘폭탄(Bombe)’을 만들었다. 이 때는 1943년 12월 이었다. 폭탄은 2400개의 진공관으로 이루어진 높이 3미터의 거대한 장치였다. 공학 판독기에서 해석된 메시지는 5비트(bit) 텔레프린트 코드로 테이프에 천공되었는데, 1초에 약 5,000자를 천공할 수 있었다. 폭탄은 이렇게 초당 5천자의 암호문이 종이 테이프를 타고 들어가면서 에니그마의 암호와 일치할 때까지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한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부적으로 폭탄은 수를 세거나 비교하고, 간단한 산술 연산을 할 수 있는 전자 부속들을 갖추고 있었다. 계산결과는 전기타자기를 경유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프로그램은 플러그판의 스위치를 조작함으로써 가능했다. 각 세트는 한 차례에 1만7,576개의 조합을 점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폭탄은 1946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만든 ‘에니악’보다도 앞선 세계 최초의 컴퓨터였다. 폭탄이 언제쯤 해독을 마치고 결과를 놓을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은 폭탄을 비밀 장소에 설치하고 폭탄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여자들에게 관리를 맡겼다. 받았다. 여자들의 임무는 폭탄이 멈출 때 과학자들을 부르는 것이었다. 폭탄의 성능은 이후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더욱 향상되었으며, 1943년 이후에는 모든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독일군 사령부가 보낸 전문을 예하부대가 받아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영국군 사령부도 전문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2차대전 종전 후, 영국군은 치열한 논쟁 끝에 보안상의 이유로 폭탄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오늘날 폭탄은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잔해만이 남아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블레츨리 파크의 존재는 연합군 내에서도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던 것이나 소련의 스탈린은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블레츨리 파크 내부에 소련 첩자가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맑시즘에 심취해 있던 영국군 장교 한 명이 블레츨리 파크에 근무하고 있었고, 그는 틈틈이 해독된 전문을 소련 측에 전달하며 소련에 협조하였다. 독일군의 소련 침공시 연합군은 해독한 정보를 근거로 독일군의 모스크바 공격 일시를 알려주었는데, 스탈린은 결코 그 정보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모스크바에서 반격을 준비했고, 덕분에 독일군을 모스크바 입구에서 격퇴할 수 있었다. 동부전선의 판도는 이때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일찍부터 자신들의 정보가 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스파이들의 정보 유출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고, 에니그마가 해독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독일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2차대전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자료출처 http://www.berlinreport.com/1004/00/6/amho/amho.htm http://windshoes.new21.org/person-turing.htm http://pllab.dyu.ac.kr/~ace/kungfudata/enigma.ppt EBS 군사다큐멘터리 방영분 ‘2차대전비화’(2003년) 1935년에 세계 최초로 독일이 개발한 'FE1' TV 세트(테슬라의 발명품을 바탕으로 발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사용된 첨단 TV 카메라(테슬라의 발명품을 바탕으로 발전) 독일의 콘라드 주우스 박사가 1938년에 개발한 인류 최초의 컴퓨터 'Z-1' (테슬라의 발명품을 바탕으로 발전 시킨것임) 1944년에 개발된 'Z-4' 컴퓨터는 V-2 로켓의 궤도를 계산하는데 사용됐고 이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언어 '플랭칼쿨'을 사용. 1942년에 사용된 오디오/비디오/데이터 녹음기 '마그네토폰'(테슬라의 발명품을 바탕으로 발전) 마그네토폰은 나치 친위대에서 컴퓨터 데이터를 저장하고 자료 사진과 동영상을 기록하는데 사용. 1940년 베를린에서 촬영된 첨단 전자 현미경(테슬라의 전자현미경을 바탕으로 발전) 1939년에 시험 비행에 성공한 제트추진 전투기 'Heinkel He 178' 1942년에 시험 비행에 성공한 헬리콥터 'FL 282' 1943년에 시험에 성공한 현대식 레이다 'FuSe 62' 1944년에 시험에 성공한 첨단 지대공 미사일 '레인토츠터' 1945년에 시험비행에 성공한 제트추진 폭격기 'Ju 287' 2차세계대전중 독일 저격수가 사용한 야간투시경 '뱀파이르'(테슬라의 발명품을 바탕으로 발전) 2차세계대전중 야간 작전을 위해 독일 장갑차에 장치한 적외선 투시 장비 1944년 10월 12일 루젠 섬에서 행해진 나치 독일의 원자탄 실험 뮌헨 산악에서 발견된 나치의 극비 군사 연구소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든 1945년 5월 2일 미국 워싱톤에 있는 OSS 본부는 런던에 주재한 유럽총괄지부로부터 독일의 뮌헨 지역을 점령한 미육군 7사단이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긴급보고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보고된 내용은 미 7사단 군인들이 뮌휀 북쪽 산악지대에서 독일군의 비밀기지를 발견했다는 것과 그들이 비밀리에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에 조종석이 있는 원형접시 모양의 비행 물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과거에 V2 로켓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중 독일군이 접시형 항공 기와 개인용 로켓벨트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나 이와 관련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던 OSS는 런던 지부에 연락하여 미 공수부대 소속 헌병들과 영국군 코만도 병력을 현지에 급파시켜 해당지역을 패쇄시키고 연합군 장병 들과 현지인들의 출입을 일절 금지시키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깊은 숲속에서 발견된 독일군의 비밀기지는 겉으로 보면 숲이 울창한 산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완벽히 요새화 되어있었다고 하는데 비내린 땅에 남은 군용트럭들의 바퀴자국을 추적하다 기지의 입구를 발견한 7사단 장병들은 비밀기지 내부에 있던 민간인들이 손을 들고 항복하며 영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불어 세 언어로 쓰여진 메모종이를 건네주자 이를 읽다 자신들은 군인이 아니며 군인들은 기지에서 모두 철수했고 기지 안에 아무런 살상적 무기도 남아있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 이니 자신들을 군 정보국으로 안내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 다고 합니다. 곧이어 민간인들을 트럭에 태워 부대로 후송시킨 뒤 기지 내부를 둘러보던 군인들은 그곳에서 마네킹에 장착된 개인용 로켓벨트들과 실물의 12분의 1 크기인 실험용 V2 로켓들, 그리고 개인용 철제 벙커나 토치카로 추정되는 사람이 안에 탑승하도록 만들어진 원반형 물체의 설계도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지 천장에 있는 굵은 콩크리트 기둥이 철제 벽으로 막힌 지점의 내부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한 군인들은 보통 도서관용 대형 책꽂이가 있던 벽 뒤로 밀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책들을 땅에 떨구기 시작하다 한 책을 집어드니 책으로 위장된 버튼이 작동되고 책꽂이가 회전되면서 앞에 선 그들을 벽 뒤에 있는 밀실로 자동으로 이동시켰다고 하는데 그 안에 지름 25m의 초대형 비행접시가 있는 격납고가 있는 것을 발견 하고 자신들이 분명 비밀 신무기 연구소를 발견했다고 판단한 뒤 런던에 있는 OSS에 이같은 사실을 보고했다고 합니다. 특파명령 7시간만에 현장에 도착한 OSS 요원들과 군인들은 당시 본부의 지시대로 비밀기지 주변에 여러겹의 철조망과 고압선을 치고 망대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기지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했다고 하는데 기지 내부에 부비 트랩이 설치되어 있을까봐 우선 설계도들과 내부에 있던 기계 들을 모두 사진으로 촬영하여 런던으로 발송시킨 요원들은 그 후 기계들을 안전한 것과 안전치 못한 것으로 분류하여 하나씩 포장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기지 내부 격납고에 있던 비행접시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을 둘러본 요원들은 누군가 독일어로 쓰여진 계기들 밑에 영어로 명칭설명을 병기해 놓은 것을 보고 이를 확인하다 해석이 모두 맞는 것을 보고 사진을 촬영한 뒤 이를 본부로 이송했다고 하는데 문제의 비행물체에는 조종간 대신 선체 중앙 부분에 작은 철제 공이 있고 그 주위에 아이들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작은 의자들이 5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치의 소년 유격대원들을 위해 조종석들을 매우 작게 만든것이다, 전쟁의 막바지에 달한 나치는 군인들이 부족해서 어린 소년들까지 동원한것이다, 잔악무도한 나치놈들 ,어린애들까지 전쟁에 이용하다니,). 선체 내부에는 밖이 깨끗히 보이는 창문이 있지만 밖에서는 문제의 창문이 쇠벽의 일부로 보이는 것을 발견한 요원들은 7사단 본부로부터 심문받던 민간인들이 독일의 국방연구소 과학자들이며 그들이 기지에서 연구해온 사항들이 미래의 인류를 위해 무척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이니 아군과 적군의 개념을 떠나 자신들이 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본부로 돌아가 그들의 요구사항을 듣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체포된 국방연구소 과학자들을 심문하던중 그들이 만든 접시형 물체들이 중력조절 장치를 사용하여 무중력으로 비행할 수 있는 일종의 항공기라는 것을 알게된 OSS요원들과 군 관계자들은 프로펠러 동력없이 물체가 비행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다 과학자들이 프로펠러만이 아닌 제트엔진과 로켓, 그리고 중력조절장치 등이 지구상의 어떠한 물체도 하늘로 비행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들었 다고 합니다.( 미정부의 국방연구소 과학자들은 생구라를 친것이다, 1926년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보라, 외부에 프로펠러 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바로 1억볼트 이상의 정전기의 힘인것이다, 미정부는 나치의 전기추진 비행접시를 마치 다른 세계의것인양 사기를 치는데 전문 꾼이다, 심심하면 비펠드 브라운 효과라고 검색어 치고 조사해보라, 1926년에 미국에 특허로난 전기추진 비행접시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특허년도가 조작되어있었다, 진짜 특허년도는 1926년이다,) 그 후 그들이 제시한 군사연구소의 영사기 필름과 사진 자료 들을 통해 실제로 무중력 비행이 가능하고 그러한 비행물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요원들은 이같은 사실을 본국에 보고하고 격납고 안에 있던 비행물체를 미국으로 옮긴 뒤 나치 국방연구소 과학자들을 그들의 전문 연구분야별로 분류, 심사 한 후 본국으로 이송하고 그곳에서 계속 전문 분야를 연구하고 신기술을 개발하도록 조치했다.. 2차 대전중 독일이 만든 비밀무기 다음의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1945년, 최악으로 추락한 전세를 한꺼번에 뒤집을수 있는 비밀병기를 개발하려 했던 독일군 연구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39년 히틀러는 독일 영토에 적군의 포탄이 단 한발 이라도 떨어지는 상황이 절대 없을것이라는 장담하에 전쟁을 일으켰고, 몇년뒤 전세가 기울며 독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모습을 본 그는 독일군 신무기 연구 소에 다음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라고 명령하여 이들을 거의 성공단계까지 진행시켰다고 합니다. 지대공 보르텍 대포 보르텍 대포라고 불리우는 문제의 대포는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의 소장인 오스트리아계 자이머 마이어 박사에 의해 개발 되었습니다. 보르텍 대포의 특징은 작은 발전소에서 강한 공기 압을 만들어 이를 하늘에 날아다니는 전투기와 폭격 기등 근처에 발사한뒤 비행기들이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추락하게 만드는 신무기였습니다. 실험을 통해 실전에 사용될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던 문제의 대포는 1945년 2월 스위스 국경에 있던 유일한 보르텍 대포의 모터 공장이 갑작스런 폭격을 받아 산산히 부서져버린 관계로 개발이 중지되었습니다. 음파 대포 음파 대포는 보통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저음의 음파를 발산하여 음파가 발산된 지역을 걷는 군인 이나 비행기 또는 탱크 안에 탑승하고 있는 군인들을 기절 또는 죽게하는 장치였습니다. 동물들을 이용해 음파 대포를 실험한 독일의 과학자 들은 음파 영역을 걷는 동물들이 겉모습이 흉하게 일그러진뒤 몸이 풍선처럼 부풀다 끝내 폭발을 해버 리는 끔찍한 모습을 봤다고 하며, 곧이어 빠른 시일내 음파대포가 실전에 배치될 수 있을것이라고 판단한 학자들은 실험 영상을 관람한 군의 장성들이 너무 무기가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도중 하차를 시키고 말았습니다. 그후 연구소의 지하실에 있던 실험용 음파대포는 후에 독일군 신무기 연구소 지역을 점령한 미군에 의해 접수가 되었다고 하나 그 이후 음파대포는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았거나 비밀스럽게 새 기종으로 개량된 것으로 추측 되었습니다. 이외 태양빛을 괴 패턴으로 여러번 반사하여 고열을 발사하는 무기, 하늘에 전기 거미줄을 만들어 비행기 들을 자동으로 격추시키는 무기, 갑작스러운 냉기온을 이용하여 중성자 폭탄을 만든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인 공습을 위해 만들어진 제트엔진 배낭 1950년대 초반부터 미사일과 대량살상 무기개발 경쟁을 벌인 미국과 소련은 자연자원이 고갈되어도 인공적으로 개발한 특수 에너지를 통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무기 개발에 몰두를 하게 됩니다. 핵전쟁이 발발할 시 실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존의 재래식 무기 개발 대신에 상대를 단 한번에 제압할수 있는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던 미국은 1950년대 후반 두꺼운 강철을 뚫을수 있는 레이저와 전기를 강력한 파괴 에너지로 전환 시킬수 있는 마이크로 웨이브, 그리고 작은 플라스틱을 강한 파괴력을 가진 엄청난 속도의 총알로 만들수 있는 플라즈마등의 신무기개발에 성공을 하게 됩니다. 신기술과 신소재로 무장한 미국의 국방과학은 노후된 구소련의 무기체계를 크게 앞질렀다고 하며, 1960년대 초반 대소련 강경정책을 펴던 케네디 대통령의 미국 정부에 불쾌했던 구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소련의 국방연구소에 1년내로 1950년대부터 개발하던 모든 대량살상 무기의 개발을 완결하라는 특명을 내리게 됩니다. 밑의 무기들은 1962년 10월에 발생한 쿠바 미사일 사태가 끝난 3개월뒤 구소련이 비밀스럽게 개발 성공한 대량살상 무기들의 종류와 특징에 관한 설명입니다. 고음파 폭탄: 나치독일에서 대전말기까지 비슷한 형태가 계속 연구됬다, 지뢰형식으로 고음파 폭탄을 매장한뒤, 원격조종으로 고음파를 사출시켜, 근처에 지나가는 연랍군 보병들과 기계장비들을 고음파로 파괴시킨다. 이는 미처 다 완성되지 못하고 독일이 패망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자료들은 구소련으로 넘어가서 계속 연구되었다고 한다, 음파대포: 강력한 고주파&저주파를 발생시켜 적의 신경과 두뇌, 신체적 거부반응을 일으켜 무능력하게 만들거나 죽게 만든다, 초강력 소음무기 이라크 주둔 미군이 적대적인 군중을 효과적으로 해산시키고, 적병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귀청이 찢어질듯한 초강력 소음'을 내는 무기를 배치했다. 장거리 음향장치(LRAD)로 불리는 이 무기는 2000년 10월 미 해군 유도 미사일 구축함(USS 콜)이 예멘 아덴항(港)에서 소형보트의 자살 테러 공격을 받은 뒤 소형 보트 등의 군함 접근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LRAD는 '비살상무기'지만 오랫동안 노출되면 청각기관에 손상을 입거나 영원히 청력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아메리칸 테크놀로지사가 개발한 이 장비는 무게 45파운드(20㎏ 상당)의 접시형 장비로 지난 여름부터 미 군함들이 보호장비로 사용해왔다. 미 육군과 해병대도 끊임없이 시끄러운 소음을 퍼붓는 이 장치를 최근 방어무기 목록에 추가했다. 미 해병대사령부는 최근 LRAD를 이라크 주둔군에 보내기 위해 이 회사와 110만달러 규모의 공급 계약을 맺었다. 최근 이슬람 수니파 지역인 알 안바르에 배치된 제1원정대 등 2개 해병부대도 이 무기를 사용할 예정이다. 바그다드 서부 팔루자와 중부 지역 등 이라크내 저항세력 근거지에 주둔중인 미군은 소요 발생시 테러분자와 비적대적인 군중을 구분하지 못해 애를 먹었으나 이 무기를 이용해 군중을 효과적으로 해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중이나 위협 세력이 구두 '해산 명령'을 듣지 않으면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초강력 소음으로 강제 해산시킬 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개발사인 아메리칸 테크놀로지사의 칼 그룬너 군사.정부 담당 부회장은 화재 경보용 연기 탐지기가 80-90데시벨의 소리 밖에 낼 수 없지만 LARD는 약 150데시벨의 소리를 내 100야드 거리 안에 있을 경우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라크에서 시범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LARD는 최대 300야드 밖에까지 초강력 소음을 낼 수 있다고 그룬너 부회장은 밝혔다. 한편 버팔로 대학 청력.청각장애 센터의 리처드 살비 소장 등 청력 전문가들은 LARD가 내는 초강력 소음이나 약 2천100-3천100 헤르츠 수준의 높은 주파수에 오래 노출되면 청력 상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룬너 부회장도 이 장비에 오래 노출되면 청력 상실 위험이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이 장비의 사용시간은 2-3초씩으로 제한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의 PRIMEX사는 적대상황에서 지역봉쇄 및 일부 군중 및 침입자와 폭도 등을 대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차량 탑재 음파 빔 발사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 무기는 한 사람의 인력으로 사용 가능하며, 네 개의 연소 폭발 운용장치 배열로 이루어진 발사기 모형은 네 발을 동시에 발포할 수 있고, 단발 발포도 가능하다. 이때 발생하는 음파 압력은 최고 165DB(데시벨:음량 측정단위), 최대 사거리는 50ft까지 개발되어 있으며, 파장의 발사압력은 대인용도에 이상적인 음파 생리학적 표적처리에 반드시 필요한 라이즈타임(Risetime:펄스진폭이 10%치에서 90%치에 이르기까지의 경과시간)과 펄스너비를 가지고 있다. 미 육군 연구소(ARL)에서는 군중 통제 및 지역봉쇄에 사용 가능한 음파장치에 대한 개발 및 시험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장치에는 연료 산화제 혼합물의 반복 연소 또는 폭발을 통해 에너지를 산출하는 장치가 있다. 이들 장치에서 만들어지는 음파 신호는 대체적으로 폭발로 인해 형성되는 반복 충격 파장형태이고 초기의 짧은 라이스타임 즉 저단계 마이너스 압력 미 도달상태로 거의 기하급수적인 하락을 하는 고도 양성 음파 압력단계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미 육군 연구에서는 고강도 추진음파를 발사하는 순수 전기력의 연속 아크형 발포식 음파 발사기(SADAQ)를 개발·실험중에 있다 충격음파총 충격음파총은 고강도 음탄(sonic bullet)을 발사해 비행기 납치범을 무력화할 목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아메리칸 테크놀로지스사에서 2001년부터 개발되고 있다. 이 무기는 비행기 기체와 창문을 파괴하지 않고 비행기 납치범에게 일시적으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며 방향감각을 잃게 한다. 이 무기의 핵심장치는 길이 1m에 지름이 4cm인 폴리머 복합재료로 만들어진 튜브 안에 담겨 있다. 튜브 안에는 여러개의 압전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압전판은 전기를 걸어주면 모양이 저절로 변형된다. 반대로 압전판에 압력을 주면 전류가 발생한다. 이같은 압전판은 음파충격총에서 작은 스피커 역할을 한다. 튜브 뒤쪽의 첫번째 압전판이 배터리로부터 전기에너지를 공급받으면 팽창하면서 주변 공기를 떨게 해 지속시간이 짧은 펄스 음파를 내보낸다. 이 펄스 음파가 두번째 압전판에 도달하면, 두번째 압전판이 전기에너지를 공급받아 두번째 펄스 음파를 내보낸다. 이때 두 압전판 사이의 거리는 첫번째 펄스 음파와 두번째 펄스 음파가 보강간섭하도록 맞춰져 있어, 펄스 음파가 증폭된다. 각각의 압전판이 차례차례 적절한 시간에 음파를 발생시키면, 펄스 음파는 튜브를 따라 이동하면서 계속 증폭되는 것이다. 증폭된 펄스 음파의 세기는 1-2초 동안 1백40db(데시벨) 이상으로 거의 총알 수준이다. 이는 자동차 경적소음 기준치인 1백10db보다 1백-1천배 이상 크고, 사람에게 고통을 느끼게 하는 수준인 1백20-1백30db보다 10-1백배 이상 크다. 충격음파총은 현재 초음파 대역의 펄스 음파를 발사하는데, 초음파는 공기나 물체에 비교적 쉽게 흡수돼 가까운 거리에서만 효과가 있다. 최종 모델은 6-10kHz의 가청주파수 대역의 음파를 발사해 수십m까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한다. 이 음파 무기는 두가지 방식으로 비행기 납치범을 괴롭힌다. 첫번째 효과는 고막에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는 고통이 극심해 몇시간 동안 청각을 잃을 수도 있다. 두번째 효과는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툴리오 현상이라고 알려진 효과로 강한 음파가 내이(內耳)의 균형 시스템에 충격을 줘 방향과 균형감각을 무력하게 만든다. 충격음파총은 2001년부터 미국 아메리칸 테크놀로지스사에서 개발되고 있다. 톰 크루즈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자신을 추격하는 적을 향해 발사한 ‘음파(音波)무기’가 현실로 등장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에서 스텔스기, 지난해 이라크전쟁에서 전자폭탄(e폭탄)에 이어 이달 말 일명 ‘장거리 음파기(LRAD·Long Range Acoustic Device)’란 최첨단 신무기를 이라크에 들여온다. LRAD는 빛에 강력한 소음을 실어 원하는 방향으로 쏠 수 있게 만든 장치.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 내는 소음의 두 배에 달하는 145∼150dB의 소음을 발생시켜 300m 이내 사람들을 무력화시킨다. LRAD를 개발한 아메리카 테크놀로지사의 우디 노리스 사장은 “이 ‘소리 총알’에 맞으면 견딜 수 없는 두통 등을 일으키고 심하면 청력까지 잃게 되며 귀마개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 무기를 이라크 내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시위의 극렬 군중에게 사용할 계획이다. LRAD는 한 세트에 100만달러에 달하며 무게 17kg, 직경 84cm의 둥근 접시 모양이다. 미 군사전문가 윌리엄 아르킨은 “굴에 숨어서 테러를 배후조종하는 오사마 빈 라덴을 끌어내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이라크의 도시에서 사용할 경우 무고한 어린이와 노인, 병약자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충격파(shock wave) | 공기 등과 같은 기체 속에서 음속보다도 빨리 전달되는 강력한 압력파. 태양빛을 괴 패턴으로 여러번 반사하여 고열을 발사하는 무기 (니콜라 테슬라가 발명한 원통형 거울을 이용해 외부의 태양열을 모아서 광공진을 시켜서 물을 덥히는 장치를 나치는 고열 발사무기로 개량해서 사용했슴. 마거릿 체니가 쓴 니콜라 테슬라의 생애와 그의 발명들이란 책을 보시라,). =======근거 자료======== 태양광 용광로:프랑스의 피레네산맥에 위치하는 Odelello 지방의 태양용광로는 대규모 시설의 좋은 예이다. 그림 ?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시설은 8단의 반사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에는 7개의 반사경이 설치되어 있다. 이 반사경은 태양의 진로를 추적하고, 해가 지면 동쪽 방향을 향하게 재 조종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태양광선은 이 반사경에서 9,000개의 거울이 달린 방대한 포물선형 표면으로 재 반사된 후 다시 포물선 반사경 앞쪽에 설치된 용광로 창을 초점으로 모이게 된다. 용광로의 온도는 3,500℃에 달하고 이 열은 세라믹과 같이 고질 상품을 생산하는데 쓰인다. 왜냐하면 태양열 용광로는 일반적인 용광로와 같이 상품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는 오염물질을 발생시키지 않으므로 고품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광 레이저:햇빛으로 수술한다 -고가 레이저 수술 대체 가능 태양광 수술장치.접시형 거울에 반사된 햇빛이 광섬유에 모아진 다음 수술실로 전달된다.자 료제공 Physicsweb 어린 시절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워본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장난거리이던 것이 오늘날에는 과학자들의 진지한 연구주제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대학 제프리 고든 박사 연구팀은 최근 햇빛을 거울에 반사시켜 광섬유에 모으면 수술용 레이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물리학 전문 학술지인 '저널 오브 어 플라이드 피직스' 최신호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광섬유를 통과한 햇빛을 닭의 간에서 떼어낸 조직에 360초 동안 가한 결과, 약 1천㎣에 해당하는 조직세포가 손상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기존의 레이저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연구팀은 지난 1월에는 살아있는 동물을 대상으로 햇빛 집광 기를 이용한 수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고든 박사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처음 개발한 초소형 햇빛 집광기는 지름 200㎜, 초점거리 가 120㎜인 접시형 거울과 지름 1㎜인 광섬유로 구성돼 있다. 접시형 거울에 반사된 햇빛은 초점이 광섬유에 모인 다음 20m까지 전달될 수 있다. 이렇게 모은 햇빛은 일반 햇빛에 비 해 빛의 세기가 1만 배나 됐다. 레이저는 직진성이 좋고 많은 양의 에너지를 좁은 면적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피부의 점이나 암세포를 태워 없애거나 조직을 자르는 데 이용한다. 암세포 조직은 보통 지 름이 수 ㎜에서 수 ㎝에 불과하기 때문에 좁은 지역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레이저가 제격인 것이다. 그러나 레이저 수술장비는 워낙 고가여서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다. 햇빛이야 어디서나 얻을 수 있으므로 햇빛 집광기가 실용화된다면 환자 치료에 큰 도 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햇빛의 가시광선과 근적외선은 기존의 레이저에 이용되는 적외선이나 자외선에 비해 광 섬유를 통해 쉽게 전달할 수 있으며, 사물의 깊은 곳까지 침투할 수 있다. 게다가 햇빛은 특 히 생체조직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파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수술용으로는 햇빛을 이용 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는 커다란 거울로 햇빛을 모아 적 함대를 불태웠다고 한다. 현 대 과학자들은 인체 속에 숨은 적을 향해 햇빛을 쏘고 있는 것이다. [과학동아-03.4.21] 독일의 초중전차 마우스 독일의 초중전차 code No. 205 Mouse 인류가 만든 최대 초중전차 마우저 주포 128mm(KwK-44) 부포셔먼급(KwK-40) 75mm MG34 1정 중량 180t의 괴물전차 주포와 부포는 독립발사 가능하나 주포인 128mm 장탄수는 35발에 불과 스노켈을 이용 잠수가능 전해져오는 나찌의 비밀병기 정도로 알려졌으나 러시아 쿠빙카 박물관에서 실차 발견됨 하지만 이괴물도 계획중이었던 중량 1000t에 달하는 육상전함 P-1000 Rate에 비할바 는 아니었다 . 소련군에게 노획된 마우저 2호차,자폭시킨 마우저 1호차, 일본의 초중전차 O-I 계획상의 일본의 초중전차 O-I 종전으로 중단.. 중 량: 120 tons 길 이: 10.00 meters 폭 : 4.20 meters 전 고: 4.00 meters 탑승인원: 5 무 장 1 x 105mm 주포 1 x 37 mm Type 부포 3 x 7.7 mm 97식 기관총 장갑(MAX): 200 mm 시 속 : 25kph 러시아의 초중전차 T100 전신인 T35형도 같은 비효율적 다포탑 형태로 탑승자만 많아 희생자만 늘이는 결과 만 초래했다. 2차대전당시 주축군과 연합군 모두 절대 파괴되지 않는 거대한 철의 요 새를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들였으나 거함위주의 해군이 무의미 하듯 비효율 성을 깨달아 포기하기 시작한다. 독일만이 총통의 명령으로 끝까지 개발할려고함 탑승인원 6명 출 력 850HP 중 량 58t 시 속 30(km/h) 주 포 76.2mm 부 포 45mm 7.66mm 데그차레프 3~4정? 미국의 초중전차 T28 United States Heavy Tank, T28 후에 초중전차에서 자주포로 분류 T95로 개명 Crew: 8 (Commander, Driver, Co-driver, and 5 man gun crew) Battle Weight: 190,000 lb Dimensions: Length: 36ft 6in (overall), 24ft 7in (excluding gun) Width: 14ft 5in (13ft 11in outer tracks removed) Main Armament: 1 x 105mm high-velocity gun Secondary Armament: 1 x .50 Browning MG (AA) Armor thickness: 300mm maximum, 25mm minimum Traverse: 10° left and right Maximum speed: 8 mph 마우저와 마찬가지로 실전엔 안쓰임 지크프리드 선 공성용 프랑스의 초중전차 Charron 2C 주 포 75mm 기관총 4정 속 도 8(km/St) 중 량 68 ton Charron 2C 는 1차대전중 진지돌파용 차량으로 개발되었다. 2개의 시제품은1917년에 제작하고 나머지 차량은1918년에서 1921년까지 모두 10대를 제작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51프랑스 전차대대에 지원하기 위해 수송열차로 이송중 Luftwaffe에 의해 파괴 되었다. 영국의 초중전차 A39 Tortoise A39 Tortoise 탑승인원 7명 주 포 94mm (고정식) 중 량 79.3t 기 관 총 7.92mm 3정 최고시속 19.3 (km/h) 출 력 600hp 대전직후 완성 도라 열차포: 세바스토폴 요새 공성포 구경 800mm 포신길이 35.5m의 사상최대 거포 도라 공성포의 포탄:350센티미터 높이,지름80센티미터로 추산됨, 프랑스의 비밀병기 [타우젠트 퓌슬러]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프랑스가 만든 구경 150㎜에 길이 140M의 사정거리! 포탄 발사속도는 무려 1500m/s로 사정거리가 165㎞! 라는 어마어마한 괴물인데 연합군의 폭격으로 망가졌다고한다, 프랑스에서 런던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정도의 엄청난 괴물이라고 한다, 타우젠트 퓌슬러[지네대포]는 독일어로 "천개의 발을 가진 것"이란 의미로 지네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2차세계 대전 말기인 1944년 장거리 포격을 위해 프랑스의 Mimoyecques에 만들어진 구경 150㎜에 포신의 길이가 140m에 이르는 우측 사진과 같은 비밀 병기입니다. 이 장거리포를 유심히 보면 주포의 대각선 방향으로 연속해서 지네 다리같은 보조챔버가 있습니다. 이 포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효과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Baron von Pirquet의 개념인 주포의 대각선 방향에 붙은 보조챔버에 폭약을 장전하여 이를 전기적으로 차례차례 활성화시켜 포탄이 보조챔버 통과시에 포강압을 회복시키는 방식을 이용하였습니다. 일반적인 대포의 포강압은 포탄이 전진함에 따라 최고치에서 점점 감소합니다. 그러므로 발사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포신의 길이를 극단적으로 크게 하여도 포강압 감소로 인하여 속도 증가에 한계가 있게됩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타우젠트 퓌슬러는 길이 45m, 설치간격 3.65m의 보조챔버를 주포신에 대각선으로 설치하여 140㎏의 포탄이 포신내를 장거리 주행하면서 보조챔버의 추진 에너지를 순차적으로 얻게 만든 것 입니다. 타우젠트 퓌슬러의 포탄 발사속도는 무려 1500m/s로 사정거리가 165㎞에 달하여 도버해엽을 횡단하여 영국 런던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88㎜장포신의 쾨니히스 티거 전차나 380㎜ 대구경의 스톰 티거의 장점을 두루 절충한 대구경 장포신 장거리 포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포는 실험발사시 과도한 포강압에 의해 2~3회 발사후 보조 챔버의 잦은 파손으로 실용화에 많은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보조챔버의 파손은 크게 열적인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잦은 보조챔버의 교체로 실용화되지 못한 지네대포의 실제 1500m/s의 초속을 내기위해 챔버 내부의 온도를 대략 계산해 봅시다. 보통 상온 15℃(=288K)에서의 공기 분자의 평균초속은 500m/s가 됩니다. 밀폐된 포 내부의 경우 화약의 연소로 생긴 가스분자가 날아다니는 평균속도가 포탄의 발사속도가 될 것입니다. 기체분자의 평균속도는 절대온도의 제곱근에 비례하므로 챔버 내부온도입니다. 여기에 V=1500m/s를 대입하고 Vo=500m/s, To=288K를 대입하면 T=2592K로 섭씨 2319도에 이릅니다. 이정도 온도가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고융점합금[융점이 대략 2000℃이상인 금속 니오븀, 탄탈륨, 몰리브덴, 텅스텐 등의 합금]이나 제트엔진에 사용되는 각종 초내열합금[니켈이나 코발트기 합금]이 사용되야 할 것 같습니다. 1944년 당시 특수강 수급에 많은 어려움이 있던 독일로서는 이런 특수 합금으로 장거리 대포를 제조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위의 계산에서는 두가지 전제가 가정되어 있습니다. 첫째 온도가 같은 가스라도 분자가 날아다니는 속도는 그 분자량의 제곱근에 반비례하므로 위에서 얻은 1500m/s의 발사속도는 연소가스의 분자량과 공기의 분자량이 같다는 전제입니다. 만약 연소가스의 분자량이 공기의 분자량 보다 작다면 평균온도는 조금 내려갈 것입니다. 둘째 포신내의 가스 전체는 하나의 기류를 형성하여 포문을 향해 전진하고 있으므로 일종의 병진운동에너지에 따라 발사 속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대각선으로 배치한 보조챔버의 합력의 방향이 주포신의 방향을 향하고 있음에 유의하면 실제 다수 보조챔버의 포강압은 주포신 내부보다는 낮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한계 있는 일로 챔버내 포강압은 최초의 기체분자의 운동에너지가 변화한 것이므로 기류의 속도의 최대값은 당연히 전체 기체분자의 속도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발사시 최종점에 이른 어느 부분에서의 온도는 2000℃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빠른 기류속에 있는 분자의 평균속도는 정지해 있는 가스의 분자의 평균속도보다는 동역학적 병진운동을 포함하므로 작아집니다. 타우젠트 퓌슬러의 경우 아이디어는 훌륭하나 간단한 포강내 온도계산으로부터 재료선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해 결과적으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 비밀 병기가 된 것입니다 타운젠트 퓌슬러 포탄:포탄이 길이가 사람키를 넘기는 것으로 보아 2미터 30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NEUTRINO 겨우 존재하는 신비의 입자 김정욱-고등과학원 원장.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다음 내용은 참고 자료입니다. 1.뉴트리노의 연구 방사성 물질의 붕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보존법칙이 깨질 위기에 처했을 때, 1930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194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최후 수단으로 뉴트리노를 생각해냈다. 미국의 물리학자 레온 레더먼은 이 입자를 겨우 존재하는 입자로 불렀다. 파울리가 뉴트리노의 존재를 주장했을 때 학계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1934년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상 수상)가 베타(β)붕괴 이론을 설명할 때 뉴트리노를 도입하자 학자들도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파울리가 주장한 입자에 뉴트리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트리노의 존재가 처음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은 1956년이다. 프레드릭 라이네스 등은 10톤이나 되는 초대형 검출기를 이용해 원자로에서 나오는 뉴트리노를 검출해 냈다. 이 업적으로 라이네스는 40년이 지난 1995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1962년 두 번재의 뉴트리노, 즉 파울리의 뉴트리노가 아닌 다른 뉴트리노를 발견한 레온 레더맨, 멜빈 슈바르츠, 잭 스타인버거는 1988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나중에 발견한 사람이 먼저 노벨상을 받은 셈이다. 현재 뉴트리노의 종류는 3가지라는 것이 정설이다. 뉴트리노는 전자, 뮤입자, 타우 입자 등을 형제처럼 다라 다닌다. 파울리가 예견한 입자는 전자와 같이 행동하는 뉴트리노(전자 뉴트리노)이고, 레더맨 등이 발견한 것은 뮤온(뮤 입자)뉴트리노이다. 타우 뉴트리노는 아직 직접 관측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간접적으로 입증돼 있다. 또 질량이 없거나 질량이 적은 뉴트리노의 종류가 셋이라는 것도 확인됐다. 2.뉴트리노가 안고 있는 수수께끼 뉴트리노는 왜 3개 뿐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수수께끼이다. 뉴트리노의 질량 역시 수수게끼이다. 뉴트리노의 다른 성질들은 거의 정확하게 알려졌지만, 질량만은 어느 값보다 적다는 상한값들만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전자 뉴트리노의 질량은 전자 질량의 10만분의 1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전자 뉴트리노는 전자에 비해 질량이 작을까 하는 것도 궁금하지만, 이보다 과연 뉴트리노들이 질량을 가졌는지 아니면 광자나 중력자와 같이 질량이 없는지가 현대 소립자 물리학에서 더 큰 수수께끼이다. 70여년 전 뉴트리노가 질량이 없을 것이라는 페르미의 추정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강력, 야력, 전자기력을 함게 기술하는 표준이론은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이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몇십년에 걸쳐 시행된 거의 모든 실험(몇 가지 실험을 제외하고)이 이 이론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것은 뉴트리노가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가설 아래 세워진 것이다. 광자나 중력자와 달리 뉴트리노는 그 질량이 영(0)이 돼야 한다는 것을 아직 설명할 길이 없다. 에너지가 높은 영역에 적용하면 표준이론은 여러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낸다. 이 결함을 보안하는 이론들이 초대칭성이론, 통일장이론, 초끈이론 등이다. 이렇게 표준이론을 보완하면, 뉴트리노들은 아주 작게나마 질량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잘 맞아 온 표준이론이 수정돼야 한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질량을 측정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방법은 뉴트리노 진동이라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뉴트리노가 질량을 가졌다면 다른 입자들(특히 쿼크)과 같이 혼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전자 뉴트리노가 가속기나 원자로에서 만들어져 검출기까지 움직이는 동안 진동이 일어나고, 검출기에서는 진동에서 생긴 뮤온 뉴트리노와 원래의 전자 뉴트리노의 혼합체로 검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혼합체를 검출하려는 수많은 실험들은 모두 실패했다. 뉴트리노가 진동하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한 일들이 크게 3가지가 있다. 태양에서 오는 전자 뉴트리노의 수수게끼, 우주선(cosmic ray)에서 검출되는 전자 뉴트리노의 수와 뮤온 뉴트리노 수의 비, 그리고 뮤온 뉴트리노가 전자 뉴트리노로 진동 변환하는 실험 등이다. 3.태양 뉴트리노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모두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의 결과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자 뉴트리노가 생산된다. 이들은 다른 입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잘 안해 생산되는 즉시 밖으로 튀어나온다. 1초 동안 지구에 도달하는 것은 1자승cm당 10의 11승개다. 미국인 데이비스는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홈스테이크 금광 안에 6백 15톤의 빨래 비누 같은 염화탄소를 넣어 전자 뉴트리노가 일으키는 특이한 반응을 이용해 태양에서 오는 전자 뉴트리노를 꾸준히 측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측되는 수의 약 4분의 1밖에 관측되지 않았다. 나머지 4분의 3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구 상에 도달하는 전자 뉴트리노는 천문학적인 양이지만, 실험장치의 효율성과 뉴트리노들의 아주 약한 상호작용 때문에 실제로 검출된 수는 이틀에 1개에 불과하다. 이론에 따르면 이 실험에서 하루에 적어도 2개는 검출돼야 한다. 그 밖의 다른 실험에서도 모두 계산치보다 낮은 뉴트리노를 검출하고 있다. 이것이 유명한 태양 뉴트리노 수수께끼이다. 더 재미있는 점은 검출수의 부족에는 모두 일치하나, 검출 비율이 검출기의 종류에 따라 오차한도를 고려해도 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설명은, 뉴트리노가 태양 중심부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약하나마 태양 내의 물질과 상호작용하면서 다른 뉴트리노로 변환된다는 설명이다. 이설명이 맞다면, 뮤온 뉴트리노의 질량은 10(-3승)eV(전자 질량의 10억분의 1)이고, 전자 뉴트리노의 질량은 이보다 훨씬 적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외에도 캐나다의 서드베리에 건설중인 뉴트리노관측소가 있다. 이것은 1천톤의 순수한 중수소를 사용하는 검출기로, 진동변환으로 생기는 전자 뉴트리노가 아닌 다른 뉴트리노로 바뀐 것들을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4.우주선 뉴트리노 우주선이 대기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핵들과 충돌할 때 수많은 뉴트리노들이 만들어진다. 이때 생성된 전자 뉴트리노와 뮤온 뉴트리노의 비율은 1대 2가 예상되나, 슈퍼가미오칸데는 물론 미국과 이탈리아의 검출기들에서는 모두 1대 1에 가까운 비율로 관측됐다. 나머지 뮤온 뉴트리노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가장 유력한 설명은 생산점에서 검출기까지 오는 도중 뮤온 뉴트리노의 절반 정도가 타우 뉴트리노로 진동변환했다는 것이다. 반면 질량과 거리의 사정 때문에 전자 뉴트리노는 다른 뉴트리노로 미처 진동변환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맞다면 타우 뉴트리노의 질량은 약 10(-1승)eV(전자 질량의 1천만분의 1)이다. 5.우주의 암흑물질 뉴트리노는 천문학이나 우주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주 대폭발이론에 따르면 현재 우리 우주에는 폭발과정에서 생성된 수많은 뉴트리노들이 균일하게 분포돼 있다. 그 밀도는 1입방 센티미터 당 약 3백30개로 알려져 있다. 만일 뉴트리노(특히 가장 무거운 타우 뉴트리노)의 질량이 약 1내지 10eV정도가 된다면, 뉴트리노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입자가 된다. 소위 암흑물질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뉴트리노는 우리 인간의 존재에 없어서는 안될 입자들이다. 태양계는 초신성 폭발에서 생긴 찌꺼기들이 중력 때문에 모여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많은 초신성 폭발은 뉴트리노가 없으면 폭발이 불가능하다. 뉴트리노가 없었다면 태양계와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외에도 우주 곳곳에서 수많은 뉴트리노들이 은하계의 충돌, 이중별, 블랙홀 형성 과정에서 발견되고 있다. 뉴트리노로 핵 무력화 가능, 하와이대 교수 개발제안,거대 뉴트리노 빔 발사시설건설, 각국의 핵무기 개발을 억지하기 위해 거대 가속기에서 발생한느 소립자 뉴트리노를 발사해 핵무기를 파괴하는 기술을 개발해야한다는 논문이 발표됐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2일 보도했다, 미국 하와이대 스가와라 히로다카 교수가 미 과학 전문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물질을 그대로 관통하는 뉴트리노의 성질을 이용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핵무기의 파괴가 가능하다, 핵무기를 향해 뉴트리노 빔을 발사하면 지구를 관통하는 동안 중성자나 양자등이 생겨나고 이것들이 핵무기의 플루토늄에 부딫쳐 핵분열을 일으킨다, 소규모의 핵폭발이 일어나지만 지하의 핵무기를 겨냥한담녀 심각한 방사능오염을 유발하지 않고 핵무기를 무력화할수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뉴트리노 빔을 만들어낼려면 건설비 수조엔 규모의 거대가속기와 영국의 총소비전력에 맞먹는 전력, 고성능 초전도 자석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가와라 교슈는 금세기 후반에는 실현이 가능하다며 국제협력으로 연구 진행이 검토돼야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핵무기 보유국이 계속 늘어만 가는데도 정치적 해결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핵무기를 파괴하는 기술이 생겨나면 핵무기 보유로 치닫는 국가를 견제하는 억지력으로서 세계의 안전보장에 공헌할것이라고 강조했다, 뉴트리노(중성입자): 한마디로 상대적으로 고밀도화된 자유에너지 밀도체가 하나의 독립된 물질입자처럼 나타나는것이라 할수 있다, 별의 폭발등 우주에서 격렬한 활동이 일어날 때 중성자가 붕괴되면서 양성자, 전자와 함께 발생하며 우주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이다, 정지질량은 0에 가깝고 전기적으로는 중성이다, 다른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아 대부분의 물질을 투과한다, 한국에서도 하늘(HANUL) 계획이 예비 연구를 거쳐 그 시제품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스텔스잠수함 2001/12/06 18:21 동아일보 기사 美 ‘스텔스 잠수함’ 만든다 스크루 없이 물고기처럼 ‘인공 꼬리’와 선체를 움직여 항해할 수 있는 스텔스 잠수함이 미국 해군에 의해 개발중이라고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가 5일 보도했다. 신형 스텔스 잠수함은 스크루로 추진하는 기존 잠수함이 소음과 소용돌이를 일으켜 적 항공기 및 군함의 음파탐지기나 레이더 등에 노출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느러미와 몸통을 움직여 나아가는 물고기의 원리를 이용한 것. 이를 위해 선체를 등뼈 역할을 하도록 몇 부분으로 나누고, 금속 온도조절 시스템을 장착해 특정온도에 이르면 팽창 또는 수축하는 형태기억 합금으로 만든 ‘인공근육’으로 각 부분을 연결했다.미 텍사스 A&M 대학 연구진이 해군의 의뢰로 제작한 길이 1m짜리 시제품은 선체가 6부분으로 나눠졌으며, 이들 부분을 니켈과 티타늄 합금인 니티놀로 만든 ‘근육’으로 연결했다. 또 각 부분의 움직임을 가열과 냉각을 통해 섬세히 조종함으로써 잠수함이 물고기처럼 꿈틀거리며 항해할 수 있도록 했다. 추진연료는 소음을 최대한 줄이면서 수중 잠항능력을 늘릴 수 있는 연료전지 등을 장착할 계획이다. 개발팀 관계자는 “우선 무인 잠수함 개발에 주력하고, 개발 및 운용에 성공하면 사람이 탈 수 있는 큰 선체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파리AFP연합> [영국] 영, '플라스틱 탱크' 개발 한때 어린이들이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플라스틱 탱크가 군용으로 개발돼 곧 영국 육군에 공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선데이타임스>가 지난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첨단 합성장갑차량 플랫폼(ACAVP)'이라고 불리는 혁명적인 이 장갑차량이 성능시험에 통과됐으며 국방부 검사관들이 `과학적인 환경 속'에서 실용성 여부를 최종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최초의 플라스틱 탱크인, 이 장갑차량은 레이더에 거의 포착되지 않으며 재래식 철강 탱크보다 가볍고 빠르며, 헬리콥터로 수송하기가 쉬운 것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플라스틱 탱크의 무게는 약 24t으로 같은 크기의 강철 탱크보다 10t 가량 가볍다. 전투지역에 빨리 투입될 수 있으며 또한 시골길을 시속 100km까지 달릴 수 있다. 플라스틱으로 몸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투중 연료소비도 적어 급유차량의 수요도 줄게 된다. 군사 전문 주간지 <제인스디펜스위클리>의 장갑전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포스는 “플라스틱 탱크는 포탄에 맞더라도 금속 파편이 튀지 않기 때문에 탑승 병사들이 안전하다”고 말했다.【런던=dpa 연합】 “미사일 녹이는 수퍼탱크 개발” [런던 연합] 미국과 유럽의 과학자들이 날아오는 미사일과 포탄을 강력한 전자기장으로 녹여 무력화시키는 최첨단 방어 시스템을 갖춘 ‘수퍼 탱크’를 개발중이라고 영국의 일간지 옵서버가 19일 보도했다. 현재 전자기장 탱크 연구에 대해 군당국과 제조업체 모두가 고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국방부 대변인도 탱크의 중량 감소에 초점을 맞춘 구조설계 변경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라고만 확인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하고 있다. 강철판 대신 전자기장으로 대전차 미사일을 막아내는 시스템을 갖추면 탱크의 무게를 3분의 2 가량 줄일 수 있고 유지 경비도 절감된다.특히 전투지역으로 신속한 이동이 가능해 탁월한 작전배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뉴사이언티스트 최근호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자기장 탱크의 외피는 강력 플라스틱으로 구성되고 그 속에 광케이 블 매트와 얇은 철갑,금속코일 등 다양한 소재가 샌드위치 모양으로 설치된다. 전자기장 탱크는 탄두가 날아와 닿으면 먼저 광케이블 매트 가 잘라지면서 센서를 작동,탱크 내부의 축전장치를 가동시켜 금속코일을 통해 엄청난 전류를 흘러보내면서 탱크 내부 에 강력한 전자기장을 형성한다.이때 탱크 외부의 플라스틱층을 뚫고 들어오는 구리탄두에 엄청난 전류가 흘러들어가 고온으로 달궈져 탄두가 불안정한 상태로 변해 뾰족한 탄두 부분이 평평하게 무뎌지고 얇은 철갑도 뚫지 못하고 멈춰버 리게 된다. 전자기장은 가상의 스타워즈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대전차 미사일이나 포탄의 에너지를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01, 8, 21 대한매일 신문 기사 세계 지하전략 시설 1400곳, 출처:중앙일보 미국방부 핵태세보고서 파문 계속 전 세계의 1400여개에 달하는 지하전략 시설을 목표로 미국이 벙커 파괴용 소형 핵폭탄을 개발하고 있다고 미국의 LA 타임스가 미 국방부의 핵태세검토(NPR) 비밀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17일 보도했다, 워싱턴의 군사안보 관련 민간 연구단체인 글로벌 시큐리티가 지난주 웹사이트에 공개한 21쪽 분량의 NPR 보고서를 토대로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핵전략을 살펴본다, B2전폭기 폭탄 투하뒤 레이저로유도 폭탄이 지표와 고속으로 충돌 내부로 가능한한 깊게 파고들어가 폭발, 1200파운도 핵탄두 폭발(재래식 탄두에는 2t의 일반 폭약 들어있다,), 목표 전 세계 1400여개의 전략 지하벙커, 벙커 파괴용 신형 탄두 개발= 미정보본부(DIA)에 따르면 전 세계 70여개 국에 1만여개의 지하 군사시설이 존재하며 이중 1400여개는 탄도미사일이나 생화학무기등 대량 파괴무기 관련 전략시설이다, 미국은 각종 미사일에도 끄떡없는 이런 지하 전략 시설을 공격하는데 적절한 수단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하 침투용 소형 핵폭탄 개발이 시급하다고 NPR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6년 3kt급의 핵폭탄인 B61-11 개발에 들어가 B-2 전폭기를 이용한 발사 실험까지 마친 상태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공습에서 지하벙커용 열기압 폭탄 BLU-118을 처음 사용했으며 이보다 파괴력이 6배나 되는 대형 폭탄을 노스롭 그루먼사에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또 이외에도 핵사용시 낙진,방사능을 조절해 제한적 목표에만 피해를 주는 신형 핵폭탄과 생화학 무기를 중화할수 있는 화생방 작용제 파괴무기(ADW)등도 개발중이다, <英 핵지뢰에 `닭(?)' 투입 검토>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 영국군이 냉전 당시 `살아 있는 닭'을 핵지뢰온도조절 장치로 활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었다고 영국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비밀이 해제돼 국립문서보관소 `국가기밀' 전시관에 전지된 정부 문서에 따르면영국 육군은 1957년 서독으로 진격하는 소련군을 독일 평원에서 괴멸시키기 위해 7t짜리 핵지뢰를 터뜨린다는 이른바 `블루 피콕' 작전을 수립했다. 하지만 핵지뢰를 땅 속에 묻은 뒤 내부 온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했다는 것. 비밀해제 문서는 영국의 핵물리학자들이 `살아 있는 닭을 핵지뢰 내부에 넣어둘 것을 제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닭을 모이와 함께 넣어두면 1주일 정도 핵지뢰의 내부 온도를 기폭제를 터뜨리는데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국가기밀' 전시관을 기획한 피터 헤네시 교수는 "만우절 우스개로 들리지만 국립문서보관소에서 곧바로 나온 비밀문건에 기록된 생생한 사실"이라면서 "공무원은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국 육군은 독일 평원에 핵지뢰를 파묻은 뒤 원격 조정으로 폭발시킬 계획이었으나 실행이 취소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 엑소-스켈레톤 사이보그 일명 엑소-솔져라고 불리우는 문제의 신무기는 보통 군인에 차세대 방탄 갑옷과 최첨단 인공소재로 만들 어진 로봇 뼈대를 착용시켜 이를 착용한 군인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100kg이 넘는 군용장비를 착용하고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지점을 시속 60km가 넘는 속도로 멈추지 않고 달릴수있게 하여주는 신무기 입니다. 최첨단 적외선/자외선 센서가 장착된 방탄 고글을 통해 악천후, 그리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산속에 비트를 파고 숨은 적이나 두꺼운 콩크리트 벽 뒤에 숨은 적, 그리고 1km가 넘게 떨어진 지점에 있는 성냥갑 크기의 목표물등을 쉽게 포착하고 인공위성을 통해 목표물의 공격상황을 상부에 실시간으로 방송 할수 있다는 문제의 신무기는 신형 전투 헬리콥터들의 전자동 조준 시스템과 같은 장비가 포함되어 있어 대형 칼리버의 자동화기를 손쉽게 제어한뒤 목표물을 공격할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의 신무기에는 인간을 해치는 무기만 있지않고 목표물을 기절시키거나 그물등을 발사해 생포하는 장치도 포함되어 있어 미래 사회에서 영화속 로보캅 같이 민간 치안도 도맡아 할수도 있을 만능 무기라고 전해집니다. =================================== 광섬유 투명 갑옷 영화에서 나온 프레데터와 비슷한 모습으로 사물을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는 문제의 신무기는 현재 특수 임무를 위해 만들어진 스텔스 관련 전투/폭격기에 착용되어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차세대 광섬유 프로젝션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는 투명 갑옷은 크게 앞면과 뒷면으로 나누어진다고 하며, 앞면은 뒷면으로부터 전해지는 영상의 프로 젝션(보통 TV의 화면과 같은) 역할을, 그리고 뒷면은 앞면이 가린 남의 시야에 숨겨진 뒷 배경 모습을 완벽히 촬영하여 이를 앞면에 전송하는 기능을 통해 투명을 가능케 한다고 합니다. 문제의 갑옷을 착용한 군인을 대낮에 보게되는 사람은 군인이 눈앞에서 움직일때 꼭 영화의 프레데터가 움직이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하며, 만약 갑옷을 착용한 군인또는 사물이 눈앞에 있지 않고 숲 속이나 도심에 정지해 있거나 밤에 활동할 시에는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서양의 몇나라에서 건조하여 실험하고 있는 차세대 이지스 잠수/군함에는 문제의 광섬유 투명 갑옷을 스텔스 기능과 함께 표면에 착용시켜 바다 위와 물속에서 선박이 레이다에 걸리지 않고 음파 탐지를 완벽히 반사시키며, 육안으로도 전혀 확인 될수 없게하는 괴이한 기능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이거 신문기사에도 났었는데, 기사가 삭제됬다, 기밀은 아닌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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