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와미스테리

로즈웰 사건

by 501™ 2012. 7. 25.

이미 로즈웰 사건을 읽으신 분은 (라. 사실 은폐와 그 이유 )로 건너 뛰시면 됩니다.


나. 로즈웰 사건

UFO문제에 있어서, 로즈웰 사건은 대표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UFO의 목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추락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 경위를 살펴보면 다른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을 것인지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고 더구나 처음엔 순진하게 그대로 발표를 했다가 허겁지겁 은폐로 급선회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 사건 하나를 통해서 우리는 UFO에 관한 오랜 논쟁을 명쾌하게 종결하고 사실은폐의 구조를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많은 목격자와 증거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을 했지만 지금까지 공식적으로는 은폐되어 온 사건이다. 그래서 전세계에 걸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UFO관련 사건 중, 이 사건 하나만이라도 자세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 

1947년 미국 남서부 사막에서 지구에 사는 인류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은 처음엔 이 사건을 그대로 발표했다. 그러나 곧이어 미군은 이를 부정했고 그 후 지금까지 비밀주의에 가려져 있다. 

* 사건의 내용 

1947년 7월 첫 주 어느날 뉴멕시코주 시골의 한 농장에서 농장주인 맥 브라즐은 간밤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집중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 일찍 말을 타고 농장을 둘러보다가 상당히 많은 이상한 물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저기에 수 십 미터나 되는 긴 홈이 패어져 있고 어떤 잔해물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그 중에서 특이한 것 몇 개를 주워서 이웃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플로이드와 로레타 프록타와 간이 로즈웰로 가서 윌콕스 보안관을 만났다. 월콕스 보안관은 부관들의 도움으로 로즈웰 육군 비행장에 있는 당국에 통보를 해서 조사가 진행되게 되었다. 

조사가 시작되고 나서 군 당국은 며칠동안 그 지역을 폐쇄하고 잔해물들을 수거해갔다. 그 잔해물은 로즈웰 비행장으로 이관되었다. 
1947. 7. 8. 아침 당시 세계 유일의 핵폭탄 취급부대인 509전폭단의 모기지인 로즈웰 육군 비행장에서 윌리암 블랜차드 대령은, 추락한 비행접시의 잔해를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이 언론보도는 즉각 전파를 타고 같은 날 미국의 30여 개의 석간지의 해드라인을 장식했다. 

그것은 쇼킹한 특종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추락지점으로부터 600㎞ 이상 떨어진 텍사스 포트워즈 육군 비행장에 있는 제8공군 사령부의 로져 라메이 장군이 그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말했다. 
“509 전폭단에 있는 블랜차드 대령과 장교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비행접시의 잔해라고 발표한 그 물건들은 밝혀지지 않은 기상 관측용 기구이고 그것이 비행접시의 잔해인 것처럼 레이더에 반영되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목격하고 직접 관여한 많은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조합해 보면 비밀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적인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사건의 윤곽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해 볼 수 있다. 
윌리암 블랜차드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확실하고 사무적인 사람이며 결코 확인도 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드라마틱한 기자회견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나중에 미 공군 대장으로 부 참모총장이 된 것을 보아도 그런 평가는 바른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이 찾아낸 첫 목격자인 제스 마슬 예비역 중령(509부대 정보장교)은 기꺼이 증언하고 그의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그는 대단히 유능했고, 실제 추락현장에 있었던 두 명의 장교 중 한 명이다. 
1947년 비디오로 녹화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것은 지상 기구가 아니었고 항공기나 미사일도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잔해물체 중 이상한 성질을 가진 것에 대해 그는 “그것은 타지 않았고 전혀 무게가 없었고 아주 얇아서 담배 은박지와 같았다. 그래서 휘어 보려고 했는데 휘어지지 않아서 7.5㎏짜리 해머로 찌그러뜨리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유일한(당시) 핵폭탄 그룹의 정보 장교인 제스 마슬 같이 충분한 자질과 경력을 지닌 사람이 기상 기구의 잔해를 가지고 그의 표현대로 ‘이 지구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실수를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설령 당시에 그런 착오를 범했다 하더라도 나중에(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 후에 당시 트루만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되는 소련의 첫 번째 핵실험 보고서 준비를 포함해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봐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는 기지로 돌아와 잠시 집에 들러서 그의 아내와 열한 살 된 아들에게 그 요상한 잔해의 몇 조각을 보여 주었다. 아이빔(I자 모양의 빔)의 작은 부분인 한 조각은 표면에 무슨 상징 같은 이상한 상형문자가 있었다. 

지금은 개업 의사이고 헬리콥터 조종사 자격이 있는 항공의사인 그의 아들 제스 마슬 주니어 박사는 그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 잔해에 그려진 상징들의 자세한 부분까지 그릴 수 있었다. 고 토마스 드보스 장군은 당시 대령으로 텍사스 주 포트워즈에 있는 미 제8공군 사령부의 라메이 장군의 참모장이었다. 드보스장군은 1992년 사망하기 이전에 당시 워싱턴 D.C에 있는 앤드류스 육군비행장에 있는 클레멘트 맥뮬런 장군으로부터 사건을 은폐하라는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다. 

예비역 장성인 아더 이 엑슨은 로즈웰에서 그 잔해들이 반입된 1947년 7월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있는 라이트 비행장에서 중령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90년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자재 시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화학분석, 응력 시럼, 압축 시험, 굽히기 등 온갖 시험을 다했습니다. 그 물체들은 우리 자재 형가시험실로 들여왔는데 대부분은 쉽게 변형되거나 쭈그러졌지만 어떤 것은 아주 얇지만 지독하게 강해서 큰 해머로도 굽힐 수 없었습니다. 
그 시험을 한 사람들은 그것이 외계(우주)에서 온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다. 숨은 이야기들 


로즈웰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거의 같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 사건서 중요한 부분이 되는 특이한 사실이 빠져 있다. 사건 당시 5살의 소년이었던 제랄드 안데르센이 43년 후에 입을 연 이야기와 최면상태에서 밝혀진 내용들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또 발동할 수 있다. 미국에서 600여 개 대학에서 UFO에 관한 강의를 한 핵물리학자이고 저술가이기도한 스탠튼 프리드만은 그를 “1947년 여름 뉴멕시코에서 발생한 우주선 추락사건에 있어서 안데르센은 정말 의미 있고 잠재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격자”라고 소개했다. 

안데르센의 가족들은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때 그곳으로 이사를 왔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방금 이사온 5살의 안데르센에게, 온통 산과 바위와 잡목으로 뒤덮인 광경은 마치 딴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튿날 그는 정말 외계로부터 온 살아있는 생명체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모두 넷이었는데 둘은 죽었고 하나는 죽어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분명히 다치지 않았어요. 

그 생명체는 키가 약 120cm정도였고, 머리는 몸에 비해 상당히 컸어요. 그리고 눈은 아몬드형인데 전체가 시커멓게 보였지요” 라카웨이 비치에서 경찰로 근무했고 태니시(市) 부 보안관이었고 그 후 스프링필드에서 보안관리로 근무하고 있는 안데르센의 말은 그렇게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아주 단호한 어조였다. 그들은 약 15 미터 쯤 되는 은색 미행접시의 그늘로 뛰어 들어 갔다. 

“나는 그들을 보았고 심지어 만져보기도 했어요. 난 그 비행접시 안에 머리를 디밀어 봤어요. 그리고 난 혼자가 아니었어요. 나의 아버지, 아저씨, 형 그리고 사촌 모두가 보았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지만 모두 말하지 않았지요.” 

안데르센도 43년만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과 로켓트 기술의 요람인 중부 뉴멕시코에서 1947년 7월 “불가사의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군 당국은 그것이 기상 기구였고, 사람이 만든 것이었고, 자연적인 현상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꾸준하게 퍼져 나가 신문에 나오게 되고 책으로 출간되고 심지어는 영화로 만들어져, 실상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생물체가 방문한 것이었고 그와 같은 은하간의 대원정은 미국의 높은 사막지대에서 비극으로 끝났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이때, 살아 있던 외계인은 구출되어 이브(EBE외계 생물체)라고 명명되었고 사실상 EBE-1이 된다. 이브는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심문자가 하는 질문에 대해 통상적인 대답 밖에는 말하지 않았다. 사로잡힌 지 1년이 지난 어느날부터 이브는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가 말한 정보는 최소한만 이야기해도 기절할 정도였다. 이 때 밝혀진 내용이 ‘옐로우 북’의 근간이 되었다. 

EBE-1은 1951년 후반에 중병에 걸려서 치료를 받았으나 의사가 그들의 생물학적인 구조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병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브의 생물학적인 계통은 엽록소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음식물을 에너지화 하는 것도 식물들의 방식과 같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이브-1의 치료를 위해 식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식물학자 길레르모 멘도자 박사를 불러 이브가 회복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멘도자 박사는 1952년 중반에 이브-1이 죽을 때까지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했다. 멘도자 박사는 외계 식물학에 대해 전문가가 되었다. 

한편 이브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은 기술우위인 이브의 종족들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해 1952년 초에 광막한 우주 공간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방송을 시작했다. 이브가 죽었기 때문에 이러한 요청은 응답을 얻지 못했지만 이 계획은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지속되었다. 



--------------------------------------



라. 사실 은폐와 그 이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에 대한 은폐정책은 아주 강력하고도 집요한 것이었다. 앞에서도 우리는 드보스 대령이 클레멘트 맥뮬런 장군으로부터 은폐지시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모든 목격자와 관계자들에게 은폐는 똑 같이 강요되었다. 

월콕스 보안관의 가족들에 의하면 그는 그의 아내가 있는 곳에서 그가 본 것에 대해 발설하게 되면 그와 전가족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군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1980년 이래 로즈웰 사건이 많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잔해 수습에 관련된 목격자들 중 자진해서 나타나서 그 잔해에 대해 설명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반증하겠는가? 

또하나 결정적인 사례를 보자. 1969년 10월 죠지아 주지사인 지미 카터는 UFO목격담을 이야기했다. 그후 1976년 대통령 후보로서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UFO에 관한 모든 정보를 대중들과 과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가 대통형이 되고 난 다음엔 어떻게 된 영문인지 UFO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더하지 않았다. 만약 더 밝힐만한 정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사실을 왜 발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고 자신의 약속을 명예롭게 지키는 쉬운 방법인데도 말이다. 

왜 미국 정부는 UFO현상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 외계 생물체의 증거는 추측일 뿐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하기야 사안이 워낙 중대한 만큼, 모든 것을 그대로 발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세계 여러나라에 외계인과 접촉한 사실이 있고, 관련시설이 있지만 아직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밝힌 나라는 없다. 

정부가 지적(知的) 외계 생물체에 대한 정보 공개를 유보하고 있는 전형적인 변명으로 저 유명한 1938년의 오손 웰스의 세계전쟁 방송에 대한 반응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논법이 원용되고 있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에 의한 그 화성인의 공격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더구나 소위 우주시대에 진입한 지 반세기에 이르고 있고 특히 현세대는 핵전쟁으로 인한 대량 파괴의 위협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체 살아오고 있고, 거기다 에이즈, 폭력범죄의 증가, 국제 테러 등의 위협을 직간접적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이런 시대, 이런 세대에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해서 대중적 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본다. 

그리고 안보상의 이유에서라면, 미국 정부가 기술상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에 한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신중하고 분별력 있는 것으로 인정될 것이지만 그런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은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카터가 선거 운동 때 약속한 것을 실행하지 않은 것은 종교 단체에 대한 고려에서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 된다. 그것은 또한 소수의 이해를 다수의 이해보다 중시하는 것이 된다. 

로즈웰 사건의 증거들은, 우주의 여러 지적 존재들의 거대한 공동체에 있어서 인간이 유일한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지구중심의 견해를 쫓아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마. 대중의 반향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사전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차츰 행동을 보익 시작했다. 다른 전반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로즈웰 사건에 대히 일대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로즈웰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은 로즈웰 선언의 전문이다. 



* 로즈웰 선언 

47년 전(1994년 기준) 미국 남서부에서 인류 모두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거기에는 외계의 것으로 주장하는 물질을 미군이 수습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사건은 전국 신문에 실린 기사를 통해 1947년 7월 8일 미군이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것은 기상 기수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장으로 곧 바로 부정되었다. 그 후 그 사건은 정무의 비밀주의에 가려져 있다. 그 사건은 후에 4성 장군이 되어 미 공군의 부 참모총장이 된 로즈웰 육군 비행장 509전폭단 월리암 블랜차드 대령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것이다. 

기상기수 이야기가 은폐작전이라는 것은 워싱턴 디시로부터 은폐시키라는 전화를 직접 받은 고 토마스 드보스 장군을 포함해서 그 사건에 관련된 개인들에 의해 확인되어 왔다. 믿을 만한 군과 민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첫 기자회견 내용이 진실이고 로즈웰의 잔해는 외계의 것이라는 것을 증언했다.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은 509전폭단의 정보장교였고 현장에 처음부터 있었던 군 장교였던 제스 마슬 소령이다. 
1994년 1월 12일 미국 하원의원인 뉴멕시코주 알부커크 출신 스티븐 쉬프는 그가 선거구민과 목격자를 대신해서 1947년 로즈웰 사건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을 때 국방부가 철저하게 방해를 했다고 발표를 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조사하려고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방부의 무반응은 놀라운 것이며 그것은 분명히 정부의 또다른 은폐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공식적인 확인이나 부정은 종종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는 것은 역사에서 보아 왔다. 

로즈웰 사건의 진실이 나타나게 될 것을 보장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즉, UFO의 존재나 외계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대통령령으로 비밀해제시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조치는 적절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잠재적인 모든 목격자들에게 적극적인 확신을 주기 위해 그런 내용을 확실히 진술하고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조치는 대통령 후보 지미 카터가 약속하고 18ㄴㅕㄴ 전 1976년에 미국민들에게 돌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주장하듯이 만약 로즈웰 사건, UFO, 혹은 외계인에 대한 정보를 유보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을 대통령령으로 비밀에서 해제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형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밝힐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령은 기록을 바르게 유지한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시민들의 눈에서나 전세계인의 눈에서 오랜 논쟁과 의혹이 사라질 것이다. 

반면에 로즈웰 사건의 목격자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고 외계인에 대한 정보가 존재한다면 미국 정부의 소수 특권층만이 독점권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인이 가져야 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아주 중대한 지식인 것이다. 그 발표는 역사적인 정직과 호의로서 전세계에 알려야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쿠퍼의 정보와 그의 용기 

여기서 잠시 윌리암 밀튼 쿠퍼씨를 만나보기로 한다. 
그는 철옹성 같은 은폐의 장벽을 넘어 용기있게 정보를 널리 제공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한 연설에서 자신을 소개한 부분을 들어보자. 
“저는 군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애국자였고 전쟁터에 나가 싸웠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사랑했고 미국의 헌법을 믿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미국의 헌법이 곧 미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헌법을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나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는 아버지-아버지는 조종사였습니다-와 다른 조종사들로부터 푸 파이터foo fighter(2차 대전 시 전투기의 날개 부분에 불타는 공 모양으로 나타나 자유자재로 비행기의 날개 주위를 돌아다녔다), UFO 그리고 지구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한 항공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공군에 복무할 때, 추락한 외계인의 비행체의 복구에 참여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공군을 떠나 해군에 들어왔을 때, 저에게 중요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각 군에 복무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거의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주 모험적이었고 아주 열정적인 젊은이였고 그런 사실이 자신을 상당히 흥분시킨 것 같습니다. 저는 잠수함 부대에 지원해서 USS타이룻 SS-416잠수함에 근무했는데, 포트랜드/시애틀 지역과 모기지인 진주만 사이를 지나는 동안 좌현 감시로서 저는 어떤 비행물체를 보았습니다. 비행접시 모양인데 미드웨이 급 항공모함 만한 크기였어요. 

정말 엄청나게 큰겁니다. 그것이 대략 4~5㎞ 떨어진 곳에서 수면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그것은 자체의 축방향으로 천천히 구르다시피 하더니 구름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전 이 사실을 갑판 장교에게 보고했습니다. RMJ나 전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았을 경우엔 배 안에서 나혼자만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본 대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갑판 장교에게 제가 그 지역을 계속 감시하게 해달라고 했지요, 잠시 후 같은 비향물체인지 다른 것인지 아주 똑 같은 것이 구름 속에서 내려와서는 빙 돌면서 물 속으로 들어갔스비낟. 갑판 장교인 엔사인 볼은 문자 그대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현 감시를 하던 수병 드제랄리모도 이것을 목격하고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했습니다. 

엔사인 볼은 함교에 있는 대위를 불렀고 병참장교가 35㎜카메라를 들고 따라 왔습니다.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 때 꼭 같이 보이는 비행물체가 물로 들어가고 물에서 치솟았습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지적으로 유도되었고 아주 거대했습니다. 저는 공군과 해군에 근무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그 크기는 얼마나 될까? 그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었던 것 모두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는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해군 정보부대에서 교육을 받고 얼마 후 베트남으로 전속되었습니다. 처음엔 다낭 항에서 순찰정 캡틴으로 배속되었습니다. 

승무원도 있고 수 백만불짜리 순찰정이었어요. 항구 주면에 사는 사람들이나 항구를 거쳐가는 선원들로부터 저보를 수집새서 항구와 선박운행에 있어서 안전과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저의 임무였스니다. 약 5개우러 후 저는 북쪽 비무장지대인 타칸 상에 있는 콰비아프라는 곳으로 가게 되엇습니다. 

우리들의 베이스 캠프는 강 어구에서 다하까지, 그리고 쾅트리 출구에서 쾅트리 시까지 다니면서 강벼에 사는 사람들을 사귀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매일 밤 순찰을 하면서 강과 수상교통의 안전과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에 엄청나게 많은 UFO와 외계인의 황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거기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적 헬리콥터’로 공식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베트남에 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시 북베트남에는 헬리콥터가 없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헬리콥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비무장지대까지 날아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음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대는 가끔 이 ‘적 헬리콥타’의 공격을 받았고 사람들이 가끔 사라지곤 했습니다. 한 번은 외계인의 활약으로 적어도 한 마을 전체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베트남을 떠난 후 마지막으로 배속된 것이 지주만을 굽어보는 작은 언덕인 하와이 마칼라파에 있는 미국 태평양 합대의 총 사령관 본부 참모였습니다. 
저는 특히 태평양 함대총사령관에 대한 정보 브리핑팀에 배속 받았습니다. 
근무하는 과정에서 가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제라는 사실에 저 자신이 적응하기 어려운 그런 믿기 어려운 서류들이 제 손에 들어올 까가 있었습니다. 

아마 어떻게 그 정도의 비밀서류가 제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잠시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정보가 필요할 때, 그 정보의 등급에 해당하는 보안 패스를 필요로 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제가 가진 정보 패스는 미국에서 최고 등급이었습니다. 이 패스를 받으려면 약 6개월 가량 걸리는 FBI의 배경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요원을 집으로 출신 학교로 그리고 여러분의 선생님들, 친구들, 그리고 서류에 이름을 적은 모든 사람, 이웃들과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확인하는 지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척 당황스러워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증만 보이고 바로 질문을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복무 기록 카드 복사본을 받은 분들은 첫 페이지를 보면 거기엔 보안 패스라고 쓰여진 곳에서 ‘B.I'라는 용어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사국(B.I) 패스입니다. 그 패스가 있으면 탑 시크릿top secret 및 그 이상을 포함한 어떤 정보에 대해서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인도양, 태평양,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대륙 등 지구 표면의 절반 이상인 작전지역에 관하여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쟁이 났다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가해서 적을 항만에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이 미국 해군입니다. 여러분은 지역사령관이 알아야 할 정보와 자료의 양이 얼마나되는 지 모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그 정도로 알아야 하고 항상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한사람이 그렇게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브리핑팀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지역 사령관이 24시간 내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가끔 탑 시크릿top secret, 매직magic, 제한정보라고 표시된 메시지를 받는데 그것은 아부도 알 수 없는 식으로 암호화합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두 종류의 서류를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프로젝트 그럿지’라는 1936년이래 외계인이 개입한 역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1936년 추락한 비행접시를 독일이 복구해서 그 기술의 복제를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약 그들이 복제에 성공했다면 그 무기를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독일이 비행접시의 복제에 성공했다면 지금 이 강당 앞에도 독일 국기가 걸려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좀 앞선 부분은 있었습니다. 승전 후 우리는 몇몇 과학자와 일부 하드웨어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1947년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뉴멕시코주 로즈웰시 근처에서 발생했습니다. 

프로젝트 그럿지에서 저는 그 비행접시와 죽은 외계인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외계인의 사진도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해부사진, 내부기관을 보았습니다. 이브라고 명명된 외계인의 사진을 보았는데 그는 1952년 6월 2일 죽을 때까지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손상되지 않고 복구된 외계인 비행체를 실험비행하는 프로젝트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프로젝트 레드라이트라고 하며 처음엔 네바다 주 시험장에 있는 토노파 시험장에서 시행했고 그 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한 ‘에어리어area-51’지역(암호명 드림랜드)으로 옮겼습니다.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누구에게 묻든지 정부에 편지를 보내든지 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겁니다. 그 비행체로 비행을 해보고 시험비행을 해보는 계획은 한 비행체가 시험장에서 멀지 않은 상공에서 폭발한 1962년 어느 시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조종사는 사망하고 그 폭발은 3개 주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왜 폭발되었는지 아무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이 비행접시 조종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외계인들이 도와주기 위해 세 대의 비행접시와 인원을 제공할 때까지 프로젝트 레드라이트는 업무를 중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조종하는 비행접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획득한 기술을 이용하여 우리가 만든 비행체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목격했다고 보고하는 비행접시 중에는 미국인이 조종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여러분에게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의 기술 발전 중 많은 부분은 에어리어-51이라는 곳에서 정기적으로 외계인으로부터 기술을 교환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계인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를 한 참 들은 것은, 이런 경력과 성장배경을 가진 그가 과연 의도적으로 근거없는 이야기를 유포시킬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에서는 정부측의 대응 방법을 통해 그의 말에 대한 신뢰도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기로 한다. 






* 쿠퍼 정보에 대한 방해공작 

UFO에 대한 정보를 노출시키는 데 있어서는 위험성이 많다. 그런 정보를 노출시키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라도 안전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쿠퍼가 그의 정보를 널리 배포하고 그것이 단 번에 아주 많은 사람들-신문사, 의회, 주장관, 전세계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스며들어갔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그는 엄청나게 시달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정보가 아주 빨리 확산되었기 때문에 그 정보가 배포된 후 그를 침묵시키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단지 그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몇 마디 언급했을 뿐이다. 
1990년대 초, 쿠퍼에 대해 위협적인 방법으로 다루느냐 아니면 그를 불신하게 만드느냐를 놓고 열띤 논란이 있었다. 약 100만 불을 사용하기로 계획된 한 캠페인은 그를 불신하게 하는 노력이었다. 

쿠퍼가 여러 소스로부터 정보를 입수해서 자신이 돈을 벌 목적으로 그것을 유포시켰다는 것을 알리는 데 그 돈을 모두 쓸 계획이었다. 정규 방송을 통해서는 나가지 않았지만 UFO잡지와 조종할 수 있는 대부분의 UFO단체를 통해 기사를 싣고 폭로식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1990년이 끝나는 시점까지 UFO에 대한 다른 내용을 배포하는 것도 계획했고 여러 가지 많은 시나리오가 떠돌아 다녔다. 사람들은 어느것이 암까마귀이고 어느것이 수까마귀인지 알 수 없었다. UFO에 관심을 가진 극히 일부 사람들만 쿠퍼의 자료에 관심을 보이는 동안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믿을만한 사람들이 쿠퍼의 자료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땐 그를 불신하게 할 노력을 시작할 참이었다. 사전에 높게 분류된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이 공개되었다. 우리는 지금 살해당하는 것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개인들이,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말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그들이 모두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정보는 계속 공급되고 있다. 

차츰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우리는 광막한 우주를 더욱 넓고 깊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존재가 지구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우주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자신에게 좀 더 냉정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한 편 외계와 외계인에 대해 현실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



윌리암 쿠퍼씨의 특별 강연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최고사령관, 육군 대장 경력의 드와이트 데이빗 아이젠하워가 1953년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그 해 한 해에 최소한 10여 건의 UFO 추락 사건이 발생했는데, 외계인 24명이 죽고 4명이 산 채로 발견되었다. 추락사고는 아리조나 주에 4건, 텍사스 주에 2건, 뉴멕시코 주, 루이지애나 주, 몬타나 주 그리고 남아프리카에 각각 1건 씩 발생했다. 비행접시의 목격 사례는 그 해만 해도 수 백 건이 되었다. 

바로 그해, 천문학자들은 엄청나게 큰 물체가 지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그것들이 혜성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집한 정보를 종합 분석해 본 결과 그것은 우주선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구 가까이 왔을 때, 그 물체는 적도 상공의 높은 궤도를 잡았다. 거기에는 거대한 우주선들이 여러 대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의도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앞서 소개했듯이 시그마 프로젝트와 플라토 프로젝트는 2진법 컴퓨터 언어와 라디오 통신을 이용하여 이들과 교신한 결과 그들이 지구에 착륙하게 되고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 존재와 직접 대면(對面)하는 우주적 사건을 기록하게 되었다. 플라토 프로젝트에는 이들 우주에서 온 외계종들과 외교적 관계를 수립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이 외계인 그룹은 적도 상공을 돌고 있는 외계인들에 대해 지구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영적(靈的)발전으로 지구인들을 도와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들은 그들 제안의 주된 조건으로 지구에 있는 핵무기 체계를 해체하라고 했다. 그들은 당시 지구인들이 그들의 기술을 취급할 정신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기술교환 제의를 거부했다. 그들은 지구인들이 서로 파괴하는 데에만 그들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 외계종의 말로는 우리가 자멸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서로 죽이는 것을 중지하고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아야 하고 지구의 천연 자원을 강탈하지 않아야 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대로 핵무기를 모두 해체할 경우, 분명한 외계인의 위협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들의 조건을 수용할 수 없었다. 

미국으로서는 핵무기 감축이 결코 달갑지 않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우주인과의 서곡은 무위(無爲)로 돌아갔다. 그들은 플레이아데스 성단(星團)에서 온 외계인들이었다. 
다음 해인 1954년에 지구 궤도를 돌고 있던 코큰 그레이 종 외계인들이 홀로만 공군 기지에 착륙해서 그들과 기본적인 협정을 체결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리온 성단에 있는 붉은 별(베텔기우스)의 행성에서 왔다고 밝혔다. 

그들은 그들의 행성이 죽어가고 있어서 머지않은 장래에 그들은 거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후에 에드워드 공군 기지에 다시 착륙하게 된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는 미리 계획을 하고 조약의 세부사항들에 대해 합의한 상태였다. 아이젠하워는 미리 휴가로 팜스프링에 가 있다가 지정된 날(외계인과 만나는 날) 언론에는 치과에 간다고 변명하고는 감쪽같이 공군기지로 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들을 만나 미국과 외계 국가 간의 공식적인 조약에 서명했다. 그들은 이름과 직위가 “전능하신 폐하His omnipotent Highness 크릴”이라는 사상 첫 외계국 대사를 영접했다. 왕족 호칭을 경멸하는 미국의 전통에 따라 미국인들은 그를 “오리지날 인질 크릴”로 불렀다. 

그들의 깃발에는 삼면체 휘장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들의 우주선에도 그들의 제복에도 그렇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들이 두 번 착륙한 것과 회의 광경은 녹화되어 지금도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그 조약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외계인은 우리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구에 온 외계인의 존재를 비밀에 부칠 것이며 그들은 우리에게 앞선 기술을 제공해서 우리의 기술 발전을 도울 것이다. 그들은 지구의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해치지 않고 지구인에 대해 의료실험을 하고 인간의 발전을 모니타링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제한된 수의 인간을 납치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을 해치지 않고 납치장소에 되돌려 보내며 사건 당시의 기억을 지워버리게 하고 MJ-12에는 정기적으로 인간 접촉 내용과 피납자 명단을 제출한다. 협정 당사국은 협정이 유효한 한 서로 대사를 교환하기로 합의하고 서로에 관해 더 배울 목적으로 각각 16명씩 교환한다.]] 

외계인 손님들은 지구에 머물 것이고 지구인 손님들은 정해진 시간동안 외계인의 출발지로 갔다가 인원을 교체할 때 자신들의 행성으로 복귀한다. 외계 국가가 사용할 기지를 지하에 건설하는 것도 합의했다. 제 2의 기지는 미국과 외계국이 공동사용하기 위해 건설하고 여기서 기술 교환을 한다. 

이들 기지는 유타 주, 뉴멕시코 주, 아리조나 주 및 콜로라도 주의 네 곳에 인디안 보호거주지 하에 건설한다. 또 하나의 기지는 네바다 주의 드림랜드로 알려진 에어리아51 지역 내에 건설한다. 외계인의 기지는 해군이 완전히 통제하고 그 시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해군에서 급여를 받는다. 


기지 건설은 바로 시작했지만 1957년에 자금이 대량으로 유입될 때까지는 진전이 느린 편이었다. 한 편, 레드라이트 프로젝트가 만들어져서 외계인 비행체의 시험비행이 실시되었다. 초특급 비밀시설이 네바다 주의 무기 시험장 가운데에 있는 그룸 호수에 설치되었다. 암호명은 드림랜드였다. 

그 시설도 해군의 통제 하에 들어갔고 모든 인원들은 대통령 보안인가는 물론 “Q"보안 인가를 받아야 했다. 미국 대통령이 이 시설을 방문할 수 있는 보안인가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알쏭달쏭한 일이다. 외계인의 기지와 기술 교환은 ”달의 어두운 면“이라는 암호명으로 S-4로 알려진 지역에 실제로 시행되었다. 

모든 외계인 프로젝트에 대해 안전을 보장할 초특급 비밀조직은 육군에게 맡겼다. 이 조직은 콜로라도 주 포트 칼슨에 기지를 둔 국가 정찰 기구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훈련받은 특수 팀이 델타 팀이다. 
몇 백만 달러의 비밀자금이 조성되고 백악관의 군 담당관이 관리한다. 

이 자금은 75개가 넘는 깊은 지하 시설을 만드는 데에 사용된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면, 그 자금은 전쟁 시에 대통령을 위한 깊은 지하의 대피 시설을 만드는데 사용된다는 답을 듣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위해 만드는 것은 불과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수백만 달러의 자금은 이 담당관을 통해 MJ-12로 들어가고, 거기서는 일급비밀인 덤DUMB(심층지하 군 기지)은 물론 외계인 기지를 만드는 업자들에게 들어간다. 

이들 시설물들은 전국에 걸쳐 “대안 2(유사 시 대책 중의 하나)”로 공표된다. 존슨 대통령은 영화관을 짓고 자신의 농장으로 가는 도로의 포장을 하는 데에 이 자금을 사용했다(거기서도 비밀자금=눈먼 돈이란 등식이 성립되는 걸까?). 그는 그 돈의 사용처를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이들 시설물들이 위치한 장소와 모든 관련 사항은 일급비밀로 간주되고 그렇게 처리된다. 

그 자금은 최고의 스파이나 정통한 회계사도 흐름을 추적할 수 없는 거미줄같은 자금망을 통해 세탁이 되었고 그 후에도 그렇게 세탁하고 있다. 1980년 현재, 이 돈이 어떤 용도에 쓰이는지 자금 흐름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만 알고 있는 사람도 극소수일 뿐이다. 그 돈은, 육군의 건설 계획 중 일급 비밀항목으로 세출 위원회에 의해 국방부로 인가한다. 그러나 군은 그 돈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용도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그 돈의 사용 인가는 해군에 주어져 있다. 그 돈은 체사피크 해군 공병단으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도 돈의 용도를 모른다. 제독인 사령관 참모도 그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른다. 단 한 사람, 체사피크 사단에 배속된 해군 사령관- 그러나 현실적으로 백악관의 군 담당관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만이 그 자금의 실제 용도,금액, 그리고 최종 목적지를 안다. 

그 자금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비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금의 족적은 그것을 관장하는 바로 그 집단 내에서 거의 소멸되는 것이다. 대규모 자금이 일급비밀자금으로부터 땅콩 섬으로 불려지는 해안 수비대 소속의 플로리다 주 팜 비치에 있는 어느 곳으로 흘러들어간다. 그 섬은 죠셉 케네디가 소유하고 있는 땅과 인접해 있다. 그 돈은 그곳의 조경사업에 쓰여졌다고 한다. 

언젠가 케네디 암살에 관한 티비 특별 프로그램에서 해안 수비대 장교는 그 자금이 땅의 경계선에서 케네디 가의 직원에게 전달되었다고 말했다. 이 비밀 자금의 지원이 죤 에프 케네디를 잃은 대가로 케네디 가에 지원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자금 지원은 1967년 계속되다가 그 후로는 중단되었고 그 자금의 액수와 실제 사용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이브들에 대한 자금 지원에는 일반인에게는 상상도 되지 않는 방식이 있다. 외교관계 위원회의 젊고 야심적인 회원이 마약거래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그는 텍사스 주에 기지를 둔 자파타 오일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인 죠지 부시였다. 자파타 오일은 근해에서 굴착하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있었다. 남아메리카에서 어선에다 실은 마약을 이 굴착 시설로 보내면 물자와 사람을 수송하는 정상적인 운송수단으로 해안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세관이나 관련 부처에서도 그 화물을 수색하지는 않을 터였다. 죠지 부시는 그 방법을 도와주기로 하고 CIA지원과 연계해서 작전을 짰다. 이 계획은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어서 차츰 세계적으로 활동을 확대해 갔다. 그 후에는 불법적인 마약을 국내로 반입하는 데에 다른 방법들도 많이 동원되었다. 

죠지 부시가 아이들에게 마약판매를 시작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약은 안돼요!!”하는 오늘 날 언론 매체들의 켐페인에는 아랑곳없이 미국의 마약 황제는 죠지 부시이다. 
1955년에 이르러서는 이브들이 아이젠하워를 속이고 조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전국에 걸쳐 가축절단과 함께 인간 절단이 발견되고 있었다. 이브들은 조약에 합의한 대로 인간접촉과 납치자들의 명단을 MJ-12에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고 납치자들을 모두 돌려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소련이 이브들과 교류하고 있지 않나 의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무기는 이브들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에 MJ-12는 군사적으로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시키기로 결정했다. 소련과 다른 나라들도 인류의 생존을 위해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 편, 전통적인 핵기술을 사용한 무기 체계를 개발할 계획도 수립했다. 

그 연구 결과가 조슈아와 엑스캘리버 프로젝트인데 조슈아는 독일에서 얻은 기술로 저주파를 이용하여 3~4km의 거리에서 10cm두께의 장갑판을 부셔버리는 무기이고 엑스켈리버는 정한 목표지점에서 50m이상 벗어나지 않고 지하 1,000m까지 핵탄두 하나를 투입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브들의 지하 기지를 파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무기였다. 

'역사와미스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미도 사건  (0) 2012.12.28
베토벤의 돈이야기  (0) 2012.10.08
호주신문에 나온 이순신장군  (0) 2012.07.25
이스라엘에 대한 불편한 진실  (0) 2012.07.25
UFO 밥라자사건의 진상  (0) 2012.07.25